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플레이어-64화 (64/150)

리턴 플레이어 64화

24장 칠흑의 기사(2)

그림자 궁전에 도착한 알 하이자르는 차가운 대리석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나이트쉐도우 후작이 그의 앞에 섰다.

“사우스 왕국으로 보낼 그림자 기사단원을 소집할까요?”

나이트쉐도우 후작이 질문했다.

그는 자신의 주군인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가 베르헨 공작의 말대로 행동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림자 궁전으로 오는 길에 사우스 왕국으로 보낼 그림자 기사 조장들까지 생각해둔 상태였다.

하지만 그림자 대공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최근 나를 지지하는 귀족들이 베르헨 공작의 아래에 모이고 있다. 공작은 황금 군단과 프랑츠 정보국의 특수요원들을 수도로 불러들이고 있어. 유감스럽지만 사우스 왕국으로 보낼 병력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계획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이트쉐도우 후작의 말에 알 하이자르는 이를 악물었다.

역사의 흐름대로라면 계획은 반드시 달성해야만 했다.

“칠흑의 기사를 보낸다.”

“클라크 위스펠 남작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알 하이자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나이트쉐도우 후작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그라면 안심이군요. 방해물이 무엇이든 부숴 버릴 겁니다.”

“그리고 그에게 마병기를 주어라. 그 어떤 경우에도 마력검을 유지시키는 게 아마 있을 것이다.”

테일러의 기묘한 기술에 대해서는 이미 그림자 기사단에서는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기사단의 대장장이에게 다녀오겠습니다.”

* * *

“느립니다!”

쟈크 경의 검이 테일러의 검을 쳐내고 철제 흉갑을 때렸다.

갑옷을 입고 있어서 상처는 입지 않았지만, 진검에 맞는 경험은 서늘한 경각심을 주기에 충분했다.

“핫!”

테일러는 말의 고삐를 잡아 당겨 말을 옆으로 이동시키며 쟈크 경과 거리를 벌렸다.

쟈크 경은 테일러를 추격했다.

지금 둘은 마상 검술 수련을 하고 있었다.

검술 실력은 우수하지만, 마상 검술 실력이 상당히 부족한 테일러를 진정한 기사로 만들겠다며 쟈크 경이 직접 나선 것이었다.

그림자 기사단과의 전투로 제이드 기사단은 적지 않은 피해를 봤지만 정보부의 실수도 있었기 때문에 테일러는 큰 피해를 보지 않았다.

대신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부하가 큰 피해를 봤다.

소문에 의하면 정보부에서 나왔다는 듯했다.

“기사단장! 도망치지만 말고 공격해보십시오!”

“조금만 봐주십시오!”

823년 1월 두 사람이 훈련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훈련소 가장자리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실비아 그레이와 알폰스 그레이였다.

“지루하지? 슬슬 다른 곳으로 갈까?”

“오빠가 보고 싶다며, 보자. 계속.”

테일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하는 실비아.

알폰스는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입을 열었다.

“나는 충분히 구경했으니 괜찮아. 신전에 잠시 들릴까?”

“아 좀! 보고 싶다고 했으면 닥치고 봐!”

참다못한 실비아가 짜증을 부렸다.

알폰스는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다.

“알았다.”

말을 타고 검을 휘두르는 테일러의 모습을 바라보는 실비아의 두 눈이 반짝였다.

그런 실비아를 지켜보던 알폰스는 멀리서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전령기를 든 전령이 말을 타고 달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잠깐 중지하도록 하지.”

전령의 기척은 테일러 또한 느꼈다.

그는 쟈크 경과 함께 말에서 내려 전령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의 마상 검술 수련을 지켜보고 있던 살라다르 경 또한 뒤를 따라 전령에게 이동했다.

“제이드 기사단의 기사단장 테일러 경 되십니까?”

“그렇다. 무슨 일이지?”

“여기 명령서입니다.”

테일러는 청색 군복을 입은 전령이 건넨 명령서가 담긴 봉투의 봉인을 깨고 명령서를 꺼내 읽었다.

명령서를 끝까지 읽은 테일러는 명령서를 고이 접어 허리에 걸린 주머니에 집어넣고 쟈크 경을 향해 몸을 돌렸다.

