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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플레이어-36화 (36/150)

리턴 플레이어 36화

14장 녹색 눈의 하이 엘프(2)

일리아는 중앙에서 6명의 뱀파이어 귀족과 1명의 뱀파이어 기사에게 포위당해 있었는데, 그녀가 입고 있는 하얀 천 옷은 그녀가 흘린 피와 적을 죽이는 과정에서 튄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고 아름다운 얼굴은 피로라는 독에 중독되어 있었다.

모든 마력을 소진한 것인지 정령을 소환한 흔적은 있었지만, 정령은 보이지 않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녀는 테일러를 발견하고 희망을 되찾았다.

“녀석을 처리해라.”

“루돌프 자작님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뱀파이어 기사가 뱀파이어 자작 루돌프의 명령을 받들어 테일러를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인간과는 비교도 안 되는 빠른 움직임이었지만 테일러는 그의 움직임을 침착하게 눈으로 좇았다.

“죽어라! 인간!”

머리를 노리고 내리꽂히는 검을 옆으로 구르는 것으로 피한 테일러는 주먹으로 뱀파이어 기사의 얼굴을 강하게 쳤다.

“크악!”

투구를 쓰고 있었지만, 얼굴 부분은 열려 있는 구조의 투구였기 때문에 얼굴을 전혀 보호해주지 못했고 인간의 한계를 넘은 55레벨의 강력한 주먹에 뱀파이어 기사의 얼굴은 보기 흉하게 함몰되었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에 뱀파이어 기사는 검을 놓치고 말았고 그것은 테일러가 잡아챘다.

“좋은 검이군.”

인간보다 능숙하게 철을 다루는 뱀파이어가 만든 검답게 테일러가 지금 들고 다니는 검보다 훨씬 훌륭했다.

훌륭한 무기를 손에 넣은 테일러는 즉시 마력검을 발현시키고 뱀파이어 기사의 가슴에 검을 밀어 넣었다.

마력검은 갑옷을 우습게 찢고 들어가 심장을 파괴했다.

“커헉!”

뱀파이어 기사가 붉은 피를 뱉어냈다.

그가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테일러의 몸이 무서운 속도로 일리아를 향해 튀어 나갔다.

뱀파이어 귀족과 거의 흡사한 움직임에 일리아를 향해 검을 들어 올리던 뱀파이어 귀족들은 경악했다.

“이것이!”

“인간의 움직임이라고?”

그들이 경악하는 짧은 순간 동안 테일러는 그들을 돌파하여 일리아의 앞을 막아선 채로 입을 열었다.

“내가 쓰러지지 않는 한, 이 엘프에게 검을 들이댈 수는 없을 것이다. 뱀파이어.”

“놈들은 모두 귀족이에요. 나는 상관없으니, 그만 도망쳐요. 혼자라면 도망칠 수 있을 겁니다.”

하이 엘프 일리아는 쓸쓸한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말했다.

비록 인간이지만 테일러가 자신 때문에 개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는 반대로 테일러는 도망치지 않았다.

“어째서 도망치지 않는 거예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도망쳤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당신이 있기에, 저는 도망칠 수 없습니다.”

“아…….”

일리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테일러는 하이 엘프가 아니었다면 도망쳤을 것이라는 의미로 한 말이었지만 일리아 웨스트우드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그녀는 그동안 남자로부터 구애를 한 번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모든 엘프들이 그녀를 너무 높은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던 탓이다.

테일러는 눈동자를 굴려 상황을 살폈다.

다행히 정령군주의 소환이 가능한 정령사를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상대하느라, 뱀파이어 귀족들은 지쳐 있었다.

2명은 이미 마력검을 활성화할 마력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인지 들고 있는 검에 마력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어리석은 인간 녀석.”

준남작을 나타내는 브로치를 가슴에 달고 있는 뱀파이어 준남작이 어둠 속에서 붉은 눈동자를 빛내며 테일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것을 시작으로 뱀파이어 귀족들이 테일러를 향해 거리를 좁혀 검을 휘둘렀다.

6:1의 싸움.

그것도 최소 고위 기사의 수준을 가지고 있는 뱀파이어 귀족 여섯과의 치열한 전투.

테일러는 일리아를 지키면서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놈들을 공격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틈틈이 공격하여 준남작 2명의 목을 잘라냈다.

하지만 그로인해 빈틈이 생겼고, 마력이 바닥난 뱀파이어 남작이 일리아를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웃!”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는 검을 보면서 일리아는 비명을 지르는 대신 최후를 직감하고 두 눈을 감았지만 예상했던 고통은 찾아오지 않았다.

두 눈을 조심스럽게 떠보니 테일러의 손이 뱀파이어의 검을 붙잡고 있었다.

마력검은 발현되어 있지 않았지만, 예리한 검날에 손이 깊게 베여 붉은 피가 물 흐르듯 흐르고 있었다. 테일러는 고통을 참아내고 검을 휘둘러 남작의 목을 잘라냈다.

