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67화
26장 라모르 르와이얄(1)
위스펠 남작은 테일러들을 상대로 우세를 점하고 있었지만, 그의 부하들은 그렇지 못했다.
소수의 그림자 기사단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암살자 길드를 통해 고용한 암살자들이었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서 질이 별로였다.
그래서 제이드 기사단은 전투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나 여유를 찾은 가이우스가 위스펠 남작에게 대적하기 위해 합류한 것이었다.
그의 곁에는 일리아가 소환한 불의 정령도 함께였다.
불의 정령 군주는 전투 초반에 집중 공격을 받고 역소환된 상태였다.
“소나기.”
칠흑의 기사 클라크 위스펠 남작은 또 다른 기술명을 영창했다.
검은 마력이 하늘로 승천하더니 구름이 되어 소나기를 뿌렸다.
그림자의 권능 소나기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마력을 빼앗는 소나기 또 다른 하나는 칼날 같은 예리한 비를 내리는 것으로 적에게 상처를 입히는 소나기.
이번 것은 전자였다.
불의 정령이 희미해졌다.
비틀거리더니 역소환되고 말았다.
가이우스도 마력을 잃어가자 당황한 얼굴로 창백해졌다.
“알버트. 물러나세요!”
알버트의 마력검이 사라졌지만, 테일러의 마력검은 희미하지만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주군!”
“마력검이 없는 이상 대적은 무립니다.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크윽. 틈을 봐서 지원하겠습니다.”
거듭 강조해서 말하자 알버트는 순순히 물러났다.
그는 충심이 깊었지만 무모하지는 않았다.
마력검이 있는 상대에게 마력검이 없는 상태로 달려들었다가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교본에 의하면 마력검의 사용이 가능한 고위 기사를 상대할 때는 적어도 3명 이상의 기사가 협공을 취해야만 한다고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3명 중 1명은 반드시 목숨을 잃을 것이며 심하면 2명이 죽을 수도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알버트는 물러났지만, 완전히 물러나진 않았다.
마력검이 사라진 초라한 장검을 들고 언제든지 개입하겠다는 의사를 불태웠다.
“흐아아앗!”
“흐읍!”
테일러와 위스펠 남작의 검이 맞붙었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테일러의 마력검이 산산이 조각나고 검은 마력검이 테일러의 검을 깨끗하게 잘라내고 지나쳐 테일러의 머리를 노렸다.
간신히 몸을 굴러 위스펠 남작의 검을 피해낸 테일러를 향해 검은 마력의 파도가 덮쳤다.
“주군!”
그 순간 지켜보고 있던 알버트가 몸을 날려 검은 파도를 대신 맞았다.
“크아악!”
“알버트!”
알버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다.
“쥐새끼가 끼어들었군.”
위스펠 남작은 검을 들어 올렸다.
주군인 그림자 대공의 주적을 멸하기 직전이었는데, 웬 쥐새끼가 끼어들어 녀석의 목숨을 연명시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의 눈동자엔 서슬퍼런 살기가 흘러 넘쳤다.
“제길.”
테일러는 욕설을 내뱉으며 주변을 살폈다.
마력을 잃은 가이우스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고, 살라다르 경과 알버트는 몸을 꿈틀거릴 뿐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테일러는 마력검을 잃고 검마저 두 동강 난 상황.
그나마 다행이라면 살라다르 경과 알버트의 몸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나오며 상처가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실비아의 신성 기도문이었다.
눈동자를 빠르게 굴려 주변을 살피던 테일러는 전투의 소음이 잦아든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니 암살자와 그림자 기사단원들은 전멸한 상태였다.
조금만 있으면 제이드 기사단이 도와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시간을 줄 생각이 위스펠 남작은 없는 듯했다.
그가 검을 들어 올렸다.
“이제 끝이다.”
그리고 내려친다.
테일러는 단검을 던졌지만, 마력 갑옷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끝난 것인가?”
