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56화
22장 제이드 기사단(1)
칠흑 같은 어둠이 하늘을 지배하는 가운데, 오로지 달빛만이 어둠을 비추는 밤하늘 사우스펠 서쪽의 큐리스 자작령의 중심도시는 작은 빛 무리를 이룬 채 아기자기한 불빛이 모여 있었다.
중심도시의 성벽로에는 무장한 병사들이 순찰을 돌고 있었고, 성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런 큐리스 중심도시 앞의 평원에 검은 그림자 셋이 모여들었다.
“단장. 돌파합니까?”
그림자 기사단의 암살자 한 명이 단장으로 보이는 암살자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평범한 자들이라면 절대로 돌파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특수한 훈련을 받은 그림자 기사단의 암살자들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성벽을 넘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큐리스 중심도시에는 연락을 담당하는 고위 마법사가 없으니, 칠카크 경의 지시 사항을 우리가 직접 구두로 전달하는 수밖에 없어.”
“경비병의 수는 적습니다. 그림자 안개를 사용한다면 쉽게 넘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단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암살자 한 명이 성벽로를 왔다갔다 순찰 돌고 있는 경비병의 수를 헤아린 뒤 보고했다.
그림자 안개.
이 기술은 과거 그림자 기사단에서 개발한 기술로 검은 그림자의 힘으로 몸을 덮어, 적의 시선을 교란하는 기술이었다.
어둠 속이나, 밤에 사용한다면 훌륭한 위장막이 되어주기 때문에 시선을 집중하지 않는다면, 그림자 안개를 두른 암살자를 포착하기 힘들었다.
“좋아. 그림자 안개를 사용한다.”
“예.”
“네.”
단장의 지시에 암살자 둘은 대답과 함께 그림자 안개를 몸에 덮었다.
그림자 안개는 그림자 기사단의 기사단원 전부가 사용하지 못하는 나름의 수준 있는 기술이었지만, 암살단의 기사단원은 소속의 특성상 전원이 그림자 안개의 사용이 가능했다.
“이동한다.”
암살자 두 명이 그림자 안개를 완벽하게 구사한 것을 확인한 단장은 이동할 것을 작은 목소리로 지시한 뒤 먼저 앞으로 달려나갔다.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는 게 분명한데, 호흡도 안정되어 있었고, 주변의 풀조차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신묘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부하 암살자 두 명이 움직였다.
성벽 아래에 도착한 단장은 날카로운 눈동자로 주변을 빈틈없이 살피더니 줄에 달린 갈고리를 성벽 위로 던졌다.
자작령이지만 중심도시답게 성벽은 꽤 높았지만, 갈고리는 성벽을 넘어 단단하게 고정되었다.
그리고 그 줄을 타고 그림자 기사단의 암살자 3명이 성벽을 넘었다.
성벽을 넘은 그들은 즉시 큐리스 중심도시에 있는 그림자 기사단의 비밀기지로 향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번화가에 있는 주점에 들어서는 그들.
골목에서 검은 옷을 벗고 평범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들은 주점에 들어서기 무섭게 지하로 향했는데, 그런 그들의 앞을 덩치 큰 검사가 가로막았다.
허리에 두 개의 검을 차고 있는 그는 제법 실력이 출중해 보였다.
몸에서 마력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마력검의 경지에 오르거나, 근접한 수준으로 보였다.
“그림자의 달이 뜨는 날.”
암살자 3명의 앞을 가로막은 덩치 큰 검사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단장은 그 뜻을 잘 알고 있는 것인지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입을 열었다.
“세계가 다시 한번 전율하리라.”
단장의 대답을 들은 덩치 큰 검사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옆으로 비켜섰고, 단장과 부하 암살자 2명은 지하로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자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넓은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법등 몇 개가 빛을 내뿜어 어둠을 몰아내고 있는 넓은 공동에는 그림자 기사단원으로 보이는 검은 그림자 몇몇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그 중앙에는 불편해 보이는 의자에 검은 사슬 갑옷을 걸친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그림자 기사단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가진 기사단원만이 받을 수 있다는 그림자 기사 작위를 받은 팔버릭 경이었다.
“팔버릭 경!”
부하 암살자 2명은 마법등의 불빛이 미처 몰아내지 못한 어둠 속으로 물러나고 단장만이 팔버릭 경에게 가까이 다가가 가슴에 손을 올리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무슨 일이지?”
“그림자 대공께서 직접 지령을 하달하셨습니다.”
“그림자 대공께서?”
“예!”
단장의 보고에 팔버릭의 두 눈에 놀라움이 깃들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반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은 팔버릭 경의 직속상관이라고 할 수 있는 칠카크 경이 지휘 통제하고 있었다.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는 제국 내부의 일도 상당히 많았기 때문에 반도의 일은 간접적으로 가끔 관여는 하되 직접적으로 관여하여 움직이지는 않았다.
이렇게 직접 지령이 하달되는 경우는 처음은 아니었지만 드물었다.
“명령서를 제출하도록.”
“예!”
팔버릭 경은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심각한 얼굴로 단장에게 보고서를 줄 것을 재촉하며 손을 내밀었다.
단장은 고위 마법사로부터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의 명령을 전달받은 것을 고스란히 옮겨 적은 명령서를 팔버릭 경에게 제출했다.
“팔버릭 경. 당장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그림자 기사단원을 소집하여, 명령서의 인물을 척살하라는 지령입니다.”
단장은 설명을 덧붙였다.
단장의 설명을 들으며 팔버릭 경은 천천히 명령서를 읽어 내려갔다.