그리고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녀석과 검을 마주하지 마라! 마력을 빼앗긴다!”

전투 시작 후 3명을 잃은 뒤에서야 루돌프 자작은 테일러가 쓰는 파마의 검에 대한 존재를 대충 눈치챘다.

루돌프 자작은 준남작 둘을 물러나게 한 다음 혈마법을 캐스팅했다.

붉은 피로 이루어진 화살이 일리아와 테일러를 향해 덮쳤다.

테일러는 일리아의 앞을 막아선 채로 검을 휘둘러 피의 화살을 쳐냈지만 몇 개는 테일러의 몸을 스치고 지나쳤다.

피부가 갈라지고 따뜻한 피가 솟구쳤다.

갑옷을 입고 있지 않은 탓에 상처는 깊었다.

“테일러!”

테일러가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것을 깨달은 뱀파이어 귀족 셋은 동시에 세 방향에서 테일러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루돌프 자작이 혈마법으로 만들어낸 살아 움직이는 피의 창 또한 함께였다.

일리아의 외침이 등 뒤에서 들리고 테일러는 이를 악물고 검을 들었다.

뱀파이어 귀족 셋의 공격은 막아냈지만, 루돌프 자작이 소환한 살아 움직이는 피의 창은 막아내지 못했다.

“커헉!”

테일러의 복부에 피의 창이 꽂혔다.

붉은 피가 새어나오고 시야가 아득하게 멀어졌다.

또 다른 뱀파이어 귀족이 검을 휘둘러 테일러의 검을 멀리 날려 보냈다.

그리고 동시에 다른 뱀파이어 귀족이 테일러의 목을 노렸다.

그 순간이었다.

창문이 열리고 돌풍이 불어와 테일러의 앞에 거대한 방패를 만들었다.

루돌프 자작이 소환한 피의 창과 그의 검이 방패에 막혔고 나머지 둘의 검은 테일러가 측면에서 막아냈다.

“테일러. 개인행동은 슬슬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는가?”

가이우스가 천천히 방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10명의 엘프 근위대와 함께였다.

그림자 기사단의 공격 이후로 불안증에 걸린 가이우스는 늘 자기 전에 테일러 몰래 살기를 감지하는 색적 결계를 광범위하게 펼치고 잠을 잤다.

뱀파이어들이 어둠에 섞여 기습을 가할 때는 살기가 감지되지 않았지만, 결계가 깨지고 테일러가 발산하는 살기가 결계에 감지되어 가이우스를 깨운 것이었다.

“이탈한다.”

“알겠습니다.”

“예.”

상황이 불리해지자 루돌프 자작은 즉시 현장을 이탈하기로 했다.

붉은 피가 바닥에 떨어지고 붉은 마법진이 그려졌다.

“놓치지 마라!”

엘프 근위대가 검을 뽑아들고 접근하려는 순간, 붉은빛이 번쩍이더니 그림자가 일어나 뱀파이어들을 덮쳤다.

그림자가 사라질 때쯤엔 뱀파이어들도 사라지고 난 뒤였다.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스킬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후우.”

안내음을 들으며 테일러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테일러!”

일리아가 두 눈에 눈물을 머금고 달려와 테일러를 부축했다.

그런 그녀의 깊은 바다를 담은 듯한 깊은 녹색 빛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테일러는 입을 열었다.

“이제 끝났으니 조금 쉬겠습니다.”

테일러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 * *

테일러는 눈을 떴다.

제일 처음 그의 눈에 들어온 광경은 하얀 천장이었고, 그다음으로 두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의 하얀 침대에 엎드려 자고있는 금발의 하이 엘프 일리아였다.

테일러는 몰랐지만 일리아는 테일러가 의식을 잃고 난 뒤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피투성이가 된 테일러를 직접 안고 마을의 의료소까지 뛰어갔었다.

성인 남성인 테일러의 몸무게는 가볍지 않았지만, 인간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진 하이 엘프인 일리아에게는 가벼운 수준이었다.

곤히 잠든 일리아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테일러는 탐스러운 금색의 머리카락을 향해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 넘겼다.

탐스러운 금발이 옆으로 쓸어 넘겨지자 일리아의 새하얀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세상 모르게 자고 있던 그녀는 테일러의 손길을 느낀 것인지 천천히 눈을 떴고 테일러는 깜짝 놀라 재빨리 손을 거두어들였다.

“아, 일어나셨군요.”

“예?”

갑자기 변한 일리아의 말투에 테일러는 깜짝 놀랐다.

형식상의 존대만 할 뿐 예의를 딱히 중요시하지 않았던 그녀가 지금은 너무나도 공손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다소곳하게 앉아 테일러를 향해 애정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내는 그녀의 모습은 사랑에 빠진 귀족 가문의 영애를 연상하게 했다.

