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61화
23장 함정(2)
테일러의 굳은 표정을 본 일리아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내는 가운데, 지시를 하달받은 케이트 경이 즉시 행동에 나섰다.
소집종이 울리고 수습 기사 5명이 흩어졌다.
하지만 1시간이 지나도록 전원이 모이지 않았다.
리펠로 쟈크 경과 기사단원 10명이 느린 걸음으로 도착했을 뿐이었다.
해가 하늘에서 모습을 감추는 시간이 되어서야 살라다르 경이 남은 기사단원들을 이끌고 합류했다.
테일러는 화가 많이 났지만, 화를 내기에는 시간도 많이 없었고, 역효과가 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꾹 눌러 담았다.
“대기 명령도 없었는데, 급하게 소집이라니. 무슨 일인가? 기사단장.”
여전히 버릇없는 태도로 테일러를 대하는 살라다르 경의 모습에 테일러의 뒤를 지키고 선 알버트의 얼굴이 굳었으나, 감히 검을 뽑거나 하지는 못했다.
“좋은 질문이다. 살라다르 경. 그림자 기사단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왕국 정보부의 보고다.”
테일러의 말에 훈련장에 모인 제이드 기사단의 분위기가 변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반항적이었던 분위기였지만 지금은 테일러에게 모두가 진지하게 집중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왕국의 적인 그림자 기사단을 향한 적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테일러를 향한 적의와 반항심은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세한 작전 내용은 말해줄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큐리스 자작령에서 그림자 기사단과의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경들이 나를 못 믿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만은 부디 내게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 전달은 여기까지. 전원 무장하고 다시 집결한다.”
“예! 알겠습니다!”
대답하는 기사단원은 적었지만, 모두가 신속하게 행동을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훈련장엔 완전 무장한 100여 명의 기사단원이 집결했다.
왕국군 병사 몇 명이 100여 필의 말을 확보해서 데리고 왔고 제이드 기사단의 기사단원들은 일제히 말에 올랐다.
“큐리스 자작령까지 신속하게 이동한다!”
100여 명의 제이드 기사단이 열린 성문을 통과해 서쪽으로 말을 달렸다.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쉬지 않고 큐리스 자작령을 향해 말을 달린 덕분에 5일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큐리스 자작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말을 타본 적이 많이 없었던 실비아가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일리아 같은 경우엔 직접 전쟁에 참전하며 말을 탄 적이 많았기 때문에 테일러보다 더 능숙한 승마술을 선보여 기사단원들의 박수를 받았지만, 승마 실력이 기사치고는 뛰어나지 않은 테일러는 기사단원들의 비웃음을 사게 되었다.
822년 11월 왕국 정보부의 첩보로 그림자 기사단의 암살 행동을 막기 위해 움직인 제이드 기사단이 큐리스 자작령의 큐리스 중심도시에 도착했다.
철광산을 보유하고 있는 큐리스 자작령답게 그 중심도시는 상당히 부유했고 병사들의 무장 상태도 좋은 편이었다.
“환영합니다. 테일러 경.”
안나 큐리스 자작은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수도에서 파견된 제이드 기사단을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테일러와 제이드 기사단이 도착한 그날 밤, 안나 큐리스 자작은 제이드 기사단을 환영하는 연회를 열었다.
철광산을 보유한 영지의 영주가 여는 연회답게 산해진미가 가득하고 규모도 상당히 커서 테일러와 제이드 기사단은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연회가 끝나고 다음 날 아침 해가 밝았다.
음주를 최대한 자제하라는 테일러의 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이드 기사단원 대부분이 술에 취해 제대로 일어나지 못했다.
그 모습에 테일러는 화가 났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화를 어느 정도 삭힌 뒤 그는 자신의 방으로 파티원 전원과 제이드 기사단의 고위 기사 3명과 사관학교를 졸업하여 통솔이 가능한 기사들을 호출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파티원들이 가장 먼저 도착했고, 그 뒤를 이어서 로미오 로펜 경과 리펠로 쟈크 경이 도착했다.
살라다르 경은 가장 마지막에 불량한 걸음걸이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왔군.”
살라다르 경이 등장하자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으로부터 제공받은 기사단원 신상정보 서류를 읽고 있던 테일러가 서류를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늦어서 미안하군.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말이지.”
살라다르 경은 능글맞게 웃으며 의자에 앉았다.
테일러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음주를 자제하라는 명령이 있었지만. 듣지 못했나 보군. 아무튼, 모두 모였으니 전달하겠다. 케이트 경. 준비된 서류를 나누어주도록.”
“알겠습니다.”
테일러의 명령에 케이트 경이 의자에서 일어나 미리 준비되어 있던 서류를 7명의 기사와 3명의 고위 기사에게 전달했다.
“경들이 지휘해야 할 기사단원들이다. 읽어보도록.”
테일러의 말대로 각 서류에는 기사단원 9명의 이름과 간략한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7명의 기사와 3명의 고위 기사들이 지휘하게 될 기사단원들이었다.
테일러는 경호의 효율을 높이고 그림자 기사단과의 첫 조우 때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10인 1조로 제이드 기사단을 총 10개 조로 나누었다.
남는 인원이 소수 있었지만, 그들은 테일러의 파티와 함께 안나 큐리스 후작의 근접 경호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살라다르 경. 경은 영주성의 성문을 경비했으면 한다.”
“하! 어째서?”
“최근 그림자 기사단의 행보가 매우 대담해지고 있기 때문에 성문을 통한 침입도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고 보고 있다. 이것은 왕국 정보부의 의견이니, 이견이 있다면 정보부에 직접 하소연하도록.”
“큭.”
