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리턴 플레이어-59화 (59/150)

리턴 플레이어 59화

22장 제이드 기사단(4)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이 자리를 비우고, 테일러들은 주둔지에서도 고위 기사 3명이 모여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은밀하게 이동하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발걸음 소리와 갑옷이 철그럭 거리는 소리 등이 날 수밖에 없었다.

기척을 느낀 고위 기사들은 수련을 멈추고 목검을 옆의 거치대에 거치시켰다.

그러고는 테일러를 향해 다가왔다.

“살라다르다. 테일러 경이라고 했던가? 잘 부탁한다.”

제일 먼저 말문을 연 고위 기사는 특이하게도 두 개의 검을 허리에 차고 있었는데, 테일러가 지휘관으로 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테일러를 바라보는 눈빛이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테일러가 그의 손을 잡자 살라다르 경은 테일러의 손을 으스러뜨릴 각오로 힘을 주었다.

철제 장갑이 손상을 입을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살라다르 경은 철제 장갑에 심각한 손상을 입힌 뒤에서야 만족한 얼굴로 옆으로 물러섰다.

살라다르 경이 옆으로 물러서자 짧은 흑발의 고위 기사가 다가와 살라다르 경의 경우와는 다르게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었다.

“리펠로 쟈크입니다.”

자신을 소개한 쟈크 경은 조금의 지체도 없이 살라다르의 옆으로 가서 섰는데, 테일러는 그에게서도 자신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백발의 고위 기사가 테일러의 앞으로 걸어 나왔다.

“로미오 로펜이오. 잘 부탁하오리다.”

세 명의 고위 기사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로미오 로펜 경은 테일러에게 비교적 호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테일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기사단의 주력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고위 기사 전원이 자신을 적대하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자신이 평민 출신이고, 나이도 어리며 벼락출세한 데다가 고위 기사도 아닌 평기사였기 때문에 지휘를 받는 고위 기사들의 반발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 범위였다.

다행히 가장 노련해 보이고 실력 있어 보이는 고위 기사가 적대감을 대놓고 표출하지 않으니, 그나마 안심이었다.

이제 적대감을 대놓고 드러내는 살라다르 경만 어떻게 하면 될 것 같았다.

“모두 반갑습니다. 제 동료들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테일러는 눈동자를 바쁘게 굴려 고위 기사들의 눈치를 살피며 파티원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고위 마법사 가이우스를 시작으로 해서 신성교의 성녀 실비아를 끝으로 끝난 파티원 소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테일러가 자신을 소개하기 위해 입을 연 순간이었다.

“저는…….”

“아, 알고 있어. 방금 전에 아는 의무병으로부터 얘기를 들었지. 전멸한 274부대를 지휘했던 기사지?”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무례하게도 테일러의 말을 중간에 끊는 것도 모자라서 아픈 곳을 노려 찌르는 살라다르 경의 말에 할 말을 잃은 테일러를 대신해 알버트가 장검의 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앞으로 나와 소리쳤다.

호전적인 태도에 살라다르 경 또한 두 개의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입을 열었다.

“후훗. 한 번 해보자는 건가?”

“주군. 이 녀석의 버릇을 고칠 수 있도록 검을 뽑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허락합니다. 알버트 후안 경.”

테일러는 알버트가 검을 뽑는 것을 허락했다.

알버트가 살라다르 경을 이긴다면 가장 좋은 경우였고, 진다고 하더라도 살라다르 경의 실력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고 테일러는 생각했다.

알버트가 검을 뽑아들자 살라다르 경을 제외한 고위 기사 두명과 테일러와 파티원들은 뒤로 한참을 물러났다.

“어리다고 해서 봐 주지 않는다. 애송이!”

살라다르 경이 두 개의 검을 뽑았다.

진검 대련에서는 진검을 쓰기는 하지만 마력검의 사용은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두 고위 기사는 마력검을 활성화하지 않았다.

물론 마력검을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진검을 사용하는 만큼 진검 대련에서는 많은 기사가 목숨을 잃어왔다.

그렇기 때문에 테일러는 만약의 상황이 발생하면 즉시 개입하기 위해 두 눈에 힘을 주고 검에 손을 올린 채 두 고위 기사에게 집중했다.

두 고위 기사는 서로를 노려보며 검을 든 채 조심스럽게 조금씩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알버트는 철제 흉갑과 철제 견갑, 그리고 철제 완갑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살라다르는 고위 기사들은 잘 입지 않는 가죽 갑옷만 입은 상태였다.

그의 검 두 자루는 정상적인 장검에 비하면 아주 조금 짧은 편이었고 조금 휘어져 있었다.

정상적인 장검이라고 보기에도 힘들고, 곡도라고 보기에도 힘든 정도였다.

어느 정도 거리가 좁혀든 순간에 알버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주군을 모욕한 상대에게 정의의 철퇴를 내리기 위해 알버트의 발이 땅을 박차고 그의 몸이 살라다르 경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튕겨져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알버트와 살라다르 경의 거리가 좁혀졌다.

살라다르 경은 두 개의 검을 들어 올렸다.

살라다르 경의 목을 노리고 쇄도하는 알버트의 검을 하나의 검으로 막아내고 또 다른 검으로 검을 잡고 있는 알버트의 손목을 노렸다.

철제 장갑과 완갑 사이에 나 있는 틈을 노린 공격.

알버트는 검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알버트가 검을 포기한 시점에서 승부는 결정 났음에도 불구하고 살라다르 경의 검은 멈추지 않았다.

테일러와 알폰스가 나서려고 했지만 이미 늦고 말았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로펜 경이 엄청난 속도로 움직여 검을 뽑지도 않고 완갑으로 살라다르 경의 검을 쳐냈다.

