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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플레이어-29화 (29/150)

리턴 플레이어 29화

11장 카리스크(2)

남아 있는 전력이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현재 뒤로 물러나 전력을 가다듬고 있는 카리스크의 군대에 비하면 적은 숫자였다.

“정찰 후 귀환한 기사의 보고로는 현재 피칼날 부족의 오크 전사들로 구성된 오크군은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서 전력을 가다듬고 있으며, 추가로 전사들이 합류하여 그 숫자는 600에 이른다고 합니다.”

카리스크가 이끄는 오크군의 피해도 작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약화 결계가 없었다면 그들은 이것보다도 적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랑키아 숲 오크 부족의 수준은 반도에서 테일러가 겪었던 오크 부족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카리스크가 이끄는 오크군도 피해가 있었다지만 추가적으로 병력이 합류한 데다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그 숫자에 회의에 참석한 장교들과 기사들의 얼굴에 어둡고 짙은 그늘이 드리웠다.

“본국에서의 지원군은 언제 도착하는 겁니까?”

테일러가 말했다.

지금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사우스 왕국에서 보낼 지원군뿐인 것 같았다.

그랑키아 숲의 몬스터들이 남하하지 못하게 저지하는 억제기는 사우스 왕국에서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때문에 억제기 수비대 주둔지에는 언제든지 신속한 지원 요청을 위해 사용될 귀한 통신용 마법 수정구가 있었고 슐츠 요새 북쪽의 그랑키아 숲 입구의 군사 주둔지에는 언제든지 출격할 수 있도록 기사단 포함 기병대 1천이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랑키아 숲에서 가장 가까운 슐츠 요새와 실버레인 중심도시에서 2차적으로 지원이 가능한 보병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슐츠 요새 북쪽의 군사 주둔지에서 이미 기사단 포함 기병대 1천이 출발했다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언제 도착할지는 모른다네.”

로렌시아 남작은 숨김없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출발한 지원군은 전원 말을 타고 있고 쉬지 않고 달려올 것이 분명했지만, 중간에 몬스터들을 만나 전투를 벌이는 등의 이유로 도착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았다.

길면 한 달 가까이 걸릴 것이다.

그에 비해 카리스크의 오크군은 30분 거리에서 공격을 준비 중이었다.

사실상 적이 공격하기 전에 지원군이 합류할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아 보였다.

“지원군이 제시간에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군요.”

“그런 셈이지.”

테일러의 말에 로렌시아 남작은 긍정했다.

“성벽의 보수는 어떻습니까? 남작님.”

머리에 붕대를 감은 수비대 소속의 고위 기사가 질문했다.

“제대로 된 기술자들이 도착하기 전에는 공병대만으로 완전히 보수하는 것은 무리라고 하더군.”

“성벽의 유리함도 사라졌군요.”

“그런 셈이지.”

로렌시아 남작의 대답에 머리에 붕대를 감은 고위 기사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졌습니다. 녀석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약화 결계의 효과를 제대로 받지 않고 있었단 말입니다. 우리는 패배했습니다. 억제기는 파괴되고 사우스 왕국은 불바다가 될 겁니다!”

기사 작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젊은 기사가 절망적인 말을 속사포처럼 입 밖으로 쏟아냈다.

그의 발언은 하나같이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들뿐이었다.

테일러는 가만히 듣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금 여기서 억제기가 파괴된다면 자신이 해왔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사우스 왕국은 조금 다르지만 멸망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된다.

“아직 저희는 패배하지 않았습니다. 경.”

“무슨 뾰족한 수라도 있는 것인가? 테일러?”

로렌시아 남작의 눈빛이 반짝였다.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엉뚱한 소리를 할 생각이면…….”

“자네는 닥치고 있고, 테일러. 말해보게나.”

자리에서 일어나 버럭 화를 내는 기사를 진압한 로렌시아 남작은 테일러에게 발언 기회를 주었다.

테일러는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계획을 설명하기 위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적이 약화 결계의 효과를 거의 받지 않고 있다고 느낀 이유는 적 주술사의 특수한 주술 때문입니다. 저는 전사한 윅토르 경과 함께 우두머리로 추정되는 하이 오크 주술사가 강력한 마력이 느껴지는 주술을 행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주술의 영향은 오크 전사들 전체에게 미치는 것 같았습니다. 다만 마력을 많이 소모하고 방해를 받으면 곤란한 주술인지 호위를 맡은 상급 전사를 처치하고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후퇴 명령을 내리며 뒤로 물러났습니다.”

“상급 전사를 처치했다고?”

“허…….”

테일러가 잠시 설명을 중단하자 회의에 참석한 장교들과 기사들의 눈빛이 변했다.