참고로 어제까지만 해도 그녀는 귀족 가문의 영애보다는 여장군에 가까웠었다.

테일러와 마찬가지로 일리아 웨스트우드 또한 자신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지 않게 당황한 상태였다.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편하게 대하던 그녀였다.

테일러를 대할 때 역시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와 같이 편하게 대하던 그녀였지만 뱀파이어의 습격으로부터 테일러가 구해준 뒤로는 그를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뿐만아니라, 테일러의 시선이 느껴지면 몸이 달아오르고 볼이 붉게 물드는 등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이 나왔다.

“어제는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테일러.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어요. 설마 15명 이상의 뱀파이어 귀족이 저 하나를 노리고 이렇게 비밀리에 습격해 올 줄은 몰랐어요.”

어제 하이 엘프 일리아 웨스트우드를 공격한 뱀파이어의 수는 모두 23명으로 그중에서 16명이 준남자 이상의 작위를 가지고 있는 뱀파이어 귀족이었다.

심지어 한 명은 백작이었다.

뱀파이어 백작의 무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강력하다.

하이 엘프인 일리아 웨스트우드는 뱀파이어 백작을 죽이기 위해서 전투 초반에 상당한 양의 마력을 소모해서 정령 군주를 소환했고, 뱀파이어 백작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정령 군주도 심각한 피해를 입고 역소환되고 말았다.

정령 군주의 역소환으로 인해 적지 않은 피해를 입은 일리아는 전력을 다해 저항하여 뱀파이어 기사와 귀족 대부분을 죽이는 것에 성공하지만 결국에는 탈진 상태가 되었다.

테일러가 적당한 시기에 달려오지 않았다면 일리아는 아침 해를 보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정말 다행이에요.”

감사를 표하는 일리아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맺혔다.

테일러는 그것이 죽을 고비를 넘긴 탓에 감정이 복받쳐서 흘리는 눈물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테일러가 크게 다치지 않고 의식을 차린 덕분에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었다.

“일리아. 당신은 하이 엘프입니다. 앞으로는 경호에 더 신경을 쓰세요. 근위병도 더 뽑고, 결계도 강화하세요.”

일리아는 대답 대신 묘한 시선을 테일러를 향해 보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아가 보내는 시선의 의미를 테일러는 알 수 없었다.

“일리아 님.”

“응?”

“환자분은 이제 쉬셔야 합니다.”

백발의 엘프 의사는 하이 엘프 일리아에게 양해를 구했다.

엘프 의사의 말대로 슬슬 휴식이 필요한 것인지 몸이 비명을 지르려 하고 있었다.

마침 진통제 약 기운도 떨어지고 있는 시점이라, 고통도 조금씩 느껴지고 있었다.

“어쩔 수 없네요. 테일러. 나중에 또 찾아올 테니 부디 푹 쉬세요.”

엘프 의사를 향해 거친 모습이 되었다가 다시 숙녀가 되어 조곤조곤 말하는 일리아의 모습에서 테일러는 지구에 있었던 시절에 보았던 드라마의 다중인격자를 떠올렸다.

일리아가 의료소를 나오고 그 뒤를 이어 가이우스가 엘프 마을의 상점에서 구입한 과자를 조금 가지고 찾아왔지만, 엘프 의사는 면회를 허가해주지 않았다.

테일러의 상처를 전력을 다해 치료하라는 하이 엘프 일리아 웨스트우드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치료를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면회가 잦아진다면 치료를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방금 전 일리아가 테일러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엘프 마을을 통치하는 하이 엘프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만 돌아가 주시지요.”

“우우우우!”

앞을 가로막는 엘프 의사를 보며 가이우스는 입술을 내밀며 자신이 불만을 가득 품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어필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국 가이우스는 백기를 들어 올렸다.

“그렇다면 이 과자라도 전해주게나. 달달한 것이 통증도 잊게 해줄 것이네.”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고맙네.”

가이우스가 건넨 과자를 엘프 의사는 받아들고는 테일러의 병실에 가져다 놓았다.

엘프 의사가 과자를 들고 테일러의 병실로 가져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며 아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뱉은 가이우스는 숙소로 돌아갔고, 테일러는 가이우스가 보낸 과자를 씹으며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냈다.

하이 엘프의 명령으로 최고의 의료팀이 테일러의 상처를 살폈다.

덕분에 그는 빨리 회복할 수 있었고, 가이우스도 테일러의 병실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엘프 마을을 구경하기 바쁜 가이우스는 하루에 1시간 정도를 테일러의 병실에 머물렀지만 하이 엘프 일리아는 거의 24시간 머물렀다.

24시간 병실을 지키며 사랑에 빠진 소녀와 같은 눈동자로 자신의 전신을 살피는 일리아의 태도에 테일러가 슬슬 지쳐 갈 때쯤.

퇴원이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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