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43화
18장 연회와 단검(1)
집무실을 지키고 있는 가문의 근위기사 2명이 루시드를 발견하고는 정중하게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그리고 집무실의 문을 노크한 뒤 루시드가 왔음을 필리스터 자작에게 알렸다.
“영주님. 도련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들여보내라.”
문이 열리고 집무실이 훤히 드러났다.
중앙에 깔린 카펫의 양옆으로 책장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중앙에는 테이블과 소파가 자리하고 있었다.
카펫이 끝나는 곳에는 영주성의 풍경을 훤히 볼 수 있는 테라스로 향하는 창문이 있었고 그 바로 앞에는 집무실과 어울리는 분위기의 책상이 있었다.
책상의 의자에는 아시드 필리스터 자작이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안경을 끼고 가벼운 갑옷을 입은 두 남녀가 공손한 자세로 서 있었다.
둘 다 루시드가 아는 자들이었다.
흰 백발에 안경을 낀 남자의 이름은 발터 슐덴 남작으로 고위 기사이면서 중앙 사관학교를 졸업한 인재였다.
그는 필리스터 자작 가문의 군대를 지휘하는 사령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슐덴 남작의 옆에 있는 중성적인 외모를 가진 짧은 금발의 여인은 헬렌 그레이스 경으로 여자의 몸으로 고위 기사 서임을 받은 노력파였다.
두 사람 모두 필리스터 자작 가문에 충성을 맹세한 고위 기사들이었다.
“무슨 일이냐. 루시드?”
필리스터 자작이 펜을 놓고 루시드를 바라보았다.
“요즘 고민이 많으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고민이 많긴 하지.”
루시드의 말에 필리스터 자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다가오는 5월에 왕실에서 주최하는 큰 연회가 있을 예정인데, 왕국 정보부장 빌리 엘런데일스 후작의 정보통에 의하면 암살을 꾀하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연회는 프랑츠 제국과 남쪽 바다 건너의 섬나라 윈우드 왕국의 사신단도 참석할 예정이기도 했기 때문에 암살 움직임이 포착되었다고는 하지만 취소할 수 없었다.
그때문에 연회의 경비를 맡게 된 중앙 수비군과 국왕 기사단, 그리고 왕실 근위기사단은 상당히 괴로워하고 있었다.
국왕 기사단과 왕실 기사단은 비슷해 보이지만 왕실에 충성하는 왕실 근위기사단과 다르게, 국왕 기사단은 오로지 국왕만을 위해 움직였다.
“용병들도 고용할 생각이시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전원 실버 등급의 용병으로 구성된 예비대를 편성할 생각이다.”
실버 등급의 용병은 기사보다 조금 못하거나 기사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용병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유사시 기사단에 조금 못 미치는 전력이 되어 줄 수 있었다.
“추천하고 싶은 용병이 있습니다. 테일러라는 이름의 용병입니다.”
“네 목숨을 구해줬다는 용병말이냐? 그는 블랙 우드라고 하지 않았나? 안 돼.”
자신만만하게 테일러를 추천하는 루시드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필리스터 자작은 테일러가 블랙 우드 등급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거칠게 고개를 저으며 부정적인 모습을 취했지만, 그 모습에도불구하고 루시드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는 최근 실버 등급이 되었다고 합니다.”
필리스터 자작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왕국 정보부에 제 용돈을 조금 찔러주었더니, 알려주더군요. 엘런데일스 후작께선 모르시는 게 없더군요.”
루시드는 말을 마치며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사우스 왕국의 정보부를 지휘하는 엘런데일스 후작은 모르는 게 없는 걸로 유명했다.
그는 사우스펠 남쪽의 부유한 영지를 바탕으로 모은 금화를 풀어 반도 전역에 첩자를 심어두었고, 그 첩자들로부터 방대한 양의 정보가 매일 같이 정보부로 쏟아지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억제기 원정대에서 활약한 테일러는 최근 정보부에서 화제의 인물이 되어 요원들의 눈동자가 집중되고 있었다.
덕분에 루시드는 별다른 시간을 들이지 않고 조금의 금화로 테일러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만약 테일러가 평범한 용병이었다면 정보를 얻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에게 예비대 지휘를 맡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는 듀라한을 침묵시켰고,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에 실버 등급 용병이 되었습니다.”
루시드의 적극적인 어필에 필리스터 자작은 고민에 빠졌다.
그런 그를 향해 슐덴 남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한 번 불러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를 불러서 직접 평가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좋은 방법이군. 루시드!”
“예! 아버지!”
“그에게 종자를 보내! 그를 필리스터 자작 가문으로 초대하는 것을 허락한다!”
* * *
필리스터 자작 가문에 종자가 출발했다.
종자는 쉬지 않고 말을 달려 테일러가 있는 에이옌 중심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필리스터 자작 가문의 종자가 테일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루시드가 미리 왕국 정보부로부터 듣고 알려준 정보대로 테일러는 매일 아침 용병 길드를 찾고 있었다.
골드 등급으로 승급하기 위한 의뢰를 받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성공 의뢰 개수를 늘리기 위해 간단한 의뢰를 찾기 위해서 매일 같이 용병 길드를 출입하는 테일러를 발견한 필리스터 자작 가문의 종자.
그는 반가운 마음에 허겁지겁 테일러를 향해 달려나갔다.
“누구십니까?”
멀리서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종자의 기척을 느낀 테일러는 가만히 있었지만, 고위 기사 알버트가 검에 손을 올린 채 종자를 막아서는 과민 반응을 취했다.
