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28화
11장 카리스크(1)
실버 등급의 용병들은 이미 왕립 사관학교를 졸업한 하급 장교 필리엄 세크와 골드 등급 용병 일리아나 웨스트와 함께 성벽으로 나간 모양인지 실버 등급 용병들이 머물고 있던 천막은 비어 있었고 브론즈 등급의 용병들은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전선으로 가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나!”
테일러가 소리치자 용병들이 좌우로 물러섰다.
그러자 5구 정도의 시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바위에 깔린 시체들의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시체가 하나 있었다.
얼굴을 자세히 살피니 긴 여행을 하면서 늘 붙어 다니던 익숙한 얼굴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지, 지휘관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중년의 용병이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익숙한 얼굴의 시체는 브론즈 용병의 지휘를 맡은 하급 장교 라스였다.
테일러는 조심스럽게 걸어가 라스의 가슴에서 하급 장교 휘장을 떼어내 자신의 가슴에 달았다.
로렌시아 남작에게서 하급 장교 라스가 전투 중에 목숨을 잃는 경우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전투 중이라 다른 지휘관에게 지휘권이 넘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테일러가 지휘권을 이어받게 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내가 지휘한다.”
테일러가 큰 소리로 외쳤다.
반대 의사를 표하는 이는 없었다.
“전원 신속하게 성벽으로 이동한다!”
[통솔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아군의 이동속도가 소폭 상승합니다.]
좋은 타이밍에 통솔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되었다.
성벽으로 향하는 용병들의 이동속도가 조금 빨라진 것이 눈에 보였다.
성벽 근처에 도착하자 테일러는 가이우스에게 시선을 옮겼다.
“가이우스. 이곳에서 엄호를 부탁합니다.”
성벽은 이미 다수의 오크에게 점령당해 있었다.
최전방에 고위 마법사를 세울 순 없었다.
고위 마법사는 미사일 같은 존재다.
후방에서 지원 사격을 펼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다.
마침 주변에는 고위 마법사들과 마법사들이 기사단의 호위를 받으며 성벽을 향해 강력한 마법을 퍼붓고 있었지만, 가이우스의 말대로 억제기 보수에 많은 마력을 퍼부은 탓에 마력 소모가 큰 고위 마법은 쓰지 못하고 있었다.
“맡겨두게! 내가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네! 고위 마법사의 단잠을 방해한 죄는 무겁다네!”
고위 마법사 가이우스는 고위 마법사 진영에 합류하여 스태프에 박힌 마정석을 빛내며 강력한 마법을 캐스팅했고 테일러는 그런 가이우스를 뒤로 한 채 용병들과 함께 성벽으로 달려갔다.
성벽은 이미 오크들에게 점령 당한 지 오래였다.
오크들은 약화 결계로 인해 상당히 약해져 있는 상태였지만 그 수가 워낙 많아서 상대적으로 수가 상당히 적은 기사단이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특히 오크들 같은 경우엔 제사장 카리스크의 특수한 광전사 주술의 영향을 받아 신체 능력이 향상된 상태였다.
그래서 약화 결계의 영향을 받고 있음에도 기사단을 압도할 수 있었다.
“인간의 우두머리를 죽였다!”
“뒤로 물러나! 뒤로 물러나라!”
상급 전사 라도쉬가 억제기 수비대장인 고위 기사 윌리엄 윌포드 남작의 잘린 머리를 들고 포효하듯 소리쳤고, 그 모습에 창백해진 얼굴의 고위 기사가 다급하게 후퇴를 명령하고 있었다.
정령사 일리아나 웨스트가 소환한 거대한 불의 정령이 뜨거운 화염의 숨결을 내뱉고 마법사들의 마법이 아군의 후퇴를 엄호하고 있었다.
“아군의 후퇴를 엄호한다.”
“조장! 들어가면 다 죽습니다!”
테일러의 명령에 즉각 반발이 튀어나왔다.
테일러는 날카로운 눈동자로 반발한 용병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이대로는 다 죽는다. 저 많은 오크가 성벽을 넘은 순간 우리들의 목숨은 없는 거야. 이왕 사라진 목숨 싸우다 죽는 게 즐겁지 않은가? 이긴다면 더욱 좋고.”
“이기는 건 무립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그 기적을 자네가 그 검으로 일으키면 되는 것이야.”
[통솔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사기가 소폭 상승합니다.]
