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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플레이어-68화 (68/150)

리턴 플레이어 68화

26장 라모르 르와이얄(2)

로니엄 공의 장례식은 격식을 갖춰서 치러졌다.

왕위 계승 서열은 낮았지만 평소 인기가 제법 있었던 탓에 많은 사람이 찾아와 애도를 표했다.

유리 사우스 국왕도 사촌 형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고 수도는 잠시 작은 슬픔의 늪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그림자 기사단과 프랑츠 제국이 사우스 왕국을 노리고 있었다.

그 사실은 이번 일로 인해 더욱 확실해졌고 마냥 슬퍼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823년 2월 장례가 끝나고 난 다음 날 테일러는 아침 일찍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호출을 받아 그의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으로 향하는 테일러의 곁을 알버트가 수행했다.

성녀 실비아의 신성 기도문 덕분에 그의 부상은 완전히 회복되었다.

“주군. 새로운 검은 쓰실 만합니까?”

알버트가 물었다.

테일러의 허리에는 이전까지 쓰던 검과 다른 검이 걸려 있었다.

클라크 위스펠 남작과의 전투에서 검의 반이 마력검에 의해 잘려나갔기 때문에 새 검을 보급받은 것이었다.

전에 쓰던 검은 뱀파이어로부터 빼앗은 것이기 때문에 제법 좋은 편이었지만, 이번에 보급받은 검은 기사용으로 보급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쓰던 것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보급용 검이 좋지 않은 탓에 많은 기사들은 왕국의 대장장이 길드나 상점 등에서 검을 주문해서 쓰고 있었다.

“그럭저럭 쓸 만은 합니다. 어차피 마력검의 싸움이니 마병기가 아닌 이상 검은 거기서 거기죠.”

기사들의 싸움에선 마력검이 승패를 좌우한다.

검의 내구도는 사실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테일러는 생각했다.

알버트도 동의하는 것인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며 말을 천천히 몰다 보니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평소보다 많은 인원이 저택의 대문을 지키고 있었다.

미리 테일러의 방문 사실을 전달받은 것인지 테일러와 알버트가 말을 몰고 다가가자 젊은 수습기사 2명이 양쪽에서 대문을 열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기사 한 명이 들어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내자 테일러와 알버트는 말을 몰아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종자 2명이 달려나와 말의 고삐를 받아 들고 마구간으로 인도했고, 말에서 내린 테일러와 알버트는 그 사이 저택 안의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저택 외부와 마찬가지로 내부의 경계도 상당히 삼엄했다.

이전에 방문했을 때에 비하면 상당한 수준이었다.

아무래도 최근 잇달아 벌어지는 불미스러운 사건들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한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조치인 듯했다.

수도의 내성은 왕성 다음으로 안전했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왕국 정보부의 특수요원 소수를 자신의 집에 배치한 상태였다.

유리 사우스 국왕 또한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이 그런 조처를 하는 것을 허락했다.

왕국 정보부의 수장이며, 왕국의 두뇌라고 불리는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이 암살이라도 당한다면 그것은 왕국의 크나큰 손실이었다.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젊은 편이었고, 아들이 있었지만, 아들은 10대 초반의 나이로 그의 자리를 이어받기엔 너무나 어렸다.

게스 엘런데일스도 아버지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을 닮아 천재 소리를 듣고 있지만, 아직 나이가 너무 어린 게 흠이었다.

하다못해 그가 20대만 되어도 왕국 정보부를 맡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너무나 어렸다.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이 죽으면 왕국 정보부를 맡을 인재가 없다는 소리였다.

다른 귀족들은 그 권력에만 욕심이 있고 제대로 다룰 줄은 몰랐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집무실 앞에 도착하자 엘런데일스 후작 가문에 충성을 맹세한 고위 기사가 말했다.

무기를 압수하지 않는 것을 보니, 그만큼 테일러를 믿고 있다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테일러가 좋지 않은 마음을 품고 검을 뽑아들더라도 막을 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강력해 보이는 2명의 고위 기사가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뒤에 서 있었고 왕국 정보부의 특수요원으로 보이는 자가 벽 쪽에 6명 서 있었다.

