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41화
16장 충성을 받아내다(3)
포션은 죽어가는 목숨을 구할 정도로 뛰어난 효과를 보이지만 그만큼 가격이 비쌌다.
알버트도 남작 가문 중에서도 유명한 후안 남작 가문의 차남이 아니었다면 구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상처 치료가 끝나고 뱀파이어들의 시체로 가득한 작은 성을 떠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을 때 알버트가 진지한 얼굴로 테일러에게 다가왔다.
“무엇이든, 대답해 드리겠습니다.”
“당신들은 누구십니까?”
그러고 보니 소개를 하지 않았다.
테일러는 가이우스와 일리아를 소개하고 자신 또한 간단히 소개했다.
테일러가 브론즈 용병에 불과하다는 것을 들었을 때 알버트는 경악했다.
테일러의 실력은 누가 봐도 고위 기사 수준으로 골드 용병과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알버트도 테일러가 당연히 고위 기사이거나 용병이더라도 골드 등급의 용병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저를 구해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알고 싶습니다. 테일러 님.”
“그것은…….”
그 이유를 설명하려는 순간이었다.
전투의 긴장감이 막 사라지려는 찰나에 또 다른 전투를 예고하는 알림음이 테일러의 귓가에 울린다.
[기척 감지! 레인저의 직감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적의 수를 파악합니다.]
[총 15의 적이 감지되었습니다.]
“그것은 나중에 설명해드려야겠습니다.”
조용히 집어넣었던 검을 다시 뽑아드는 테일러의 모습에서 알버트 후안은 본능적으로 또 다른 적이 주변에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가이우스 역시 스태프에 마력을 불어 넣었고, 일리아도 창백한 얼굴로 마지막 힘을 짜내 고위 불의 정령을 소환했다.
“흑마법?”
알버트 후안이 의문을 표했다.
분명 태양이 하늘의 한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지만, 숲에는 어둠이 내려앉았다.
밝은 하늘과 대조적인 어두운 숲의 모습에 알버트는 흑마법을 의심했다.
“흑마법일 가능성이 높다네. 이런 사악한 기운은 흑마법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네.”
주변을 살피며 가이우스가 말했다.
숲을 어둠에 잠기게 한 이 검은 기운의 정체를 가이우스는 아직 알지 못했지만, 어둠을 이루고 있는 마력에서 느껴지는 사악한 기운을 느낀 그는 흑마법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테일러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뭔가 와요.”
일리아의 말이 짧은 대화를 끊었고, 어둠이 짙게 내린 그림자에서 검은 암행복을 입은 암살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자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단장 그라바스가 나타났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알버트 후안과 가이우스를 번갈아 살폈다.
그리고 알버트 후안과 가이우스가 표적이라는 것을 재차 확인한 그라바스는 검을 뽑아들었다.
검은 마력검이 활성화되었고 그는 침착하게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리기 위해 입을 열었다.
“쳐라!”
그라바스의 명령에 그림자 기사단 9암살단의 암살자들은 대답 대신 행동을 보였다.
테일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던 암살자의 몸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테일러의 뒤에 나타났다.
검은 마력검이 깃든 검이 테일러를 향해 쇄도했지만, 테일러는 검을 들어 막아냈다.
파마의 검은 이미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럴 수가!”
테일러의 검과 부딪친 암살자의 검에 활성화된 마력검이 유리 깨지듯 와장창 깨져버렸다.
일격에 깨지는 것으로 보아 마력검의 경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거나 보유한 마력이 상당히 적은 모양이었다.
테일러는 검을 움직여 암살자의 검을 깨끗하게 잘라내고는 연이어 검을 휘둘러 목을 베어냈다.
순식간에 한 명을 정리했지만 남아 있는 적은 아직 많았다.
그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워버리세요!”
일리아가 소환한 고위 불의 정령이 시뻘건 불길을 입에서 토해냈다.
“으아아아아아!”
뜨거운 불길에 휩쓸린 암살자 한 명이 고통에 찬 비명을 내뱉으며 불타오르며 어딘가로 뛰었다.
물을 찾아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떠난 것이다.
“고위 정령과 고위 마법사가 있다. 산개하라.”
고위 불의 정령이 토해낸 뜨거운 불길을 피한 그라바스는 부하들에게 고위 마법사와 고위 정령의 존재를 알리며 경고와 함께 지시를 전달했다.
범위 공격이 가능한 고위 마법사와 고위 정령으로부터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산개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호오! 제법이군!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체인 라이트닝!”