“이쯤 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네. 그만두게나. 살라다르 경.”

“로펜 경의 얼굴을 봐서 참는 것이다. 운이 좋은 줄 알아라. 애송아.”

마른 침을 삼키는 알버트 후안을 향해 살라다르 경은 차가운 말을 내뱉은 뒤 검을 집어넣고 어디론가로 사라졌다.

“내가 봐도 상당히 무례하군. 테일러. 한 번 확실하게 잡을 필요가 있겠어.”

테일러의 곁에 다가온 레드가 조용히 속삭였다.

레드의 말에 테일러도 공감했지만 살라다르 경을 어떻게 잡을지가 문제였다.

방금 알버트와의 진검 대련에서 드러난 실력으로만 봐서는 테일러와 살라다르 경의 실력은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의 성격을 고치려면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몸으로 느끼게 해줄 필요가 있었지만 지금 테일러의 실력으론 살라다르 경을 이길 수는 있어도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이기는 것은 힘들었다.

“걱정 마시오. 살라다르 경이 조금 반항적이기는 하지만 국왕 폐하께 충성하는 고위 기사라오. 전투에 돌입하면 누구보다 명령을 잘 따를 것이오. 274부대에 친한 동생이 있어서 특히나 반항적인 것 같소.”

테일러의 곁으로 다가온 로펜 경이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말했다.

“실례지만 이름을 알 수 있겠습니까?”

“포드릭 경이라오. 언젠가는 고위 기사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검술을 구사하는 친구였소.”

로펜 경의 대답에 테일러는 죽은 포드릭 경을 떠올렸다.

여러모로 훌륭한 기사였다.

“그는 훌륭한 기사였습니다. 그와 274부대의 일은 정말 유감입니다. 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것입니다. 제가 목숨을 걸고 막겠습니다.”

테일러의 말에 로펜 경은 주름이 보이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지휘관의 목숨은 그렇게 쉽게 거는 것이 아니오.”

“명심하겠습니다.”

로펜 경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다.

지휘관의 목숨은 사실상 부대 내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봐도 좋았다.

지휘관이 죽는다면 부대는 사기를 잃고 다음 장교가 지휘권을 행사하기 전까지 잠깐 동안 지휘 공백이 생긴다.

그것을 노리고 전투가 발생하면 지휘관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다.

“로펜 경이라고 했나요?”

“그렇소.”

고개를 숙인 테일러를 지켜보던 일리아가 이를 한 번 악물더니, 앞으로 나서며 로펜 경을 불렀다.

로펜 경이 대답하자 일리아는 테일러를 대할 때와는 다르게, 두 눈을 날카롭게 뜨며 입을 열었다.

“앞으로 이런 모습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테일러가 경험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국왕 폐하께서 임명하신 기사단장입니다. 기사단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로펜 경께서 미리 살라다르 경의 미친 짓을 막았어야 했어요.”

로펜 경은 입을 다물었다.

일리아의 말대로 로펜 경은 사전에 살라다르 경의 반항을 막을 수도 있었다.

겉으로는 테일러를 위하는 척 행동했지만, 결국엔 그도 테일러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엘프라고 해도 말이 심하군.”

지켜보고 있던 쟈크 경이 나섰다.

“말조심하세요. 저는 하이 엘프이며 엘프 연방의 간부입니다.”

“큭.”

쟈크 경이 물러섰다.

엘프 연방을 적으로 돌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싸늘한 냉기가 가득한 주변의 공기에 테일러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사이 좋게 지내자는 의도는 산산조각 나 버렸고 분위기는 심각했다.

“로펜 경.”

쟈크 경을 매섭게 노려보는 일리아의 모습에 테일러는 한숨을 내쉬며 로펜 경을 호출했다.

얌전해 보이는 일리아의 다른 모습에 조금 당황했던 로펜 경이 정신을 가다듬으며 테일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부르셨소?”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우리 모두 대화를 나누기엔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그게 좋을 것 같소이다.”

로펜 경도 테일러의 의견에 동의했다.

“모두, 진정하고 저택으로 돌아갑시다.”

테일러는 모두를 데리고 필리스터 자작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이 보낸 정보부 요원이 그들을 가로막고 왕성 내에 숙소가 마련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이미 필리스터 자작 가문에는 통보되었다는 사실에 테일러는 갑작스러웠지만 옮겨진 숙소로 이동했다.

왕성답게 필리스터 자작 가문의 저택보다 경비가 삼엄했고, 곳곳에서 고위 기사 브로치를 찬 고위 기사들이 출몰했다.

각자 정보부 요원의 안내를 받아 정해진 숙소로 향했고, 테일러 역시도 고급스러운 장식이 가득한 문을 열고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숙소는 넓었다.

거실과 침실로 나누어져 있었고 테라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거실의 의자에 앉아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밖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들어와도 좋습니다.”

기척의 주인이 노크를 하려는 순간 테일러가 말했다.

문이 열리고 편한 차림의 일리아 웨스트우드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일리아.”

“테일러. 제가 오늘 주제넘게 나서서 화나신 것은 아니죠?”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숙이는 일리아.

그 모습은 마치 주인에게 혼나서 풀이 죽은 강아지 같았다.

본능적으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싶은 충동을 느낀 테일러는 그것을 자제하며 입을 열었다.

“전혀요. 저를 옹호해주셔서 기뻤습니다.”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테일러의 모습에 일리아의 볼이 살짝 붉어졌다.

“어디 아프십니까? 얼굴이 붉습니다.”

“더, 더워서 그래요. 저 좀 뛰고 올게요!”

그녀의 이마로 손을 가져가는 테일러.

일리아는 테일러의 손을 부드럽게 밀어내며 일어나 밖으로 뛰어나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