테일러는 말없이 검을 뽑아든 채 앞으로 달려나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오크의 목을 베어 넘겼다.
그랑키아 숲의 오크는 반도의 오크와 다르게 사납고 강력했지만, 약화 마법의 영향 때문에 광전사 주술의 효과를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결계 밖에서 마주쳤던 오크와 비교하면 약했다.
“봐라! 약화 결계의 영향으로 오크는 이렇게 약하다! 충분히 이길 수 있다! 기적을 보여봐라!”
“조, 조장 따르라!”
용병들이 테일러의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곧 오크 전사들과 전투가 벌어지고 끔찍한 비명과 함께 붉은 핏줄기가 여기저기서 튀어 올랐다.
“사각 방진! 방진을 유지해! 함부로 밖으로 튀어 나가지 말고 진형을 유지해!”
[통솔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아군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상승합니다.]
용병들이 방진을 완성한 모습을 지켜본 테일러는 적 우두머리의 멱을 따기 위해 다가오는 오크들을 처리하며 전장을 살폈다.
전황이 불리한 상황에서 전황을 뒤집는 확실한 방법은 우두머리의 멱을 따는 것이었다.
“피칼날 부족인가.”
로렌시아 남작에게 전달했던 오크 부족의 깃발과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테일러는 상급 전사 하나와 오크 전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광전사 주술을 유지하고 있는 카리스크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는 본능적으로 카리스크가 우두머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윅토르 경!”
테일러는 근처에서 싸우고 있던 윅토르 경을 호출했다.
윅토르 경은 기사 2명과 함께 오크 물결을 헤치고 테일러에게 합류했다.
“무슨 일인가?”
“적 지휘관입니다!”
테일러는 자신을 향해 쇄도하는 오크 전사의 도끼를 피하며 검을 휘둘러 오크 전사의 목을 깊게 베어낸 뒤 손가락으로 제법 먼 곳에 있는 카리스크를 가리켰다.
윅토르 경은 테일러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테일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윅토르 필 경은 검을 살짝 흔들어 흥건히 묻어 있는 피를 털어내고는 입을 열었다.
“따라올 수 있겠나?”
테일러는 대답 대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바쁘게 흘러가는 전장을 두 눈동자를 바쁘게 움직여 살피며 윅토르 경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면 따라오게!”
윅토르 경의 검에 푸른 마력이 깃들었다.
고위 기사의 기술이라고 불리는 마력검이었다.
윅토르 경이 마력검을 휘두르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그를 막아선 오크 전사들은 두부처럼 허무하게 잘려나갔다.
테일러와 기사 2명은 윅토르 경이 미처 정리하지 못한 오크 전사들을 정리하며 뒤따랐다.
마침내 카리스크에게 도달했을 때엔 한 명의 기사가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더 이상 못 간다. 인간.”
카리스크의 호위를 맡은 켈바쉬가 테일러들의 앞을 막아섰다.
거대한 대검이 휘둘러지고 윅토르 경이 대검을 막아냈다.
상급 전사 켈바쉬의 대검에는 희미한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반도의 오크 상급 전사들과 다르게 그랑키아 숲의 오크 상급 전사들은 마력검의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윅토르 경이 켈바쉬의 대검을 막아낸 사이에 기사 한 명이 켈바쉬의 옆구리를 노리고 파고들었다.
“어림없다!”
켈바쉬는 비어 있는 손으로 기사의 머리를 잡고 그대로 쥐어짰다.
“으아아아아!”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투구가 찌그러지고 오렌지를 짜는 것처럼 붉은 피가 과즙처럼 새어 나왔다.
녀석의 두 손이 사용 중인 상황.
테일러는 검을 휘두르며 몸을 날렸고 켈바쉬의 팔에 상처를 남기는 것에 성공했지만 깊은 상처는 아닌지 피는 많이 흐르지 않았다.
테일러와 윅토르 경의 검이 켈바쉬의 대검과 연이어 부딪치기 시작했다.
고위 기사와 고위 기사 수준의 검사를 상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급 전사 켈바쉬는 흔들림이 없었다.
“크악!”
비명과 함께 윅토르 경이 쓰러졌다.
하지만 윅토르 경은 고위 기사.
그냥은 당하지 않았다.
그는 쓰러지면서 켈바쉬의 다리를 깊게 베었고 그 효과로 켈바쉬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켈바쉬의 안정된 자세가 무너지고 테일러는 그의 목을 잘라낼 수 있었다.