고위 마법은 아니지만 강력한 통상 마법 중 하나인 체인 라이트닝을 캐스팅하는 가이우스.
그의 스태프에 박혀 있는 마정석이 빛나더니 푸른 전격을 뿜어냈다.
전격을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단장 그라바스를 향했지만 그라바스는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자네를 시작으로 연쇄 전격의 파티가 시작될 걸세!”
가이우스는 그라바스를 시작으로 적어도 3명 정도의 암살자가 감전될 것이 분명하다고 예상했지만, 그의 예상은 틀리고 말았다.
그의 그림자에서 검은 방패가 나타나 체인 라이트닝의 강력한 전격을 막아낸 것이었다.
“이럴 수가!”
가이우스는 경악했고 그라바스는 입꼬리를 끌어 올려 가이우스를 비웃었다.
그라바스가 사용한 기술의 이름은 그림자 방패.
그림자 기사단에서도 ‘그림자 기사’의 작위를 받은 뛰어난 실력자들만이 사용이 가능한 고등 기술이었다.
이 기술은 방금 보았다시피 무려 고위 마법사가 캐스팅한 통상 마법을 막아낼 정도로 튼튼했다.
보통 고위 마법사가 캐스팅한 마법은 고위 마법이 아니더라도 평범한 마법사가 캐스팅한 마법에 비해 1.5배 이상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림자 방패는 그런 공격을 막아낼 정도의 무서운 기술이었다.
“가이우스! 고위 마법을 사용하십시오!”
테일러가 외쳤다.
고위 마법이라면 적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가이우스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마력이……, 얼마 없다네.”
“맙소사.”
테일러는 경악했다.
마력이 부족했다.
뱀파이어들과의 전투로 마력의 대부분을 소진해버린 것이었다.
현재 가이우스는 통상 마법의 사용은 가능했지만, 마력을 굶은 거지처럼 잡아먹는 고위 마법의 캐스팅은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습니다. 도망칩시다!”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테일러 님.”
“나도 함께하겠습니다. 알버트.”
알버트 후안과 테일러가 앞장서서 간신히 길을 열었다.
그 사이 그림자 기사단 암살자들의 공격으로 방패 역할을 해주고 있었던 고위 불의 정령이 역소환되었다.
강제 역소환 충격으로 인해 일리아가 창백한 얼굴로 입술을 깨문 채 휘청거렸다.
“놓치지 마라!”
그라바스가 명령했다.
그림자 기사단 9암살단은 집요하게 테일러들을 추격했고, 그들에게서 테일러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전면전을 벌이려고 해도 테일러와 그의 파티는 뱀파이어들과의 전투로 지쳐 있었고 9암살단 암살자들의 실력도 만만치 않았다.
11명 남아 있었지만, 하나하나가 강력한 적이었다.
톨빈이 이끌었던 암살단과 다르게 그라바스의 9암살단은 소수 정예였다.
한 명 한 명이 뛰어난 실력의 암살자였으며, 그라바스 외에도 그림자 기사 작위가 있는 그림자 기사가 한 명 더 있었다.
“테일러! 피리, 피리를 부세요.”
일리아의 조언에 테일러는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리아로부터 받은 나뭇잎 피리.
그게 있었다.
그것을 분다면 엘프 레인저 부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여기서 적을 맞이합니다.”
엄폐물과 나무가 없는 평원과 비슷한 지형에 도착한 테일러가 선언하며 품속에서 나뭇잎 피리를 꺼내 불었다.
맑고 청아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간의 귀로 들리는 소리 외에도 엘프들만 들을 수 있는 마법의 소리가 바람을 타고 먼 곳까지 날아가 순찰돌던 엘프 레인저들에게 닿았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도망치는 것을 포기한 것인가?”
이윽고 어둠 속에서 그라바스와 그의 부하 10명이 나타났다.
본래 15명이었지만 테일러와 그의 파티에 의해 수가 조금 줄어들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있나? 특별히 들어주도록 하지.”
암살자들은 테일러들을 포위한 상태였다.
승리를 예감한 그라바스는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주었다.
그의 태도에 테일러는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입을 열었다.
“알고 있나? 여기가 엘프들의 영토라는 것을?”
“그것이 무슨 상관이지?”
그라바스는 차갑게 대답했고, 테일러는 다시 입을 열었다.
“상관있지. 내가 방금 지원을 요청했거든.”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무들 사이에서 수십 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그림자 기사단의 암살자들은 갑작스러운 기습에 깜짝 놀라 검을 휘두르며 화살을 막아냈지만 2명이 고슴도치가 되어 쓰러졌다.
