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49화
19장 남부 레인저 여단의 에이스(2)
레드는 욕설을 내뱉으며 재차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사실 나라쉬를 노리고 쏜 것이었지만 나라쉬의 곁을 지키고 있던 상급 전사가 눈치채고 끼어들어 대신 맞아버린 것이었다.
나라쉬의 눈동자가 정확히 레드가 숨어 있는 곳을 응시했다.
위치가 발각된 것이다.
숫자가 차이 나는 상황에서 위치가 발각되었다는 것은 좋은 상황이 아니었지만 그나마 다행인 점은 나라쉬를 호위하는 상급 전사가 한 명밖에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 상급 전사는 지금 흉한 몰골로 차가운 대지에 쓰러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나머지 오크 전사의 수는 13마리 정도.
남은 결사대의 수는 5명.
거의 완벽하게 장악한 것이나 다름없는 북부인 데다가, 사전 정찰로도 인간의 흔적을 살피지 못한 탓에 현명한 나라쉬도 기습을 예측하지 못하고 호위를 적게 데리고 나온 것 같았다.
하긴, 나라쉬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설마 야영지에서 5분 거리도 되지 않는, 거기다가 근처에서 오크 순찰대가 순찰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숲의 계곡에서 기습 공격을 해오는 인간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라쉬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하등한 인간 놈이 감히 잘도 내가 아끼는 부하의 목숨을 앗아갔구나, 그 죄는 네 녀석의 목숨으로 갚아야 마땅하다.”
하이 오크의 잘생긴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스태프를 살짝 흔들자 레드의 바로 뒤편에 있는 나무가 나라쉬의 충실한 병사가 되어 나무로 된 창들을 레드와 결사대를 향해 찔렀다.
“큭!”
레드는 급하게 회피 움직임을 보였으나, 나무 병사의 움직임 또한 상당히 빨랐고, 팔에 깊지 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결사대는 나무 병사의 창질에 4명이 죽고 말았고, 살아남은 한 명도 오크가 던진 도끼에 머리가 깨졌다.
뒤늦게 연막을 터뜨렸지만, 나무 병사는 시야가 막혀 있는 상황에서도 레드를 귀신같이 찾아내서 공격했다.
레드가 나무 병사와 고전하는 사이 오크 전사 몇 마리가 날카로운 무기를 들고 가까이 접근했다.
나라쉬 또한 뭔가 주술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레드는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선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화살통에서 폭발 화살을 꺼내 나무 병사에게 꽂아 넣었다.
그리고 폭발하기 직전에 몸을 뒤로 날렸다.
폭발 화살이 폭발하고 나무 병사의 몸이 산산조각 났다.
폭발의 여파로 연막이 흩어지고 레드의 모습이 드러났다.
“인간을 쳐라!”
오크 전사 하나가 오크어로 소리쳤다.
이미 오크 전사들은 근처에 도달해 있었다.
레드는 허리에 걸려 있는 소형 석궁을 나라쉬에게 조준하여 발사했다.
나라쉬는 급히 방어 주술을 전개해 막아냈다.
아무런 효과가 없는 작은 화살은 나라쉬에게 피해를 주지는 못했지만 나라쉬가 준비하고 있던 고위 주술을 중단시키는 것엔 성공했다.
나라쉬 주변의 마력 흐름이 끊긴 것을 확인한 레드는 활을 메고 두 개의 단검을 뽑아들었다.
“와라! 오크들아! 남부 레인저 여단 레인저의 무서움을 똑똑히 보여주마!”
그렇게 말하며 두 개의 단검을 교차하듯 스치며 휘두르자 오크 전사 둘의 목이 갈라지고 피 분수가 솟구쳤다.
순식간에 오크 전사 둘의 숨통을 깨끗하게 끊어놓은 레드는 물 흐르는 듯한 깨끗하고도 자연스러운 움직임으로 움직여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오크 전사의 몸 안으로 파고들었다.
“크악!”