비록 약화 결계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랑키아 숲의 오크 상급 전사를 처치했다는 것은 일개 브론즈 등급의 용병이 하기에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반도의 오크 부족 상급 전사와 그랑키아 숲의 오크 부족 상급 전사는 노는 물이 달랐다.

반면에 테일러의 실력이 브론즈 등급의 용병을 초월한 지 오래라는 것을 알고 있는 로렌시아 남작의 표정은 큰 변화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음 전투에서 그 하이 오크 주술사를 처치하거나 주술을 방해한다면 승산이 있겠군.”

“그렇습니다.”

로렌시아 남작의 말에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였다.

오크 전사들을 강화시키는 카리스크의 광전사 주술을 방해하거나 그의 목을 베어버린다면 저은 약화 결계의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아군이 크게 유리해지는 것을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이 문제군. 뭔가 계획이 있나. 테일러.”

로렌시아 남작이 물었다.

테일러는 말없이 군사 지도에 놓여 있는 모형들을 움직여 반구형의 진형을 완성했다.

반구형을 이룬 병력의 뒤에는 또 한 무리의 모형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테일러는 설명을 시작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우선 보병들은 적 하이 오크 주술사가 성문을 넘어들어올 때까지 반구형의 방진을 유지합니다. 물론 마법사들은 마법 폭격을 계속해 적의 수를 줄입니다. 그리고 적의 우두머리 주술사가 들어오면 방진은 양옆으로 열리고 대기하고 있던 기병대가 말을 달립니다. 기병대의 선두는 수비대 기사단이 맡고 중앙과 후위는 용병들이 맡을 겁니다. 용병들은 기마 전투에 능숙하지 않은 이들이 대부분이니 목적지에 도착하면 기마 보병처럼 말에서 내려 기사단을 엄호하고 기사단은 그대로 적의 진영을 돌파해서 주술사를 칩니다. 이상입니다.”

“흠.”

길었던 설명이 끝나고 로렌시아 남작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테일러의 계획은 상당히 괜찮았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방진을 유지하는 병력이 잘 버텨주고 돌격을 맡은 병력이 돌파를 잘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윌리암 로렌시아 남작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승인하겠네. 모두 지금 당장 준비하게.”

* * *

“제기랄!”

하이 오크이자 피칼날 부족의 제사장인 카리스크의 주먹이 나무로 된 탁자를 강하게 내려치자 나무 탁자에 깊은 균열이 생기더니 옆으로 갈라졌다.

오크에 비하면 여린 인간과 비슷한 주먹이었지만 실려 있는 힘은 오크와 비슷했다.

“지, 진정하십시오. 제사장님.”

피칼날 부족의 상급 전사 라케르쉬는 잔뜩 화가 나 있는 제사장 카리스크를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제사장 카리스크는 나무 탁자를 하나 박살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진정하지 못했다.

“앞으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 되었는데! 하등한 인간 놈이!”

하이 오크 특유의 잘생긴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지고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앞으로 조금만 더 몰아붙였으면 조카의 원수도 갚고 억제기를 파괴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테일러가 끼어들어서 카리스크의 거대한 꿈을 망쳐버렸다.

약화 결계에 대응하기 위한 광전사 주술을 펼치고 있지만 않았어도 그 자리에서 테일러의 사지를 찢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광전사 주술을 중단되면 아군이 약화 결계의 영향을 크게 받아 적에게 큰 피해를 볼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방해를 받아 광전사 주술이 중단되기 무섭게 카리스크는 후퇴 명령을 내리고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광전사 주술은 효과적인 강화 주술이었지만 막대한 양의 마력을 소모하는 것이 한 가지 흠이었다.

특히 많은 수의 오크 전사들에게 영향을 끼치게 하려고 하니 더욱 많은 양의 마력이 소모되었다.

“후우! 진정하자. 진정해. 흥분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나무 탁자 외에도 몇 가지 물건을 더 부순 뒤에서야 제사장 카리스크는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차갑게 식혔다.

카리스크가 진정하는 모습에 그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던 라케르쉬도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숨결을 내뱉으며 흐르는 땀방울을 닦아냈다.

“라케르쉬! 상급 전사들과 주술사들을 소집해라.”

“알겠습니다.”

라케르쉬는 카리스크가 시킨 대로 천막을 나와 오크 전사들을 시켜 오크 상급 전사들과 오크 주술사들을 소집했다.

라도쉬를 포함한 피칼날 부족의 상급 전사들과 오크 주술사들이 하나둘씩 카리스크의 천막으로 모여들었고, 모여야 할 인원이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카리스크는 무겁게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오크 전사들의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보고하도록.”