테일러는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했지만 생각한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뭔가가 허공을 찢으며 날아오는 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이내 쾅!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위스펠 남작이 이를 악물고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알폰스가 던졌던 방패를 회수하고 있었다.
로펜 경과 쟈크 경이 수십 명의 제이드 기사단원들과 함께 클라크 위스펠 남작을 향해 포위를 좁히고 있었다.
소나기의 영향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로펜 경과 쟈크 경의 마력검을 무사했다.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었지만 마력검이 사라지기 전에 결판을 내기에 충분한 수였다.
“오늘은 이쯤 해야겠군.”
테일러의 앞을 막아선 로펜 경을 매섭게 노려보며 위스펠 남작이 말했다.
“안개.”
그리고 이어진 주문 영창과 함께 검은 안개가 그를 휘감았다.
“모두 뒤로 물러서게!”
로펜 경의 경고.
테일러는 뒤로 물러났고 로펜 경과 쟈크 경이 제이드 기사단원들과 함께 쓰러진 알버트와 살라다르 경을 뒤로 끌었다.
어둠에 모습을 숨기고 기습을 가할 것이라는 생각과 다르게 기습은 없었다.
검은 안개가 사라지자 칠흑의 기사 클라크 위스펠 남작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 * *
“상태창.”
[테일러.
고위 기사
Lv:59
스킬[14/15]
Lv14고위 기사 검술[A] Lv5 불의 검[B] Lv6 마력검[B] Lv5 파마의 검[A] Lv4 암석거인의 가호[B] Lv9상급 방어 검술[C] Lv6하급 아머 마스터리[E] Lv1눈에는 눈 이에는 이[A] Lv6 마나연공법[C] Lv8통솔[C] Lv5레인저의 직감[C]Lv1 결사의 의지[A] Lv1도주[E] Lv5벌목[E]]
잔여 포인트:8]
레벨이 1증가하고 포인트가 3 추가 되었으며 고위 기사 검술, 파마의 검, 암석거인의 가호, 마나연공법 스킬이 상승해 있었다.
전투가 끝나고 상태창을 확인한 테일러는 레드를 찾기 위해 경상을 입은 케이트 경에게 제이드 기사단원 10명과 함께 수색 명령을 내렸다.
케이트 경은 복부가 검에 깊게 베이는 상처를 입었지만, 실비아의 신성 기도문 덕분에 경상으로 격하되었다.
이번에 가장 많이 고생한 이 중 한 명이 실비아였다.
그녀는 불평을 하면서도 꾸준히 신성 기도문을 외워 많은 수의 제이드 기사단원을 살렸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전사자는 30명을 넘겼을 것이다.
“케이트 경!”
“뭔가를 발견했습니까? 르담 폴슨 경?”
테일러의 명령을 받아 기사단원들과 함께 레드르 수색하고 있는 케이트 경을 폴슨 경이 다급하게 불렀다.
케이트 경은 부하들에게 주변 수색을 지속하라고 지시를 내린 뒤 폴슨 경이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맙소사! 레드 경?”
그곳에는 레드가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있었다.
자신을 부르는 여린 여성의 목소리에 레드는 고개를 들어 올려 능글맞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경이라는 호칭은 집어 치워. 케이트 ‘경’. 나는 기사가 아니니까. 쿨럭!”
그러면서 피를 한 움큼 뱉어내는 것이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만약을 위해 준비해온 들것에 레드를 싣고 실비아에게 달려갔다.
실비아 그레이의 신성 기도문이 레드의 몸을 포근하게 감싸자 고통에 일그러진 레드의 얼굴이 한결 편해졌다.
“그나저나 테일러는 어디 있는 건가? 케이트 경.”
회복 마법에 조예가 깊진 않았지만, 어느 정도 할 줄은 알기에, 간이 의료막사에 배치된 가이우스는 케이트 경에게 테일러의 행방을 물었다.
“기사단장이라면 중앙 수비군의 상급 장교 벨라 리빙스턴 준남작과 대화를 나누고 계십니다.”