테일러의 말대로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왕국 정보부는 성문을 통한 대담한 침입도 생각하고 있었고, 테일러와 제이드 기사단에 그에 따른 준비를 해두라고 경고했었다.
테일러가 아닌 왕국 정보부의 의견이라는 소리에 반항하려던 살라다르 경은 꼬리를 말았다.
막 나가는 살라다르 경이라고 해도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왕국 정보부는 조금 두려웠다.
“쟈크 경과 로펠 경은 나와 번갈아 가면서 큐리스 자작의 근접 경호를 맡는다.”
“예. 예.”
“알겠습니다.”
쟈크 경이 조금 무례하게 대답했고 로펜 경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정중하게 대답했다.
테일러가 다시 손짓하자 케이트 경이 준비되어 있던 또 하나의 서류를 7명의 기사와 살라다르 경에게 전달했다.
“이 서류에는 각자 맡은 구역과 대충의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자세히 읽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이번에 전달된 서류에는 각자 맡은 구역과 간략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테일러와 함께 근접 경호를 맡은 쟈크 경과 로펜 경에겐 서류를 건네주지 않았다.
“테일러.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네.”
고위 마법사 가이우스가 질문을 던졌다.
“아, 가이우스. 레드. 실비아. 일리아. 알폰스. 알버트는 저와 함께 움직이시면 됩니다. 임무는 큐리스 자작의 근접 경호입니다.”
“그렇군. 자세한 설명 고맙네.”
가이우스가 고개를 끄덕이고 테일러가 입을 열었다.
“전달 사항은 이것으로 끝이다. 각자 맡은 인원을 소집하여 맡은 구역으로 이동하도록 한다.”
“예.”
“알겠습니다.”
대답 소리와 함께 기사단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테일러의 방을 나섰다.
기사단원들이 방을 나가고 테일러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주군. 이대로는 안 됩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래. 너의 명령을 전혀 듣지 않고 있어. 어제만 해도 음주를 자제하라는 명령이 있었는데, 그렇게 술을 마구 마셔대니. 마치 반항하는 것 같더군.”
알버트가 조심스럽게 우려를 표했고, 레드 또한 동의했다.
레드의 말대로 어젯밤 테일러는 분명 음주 자제 명령을 내렸지만, 대부분의 기사단원이 그 명령에 반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마구 술을 위장에 퍼부었다.
“그렇지 않아도 걱정이 많습니다.”
테일러는 솔직하게 말했다.
제이드 기사단 때문에 최근 그는 걱정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있었다.
오죽하면 그의 금발이 생기를 잃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신의 힘이라도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알폰스. 어떻게 안 됩니까?”
“나는 신을 믿지 않습니다. 실비아에게 부탁해보세요.”
테일러의 부탁에 알폰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알폰스는 신성교의 성기사면서 신을 믿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가 성기사로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는 성녀 실비아의 축복 덕분이었다.
“너무 걱정마세요. 테일러. 이번 일을 잘 해결하면 그들도 당신을 따를 거예요.”
일리아가 말했다.
테일러는 일리아를 향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된다면 좋겠군요.”
훈훈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실비아가 입을 열었다.
“남자가 돼서 그거 하나 해결 못 하고…….”
그녀의 말에 테일러는 피곤한 얼굴로 그녀를 살짝 흘겨 보았지만 피곤해서 상대하기 싫은 것인지 고개를 저으며 딱 한마디 했다.
“도대체 제게 왜 이러십니까?”
그의 말에 실비아는 크게 당황한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 * *
큐리스 자작은 암살 위협을 받고 있었지만, 평소와 같은 생활을 하였다.
겁쟁이처럼 경호만 믿고 숨어 있지 않고 분주하게 영지를 돌아다니면서 살폈다.
국왕에게서 직접 하사받은 영지였기 때문에 안나 큐리스 자작이 영지에 가지는 애정은 상당했다.
12월이 다가오는 오늘도 거칠고 찬 바람이 불었지만 큐리스 자작은 두꺼운 옷으로 몸을 가린 채 중심도시 주변의 작은 마을 3곳 정도를 살피고 영주성으로 돌아왔다.
제이드 기사단원 10명이 먼저 영주성으로 진입하여 안전을 확인했다.
“이상 없습니다.”
조장을 맡은 케이트 경이 영주성 안에 위험이 포착되지 않은 것을 보고했고 테일러는 파티와 함께 큐리스 자작을 수행하여 영주성 안으로 진입했다.
“테일러. 저기 살라다르 경이 아닌가?”
큐리스 자작을 호위하여 영주성에 위치한 저택으로 향하고 있던 테일러의 어깨를 치며 가이우스가 말했다.
테일러가 고개를 돌려 가이우스를 바라보니, 가이우스는 손가락 끝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이우스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그곳에는 3명의 기사가 모여 술로 보이는 액체가 담긴 잔을 들고 웃으며 떠들고 있었다.
3명 중 가장 질 좋은 갑옷을 입고 있는 기사가 두르고 있는 망토는 고위 기사 브로치로 고정되어 있었다.
시선을 집중하니, 그가 살라다르 경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
테일러는 어이가 없었다.
살라다르 경의 근무지는 영주성 성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테일러는 영주성 성문과는 제법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저택과 더 가까운 곳이었다.
만약 살라다르 경이 맞다면 그는 근무지 이탈뿐만 아니라, 근무 중 음주까지 겹친다.
“알버트. 저택까지 큐리스 자작을 안전하게 모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테일러의 물음에 알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성, 내성, 영주성으로 나누어져 있는 큐리스 중심도시에서 가장 깊은 곳이라고 할 수 있는 영주성 안이었으니까 잠깐 동안 자리를 비워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럼 부탁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