“쟈크 경.”

“네. 기사단장. 하명하시지요.”

“즉시 소집종을 울려야겠습니다. 긴급 명령입니다.”

제이드 기사단의 고위 기사 쟈크 경은 즉시 소집종을 울렸고, 테일러가 능력을 증명함으로 인해 이제는 테일러를 어느 정도 따르게 된 제이드 기사단은 신속하게 훈련장으로 모였다.

가이우스가 수도의 과자 상점을 순례하고 있었지만 마탑의 고위 마법사의 도움을 받아 통신 마법으로 연락하니, 과자 상점 순례를 포기하고 바로 달려와 주었다.

테일러는 훈련장의 돌계단 위로 올라가서 훈련장에 모인 기사단원들을 내려다보았다.

기사단이 만들어지고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익숙한 얼굴도 보였지만 익숙하지 않은 얼굴도 조금 보였다.

익숙하지 않은 얼굴들은 약 한 달 전에 그림자 기사단의 기습을 받아 전사한 기사단원들을 대신하기 위해 국왕이 새로이 넣어준 후임자들이었다.

“시간이 없으니 간단하게 말하겠다. 왕족 로니엄 사우스 공이 레딘 숲에서 몬스터들에게 포위되었다고 한다.”

“로니엄 공께서……?”

“적어도 고위 기사가 10명은 호위로 붙어 있었을 텐데.”

테일러의 말에 훈련장에 모인 기사단원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로니엄 공은 왕족이었기 때문에 숲과 같은 위험한 지역에 사냥을 갈 때 적어도 10명 정도의 고위 기사와 50명 이상의 기사단원, 100명 이상의 병사들이 함께 했다.

이번에도 비슷한 규모의 호위대가 편성되었고, 호위대의 호위 속에서 안전하게 숲에서 사냥을 즐겼었다.

레딘 숲은 레딘 남작령에 속한 숲으로 수도에서 말을 타고 하루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기 때문에 정기적인 토벌이 이루어져 뱀파이어 같은 고위 몬스터는 씨가 말라 있었기 때문에 국왕은 그 정도의 호위면 당연히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로니엄 공의 사냥을 허락했다.

“몬스터의 공격인 겁니까?”

테일러가 손을 들어 올려 기사단원들을 침묵시키자 고위 기사 쟈크 경이 질문했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다지 강한 몬스터가 등장하지 않는 로니엄 숲에서, 상당한 규모의 호위대와 동행한 왕족이 포위되어 버린 것이다.

쟈크 경이 이 상황을 믿지 않는 것도 테일러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전령의 보고에 의하면 몬스터에 의한 공격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군. 어쩌면 그림자 기사단을 가능성도 있다.”

테일러의 대답에 가이우스는 오만상을 찡그렸다.

“또 그 까만 녀석들인가? 지겹군! 지겨워!”

“어쩔 수 없습니다. 가이우스. 왕국 내에 그들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계속 싸워야만 합니다.”

불평을 늘어놓는 가이우스를 달래는 테일러.

테일러의 말에 가이우스는 조금이나마 표정을 풀었다.

가이우스의 표정이 조금 풀리자 테일러는 관련 내용을 계속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레딘 남작이 급하게 수색대를 편성했지만, 남작가라서 그런지 정규군의 수가 턱없이 적어, 제대로 된 수색이 힘들다고 한다. 수도 근처에서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는 병력은 우리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 제이드 기사단은 지금 즉시 레딘 남작령의 레딘 숲으로 향해 로니엄 공의 구출 작전을 수행한다. 질문 있나?”

기사단원들 가운데, 누군가 손을 들어 올렸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최근 합류한 수습기사였다.

“말하라.”

테일러가 허락하자 수습기사는 입을 열었다.

“로니엄 공의 호위대 규모는 결코 작은 편이 아닙니다. 고위 기사가 10명이나 붙어 있으니, 제이드 기사단보다 강력한 전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호위대를 포위시킬 정도면 저희 기사단이 도움이 될 수 있겠습니까?”

“약 2시간 정도 후에 국왕 기사단이 중앙 수비군과 함께 우리를 지원해 줄 것이다. 또 질문 있나?”

