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30화
11장 카리스크(3)
하급 장교 한 명이 목이 터지라 외쳤다.
오크 주술사들의 방어 주술에 힘입어 마법 폭격을 뚫고 오크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들을 향해 아군의 궁병들이 화살을 퍼부었지만, 상당히 훌륭한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는 오크 전사들에게 큰 피해를 주지는 못했다.
반도의 오크 전사들과 다르게, 그랑키아 숲의 오크 전사들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철제 흉갑과 투구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화살로는 큰 피해를 입힐 수 없었다.
화살 공격으로 오크 몇 마리가 비틀거리며 쓰러지긴 했지만, 그 뿐이었다.
다만, 성난 고위 마법사들과 마법사들의 연이은 마법 공격에는 제법 큰 피해를 입었다.
“주술사들을 전원 방어 주술로 돌려.”
피칼날 부족의 제사장 카리스크는 1차 전투 때와 비교하여 강력해진 적의 마법 공격에 오크 주술사들로 하여금 방어 주술에 집중하게 했다.
카리스크의 명령에 오크 주술사들은 적을 공격하는 주술보다는 마법으로부터 아군을 보호하기 위한 주술을 집중적으로 펼쳤고, 카리스크의 오크군은 처음 개전과 동시에 마법 폭격으로 많은 수의 오크 전사를 잃었지만, 그 뒤로는 적은 수의 오크 전사를 잃고 성벽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캐스팅을 멈추지 마라! 계속 퍼부어!”
로렌시아 남작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그의 외침이 전장의 시끄러운 소음을 뚫고 가이우스를 비롯한 고위 마법사들과 마법사들에게 전달되었다.
적의 방어 주술로 인해 마법 공격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아군이 적의 후방으로 마법 폭격을 계속 퍼붓는 것으로 인해 적의 오크 주술사 전력이 아군을 향해 강력한 주술 공격을 감히 퍼붓지 못하고 있었다.
“충돌에 대비하라!”
오크군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1열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일제히 검과 방패를 들어 올렸다.
그 어떤 공격도 막아낼 것 같이 단단해 보이는 방패가 달빛을 받아 빛났다.
2열의 병사들은 1열의 자리가 빌 것을 대비해 방패를 들고 검을 들었으며 3열은 긴 창으로 무장했다.
“충돌한다!”
“대비해!”
쾅!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양측 진영이 충돌했다.
그랑키아 숲 오크 전사들의 전투 도끼와 검이 기사들의 철제 방패를 사정없이 두드렸다.
1열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방패로 몸을 가린 채 적을 향해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고 비명과 함께 붉은 피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사, 상급 전사다! 상급 전사가 나타났다!”
“내게 맡겨!”
큰 변수 없이 유지되고 있던 방진이 갑자기 폭탄에 맞은 것처럼 출렁였다.
누군가가 상급 전사가 나타나 방진을 공격하고 있다고 보고했고 대기하고 있던 일리아나 웨스트가 나섰다.
불타는 검과 방패를 든 거대한 몸집의 불의 정령이 나타나 상급 전사에게 달려들어 뜨겁게 타오르는 붉은 화염의 검을 휘둘러 방진에서 몰아냈다.
불의 정령이 휘두르는 불의 검은 그랑키아 숲의 상급 전사에게도 치명적이었다.
불의 검에 상처를 입은 상급 전사가 간신히 불의 정령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혀 정령계로 역소환시켰다.
일리아나 웨스트는 역소환은 충격으로 잠시 몸을 비틀거렸지만 이내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불의 정령을 소환했다.
하지만 다른 상급 전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일리아나 웨스트도 곤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가 소환한 고위 정령은 한 번에 하나를 소환하는 것이 한계였기 때문이었다.
상급 전사들의 협공에 불의 정령은 다시 역소환되었고 일리아나 웨스트는 다시 역소환의 여파로 휘청거렸다.
“제길……. 정령군주만 소환할 수 있어도.”
일리아나는 다시금 고위 불의 정령을 소환하며 욕설을 내뱉었다.
정령군주.
정령사가 소환할 수 있는 정령 중에 최강으로 불리는 정령으로 정령들의 정점에 선 존재다.