명령서를 다 읽은 뒤 검은 불꽃으로 명령서를 불태웠다.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그림자 기사단원 전원을 소집하라. 수도로 간다!”
팔버릭 경의 명령이 공동 내에 울려 퍼지자 공동 내에서 분주히 움직이던 검은 그림자들이 일제히 모습을 감추었다.
* * *
레드는 늦은 밤까지 아이린을 보살폈다.
그녀의 병은 완전히 나았지만, 병마와 싸우느라 허약해진 그녀를 두고 발을 떼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테일러와 한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늦은 밤이 되자 테일러가 마련해준 작은 집에서 나왔다.
레드가 나오자 늦은 밤까지 레드를 기다리느라 지쳐 있던 274부대의 기사들과 병사들도 다시 소집되었다.
“전원 이동한다.”
새롭게 보충된 부대원들까지 포함하여 50명이 넘는 인원이 일제히 내성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성에는 무장한 병사들의 움직임이 제한되어 있었지만, 이미 테일러는 국왕에게 274부대가 필리스터 자작 가문의 저택에 주둔하는 것에 대한 승인을 받아 두었다.
물론 필리스터 자작 가문 측에도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필리스터 자작 가문에서 수도의 내성에 소유한 저택은 루시드 필리스터의 소유였기 때문에 허가를 받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필리스터 자작 가문에서 제공해 준 내성의 저택에는 무인을 우대하는 가문의 저택답게 소규모 군대가 주둔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늦은 밤이나 소규모지만 군대가 움직이자 어린 꼬마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보내오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더니, 어느 순간 유령이라도 나올 것처럼 싸늘한 침묵이 내려앉은 골목에 들어서게 되었다.
테일러는 본능적으로 불길함을 느끼고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위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알폰스도 위험을 느낀 것인지 실비아의 곁에 붙었다.
“붙지 말게나! 나는 자네가 마음에 들지 않아!”
“살고 싶으면 붙어 있어!”
가이우스의 노골적인 적대에도 불구하고 레드는 가이우스의 곁에 바짝 붙었다.
일리아도 정령의 소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두가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자 어둠 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그림자 기사단의 암살자들은 일제히 암기를 던졌다.
“전원 전투 준비!”
테일러가 검을 뽑아들며 소리쳤다.
테일러를 노리고 날아든 암기 하나가 일리아가 소환한 작은 정령에 의해 튕겨져나갔다.
“크악!”
“으악!”
274부대의 기사 두 명이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암기를 쳐낸다고 쳐냈지만 집요하게 그들을 노리고 날아드는 귀신같은 솜씨의 암기를 미처 모두 쳐내거나 피하지 못하고 공격을 허용해버린 것이다.
그림자 기사단 암살자들의 집요한 암기 실력에 274부대의 기사들이 하나둘씩 쓰러졌다.
포드릭 경 또한 계속된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철제 흉갑에 여섯 개 정도 되는 암기가 꽂힌 채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암기 세례는 계속되었다.
나무 방패를 들어보았지만, 검은 기운이 깃든 암기는 나무 방패를 뚫고 병사의 몸을 관통했다.
다행히 레드와 일리아는 가이우스의 방어 마법 덕분에, 그리고 실비아는 알폰스의 방패 덕분에 무사했다.
알버트와 테일러는 자신들을 노리는 암기를 모두 쳐낼 수 있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주군! 적들이 나타납니다!”
알버트가 거친 숨을 고르며 테일러에게 보고했다.
알버트의 말대로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미끄러지듯이 몰려나오고 있었다.
“이럴 수가! 100명은 넘어 보이는군!”
“달라질 것은 없지만, 정확히는 92명 정도다. 94명 정도였지만 나의 화살이 2명 정도 죽인 것 같다.”
엄청난 수에 가이우스가 경악했고, 레드는 가이우스의 착각을 수정해주었다.
하지만 100명이나 92명이나 큰 차이는 없었다.
100명 가까이 되는 그림자 기사단에 비교하면 274부대는 기사는 전멸, 병사도 40명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40명이 전원 기사라도 그림자 기사단에게 밀릴 판국이었다.
절망스러웠지만 테일러는 포기하지 않았다.
“모두 두려워 마라! 여기가 어딘가? 국왕 폐하께서 계시는 수도다! 조금만 버티면 중앙 수비군이나 수도 경비대에서 병력을 파견해줄 것이다!”
[통솔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아군의 사기와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테일러는 병사들이 사기를 잃지 않도록 독려했다.
그의 말대로 이곳은 국왕이 있는 수도였다.
특히나 국왕 암살 미수 사건으로 인해 수도의 경계가 강화되어 있는 상황.
아마 조금만 버티면 중앙 수비군이나 수도 경비대의 지원군이 도착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팔버릭 경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에서 대담하게 작전을 펼친 이유는 수도 경비대와 중앙 수비군의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테일러를 끝장낼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는 전투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 순식간에 10명이 넘는 병사들을 죽이고, 기사 전력을 박살 냈다.
중앙 수비군이나 수도 경비대의 지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테일러를 죽이는 것?
가능한 일이었다.
“실비아! 모두에게 축복을 부탁합니다!”
“아, 알았어요.”
목숨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것인지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한 마디 불평도 없이 즉각 테일러에게 협조했다.
그녀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자 어둠 속을 밝히는 환한 빛이 모두에게 깃들었다.
[로렌시아의 빛이 함께 합니다. 상처가 빨리 재생됩니다.]
“틈을 주지 마라. 공격해.”
환한 빛이 테일러 일행에 깃드는 것을 본 팔버릭 경은 본능적으로 더 이상 살려두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명령을 내렸다.
그림자 기사단이 다시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