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55화
21장 그림자 대공의 지령(2)
알 하이자르는 부하의 보고에 표정을 구겼다.
기분도 좋지 않은데,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지만 그들의 방문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들어와도 좋다.”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가 허락하자 문이 열리고 거짓말 조금 더 보태서 축구를 해도 될 정도로 넓은 집무실 안으로 조나단 베르헨 공작과 그의 아들이자 고위 기사인 조던 베르헨 경이 걸어 들어왔다.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은 빛을 내뿜어내는 황금 갑옷을 입은 조던 베르헨 경은 기계 같은 움직임으로 걸어 들어와 구석진 곳에 등을 기대로 섰고, 조나단 베르헨 공작은 알 하이자르의 책상까지 거리를 좁혔다.
“그림자 대공은 내가 반갑지 않소이까? 표정이 좋지 않소.”
조나단 베르헨 공작의 말에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는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화가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지금 베르헨 공작은 분명 시비를 걸고 있는 것이다.
여러 기관이 뭉쳐 있는 그림자 기사단과 달리 정보 분야 하나만 보고 창설된 프랑츠 정보국을 수중에 두고 있는 조나단 베르헨 공작이 최근 반도에서의 그림자 기사단의 부진을 보고받지 않았을 리가 없다.
프랑츠 정보국의 국장 세라 슈레이안 후작이 지금 이 집무실 안에 있는 황금 군단의 군단장 조던 베르헨 경의 연인이었다.
둘의 관계가 가까운 만큼 프랑츠 정보국과 조나단 베르헨 공작의 관계도 가까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림자 기사단, 아니,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에게 치명적이었다.
반란 직후만 해도 프랑츠 정보국은 중립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보도 취급하는 그림자 기사단에 조나단 베르헨 공작은 많이 의지했었지만, 전대 슈레이안 후작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여 그의 딸이자 조던 베르헨 경과 연인 사이인 세라 슈레이안이 지금의 자리에 오른 뒤부터 조나단 베르헨 공작은 더욱 기세등등해져서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에게 소홀히 대하고 있었다.
“하하하. 반갑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베르헨 공작이라면 저는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는 애써 살기를 숨긴 채 말했다.
그는 살기를 숨기는 데 도사였다.
만약 살기를 숨기지 않았다면 벽에 등을 마주하고 서 있는 조던 베르헨 경이 눈치챘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후광을 이용해 황금 군단의 군단장이 되었지만, 고위 기사가 된 것은 그의 순수 실력을 통해서였다.
실제로 그는 제국 기사대회에서 우승을 한 적도 있는 실력자로 고위 기사 중에서도 수준 높은 실력을 자랑했다.
그림자 기사단 소속이었다면 그림자 기사 작위를 받고도 남았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에 비하면 그의 실력은 어린아이 수준이었지만.
“이렇게 환영해준다니, 고맙소! 자리에 앉아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차를 내오게 시키겠습니다.”
“조던. 너도 의자에 앉거라.”
“예. 아버지.”
조나단 베르헨 공작과 조던 베르헨 경이 편해 보이는 의자에 앉자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는 시녀를 시켜 차와 과자를 내오도록 했다.
차와 과자가 테이블 위에 올려지고 제법 비싸 보이는 찻잔에 담긴 차를 한 모금 입 안에 머금은 뒤 삼킨 조나단 베르헨 공작이 입을 열었다.
“최근 많이 어렵다고 들었소.”
“어디서 잘못된 정보를 들으셨나 봅니다.”
조나단 베르헨 공작의 말에 알 하이자르는 과자를 입에 넣고 씹은 뒤 대꾸했다.
알 하이자르는 그렇게 말했지만 프랑츠 정보국을 손에 넣은 상태인 조나단 베르헨 공작이 잘못된 정보를 입수했을 확률은 극히 낮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럴 리가. 우리 귀여운 세라, 아니, 슈레이안 후작이 직접 전해준 정보라오. 틀릴 리가 없소.”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는 이를 악물었다.
정말이지 마음에 안 드는 사내였다.
그는 속으로 조나단 베르헨 공작을 한 번 죽였다.
그 순간 살기가 조금 흘러나왔는지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던 조던 베르헨 공작이 알 하이자르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 모습에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는 깊은 빡침을 느껴, 공작이고 그 아들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검을 들어 둘을 죽여 버릴 뻔했다.
아무리 공작의 아들이며, 제국을 움직이는 사실상 지배자의 아들이라고는 하지만 그림자 기사단이라는 제국의 강력한 무력기관을 통솔하는 기사단장에게 너무 건방진 태도였다.
“자네. 눈에 너무 힘이 들어갔어.”
“어디서 살기가 느껴져서 말입니다. 제 착각이었나 봅니다.”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가 날카롭게 쏘아붙였지만 조던 베르헨 경 또한 지지 않고 맞섰다.
“그림자 대공. 너무 날이 서 있소이다. 우리는 대공에게 사소한 ‘도움’을 주고자 찾아온 것이라오.”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의 시선이 조나단 베르헨 공작에게 향했다.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를 바라보고 있는 조나단 베르헨 공작은 능글맞게 웃고 있었지만 알 하이자르는 그 능글맞은 웃음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져 있는 조나단 베르헨 공작의 본심을 읽어낼 수 있었다.
조나단 베르헨 공작은 현재 그의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끝내는 그림자 기사단마저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아마도 도움을 받으면 그것을 핑계로 그림자 기사단 내에서 알 하이자르의 입지를 점차 줄여나갈 것이다.
“그 사소한 도움은 필요 없습니다. 용건이 전부라면 나가주시겠습니까? 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언젠가는 후회할 것이오.”
그 말을 끝으로 조나단 베르헨 공작은 조던 베르헨 경과 함께 집무실을 나섰다.
