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53화
20장 신을 믿지 않는 성기사(3)
예정대로라면 그레이 남매가 목숨을 잃게 될 10월이 되었다.
약 한 달 동안 테일러와 274부대는 실비아를 철통같이 지켰다.
테일러를 믿지 않고 단독 행동을 시작한 알폰스는 테일러의 명령을 받은 레드가 비밀리에 미행하면서 그를 경호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알폰스 그레이는 예전과 다르게 중앙 신전 밖을 서성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왕 나온 김에 좋은 일이나 해야겠다 싶어 중앙 신전에 들어가기 전에 수도 외곽의 빈민가로 향하는 알폰스.
늦은 밤 그런 그를 몰래 뒤따르는 그림자가 레드 외에도 있었다.
레드는 위험을 즉시 감지하고 알폰스에게 달려갔다.
“알폰스 그레이! 위험하니까 무기를 뽑아라!”
“무, 무슨…….”
“어서!”
갑작스러운 레드의 등장과 무기를 뽑으라는 말에 알폰스는 당황했지만, 후드 아래 보이는 진지해 보이는 레드의 얼굴에서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장검을 뽑아들었다.
빈민가 곳곳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나자 레드는 테일러와 이야기한 대로 신호탄을 하늘 높이 쏘았다.
붉은 신호탄이 달린 화살이 밤하늘을 가르며 올라갔다.
붉은 빛줄기가 검은 바탕의 도화지에 그려지면서 서서히 추락했다.
빈민가는 언제나 조용했지만 늘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소름 끼칠 정도로 사람들이 없었다.
그림자 기사단이 정중하게 부탁했을 리는 없고, 아마도 소리소문없이 죽였을 것이 분명했다.
빈민가의 사람들이 죽는 것은 신경 쓰는 사람들이 거의 없으니까 곤란해질 염려도 없다고 볼 수 있었다.
“제기랄. 생각보다 수가 많은데?”
끊임없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암살자들과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기척의 향연에 레드는 욕설을 내뱉으며 이를 악물었다.
기척을 감지할 수 있는 훈련을 받은 레드는 적의 수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수는 30명 정도.
일반 병사라도 30명이면 2명이 상대하기 조금 곤란한 수준인데, 테일러의 말에 의하면 이들은 조금 실력이 있는 놈들은 한 명 한 명이 고위 기사와 비슷하거나 부족한 수준이고, 제일 약한 자도 최소 기사급의 실력자라고 했으니, 30명을 상대하려면 아주 상당히 곤란할 게 뻔했다.
알폰스 그레이의 실력이 훌륭하기를, 그리고 테일러의 지원군이 빨리 도착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공격.”
단장의 차가운 목소리로 명령을 내리자 지붕 위와 골목에 자리 잡고 있던 그림자 기사단의 암살자들이 일제히 행동을 개시했다.
그와 동시에 레드가 활의 시위를 놓았고,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갔다.
화살에게 노려진 암살자는 검을 휘둘러 레드의 화살을 피해냈지만, 레드가 두 번째로 쏜 화살은 피하지 못했다.
소름 끼칠 정도로 빠른 장전속도.
그렇게 쏘아진 화살은 암살자의 목을 꿰뚫었다.
“컥!”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오고 검은 복면에서 피가 새어나왔다.
“한 놈 잡았고!”
“그렇지만 아직 수가 많습니다!”
신나서 소리치는 레드를 보며 알폰스는 부정적인 대답을 쏟아냈다.
그가 정신을 집중하여 신성력을 이끌어내자 방패가 눈부신 백색의 빛을 뿜어냈다.
“지금입니다!”
로렌시아가 허락한 빛의 권능은 레드와 알폰스를 향해 달려오던 암살자들의 시력을 잠시 빼앗았다.
눈을 가리고 비틀거리는 암살자들을 바라보며 알폰스는 레드에게 신호를 보냈다.
레드는 대답 대신 화살 두 개를 시위에 건 뒤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두 발의 화살이 날아가고, 암살자 한 명이 심장에 화살이 꽂혀 쓰러졌지만 다른 한 명은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가까스로 몸을 옆으로 굴러 피해냈다.
“2조. 공격.”
먼저 공격을 시도했던 암살자들이 시력을 뺏겨 방황하고 있자 단장은 대기하고 있던 2조를 투입했다.