날카로운 단검은 갑옷의 틈새를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가 오크 전사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
오크 전사는 괴성과 같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쓰러졌다.
“노, 놈은 하나다! 나라쉬 님을 위해 녀석을 죽여라!”
오크 전사들은 당황했다.
그들은 그랑키아 숲의 오크다.
반도의 오크와는 차원이 다른 오크로, 아주 강력한 무력을 자랑했다.
그런데, 레드는 마력검을 사용하진 못했지만 거의 고위 기사 수준의 검술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그랑키아 숲 출신이라고는 하나 평범한 오크 전사들인 그들은 레드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나라쉬가 던진 거대한 불덩이마저 어린아이 장난 받아주듯 여유로운 미소와 함께 피해내고 마지막 남은 오크 전사의 미간에 단검을 던져 꽂아 넣은 레드는 즉시 활을 다시 손에 들었다.
그리고 말없이 파마의 화살을 걸어 당긴 뒤 시위를 놓았다.
바람의 기운이 깃든 파마의 화살이 하이 오크 나라쉬를 노렸다.
나라쉬는 레드가 화살을 시위에 거는 짧은 순간에 그것이 파마의 화살이라는 것을 파악했고, 파마의 화살 앞에선 얇은 종이나 다름없는 방어 주술을 전개하는 대신 몸을 옆으로 날려 화살을 피해냈다.
만약 방어 주술을 전개했다면 실트 로울리 자작처럼 허무하게 죽었을 것이 분명했다.
“어?”
레드는 당황했다.
바람의 부름에 의해 바람의 기운이 깃든 화살은 평범한 화살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와 정확성을 자랑했다.
그것을 피했다는 것은 상당한 운동신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대부분의 하이 오크가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위대한 자연 앞에 무릎을 꿇어라. 하등한 생물이여!”
스태프를 옆으로 집어 던지고는 허리에 걸려 있는 장검을 뽑아들었다.
그가 주문을 외워 주술을 발동시키자 검에 뜨거운 불길이 깃들었다.
“제사장 주제에 칼춤이냐!”
레드는 그렇게 말하며 유도 화살 2발을 시위에 걸어, 시위를 당겼다가 놓았다.
바람의 힘이 깃든 채 날아간 2발의 유도 화살을 나라쉬는 부드러운 움직임으로 회피했으나, 유도 마법이 걸려 있는 2발의 화살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방향을 꺾어 나라쉬를 노렸다.
유도 마법이 걸린 이 화살은 마법 화살 중에서도 상당히 비싼 것으로 고위 마법사 이상 되는 마법사만이 만들 수 있었다.
“하등한 놈이 잔재주를!”
나라쉬는 욕설을 내뱉으며 주술을 캐스팅했다.
스태프를 버려서 주술을 완성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리긴 했지만, 끝내 완성할 수 있었고, 대지에서 거대한 벽이 솟구쳐 올라와 2발의 유도 화살의 앞을 막았다.
유도 화살에는 바람의 기운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에 검으로 막을 경우 검이 조각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주술로 대응한 것이었다.
“자아. 계속…….”
레드를 향해 시선을 돌린 나라쉬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주술을 캐스팅하는 짧은 시간 동안 레드가 모습을 감춘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의 동시에 360도 전 방향에서 화살이 쏟아졌다.
파마의 화살과 유도 화살, 폭발 화살 등의 마법 화살이 다수 섞여 있었다.
화살 장전 속도가 빠른 레드가 마병기 바람의 부름을 들었을 때만 가능한 특수 기술이었다.
“대족장께 영광 있으라.”
그 말을 남기고 쏟아지는 화살 비에 나라쉬는 몸을 맡겼다.
연이은 폭발이 끝나고, 흙먼지가 사라졌다.
걸레가 된 나라쉬의 시체 앞에 검은 망토를 두르고 검은 갑옷을 입은 레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붉은 눈이 나라쉬의 시체를 자세히 살폈다.
“죽었군.”
곧 그는 나라쉬의 숨이 끊어진 것을 확인했다.