수습기사는 손을 내리고 입을 닫았고, 손을 드는 자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좋다. 그럼 레딘 숲으로 이동한다.”

종자들이 마구간에서 말을 내왔고, 제이드 기사단원들은 종자가 내온 말에 올라탔다.

그리고 테일러의 지휘를 받아 레딘 숲으로 향했다.

* * *

“허억!”

칠흑의 기사 클라크 위스펠 남작의 검이 빠른 속도로 2번 휘둘러졌다.

그의 앞을 막았던 청색 망토를 두른 고위 기사의 팔과 다리가 조각났다.

팔다리를 잃은 고위 기사는 쓰러져 붉은 피를 쏟아냈다.

“과연, 대단하십니다. 위스펠 남작.”

곁에서 위스펠 남작을 수행하고 있던 그림자 기사단원이 감탄했다.

“입을 놀릴 시간이 있으면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적을 베어 죽여라.”

“아, 알겠습니다.”

부하의 사탕발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위스펠 남작은 서슬 퍼런 한기가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림자 기사단원은 검을 뽑아들어 청색 군복을 입은 병사를 향해 달려갔다.

위스펠 남작은 주변을 살폈다.

고위 기사 6명을 연속으로 죽인 그의 실력을 목격한 로니엄 공의 호위대는 그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변은 비게 되었다.

전투는 그림자 기사단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쉽게 압도하지 못했다.

250명 정도되는 인원으로 공격했지만 위스펠 남작의 활약으로 간신히 승기를 잡고 있었다.

쉽게 압도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250명 중 20명을 제외하면 전원 암살자 길드에서 고용한 인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를 견제하기 위해 베르헨 공작이 황금 군단과 프랑츠 정보국의 특수 요원들을 불러 모은 것 때문에 알 하이자르는 반도에 클라크 위스펠 남작을 홀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사우스 왕국의 그림자 기사단은 대부분 흩어져 있었고 수도 인근의 그림자 기사단은 테일러에 의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당한 상태.

클라크 위스펠 남작이 로니엄 공을 미끼로 쓰기 위해 쓸 수 있었던 그림자 기사단원의 수는 50명 정도에 불과했다.

거기서 30명 정도는 제이드 기사단이 아닌, 중앙 수비군의 발을 묶기 위한 양동 작전에 투입해야 했기 때문에 사실상 20명 정도의 기사단원만 쓸 수 있었다.

그림자 기사단이 프랑츠 제국의 최정예라고는 하지만 20명으로 고위 기사가 10명이나 포함된 로니엄 공의 호위대를 작살낼 수는 없었다.

결국 위스펠 남작은 암살자 길드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가 활동 자금을 여유 있게 지원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수의 암살자를 고용할 수 있었다.

“내 칼을 받아라!”

마력 갑옷까지 두른 고위 기사가 한 명이 기사 2명과 함께 클라크 위스펠 남작에게 달려들었다.

클라크 위스펠 남작의 두 눈이 빛나고 검은 마력검이 움직였다.

“크악!”

“갑옷.”

마력검을 사용하지 못하는 기사는 일격에 검과 함께 반 토막이 나버렸고, 기사의 피를 전신에 뒤집어쓰며 클라크 위스펠 남작이 중얼거리자 검은 마력의 갑옷이 그의 갑옷 위에 깃들었다.

검은 마력의 갑옷이 춤을 추는 것처럼 클라크 위스펠 남작의 갑옷 위에서 일렁였다.

“파도!”

위스펠 남작이 손을 뻗어 소리치자 그의 손에 깃든 검은 마력이 앞으로 쏘아졌다.

그것은 마치 방파제를 덮치는 강한 파도처럼 매서웠다.

그 검은 마력의 파도는 고위 기사와 기사 한 명을 덮쳤다.

“흡!”

“크아아악!”

마력 갑옷을 두른 고위 기사는 마력 갑옷이 조금 희미해질 뿐 무사했으나, 마력 갑옷을 구사할 수 없는 기사는 갑옷이 난자당한 종이처럼 너덜너덜하게 찢어지고 그 틈으로 붉은 피를 마구 쏟아내며 쓰러졌다.