그들의 힘은 산을 무너뜨리고 하늘을 찢고 바다를 가른다고 전해진다.
유감스럽게도 정령군주를 소환하기엔 지금 일리아나의 실력이 부족했다.
“테일러! 아직 인가!”
전방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전투의 모습을 지켜보던 고위 기사가 답답한 얼굴로 테일러를 바라보았다.
지금 당장에라도 튀어 나가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카리스크가 성문을 넘지 않았다.
“참으셔야 합니다. 지금 돌격했다간 곧 포위되어 전멸할 것입니다.”
“이대로 기다리다가는 방진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 걸세!”
테일러는 침착하게 그를 진정시키려 노력했지만, 고위 기사는 성이 난 표정으로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테일러는 시선을 방진을 향해 옮겼다.
고위 기사의 말대로 방진은 위태로웠다.
잘 버텨줬던 처음과 달리 지금은 마구 요동치고 있었다.
1열은 대부분 목숨을 잃었고, 2열이 남아 힘겹게 전투를 이어가고 있었다.
“제길.”
테일러의 입 밖으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는 초조하게 성문을 주시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성문에서 밝은 빛과 함께 카리스크가 들어왔다.
밝게 빛나는 스태프를 든 채 카리스크가 깊숙이 들어온 순간 테일러는 검을 뽑아들었다.
“전원! 돌격! 단숨에 뚫고 지나가는 겁니다!”
[통솔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아군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통솔 스킬 효과의 극대화를 알리는 알림음과 함께 우렁찬 함성을 내지르며 기병대가 돌격을 개시했다.
“깔리기 싫으면 옆으로 비켜!”
방진의 지휘를 맡은 상급 장교가 반가운 기색이 감도는 목소리로 방진을 좌우로 열 것을 지시했다.
모세의 기적처럼 방진이 좌우로 열리고 그 속에서 무장한 기병대가 쏟아져 나왔다.
갑작스러운 방진의 변화에 멍하니 있던 오크 전사들은 기병창에 갑옷 채로 관통되어 튕겨 나오거나 말발굽에 끔찍하게 짓밟혔다.
테일러도 검을 마구 휘두르며 선두에서 말을 달렸다.
그는 기마 전투술을 익히지 않았지만, 깡패 같은 레벨 덕분인지 어느 정도 보완이 되었다.
만약 스킬창이 충분했다면 기마 검술 스킬이 생성되었을 정도로 열심히 검을 휘둘렀고 그들은 속도를 거의 잃었을 때쯤에 카리스크에게 도착할 수 있었다.
무장한 오크 전사들과 상급 전사 둘이 다가왔다.
기사들은 말에서 내리지 않았지만, 테일러와 용병들은 즉시 말에서 내려 전투를 준비했다.
기마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그들은 두 발을 땅에 딛고 서서 싸우는 편이 훨씬 익숙했다.
“라케르쉬. 맡기겠다.”
“맡겨주십시오! 이 라케르쉬! 카리스크 님께서 하찮은 것들을 상대하게 하시는 일은 없을 겁니다.”
피칼날 부족의 제사장 카리스크는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는 상급 전사 라케르쉬에게 인간들의 상대를 맡겼다.
카리스크는 지금 광범위한 영역의 오크 전사들에게 광전사 주술로 강화 효과를 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투에 임하기 힘들었다.
거대한 몸집의 라케르쉬와 또 다른 상급 전사 하나가 테일러와 용병들의 앞을 막아섰다.
초록빛의 거대한 두 산이 앞을 막아선 것과 같은 착각이 들었지만, 테일러는 묵묵히 검을 들어 올리며 마력검을 활성화했다.
날카롭게 빛나는 마력의 검이 검신에 깃들어 춤을 추듯 흔들렸다.
“마, 마력검?”
“자네 브론즈 등급이 아니었나?”
테일러의 검에 깃든 선명한 푸른빛의 마력에 고위 기사 둘은 홀린 듯 시선을 보내며 감탄했다.
마력검은 고위 기사들의 상징이었다.