“어서 오게. 테일러 경. 알버트 경.”

서류를 검토하고 있던 엘런데일스 후작이 고개를 살짝 들어 반겼다.

로니엄 공의 죽음을 비롯한 그림자 기사단의 활동 때문에 상당히 피곤한 것인지 눈 밑에 검은 다크서클이 진하게 나타나 있었다.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소식이라면 최근 테일러의 활약으로 수도 인근의 그림자 기사단은 사실상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봤고, 여러 특수부대의 활약으로 왕국 내의 그림자 기사단 또한 큰 피해를 당해 최근에는 활동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반갑습니다. 엘런데일스 후작.”

“거기 앉게. 나도 곧 그쪽으로 가겠네.”

테일러와 알버트가 정중하게 인사하자 엘런데일스 후작은 둘에게 의자에 앉을 것을 권하며 남은 서류 정리 작업에 집중했다.

“잠시만 기다리게나. 다 끝나가니까. 저 둘에게 다과를 부탁하네.”

“네.”

테일러와 알버트를 의자에 앉힌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둘에게 양해를 구하고 시녀를 시켜 차와 과자를 내놓게 한 뒤 서류 작업에 집중했다.

왕국 정보부의 수장인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에겐 왕국 내에서 벌어지는 일 중 가장 중요하다고 왕국 정보부 내에서 판단되는 정보들이 매일 같이 쏟아졌고 그 정보들의 검토는 매일 빼놓을 수 없는 일과였다.

만약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이 아닌 다른 이였다면 미쳐버렸을 지도 모를 정도로 업무량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회귀하기 전 사우스 왕국의 삶에서 참모부에서 근무했던 적이 있었던 테일러는 정보를 검토하는 게 쉬워 보여도 결코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급히 검토해야 할 서류가 있어서 말이네.”

서류를 한쪽으로 예쁘게 정리한 엘런데일스 후작이 자리에서 일어나 테일러와 알버트의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으며 테이블 위에 놓인 과자를 하나 집어 먹었다.

“오늘 아침은 이것으로 때워야겠군.”

그렇게 말하며 과자를 한 조각 더 집어 입에 넣는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

그런 그의 모습에서 그가 얼마나 바쁜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저를 부르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선 한마디 해야겠군. 자네 운이 참 좋군. 칠흑의 기사에게서 살아남다니.”

“칠흑의 기사?”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대답 대신에 서류 한 장을 꺼내 테일러에게 건넸다.

그곳에는 클라크 위스펠이라는 이름과 함께 그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서류에 적힌 정보를 읽어 내려가는 테일러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그런 테일러를 보며 엘런데일스 후작은 설명을 위해 입을 열었다.

“칠흑의 기사 클라크 위스펠 남작.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의 심복이며 그림자 기사 조장. 실력은 작위를 가진 그림자 기사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지. 작위는 남작이지만 본국과 비교해선 곤란하네. 그림자 기사단에서 뛰어난 실력을 지닌 기사단원만 받을 수 있는 그림자 기사 중에서도 오등작 귀족이 될 정도라면 적어도 사우스 왕국에서 고위 기사가 되고 실력으로만 자작의 작위를 받은 자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네.”

비밀리에 활동하는 그림자 기사단의 정보를 모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의 심복 몇 명은 너무나 유명해서 사우스 왕국 정보부에서도 비교적 쉽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대단한 자가 굳이 주군을 유인하기 위해 함정을 파고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주군을 노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엘런데일스 후작.”

알버트 후안이 진지한 얼굴로 묻자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눈동자를 한 바퀴 굴린 뒤 시녀가 가져온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차를 절반 정도 비운 뒤 그는 눈동자를 반짝 빛내며 입을 열었다.