전투가 끝나고 히퍼 레딘 남작의 영지군 100명과 상급 장교 벨라 리빙스턴 준남작이 지휘하는 중앙 수비군 500명이 도착했었고 테일러는 클라크 위스펠 남작의 추격을 위해 리빙스턴 준남작과 한참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미 중앙 수비군의 고위 기사 1명이 기사 20명과 병사 100명을 이끌고 클라크 위스펠 남작을 추격하고 있었다.
“중앙 수비군은 왕국의 정예입니다. 적이 그림자 기사 작위를 받은 그림자 기사단원이라고는 하지만, 곧 추격하여 사살할 것입니다.”
벨라 리빙스턴 준남작은 자신만만하게 중앙 수비군 추격대의 승리를 확신했지만, 테일러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상대한 클라크 위스펠 남작은 같은 그림자 기사인 팔버릭 경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무력을 자랑했었다.
고위 기사 3명의 합격을 여유롭게 막아낼 뿐만 아니라, 치명적인 공격을 통해 알버트와 살라다르 경을 전투 불가능한 상태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고위 기사 3명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테일러가 볼 때 클라크 위스펠 남작은 전혀 지친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도망치는 그 순간까지 위스펠 남작의 얼굴에선 여유가 넘쳤었다.
테일러의 얼굴의 걱정을 읽은 것일까? 중앙 수비군의 상급 장교이자 준남작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벨라 리빙스턴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걱정 마십시오. 남부 레인저 여단 출신의 기사가 한 명 동행하고 있습니다. 흔적을 쫓는 것에 선수입니다.”
테일러의 눈동자가 벨라 리빙스턴 준남작에게 향했다.
그녀는 도저히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다.
왕립 사관학교 출신의 이 상급 장교는 중앙 수비군의 힘을 너무 맹신하고 있었다.
“중앙 수비군의 승리를 기원합니다.”
테일러는 그렇게 말했지만 오늘 내로 벨라 리빙스턴 준남작의 중앙 수비군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 깨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4시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새벽이 찾아오고 벨라 리빙스턴 준남작이 보낸 중앙 수비군의 추격대도 귀환했다.
성녀 실비아 덕분에 알버트와 살라다르 경을 포함해 목숨이 위태롭던 중상자 전원이 경상 정도로 회복되었기 때문에 급하게 수도로 귀환할 필요가 없었던 제이드 기사단은 갑작스럽게 클라크 위스펠 남작이 또 다른 군대를 이끌고 공격할 것을 대비해 중앙 수비군의 야영지에서 머물고 있었다.
덕분에 처참한 모습으로 귀환한 추격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설마 혼자서 중앙 수비군의 추격대를 저 꼴로 만든 것인가? 이보게. 테일러. 대답 좀 해보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력을 회복한 가이우스는 기운을 차렸다.
그는 출발할 때보다 절반 정도 줄어 있는 추격대의 모습을 보고는 경악했다.
분명 추격할 대상은 클라크 위스펠 남작 혼자였다.
“아마 위스펠 남작의 지원군이 있었다면 모두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가이우스.”
그렇게 대답하며 고개를 돌려 벨라 리빙스턴 준남작이 있는 방향을 향했다.
전사한 고위 기사 대신 간신히 살아남은 기사의 보고를 받고 있는 그녀의 얼굴에는 충격과 공포의 감정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끔찍하군.”
어느새 곁에 다가온 살라다르 경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살라다르 경. 몸은 좀 괜찮아지셨습니까?”
테일러의 물음에 살라다르 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예. 알버트 경도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리빙스턴 준남작께 로니엄 공의 수색을 시작하자고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테일러 경.”
벨라 리빙스턴 준남작이 다가오며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테일러는 의문을 표했다.
벨라 리빙스턴 준남작은 유감이라는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추격대가 방금 그분의 시신을 수습해왔습니다.”
아무래도 좀 전에 보고를 받으면서 벨라 리빙스턴 준남작이 충격과 공포의 감정을 느낀 것은 추격대의 패주가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