검에 손을 올린 채 위협적인 태도를 보이는 알버트는 언제라도 검을 뽑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테일러와 같은 나이였고, 테일러보다는 조금 약했지만 나름 왕국 내에서 검 좀 휘두른다는 자들만 받는다는 고위 기사 작위에 서임 된 훌륭한 기사였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검을 뽑는 것과 동시에 일검에 웬만한 적은 목이 잘려나가 피를 분수처럼 뿌리며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젊지만 고위 기사가 내뿜는 위압적인 기세에 종자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작은 소란에 주변의 이목이 집중되고 테일러 또한 고개를 돌려 종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종자가 입은 조끼에 그려진 문장이 익숙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필리스터 자작 가문?”
종자의 옷에 그려진 문장은 필리스터 자작 가문의 문장이 분명했다.
필리스터 자작 가문과는 연관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테일러는 알버트를 옆으로 물러나게 했다.
“휴우. 감사합니다.”
“필리스터 자작 가문에서 저는 무슨 일로?”
용병 길드에서 나와 광장에서도 조용한 구석 자리로 이동한 그들은 천천히 대화를 나누었다.
필리스터 자작 가문에서 보낸 종자는 테일러의 물음에 대답 대신 품속 깊은 곳에 간직한 편지를 꺼내 테일러에게 건넸다.
편지는 붉은 밀랍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붉은 밀랍의 봉인을 손가락으로 눌러 깨고 봉투를 열어 편지를 꺼내 읽기 시작하는 테일러.
여러 말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요약하자면 곧 왕국에서 큰 연회가 열릴 예정인데, 만약의 상황을 대비한 예비대의 지휘를 맡아주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루시드 필리스터가 보낸 편지였고 필리스터 자작 가문의 문장이 찍혀 있었다.
루시드라면 테일러도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해서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모른다고도 할 수 없는 사이였다.
루시드 필리스터.
그는 원래대로라면 던전에서 목숨을 잃을 운명이었고, 그의 죽음으로 인해 국왕 기사단장도 병을 얻어 목숨을 잃게 된다.
그의 죽음으로 국왕 기사단은 큰 힘을 잃고 전쟁에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게 됐었다.
그의 죽음을 막는 것은 테일러에게 있어서 해야 할 일이었고, 테일러는 그의 목숨을 구했다.
그 일을 계기로 루시드는 테일러에게 가문의 문장이 새겨진 목걸이를 선물로 남기고 자작 가문으로 돌아갔었다.
그리고 연락 한 통 없던 그가 갑자기 연락이 온 것은 의아했지만 대충 예상이 갔다.
연회가 열리는 5월에는 국왕 암살 미수 사건이 터지는 일이었다.
그 때문에 그것에 대해 도움을 구하려고 편지를 보낸 것인 듯했다.
“좋습니다. 동료들과 함께 필리스터 자작령으로 가겠습니다.”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뜻을 내비쳤다.
굳이 고생해서 필리스터 자작령으로 일부러 가는 것은 아니었다.
필리스터 자작령은 수도 근처에 있는 영지였고, 마침 테일러도 수도에 갈 일이 있었다.
신성교의 그레이 남매가 목숨을 잃는 곳도 수도였다.
테일러의 다음 파티원 예정은 그레이 남매였고, 그들을 구하기 위해선 수도로 향해야만 했다.
* * *
고위 기사급의 검술 실력과 마력검의 발현이 가능한 실버 등급 용병 테일러와 숲에서만 가능한 제한적인 조건이지만 온전한 정령 군주의 소환이 가능한 하이 엘프 일리아 웨스트우드, 그리고 최연소 고위 마법사 가이우스와 상당히 젊은 나이에 고위 기사에 서임 받은 알버트 후안.
뛰어난 인재들로 구성된 훌륭한 파티가 필리스터 자작의 아들 루시드 필리스터의 요청으로 필리스터 자작령으로 향했다.
수도를 향한 긴 여정이 끝을 보일 때쯤 시간도 822년 4월도 끝을 보이고 있었다.
겨울보다 많이 따뜻해진 날씨.
따뜻한 봄바람이 부니 푸른 망토가 펄럭였다.
하늘은 덧없이 맑았고 흰 구름이 하늘이라는 바다를 여행하는 배처럼 끝없는 여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테일러. 저기 좀 보세요!”
일리아가 들뜬 얼굴로 손가락 끝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녀의 고운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언덕 너머로 도시의 모습이 작게 보였다.
“필리스터 자작령의 중심도시입니다.”
테일러 옆에서 말을 타고 가고 있던 필리스터 자작 가문의 종자가 친절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중심도시와 가까워지니 중심도시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크군.”
중심도시에 도착하자 가이우스가 높게 뻗은 성벽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필리스터 자작령의 중심도시는 자작령의 중심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에이옌 백작령의 중심도시와 비슷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수도 사우스펠 근처의 영지는 모두 비옥하고 광산도 적당히 풍부했기 때문에 수도 인근의 영지를 지배하는 영주들은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있었고, 그 부는 고스란히 중심도시에 투자되어 규모를 키워냈다.
“그런데 줄이 너무 길지 않은가? 이거 하루 종일 걸릴 것 같은데?”
길게 서 있는 줄을 보며 가이우스가 지적했다.
그의 말대로 줄을 서서 기다린다면 몇 시간은 소모할 듯했지만 다른 파티원들과 다르게 테일러는 침착했다.
필리스터 자작 가문의 종자가 있으니, 어떻게든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게 영주님의 명령서가 있으니, 줄을 서지 않아도 되는 것은 물론이고 검문도 필요 없습니다.”
종자는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필리스터 자작의 직인이 찍혀 있는 명령서를 꺼내 보여주었다.
“오. 그렇다면 다행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