“후안 경. 경의 주군인 테일러 경의 활약으로 인해 그림자 기사단은 큰 피해를 봤다네. 아마 내가 그림자 대공이었다면 상당히 화가 났을 것이야. 실제로 그림자 대공도 그런 감정을 느꼈을 테고, 그러니 실력 있는 그림자 기사를 파견한 것이겠지.”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설명에 테일러와 알버트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반도에 잠입한 그림자 기사단이 펼친 작전 중 적지 않은 수의 작전이 테일러에 의해 방해받았다.

그것으로 부족해서 수도 인근의 그림자 기사단이 큰 피해를 보기도 했다.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짜증 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림자 기사단원의 추가 지원이 있어야 했을 텐데, 저희를 습격한 이들 대부분이 암살자 길드의 암살자들이었습니다. 그림자 기사단원의 수는 적었습니다.”

테일러가 의문이라는 돌을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이라는 이름의 호수에 던졌다.

빌리 엘런데일스는 즉시 반응했다.

“최근, 왕국 정보부의 보고에 의하면 프랑츠 제국에서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의 상황이 그렇게 좋지 않은 모양이더군. 베르헨 공작과 사이가 틀어진 것은 거의 확실하고 많은 귀족이 그의 곁을 떠났다고 하네. 아마도 자신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서 그림자 기사단의 인력을 빼는 것은 무리였을 것이야. 그래도 복수는 해야 하니 아끼는 심복을 보낸 것이겠지.”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미소를 지었다.

“이해했나? 그렇다면 다행이네. 잡담은 이쯤하고 자네를 부른 이유를 설명하겠네.”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잠시 말을 멈추고 의자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서랍을 열어 빼곡히 글자가 적혀 있는 서류를 꺼냈다.

서류를 꺼낸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그것이 자신이 꺼내고자 했던 서류가 맞는 것인지 대충 읽어보는 것으로 확인했다.

“읽어보게.”

“알겠습니다.”

엘런데일스 후작으로부터 서류를 받아든 테일러는 찻잔을 내려놓고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레딘 남작령의 광산에 자리 잡고 있는 라모르 르와이얄의 대장장이 길드를 그림자 기사단이 노리고 있다는 정보였다.

국왕과 엘런데일스 후작은 테일러와 제이드 기사단을 움직여 대장장이 길드를 노리는 그림자 기사단을 저지해주기를 원하고 있었다.

라모르 르와이얄와 그의 대장장이 길드에 속한 대장장이들은 솜씨가 좋아 아주 질이 좋은 무기를 양산해낼 수 있는 기술과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국가에 크게 적극적인 협조를 하지는 않았지만, 전쟁이 터질 경우 왕국을 외면할 정도도 아니었다.

그들은 전쟁이 터진다면 분명 왕국에 도움을 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도 이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라모르 르와이얄과 그의 대장장이 길드를 무력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라모르 르와이얄?”

“아주 고집불통인 영감이지. 마병기를 주조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좀처럼 왕국에 마병기를 만들어주려고 하지 않네. 만든다면 금화를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인데 말이지.”

라모르 르와이얄이라는 대장장이에 대한 설명을 하며 엘런데일스 후작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라모르 르와이얄.

그는 사우스 왕국의 대장장이이며, 대장장이 길드의 길드 마스터로 마병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낸 솜씨의 대장장이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왕국에 적극적인 협조를 하지 않고 있었다.

가끔 기분이 내키거나 생활비 또는 길드 운영비가 떨어졌을 때 마병기를 하나씩 만들어 보낼 뿐이었다.

“마병기를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까?”

테일러의 눈이 반짝였다.

마병기는 아무나 만들 수 없었다.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무기를 주조하고 실력 있는 고위 마법사가 마법을 부여해야 마병기가 탄생한다.

라모르 르와이얄에게 무기 제작 의뢰를 맡길까 하고 테일러는 생각했다.

최근 기부를 하지 않았으니, 마병기 제작을 의뢰할 금화는 충분했다.

“후훗. 마병기 제작 의뢰를 생각하고 있다면 그만두는 것이 좋네. 그는 마병기를 자주 만들지 않거든.”

테일러의 기대를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이 처참하게 박살 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알버트와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하게.”

테일러와 알버트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집무실을 나와 저택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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