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58화
22장 제이드 기사단(3)
팔버릭 경은 분노하여 검을 휘둘러 요셉 폰뷰셀 준남작이 타고 있는 말의 목을 잘라냈지만, 요셉 폰뷰셀 준남작은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착지하여 인간이 구사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무서운 속도로 검을 휘둘렀다.
그 빠른 쾌검에 팔버릭 경의 왼팔이 날아갔다.
팔이 잘려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팔버릭 경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팔버릭 경은 검은 마력검이 깃든 검을 휘둘렀다.
팔버릭 경의 검은 요셉 폰뷰셀 준남작의 가슴을 찔렀으나, 희미한 푸른 마력의 갑옷 탓에 깊이 뚫고 들어가지 못했다.
갑옷을 조금 뚫는 것에서 그쳤다.
요셉 폰뷰셀 준남작은 검으로 팔버릭 경의 검을 옆으로 밀어내며 깊게 파고들어 단검을 뽑아 팔버릭 경의 목에 꽂았다.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팔버릭 경의 몸이 고통에 발작을 일으킨 듯 요동쳤다.
요셉 폰뷰셀 준남작은 마지막으로 팔버릭 경의 가슴을 검으로 꿰뚫은 뒤 검을 뽑아냈다.
요셉 폰뷰셀 준남작의 몸에서 푸른 마력이 희미하게 나타났다.
고위 기사 중에서도 수준급의 실력자만이 구사할 수 있다는 마력 갑옷이었다.
그는 검을 검집에 집어넣고 쓰러져 있는 테일러를 잡아 일으켰다.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결사의 의지 스킬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이미 전투는 끝난 상황이었다.
팔버릭 경의 죽음과 동시에 얼마 남지 않은 그림자 기사단원들은 후퇴를 결정한 것이었다.
짧은 전투였지만 국왕 기사단과 필리스터 근위대의 피해는 제법 심각해 보였다.
테일러는 274부대의 피해를 보고받았는데, 그 피해가 너무 심각하여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파티의 피해가 알폰스의 부상으로 그친 것은 다행이었다.
살아남은 274부대 병사의 보고를 받는 테일러의 얼굴 표정은 심각했다.
국왕에게 처음으로 인정받고 지휘를 인정받은 부대였다.
그런데 전멸시키고 말았다.
절망하고 자책하는 그의 뒤로 요셉 폰뷰셀 준남작과 루시드 필리스터가 다가왔다.
“경은 최선을 다했다. 그림자 기사단을 상대로 기사단도 아닌 병사들을 데리고 이 정도 싸운 것이면 훌륭하다고 볼 수 있어.”
요셉 폰뷰셀 준남작이 말했다.
그의 말대로 그림자 기사단을 상대로 이 정도 버틴 것이면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위로 감사합니다.”
루시드와도 짧은 대화를 나눈 뒤 테일러는 결사의 의지 스킬이 활성화된 것을 확인하기 위해 상태창을 불러왔다.
[테일러.
고위 기사
Lv:58
스킬[14/15]
[공격계/ Lv13고위 기사 검술[A] Lv5 불의 검[B] Lv5 마력검[B] Lv3 파마의 검[A]]
[방어계/Lv3 암석거인의 가호[B] Lv9상급 방어 검술[C] Lv6하급 아머 마스터리[E]]
[특수계/Lv1눈에는 눈 이에는 이[A] Lv5 마나연공법[C] Lv8통솔[C] Lv5레인저의 직감[C]Lv1 결사의 의지[A]]
[비전투계/Lv1도주[E] Lv5벌목[E]]]
마력검, 파마의 검, 통솔의 레벨이 2씩 상승하고 결사의 의지 스킬이 활성화되었지만 기쁘지 않았다.
* * *
사우스 왕국의 국왕 유리 사우스는 현명하기로 유명하다.
그는 능력이 있다면 평민과 귀족을 가리지 않고 등용하기로 유명했다.
물론 국왕이 평민과 귀족을 가리지 않고 등용한다고는 하지만, 지방의 귀족들은 그런 모습을 대부분 찾을 수 없어 아직 사우스 왕국에는 여전히 부조리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국왕이 권력을 잡고 있는 중앙에서만큼은 그런 일이 드물었다.
실력만 있다면 평민도 지방에 비해선 비교적 쉽게 기사가 될 수 있었다.
테일러 또한 실력이 있었기 때문에 사관학교를 졸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대의 지휘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었다.
국왕의 호출을 받아 루시드 필리스터의 뒤를 쫓아 왕궁으로 향하는 테일러의 발걸음은 다른 그 누구보다 무거웠다.
마치 다리에 무거운 족쇄를 채운 듯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뒤에서 느껴지는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에 참다못한 루시드가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테일러를 바라보았다.
“자네. 이것밖에 되지 않는 인물이었나?”
루시드 필리스터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바닥을 향했던 테일러의 시선이 루시드에게 향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루시드.”
“274부대가 전멸한 것은 유감이네만, 자네의 잘못은 없네. 적이 너무 강했던 것이야. 국왕 폐하께서도 자네를 다그치려고 소환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네. 기운을 내게. 지금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아. 명심하게. 거대한 제국이 왕국을 노리고 있네.”
진심이 느껴지는 루시드의 말에 테일러는 고개를 젓는 것으로 불필요한 감정을 털어냈다.
“제가 요즘 너무 피로했나 봅니다. 국왕 폐하께서 기다리시겠습니다. 어서 이동합시다.”
“알겠네.”
루시드가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고 테일러들이 뒤따랐다.
대충 피를 닦아냈지만 얼룩이 여전히 묻어 있는 흉갑을 내려다보며 테일러는 이를 악물며 결심했다.