그의 명령에 2조가 행동을 개시하려는 순간이었다.
50여 발의 화살이 하늘을 가르며 날아와 그림자 기사단 암살자들을 덮쳤다.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지만 화살에 맞아 쓰러진 암살자는 2명에 불과했다.
이 모습에서 그림자 기사단 암살단의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알 수 있었다.
다시 한번 화살 비가 쏟아진 뒤 빈민가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테일러가 이끄는 무장한 병사들이 달려와 알폰스와 레드를 보호하듯 둘러쌌다.
“다행히 늦지 않은 모양입니다. 알폰스. 레드.”
알폰스와 레드를 보며 테일러는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말했다.
그는 이미 검을 뽑아든 상태였고, 검에는 푸른 마력검이 깃들이 춤추고 있었다.
“제기랄! 이렇게 많은 놈들이 달려들 줄은 몰랐다. 앞으로는 미리 말 좀 해줘.”
레드는 욕설을 내뱉었지만, 테일러가 빨리 달려와 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고 있었다.
“실비아. 실비아는 어디 있습니까?”
알폰스는 실비아부터 찾았다.
처음 테일러의 말에 의하면 암살자들이 노리는 것은 그레이 남매, 즉 알폰스 외에 실비아도 포함되었다.
그랬기 때문에 알폰스는 지금 자신이 위험한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여동생 실비아의 안전을 먼저 확인했다.
“실비아는 지금 내성의 필리스터 자작 가문의 저택에 있습니다.”
테일러의 말에 알폰스는 그제야 안도했다.
내성은 외성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보안이 뛰어났다.
거기에 필리스터 자작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저택에 있다면 안심할 수 있었다.
필리스터 자작 가문의 사병은 강력하기로 유명했고, 국왕 기사단 소수가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왕 기사단의 실력은 왕국 기사단 중에서도 상위권이었다.
갑자기 등장한 병력에도 불구하고 그림자 기사단의 암살자들은 뒤로 물러나 태세를 정비했지만 크게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포드릭 경. 곧 근접전이 벌어질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전원 검을 뽑아라.”
테일러의 말뜻을 바로 이해한 포드릭 경은 274부대원들에게 활을 버리고 검을 뽑을 것을 명령했다.
274부대의 병사들은 검술과 창술 외에 궁술도 익힌 정예병이었기 때문에 유사시에는 궁병도 되었다.
“일리아. 정령 군주의 소환을 부탁드립니다. 가이우스는 고위 마법의 캐스팅을 부탁드립니다.”
“테일러에게 도움이 된다면 뭐든지 하겠어요.”
말을 끝내며 일리아는 정령 군주를 소환하기 위한 준비를 서둘렀다.
숲이 아닌 곳에서 소환하는 정령의 힘은 숲에서 소환한 정령보다 약하지만 일리아는 망설임 없었다.
가이우스 또한 마정석이 박혀 있는 스태프를 흔들며 마력을 끌어모았다.
정령 군주의 소환과 고위 마법 캐스팅.
어둠 속에서 화려한 두 가지 불빛이 춤을 추며 암살자들을 위협하듯 흔들리자 그림자 기사단의 무수히 많은 암살단 중의 하나를 맡은 단장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암살자들도 재정비되었고, 고위 마법 캐스팅과 정령 군주의 소환이 시작된 만큼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사각 방진을 구축한다! 그리고 각 기사는 각자 한쪽 면을 맡아 지휘하십시오!”
[통솔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아군의 방어력이 소폭 상승합니다.]
다행히 적절한 순간에 통솔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되면서 아군의 방어력이 추가적으로 소폭 상승했다.
소폭 상승했다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국왕 폐하 만세!”
암살자들이 근처까지 다가오자 위압감을 느낀 병사 몇몇이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해 국왕을 찾았다.
그리고 검은 그림자의 무리가 사각 방진을 덮쳤다.
동시에 가이우스의 스태프가 빛을 발했다.
“하하하하! 모조리 타버리게나!”
붉은 불새가 소환되어 비교적 후방에 위치해 있던 암살자들을 덮쳤다.
그 강력한 공격에 최정예라고 볼 수 있는 그림자 기사단의 암살자 8명이 불길에 휩싸였다.