“아버지. 그는 아군이 아니었습니까?”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의 집무실을 나와 그림자 대공의 그림자 궁전을 벗어나기 무섭게 조던 베르헨 경이 조나단 베르헨 공작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아들아. 이 세상에서 아군은 없으며, 같은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없단다.”
조나단 베르헨 공작이 설명했지만, 검만 갈고 닦아온 조던 베르헨 경에게는 조금 어려운 설명이었다.
* * *
칠카크 경은 반도에서 그림자 기사단의 연쇄적인 작전 실패의 원인을 찾기 위해 그림자 기사단 내부 정보기관의 힘을 빌렸지만, 쉽게 알아낼 수 없었다.
결국 그는 프랑츠 정보국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프랑츠 정보국은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와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은 조나단 베르헨 공작의 세력이나 마찬가지였으나, 대외적으로 대공과 공작의 관계는 동맹 관계였기 때문에 힘을 빌리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다.
프랑츠 제국의 프랑츠 정보국 요원들은 신속하게 움직였다.
우선, 사우스 왕국 정보부의 첩자에게 연락하여 최근 벌어진 무력 사태에서 공을 세운 모든 인물의 명단을 뽑은 뒤, 실패한 작전과 대조했다.
그리고 작업이 끝나자 테일러라는 이름을 획득할 수 있었고, 그 이름을 왕국 정보부 첩자에게 알려 왕국 정보부에서 기록하고 있던 테일러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게 되었다.
그리고 습득된 정보는 즉시 칠카크 경을 통해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에게 전달되었다.
“테일러라고 하는 녀석이군. 기사 작위를 받았지만, 사실상 고위 기사 정도의 실력자라.”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는 알 하이자르의 입 밖으로 테일러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는 보고서를 자세하게 살핀 뒤 고이 접어 서랍에 넣었다.
보고서를 다 읽은 그가 처음 든 생각은 테일러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이었다.
실패한 작전 대부분에 테일러라는 이름의 평민 출신 기사가 개입한 정황이 있었다.
“혹시 플레이어?”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의 두 눈이 커졌다.
상대도 자신과 같은 플레이어라면 곤란해졌다.
상대방도 메인 퀘스트를 클리어함으로써 스토리를 알고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알 하이자르가 가지는 이점은 사라진다.
“살려두어선 안 돼.”
절대로 살려두어선 안 되었다.
그는 즉시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칠카크 경을 호출했다.
“칠카크!”
“부르셨나이까!”
문이 열리고 칠카크 경이 뛰어와 무릎을 꿇었다.
연이은 실패로 그는 극도의 긴장 상태였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림자 대공의 검이 자신의 목을 자를 것만 같은 기분을 칠카크 경은 느끼고 있었다.
“지금 반도에서 당장 움직일 수 있는 그림자 기사는?”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그에게 날아든 것은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의 검이 아니라, 질문이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그림자 대공 알 하이자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팔버릭 경이 지금 당장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가 당장 소집할 수 있는 병력은?”
“4개 암살단. 90명 정도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림자 기사단의 암살단 4개면 어마어마한 전력이다.
90명의 그림자 기사단원이면 100명 규모의 기사단 정도는 우습게 씹어 먹을 수 있었다.
“팔버릭 경에게 전해라. 이 테일러라는 녀석의 목을 가져오라고.”
“즉시 고위 마법사에게 전달하겠습니다.”
고위 마법사의 고위 마법 중에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대상에게 육성을 전달하는 것도 있었다.
제국은 물론이고, 왕국 또한 이 마법을 이용해 고위 마법사를 주요 지역에 배치하여 수시로 지역의 상황을 보고받았다.
그랑키아 숲을 사이에 두고 작전을 수행하는 그림자 기사단 또한 칠카크 경으로부터 지시를 고위 마법사를 통해 하달받았다.
지금 반도에는 그림자 기사단 소속의 고위 마법사가 연락을 위해 머물고 있었다.
* * *
“몸은 좀 어떻습니까? 아이린.”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아이린의 방으로 들어온 테일러가 그녀의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이린은 레드의 여동생이었다.
그녀는 성녀 실비아 그레이로부터 로렌시아의 축복을 받는 것으로 앓고 있던 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오랜 세월 병마와 싸워온 탓에 약해져 있던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 수도에 테일러가 거금을 들여 마련해준 작은 집에서 요양 중이었다.
“덕분에 괜찮아졌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기사님.”
아이린은 고개를 숙이며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
고귀한 성녀로부터 로렌시아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게 눈앞의 자유 기사 덕분이라는 것을 레드에게 들어서 아이린은 알고 있었다.
“제게도 필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레이디.”
“아니. 넌 감사를 받아도 돼.”
갑작스럽게 들리는 목소리에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니 레드가 서 있었다.
레드는 과거보다 한층 부드러워진 눈으로 테일러를 응시하고 있었다.
“약속대로 너와 함께하겠어. 너의 적은 곧 나의 적이다.”
“든든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가이우스가 과자를 사는 것에 전 재산을 탕진하기 전에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테일러는 부드러운 미소를 남긴 채 가이우스를 찾기 위해 서둘러 나갔고, 방 안에는 레드와 그의 여동생 아이린만 남았다.
테일러가 나간 문을 바라보는 아이린을 보며 레드는 입을 열었다.
“그가 좋으냐? 동생아.”
레드의 말에 아이린은 슬픈 미소를 지었다.
“저 같은 건 그저 지나가는 사람에 불과하겠죠. 하이 엘프님과 경쟁할 자신도 없어요.”
아이린도 여자였다.
그랬기 때문에 일리아가 테일러를 대하는 태도에서 사랑이 넘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하아.”
아이린을 바라보며 레드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