단 한 발의 화살이라도 허용하는 순간 고통으로 인해 자세가 흐트러져 연이어 날아오는 화살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고슴도치로 변신하는 마법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림자 기사단 9암살단 단장 그라바스가 거대한 그림자 방패를 들어 올려 부하들을 감싼 것이었다.
“이런! 제기랄! 이거나 먹게나!”
가이우스가 분통을 터뜨리며 불덩이를 던졌으나, 통상 마법에 박살 날 그림자 방패가 아니었다.
결국 보다못한 엘프 레인저들이 나섰다.
단검과 손도끼, 장검 등으로 무장한 20명 정도 되는 숫자의 엘프 레인저들이 수풀 속에서 튀어나와 그라바스와 전투를 벌였다.
엘프 레인저들의 수준은 높았으나, 전부 마력검을 사용할 수 있는 실력자들이 아니었다.
마력검을 사용하지 못하는 자는 마력검을 사용할 수 있는 자와 싸울 때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엘프 레인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1명이 마력검을 사용할 수 있었으나, 나머지는 마력검의 사용이 불가능했고, 그라바스와 암살자들이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한 명씩 처참하게 죽어나갔다.
“사격!”
“아군이 있습니다!”
엘프 레인저 지휘관은 아직 아군이 싸우고 있음에도불구하고 사격 명령을 내렸고 테일러는 다급하게 그를 말리려 했지만 일리아가 그의 옷깃을 잡았다.
“기다려보세요. 테일러.”
일리아의 말에 테일러는 엘프 레인저 지휘관을 말리는 것을 그만두고 전장을 지켜보았다.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들은 엘프 레인저들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 검을 휘두르고 있는 암살자의 이마에 정확히 꽂혔다.
계속되는 집요한 원거리 화살 공격과 엘프 레인저들의 물량 공세에 결국 암살자들의 수는 하나둘씩 줄었고, 마침내 마지막까지 버티던 그라바스조차 테일러와 알버트가 가세하자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라바스가 쓰러지고 테일러는 전투를 끝내는 알림음과 함께 레벨이 상승했다는 알림음을 들을 수 있었다.
“동족 48명이 당했습니다. 무서운 녀석들입니다.”
그라바스와 그의 부하들의 무서운 강함에 엘프 레인저 지휘관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죽어 있는 동족들의 시체를 살폈다.
그러면서 고개를 저으며 무기를 집어넣었다.
엘프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라바스를 물리쳤지만, 그로 인한 희생은 적지 않았다.
엘프 레인저 48명이 죽거나 다쳤다.
이것은 큰 손실이었다.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테일러는 씁쓸한 표정의 지휘관에게 다가가 감사를 표했다.
엘프 레인저 지휘관은 녹색 깃털이 달린 은빛의 투구를 벗으며 탐스러운 금발을 정리했다.
“하이 엘프에 대한 맹세를 지켰을 뿐입니다.”
일리아가 테일러에게 준 나뭇잎 피리는 하이 엘프의 피리라고도 불린다.
이 피리를 불면 하이 엘프 수호에 대해 맹세한 엘프 연합의 엘프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따라오시죠. 마을까지 호위해 드리겠습니다.”
엘프 레인저들의 도움을 받아, 마을에 도착한 테일러 파티.
테일러로부터 목숨을 구원받은 알버트는 테일러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몸을 던진 테일러의 행동은 알버트 후안이라는 정의의 기사를 꿈꾸는 젊은이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비겁자였다면 도망쳤을 것이다.
위험한 상황임에도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준 테일러의 행동에 지금 알버트는 테일러의 정의감에 적지 않게 감동한 상태였다.
알버트의 시선을 느낀 테일러는 즉시 정의로운 기사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알버트 후안은 정의의 기사를 추구하고, 정의라는 말에 약했다는 것을 전생의 참모부 장교가 하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테일러의 연기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큰 효과를 봤다.
마을에서 충분한 휴식을 가지고 에이옌 중심도시로 귀환하는 길에 알버트는 테일러의 앞을 막아서고 검을 뽑아들고 땅에 꽂아 넣으며 외쳤다.
“테일러!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기사입니다! 기사도와 후안 가문의 뜻에 따라,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목숨을 구해주면서 테일러에게 깊은 신뢰와 호감을 느낀 알버트의 눈에는 테일러가 굳이 연기하지 않아도 행동 하나하나가 기사도와 딱 들어맞았다.
설령 어긋났다고 하더라도 알버트는 어떻게든 합리화시켰다.
“알겠습니다. 당신을 받아들이도록 하겠습니다. 알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