용병들 중에서도 골드 등급 정도의 실력자들이 가끔 보여줄 정도다.
“용병의 길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실버나 골드 등급이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더군요.”
테일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상급 전사 라케르쉬를 향해 몸을 날려 검을 휘둘렀다.
마찬가지로 희미한 마력이 서려 있는 검을 라케르쉬가 휘둘러 테일러가 휘두른 검을 막아냈다.
마력과 마력이 충돌하면서 푸른 불똥이 튀었다.
테일러의 공격을 시작으로 다른 고위 기사들과 기사들, 그리고 용병들이 카리스크를 호위하는 상급 전사와 오크 전사들과 전투를 벌였다.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튀었다.
오크의 강한 힘은 기사의 철제 갑옷조차 뚫고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
테일러는 고위 기사 한 명과 함께 상급 전사 라케르쉬와 검을 나누었다.
상급 전사 라케르쉬는 거대한 몸집과 어울리지 않게 빠른 쾌검을 구사했기 때문에 상급 방어 검술을 익힌 테일러와 전투 경험이 풍부한 고위 기사 역시 상대하기가 힘들었다.
단순히 빠르기만 한 검이 아니라 실려 있는 힘도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 번 한 번 그의 공격을 막아낼 때마다 뼈가 부러지는 것만 같은 충격이 전해졌다.
“크악!”
“테일러!”
비처럼 쏟아지는 빠른 검의 연속적인 공격에 테일러는 그만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가죽 갑옷이 찢어지고 사슬 갑옷마저 끊어졌다.
그리고 깊은 상처가 생겨 붉은 피가 쏟아져 나왔다.
고위 기사는 테일러의 이름만 부를 뿐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했다.
그 역시 라케르쉬의 공격을 받아내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허억. 허억.”
테일러는 고통으로 인해 거칠어진 숨결을 내뱉으며 상처 부위를 손으로 더듬었다.
뜨겁고 붉은 피가 손에 묻어났다.
몸이 거의 반 토막 날 정도로 깊은 상처가 생길 줄 알았지만, 다행히 상처는 생각보다 깊지 않았다.
“암석거인의 가호 덕분인가…….”
테일러의 스킬 중에는 암석거인의 가호라는 방어력을 상승시켜주는 B급 스킬이 있었다.
그 스킬 덕분에 상처가 깊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도 다시 합류해야겠군.”
상처를 치료할 틈도 없이 테일러는 고위 기사를 돕기 위해 라케르쉬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테일러의 두 눈에 라케르쉬의 빛나는 검이 들어왔다.
라케르쉬의 검에 깃든 마력검 역시 마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파마의 검 스킬이 통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테일러는 하급 파마의 검 스킬을 발동시켰다.
다행히 마력검과 중복 사용이 가능했다.
“으아아!”
고함과 함께 테일러의 검이 라케르쉬의 검에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라케르쉬의 마력검이 희미해졌다.
“된다!”
“뭐, 뭐냐! 이것은!”
테일러는 환호성을 내질렀고 라케르쉬는 크게 당황했다.
테일러는 당황한 라케르쉬를 몰아붙이며 공격을 퍼부었다.
라케르쉬는 검이 빠른 편이었지만 거대한 몸이 빠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테일러의 검을 피하는 대신 검으로 쳐내거나 막아내는 게 한계였는데, 검이 부딪칠 때마다 자신의 마력검이 약해지고 희미하게 변하니 미칠 노릇이었다.
마침내 마력검이 완전히 사라지고 고위 기사의 검이 라케르쉬의 검을 잘라냈다.
그리고 이어서 테일러의 검이 라케르쉬의 목에 깊은 상처를 남겼고 뒤이어 고위 기사가 라케르쉬의 심장을 검으로 꿰뚫었다.
라케르쉬는 튼튼한 갑옷을 입고 있었지만 마력검 앞에선 알몸이나 다름없었다.
“카리스크 님!”
“네놈 상대는 우리다!”
라케르쉬가 쓰러지고 카리스크가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상급 전사가 다급하게 테일러의 앞을 막아서기 위해 움직이려 했지만, 그를 상대하고 있던 고위 기사 2명이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크윽! 인간 놈들!”