이제 다시는 지휘하는 부대를 전멸시키지 않겠다고 말이다.
부대 전멸이라는 오명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다시 뒤집어쓸 만한 것이 아니다.
왕궁에 도착하자 루시드는 물러나고 안내를 위해 고위 기사 한 명이 다가왔다.
전신 판금 갑옷을 입고 거대한 대검을 등에 찬 고위 기사의 뒤를 따라, 국왕의 집무실에 도착한 테일러와 일행들.
집무실 입구는 무장한 고위 기사 3명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의 망토를 고정하고 있는 브로치가 알버트의 것과 같은 것으로 보아 고위 기사가 확실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젊어 보이는 고위 기사가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린 뒤 테일러 일행이 도착했다는 것을 집무실 안에 있는 국왕에게 알렸다.
곧 안에서 깔끔한 차림의 시종이 문을 열고 나왔다.
“모두 들어오시지요.”
공손하게 인사하며 옆으로 비켜서는 시종.
테일러는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뒤 먼저 집무실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가이우스, 일리아, 알버트, 알폰스, 실비아, 레드가 집무실로 걸어 들어왔다.
국왕 암살 미수범이었던 레드가 국왕의 바로 앞에 온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었는데, 레드의 얼굴을 알고 있는 자가 극히 적고, 기록이 삭제된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테일러와 알버트, 레드는 군례를 취했고 일리아와 가이우스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신성교 소속인 알폰스와 실비아는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모두 일어나고 고개를 들어도 좋다.”
유리 사우스 국왕의 말에 모두가 자리에 똑바로 섰다.
선해보이는 얼굴의 국왕 뒤로는 날카로운 인상의 고위 기사가 4명 있었고, 집무실 양쪽 벽에 고위 기사 브로치를 달지 않은 평기사가 좌우 합쳐 10명 정도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짧은 금발의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이 국왕의 책상 옆에서 서류 뭉치를 든 채 서 있었다.
원래 이 정도까지 경호가 붙어 있지는 않았지만 최근 국왕 암살 미수 사건이 있었던 데다가 그림자 기사단에 대한 정보를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이 잡아내면서 경호가 강화되었다.
“그림자 기사단의 공격을 받았다고 들었다.”
“국왕 폐하께서 지휘를 명하신 274부대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테일러는 다시 무릎을 꿇고 사죄했다.
테일러가 무릎을 꿇는 것을 본 알버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도 무릎을 꿇었다.
나머지 파티원들도 조금 망설이다가 무릎을 꿇었다.
“일어나라.”
“하지만……!”
“명령이다.”
국왕의 단호한 명령에 모두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274부대가 전멸했다고 경의 공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274부대의 전멸은 피할 수 없었다고 보고받았다. 그림자 기사가 포함된 그림자 기사단을 상대로 그 정도면 엄청난 활약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보고받았다.”
“제가 아닌 다른 지휘관이었어도 가능했을 겁니다.”
테일러는 감히 국왕 앞에서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러자 묵묵히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왕국 정보부장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이 테일러에게 조금 다가와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경은 지금 내가 폐하께 올린 경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건가? 지금 경의 말은 왕국 정보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들리네.”
불편한 감정이 잔뜩 섞여 있는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말에 테일러는 마른 침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어찌 감히 그런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다행이군.”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안경을 살짝 올리며 뒤로 물러났다.
엘런데일스 후작이 뒤로 물러나자 다시 유리 사우스 국왕이 입을 열었다.
“나는 다시 한번 자네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네. 엘런데일스 후작. 그것을 건네주게.”
“알겠습니다. 국왕 폐하.”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이 테일러에게 서류를 한가득 넘겼다.
엘런데일스 후작으로부터 서류를 받아든 테일러는 가장 앞에 나와 있는 서류를 먼저 읽어보았다.
“살라게르?”
고위 기사의 신상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소속은 제이드 기사단이라고 되어 있었다.
“내가 방금 건네준 서류는 제이드 기사단원들의 신상 정보다. 자네가 앞으로 지휘할 기사단이지.”
“네?”
“그림자 기사단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고, 그 행동은 점점 대담해져 가고 있다. 우리는 우수한 인재가 필요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경은 이미 고위 기사급의 실력자이니 기사단장을 맡는다고 해도 큰 반발은 없을 것이야. 사소한 트러블은 있겠지만.”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설명을 들었지만, 테일러는 지금 상황이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테일러의 표정을 읽은 것인지 유리 사우스 국왕이 입을 열었다.
“긴 설명 필요 없다. 경은 이제 기사단을 맡았다는 것. 그것이면 충분하다.”
* * *
제이드 기사단의 주둔지로 향하는 길에서 테일러는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으로부터 제이드 기사단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추가적으로 듣게 되었다.
제이드 기사단은 총원 100명에 전원 수습 기사를 포함한 기사로 이루어진 ‘기사단’으로 고위 기사가 3명이나 있었다.
알버트까지 포함한다면 고위 기사는 4명이 되었다.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말에 의하면 제이드 기사단은 최근 수도에서 전투를 벌이는 등의 대담한 행동을 연이어 해 온 그림자 기사단을 상대하기 위해 이번에 새롭게 신설된 기사단이라고 한다.
엘런데일스 후작의 말을 주의 깊게 새겨듣다 보니 어느새 왕성 내에 위치해 있는 제이드 기사단의 주둔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30명 정도 되는 기사단원들이 목검을 들고 서로를 향해 죽일 듯한 기세를 내뿜으며 달려드는 것이 마치 실전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내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군. 행운을 빈다. 그럼 이만.”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남긴 채 테일러에게서 멀어졌다.
그는 왕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었고, 또 다른 일이 있었기 때문에 더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