그들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그리고 정령 군주가 나타나 바람의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가이우스와 일리아의 강력한 지원이 등장하기 전 짧은 시간 동안 5명이 넘는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274부대의 병사들은 독한 훈련을 받은 병사들이었지만, 그래 봤자 수습 기사도 안 되는 병사들이었다.
수습 기사도 종이 허수아비처럼 베어 넘기는 그림자 기사단 암살자들을 상대하기에는 무리였던 것이다.
고위 기사 알버트 후안과 테일러가 전방에서 매섭게 마력검을 휘두르며 분전하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안 됩니다! 중앙에서 신의 가호를 부탁합니다!”
알폰스가 합류하려 했지만 원래 역사에서 이 전투에서 알폰스가 목숨을 잃는 게 확실한 만큼 그의 개입은 최소화되는 게 좋았기 때문에 테일러는 알폰스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테일러의 만류에 알폰스는 죽어가는 병사들을 보며 이를 악물고 물러나 로렌시아의 가호를 내렸다.
[로렌시아의 가호가 함께 합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로렌시아의 가호와 함께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승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제기랄! 지원군은 아직 입니까? 포드릭 경!”
신호탄이 하늘을 가르는 것을 확인한 테일러는 중앙 수비군과 수도 경비대에 지원을 요청한 뒤 달려왔었다.
슬슬 지원군이 올 시점이었다.
정령 군주도 역소환되었다.
포드릭 경도 대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전투 불가능한 상황인 듯했다.
절망이 고개를 드는 순간, 가이우스의 고위 마법이 다시 빛을 발했다.
거대한 번개 창을 하늘에 소환한 가이우스가 스태프를 살짝 흔들자 번개 창이 흔들리며 작은 번개 창을 사방에 쏘아냈고 그림자 기사단 암살자들 대부분이 그것에 맞아 고통에 몸부림쳤다.
“지금이다! 방진 해체! 반격!”
테일러는 즉시 명령을 내렸다.
방어 태세였던 아군이 공격 태세로 변환되어 쓰러진 암살자들을 찔러 죽이기 시작했다.
테일러와 알버트 때문에 수가 줄어 있었기 때문에 이번 공격으로 그림자 기사단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당했다.
“후퇴한다.”
단장은 이를 악물며 후퇴를 명했고, 후퇴하는 그들을 향해 레드의 화살이 날아들었지만, 단장은 여유롭게 피한 뒤 후퇴했다.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 * *
“상태창.”
[테일러.
고위 기사
Lv:58
스킬[14/15]
Lv13고위 기사 검술[A] Lv5 불의 검[B] Lv3 마력검[B] Lv1 파마의 검[A]
Lv3 암석거인의 가호[B] Lv9상급 방어 검술[C] Lv6하급 아머 마스터리[E] Lv1눈에는 눈 이에는 이[A] Lv5 마나연공법[C] Lv6통솔[C] Lv5레인저의 직감[C]Lv1 결사의 의지[A](비활성화) Lv1도주[E] Lv5벌목[E]
잔여 포인트:5]
전투가 끝나고 레드의 여동생을 치료하기 위해 레드는 여동생을 실비아가 있는 신전으로 데리고 왔다. 테일러는 실비아가 로렌시아의 축복을 내려주는 사이 잠시 밖에 나와 상태창을 확인했다.
고위 기사 검술 레벨이 1상승하고 상급 방어 검술 레벨이 1상승했으며, 마나 연공법 레벨이 1 그리고 통솔 레벨이 2나 상승해 있었다.
상태창을 확인하며 흐뭇해하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실비아가 걸어나오고 있었다.
“끝난 겁니까?”
테일러의 물음에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테일러는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다.
로렌시아의 축복은 신성력을 상당히 많이 소모하는 축복이었다.
성녀라고 해도 상당한 부담이 있을 것이다.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드는 테일러의 얼굴을 본 실비아는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시선을 회피했다.
“당신을 위해 한 일이 아니예요. 그러니까 신경 쓸 필요는 없어요.”
알폰스가 공격당하기 전에 실비아도 공격당했었다.
테일러와 둘이 있을 때 10명의 암살자가 덮쳤고, 테일러가 혼자 격파했었다.
“아, 예…….”
멍한 표정을 짓는 테일러를 보며 실비아는 다시 주택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