그는 주변을 살폈다.
“몰려오고 있군.”
요란한 전투 소음에 나라쉬가 공격당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적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남부 레인저 여단에서 복무했을 때 배운 기척 감지법으로 수를 가늠해 볼 때 그 수는 500을 우습게 넘길 정도였다.
500을 넘긴 시점에서 레드는 세는 것을 포기했다.
그는 화살통으로 손을 가져가 남은 화살 수를 세어 보았다.
21발의 화살이 남아 있었고, 마법 화살은 폭발 화살이 2발, 파마의 화살이 1발 남아 있었다.
좀 전의 필살기로 인해 남아 있는 화살이 거의 없었다.
“살아남을 수 있을까?”
레드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곱게 죽을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레드는 수풀로 몸을 던져 위장막으로 몸을 가렸다.
그리고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 * *
프랑츠 제국 그림자 기사단이 비밀리에 계획한 사우스 왕국 국왕 암살 작전은 테일러가 회귀하기 전, 전생의 흐름대로 실패로 끝났다.
테일러라는 작은 이물질은 역사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큰 변화를 가져올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국왕 암살 시도라는 엄청난 사건.
프랑츠 제국 그림자 기사단이 계획한 이 작전은 결론적으로는 실패했지만, 이 때문에 사우스 왕국의 많은 귀족들이 목숨을 잃었다.
암살 시도 당시 성문과 성벽의 경비를 맡았던 수도 경비대의 경비대장은 해임되었고, 왕성의 경비를 담당했던 책임자들도 줄줄이 해임되거나 상당한 질책을 받았다.
왕성과 수도의 경비를 담당했던 책임자들이 줄줄이 징계를 피하지 못한 것과 달리 연회장의 수비를 담당했던 중앙 수비군과 국왕 기사단 그리고 왕실 근위기사단은 비교적 가벼운 처벌을 받고 끝났다.
아시드 필리스터 자작과 루시드 필리스터 등의 소수는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국왕을 지켜냈다는 결과 덕분에 국왕 암살 시도의 배후를 추적하는 임무를 맡으면서 전권을 위임받았다.
테일러 또한 신속하게 연회장으로 달려와 아군을 지원하고 국왕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루시드가 적극적으로 어필한 덕분에 적지 않은 양의 금화를 받아낼 수 있었다.
“테일러.”
상황이 진정되고, 시체를 정리하거나 암살자들을 감옥에 집어넣는 등 암살 시도의 뒷수습이 어느 정도 끝나자 조금 여유를 찾은 루시드 필리스터는 테일러를 자신의 집무실로 불렀다.
테일러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편안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있던 루시드가 일어나서 테일러를 반겼다.
그는 자연스럽게 테일러를 자신이 앉은 의자 옆에 있는 의자에 앉을 것을 권했고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이며 루시드의 안내에 따라 의자에 앉았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루시드.”
의자에 앉기 무섭게 테일러가 말했다.
루시드는 테일러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실은 말이네, 테일러. 자네를 조금 더 고용하고 싶군.”
“예. 저야 상관없습니다.”
루시드의 말에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이며 상관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테일러는 용병이었고, 기부를 하면 스킬 슬롯이 늘어나는 특성상 돈이 많이 필요했다.
이번에 연회장에서 활약한 덕분에 국왕으로부터 적지 않은 양의 금화를 하사받기는 했지만,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기분 나쁠지도 모르겠지만, 암살자들의 고문을 지휘해주었으면 좋겠네.”
루시드는 정말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고문이라는 것은 흔히 말하는 더러운 일 중 하나로 용병이라고 해도 많은 수가 꺼리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테일러는 이번에 기사 작위까지 받은 몸이었다.
기사들은 특히나 고문을 지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테일러 역시도, 기사 작위를 받으면서 그런 자존심이나 명예가 생겼다고 루시드는 생각했기 때문에 정말로 미안하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예상외로 테일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버트와 일리아는 힘들겠지만, 저와 가이우스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