고위 기사 또한 다량의 마력을 소모한 탓에 몸을 휘청였다.

그 틈을 노리고 위스펠 남작이 번개처럼 달려가 검을 휘둘렀다.

고위 기사는 대응했다.

두 개의 검이 부딪치고 마력끼리 충돌하면서 불똥이 허공에서 흩어졌다.

“흐아아앗!”

고위 기사는 기합을 내지르며 빠른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위스펠 남작은 검을 움직여 막아냈지만 한 번의 검격을 허용해버렸고, 가슴을 때리는 검격에 마력 갑옷이 조금 손상되는 피해를 봤지만, 마력 갑옷은 건재했다.

마력검이 강력하다면 일격에 마력 갑옷을 박살 내는 경우도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위스펠 남작의 마력 갑옷을 박살 내기엔 위스펠 남작의 마력 갑옷을 이루고 있는 마력이 너무 많았고, 고위 기사의 마력검을 이루고 있는 마력은 부족했다.

본래 그의 마력은 부족하지 않았지만 좀 전의 검은 마력의 파도를 버티느라 마력검을 구성하고 있던 마력의 일부를 마력 갑옷으로 옮긴 탓에 마력검의 공격력이 조금 약해져 있었던 것이다.

마력 갑옷을 박살 내지 못하고 가슴에서 멈춘 고위 기사의 검을 클라크 위스펠 남작은 검을 잡지 않은 왼손으로 잡았다.

서로의 마력이 충돌하면서 불똥이 튀긴 했지만, 마력 갑옷 덕분에 위스펠 남작의 손이 조각나지는 않았다.

검이 위스펠 남작에 의해 붙잡혔지만, 고위 기사는 크게 당황하지 않고 검을 버린 뒤 허리에 걸려 있는 작은 검을 뽑아들었다.

클라크 위스펠 남작은 고위 기사의 검을 멀리 집어 던졌다.

빙글빙글 돌며 날아간 검이 멀리 떨어진 곳의 바닥에 박혔고 위스펠 남작의 검이 고위 기사의 목을 노렸다.

“크윽!”

“창!”

고위 기사는 신음성을 흘리며 그 공격을 받아냈지만 위스펠 남작의 왼손에서 만들어진 창까지 피하지는 못했다.

“윽!”

창이 마력 갑옷을 찔렀고 마력 갑옷이 크게 요동쳤지만 관통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충격에 고위 기사는 신음성을 내뱉었다.

충격이 심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마력 갑옷이 깨지기 직전이라는 것을 의미했고 그 징후를 포착한 위스펠 남작의 눈이 반짝였다.

위스펠 남작의 검이 고위 기사의 검을 쳐낸 뒤 마력 갑옷이 보호하지 못하는 머리를 내려쳤다.

고위 기사는 팔을 들어 막았으나, 마력 갑옷이 깨지고 말았다.

마력 갑옷이 깨지자 위스펠 남작의 창이 다시 한번 고위 기사의 허리를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고위 기사는 그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었고, 결국 검은 마력의 창은 허리를 깊숙이 꿰뚫고 들어가 반대쪽으로 빠져나왔다.

고위 기사의 몸을 관통한 검은 마력의 창은 그의 몸을 관통한 것에서 멈추지 않고 내부에서 날카로운 칼날 여러 개로 변형되어 날뛰었다.

고위 기사는 고통에 찬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떨었다.

검은 마력의 창이 소멸할 때쯤엔 고위 기사의 숨통이 끊어져 있었다.

“위스펠 남작.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림자 기사단원 한 명이 옆으로 다가와 보고했다.

주변을 살펴보니 그의 말대로 상황은 종료되어 있었다.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던 왕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있었고, 왕족 로니엄 공만이 숨이 붙어 있었다.

그림자 기사단원 한 명이 검은 마력검이 깃들어 있는 검으로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로니엄 공을 사로 잡는 것에 성공했습니다. 그의 처분을.”

“놈을 유인하는 데는 시체면 충분하다. 죽여라.”

위스펠 남작의 말에 로니엄 공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그의 목에 아슬아슬하게 닿을락 말락 다가와 있던 검이 움직여 목을 잘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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