고위 기사 둘에게 발목이 잡힌 상급 전사는 분통을 터뜨렸고 테일러와 고위 기사 한 명은 앞을 막는 오크 전사들의 목을 베어 넘기며 빠른 속도로 카리스크에게 가까워졌다.
뒤늦게 테일러들의 접근을 눈치챈 카리스크는 몸을 빼려고 했지만, 이미 후방은 실버 등급의 용병 10여 명에 의해 봉쇄된 뒤였다.
“제기랄. 어쩔 수 없군.”
피칼날 부족의 제사장 카리스크는 욕설을 내뱉으며 광전사 주술을 해제했다.
약화 결계의 영향을 받는 지역에서 광전사 주술을 중단하면 강화 효과가 사라져서 오크 전사들이 허무하게 떼죽음을 당할 게 분명한 일이었지만 광전사 주술을 사용하면서 다른 주술을 사용할 수는 없었다.
살기 위해선 광전사 주술을 중단하고 공격과 방어의 주술을 사용하여 목숨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대지의 정령이여! 일어나라!”
카리스크가 스태프를 흔들자 땅에서 대지의 정령이 솟구쳤다.
급하게 소환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위 대지의 정령이 분명해 보였다.
오크 주술사들은 정령 친화력이 제법 있는 편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하이 오크들은 정령 친화력이 엘프와 비슷한 수준이어서 무리 없이 정령을 다룰 수 있었다.
카리스크는 그중에서도 정령 친화력이 뛰어난 편이라, 최적의 환경에서 모든 마력을 쏟아 붓는다면 정령군주의 일부분을 소환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위 대지의 정령이다!”
용병 하나가 소리쳤다.
산전수전 다 겪은 실버 등급의 용병들답게 날렵한 움직임으로 흩어져 석궁을 쏘는 등 고위 대지의 정령을 견제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그 순간이었다.
멀리서 거대한 불덩이가 날아와 고위 대지의 정령의 머리를 박살 냈다.
고개를 돌리니 먼 곳에서 푸른 로브를 걸친 가이우스가 손을 흔드는 것이 보였다.
광전사 주술이 해제되고 전선이 급속도로 아군에게 유리해지면서 여유가 생긴 가이우스가 마법으로 원호한 것이다.
머리를 잃고 비틀거리는 고위 대지의 정령은 파마의 검과 마력검이 활성화된 테일러의 검에 의해 완전히 침묵했다.
정령도 마력으로 이루어진 몸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파마의 검에 치명적이었다.
“피해!”
고위 대지의 정령을 무찌르고 자신만만하게 카리스크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테일러.
그를 향해 고위 기사의 경고와 함께 카리스크가 만들어낸 거대한 돌덩이가 날아들었다.
테일러는 몸을 급하게 옆으로 꺾어 돌덩이를 피하려 했으나, 왼팔이 맞고 말았다.
끔찍한 소리와 함께 왼팔의 뼈가 박살 났다.
“크악!”
왼팔로부터 시작되어 전신으로 퍼지는 끔찍한 고통에 테일러의 입 밖으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괜찮나?”
“저는 괜찮습니다! 어서 적의 우두머리를 치십시오! 경!”
“알겠네!”
다급한 순간에 짧은 대화가 오가고 고위 기사는 카리스크를 상대하는 용병들을 돕기 위해 몸을 움직였다.
광전사 주술로 많은 마력을 소모하고 약화 결계로 인해 약해져 있지만 그랑키아 숲의 하이 오크 제사장답게 그를 상대하는 용병들은 상당한 고생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고위 기사가 합류하자 상환은 반전됐다.
고위 기사의 화려한 검술은 근접전에 약한 카리스크를 압도했고, 결국 버티던 카리스크는 귀신처럼 등 뒤로 접근한 테일러에 의해 심장이 관통되고 말았다.
“적장이 죽었다!”
카리스크가 쓰러지자 고위 기사는 그의 목을 베어 들어 올렸다.
그렇지 않아도 광전사 주술이 중단되고 밀리고 있던 오크군은 카리스크의 죽음을 신호탄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