“600정도 됩니다.”

카리스크의 물음에 상급 전사 라도쉬가 대답했다.

육백.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인간들에게 약화 결계가 있는 이상 확실하게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숫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카리스크의 잘생긴 얼굴에는 갈등이 감돌았다.

베일아우스트의 죽음으로, 그의 복수를 위해 처음 소집된 오크 전사가 1천.

처음의 전투로 그중 적지 않은 수의 오크 전사들을 잃고 다시 모인 오크 전사들의 수가 6백.

이제는 소집령을 내려도 모일 오크 전사가 부족에 없을 것이다.

“이번에도 패배하면 형님께 죽을지도 모른다.”

피칼날 부족의 제사장 카리스크는 자신의 형 유즈겔리스크를 떠올리며 마른 침을 삼켰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

이번에도 패배한다면 피칼날 부족의 부족장 유즈겔리스크는 자신의 목을 칠 것이다.

“전사들을 무장시켜라. 오늘 밤 인간들을 다시 공격한다.”

* * *

수비대장 윌리엄 윌포드 남작이 목숨을 잃게 되면서 수비대와 원정대의 지휘를 동시에 맡게 된 윌리암 로렌시아 남작.

그는 성벽을 보수하고 방어를 준비하는 한편, 레인저 훈련을 받은 기사 3명에게 가벼운 무장을 한 채 오크군을 감시하게 했다.

레인저 훈련을 받은 기사들은 완벽한 위장을 한 채 수풀에 몸을 숨겼다.

그들의 눈은 오크군 야영지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어둠이 찾아오고 오크군 야영지가 소란스러워졌다.

피를 머금은 칼날이 그려진 깃발이 흔들리고 오크 전사들이 완전 무장한 채 야영지를 나오고 있었다.

“경, 오크군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전서구를 보내겠네.”

기사들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곧 기사 한 명이 새장에서 전서구를 꺼내 다리에 오크군의 이동을 알리는 내용을 적은 종이를 고정한 뒤 하늘을 향해 날려 보냈다.

전서구는 훈련받은 대로 달빛이 비추는 그랑키아 숲의 거목들을 지나쳐 수비대 주둔지로 향했다.

“남작님! 피칼날 부족 오크군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서구에 적힌 편지 내용을 읽은 병사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로렌시아 남작의 천막에 달려와 보고했다.

테일러와 함께 마지막으로 작전을 점검하고 있던 로렌시아 남작은 말없이 옆에 놓인 검을 들어 허리에 찼다.

“병력을 준비시키겠습니다.”

테일러가 말했다.

로렌시아 남작이 고개를 끄덕이고 테일러는 그의 천막을 벗어나 장교들과 함께 반구형의 방진을 구축했다.

이미 경종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고 기사들과 병사들도 무장한 채 빠른 속도로 뛰어나오고 있었다.

“침착해라! 적도 큰 피해를 당했다. 정신만 바짝 차리면 이겨낼 수 있다.”

아군의 사기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지만, 테일러는 사기가 더 이상 저하되지 않도록 노력했다.

장교들도 여기저기서 큰 소리로 아군을 독려하고 있었다.

그들의 노력이 통한 것일까?

아군의 사기는 더 이상 저하되지 않았다.

“방진의 지휘를 부탁합니다.”

“걱정하지 말게.”

테일러는 노련한 상급 장교에게 방진의 지휘를 맡기고 기사들과 기병대가 위치한 후방으로 이동해 말에 올랐다.

방진의 역할이 중요한 만큼 지휘는 노련한 상급 장교에게 맡기는 것이 좋았다.

“적이다!”

테일러가 말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급하게 보수한 성문이 박살 나며 오크 전사들이 시뻘건 눈을 번뜩이며 몰려 들어왔다.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멀지 않은 곳에서 가이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무섭게 하늘에서 거대한 불덩이가 떨어져 오크 전사들을 덮쳤다.

순식간에 오크 전사 20여 마리가 산화했다.

그 뒤를 이어 다른 고위 마법사들의 마법이 연이어 오크 전사들을 덮쳤고, 오크 주술사들의 방어 주술이 넓게 펼쳐졌다.

치열한 마법과 주술의 전투가 펼쳐지며 어둠 속에서 형형색색의 불꽃이 튀었다.

억제기 보수에 힘쓰느라 마력의 상당량을 소모했던 1차 전투 때와 달리 지금은 고위 마법사들과 마법사들이 상당한 양의 마력을 회복한 상태였기 때문에 주술과의 힘 싸움에서 크게 밀리지 않았다.

“적이 화망을 돌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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