자신의 호위가 무너진 것을 깨달은 카리스크는 후퇴 명령을 내림과 동시에 몸을 뒤로 뺐다.
그는 지금 광전사 주술을 사용하느라 많은 마력을 소모한 상태였기 때문에 전투를 수행할 여유가 없었다.
“오크들이 후퇴합니다!”
오크 전사들은 후퇴했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었다.
피해는 심각했다.
“응급 환자입니다!”
“성벽 보수를 서둘러!”
긴박했던 전투가 끝나고 난 뒤 주둔지는 전투로 생긴 상처를 수습하느라 소란스러웠다.
의료실이 환자들로 가득 차 버려서 연병장에 임시로 천막이 세워지고 원정대의 의사와 의무병들이 심각한 상처를 입은 환자들을 돌봤다.
오크 주술사들의 강력한 주술 공격에 손상을 입은 성벽도 수비대와 원정대의 공병들이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보수 작업에 힘쓰고 있었지만 쉽게 보수가 가능했던 목책과 달리 성벽은 보수하는 것이 조금 힘든 편이었다.
길게 이어지지 않은 짧은 전투였지만 적의 수가 워낙 많은 탓에 아군의 피해는 적지 않았다.
특히 원정대 같은 경우엔 그렇지 않아도 그랑키아 숲을 통해 오면서 수가 줄어 있던 하급 장교들이 몇 명 목숨을 잃어 지휘 계통에 공백이 생기고 말았다.
로렌시아 남작은 이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일리아나와 테일러에게 임시로 하급 장교 직책을 부여하고 각자 실버 등급과 브론즈 등급 용병들의 지휘를 맡겼다.
“장교 회의에 참석하는 건가?”
가죽 갑옷에 잔뜩 묻어 있는 피를 대충 닦아내고 그 위에 하급 장교 휘장을 다는 테일러의 모습을 보며 가이우스가 말했다.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네. 임시지만 하급 장교가 되었으니, 장교 회의에는 참석해야 한다더군요.”
“멋지군. 열심히 하게.”
“네. 알겠습니다. 언제 적의 공격이 시작될지 모르니 하늘을 경계하십시오.”
“맡겨두게나.”
손을 흔들어 보이는 가이우스를 뒤로 한 채 장교 회의가 열리는 지휘소로 향했다.
그곳으로 향하며 테일러는 이번 전투로 상승한 레벨로 생긴 스킬 포인트를 투자하여 고위 기사의 상징이라는 마력검 스킬을 생성했다.
“상태창.”
주위를 살펴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테일러는 작은 목소리로 명령어를 내뱉었다.
그러자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
[테일러.
고위 기사
Lv:53
스킬[12/12]: Lv1도주[E] Lv10고위 기사 검술[A] Lv5벌목[E] Lv9하급 마나 연공법[D] Lv3상급 방어 검술[C] Lv1 마력검[B]
Lv1 레인저의 직감[C] Lv5 불의 검[B] Lv6하급 아머 마스터리[E] Lv4 통솔[C] Lv2 암석거인의 가호[B] Lv3 하급 파마의 검[B]
잔여 포인트:1]
“스킬 정보 마력검.”
[마력검.
등급:B
최대 스킬 레벨:15
검에 날카로운 마력검을 만들어 씌운다.
불의 검 스킬과 중복 사용이 가능하다.]
“돌아가면 기부를 좀 해야겠군.”
스킬창이 가득 찬 것이 돌아가면 기부가 시급해 보였다.
상태창 확인을 끝낸 테일러는 발걸음을 재촉했고 오크 주술사의 주술에 직격 당해 무너진 건물을 대신해 임시로 천막을 세워 만든 지휘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지휘소 천막 입구를 지키고 있는 원정대의 젊은 병사는 테일러의 가슴에 달린 하급 장교 휘장을 확인하고는 창을 옆으로 치워 테일러가 천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로렌시아 남작과 극소수의 장교와 기사 외에는 자리가 비어 있었다.
일리아나는 로렌시아 남작과 제법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이쪽으로 와서 앉지? 테일러.”
테일러가 구석진 곳에 있는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려는 순간 일리아나 웨스트가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테일러는 일리아나 웨스트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흘러 원정대의 장교들과 수비대의 기사들이 줄지어 들어와 준비된 자리에 앉자 로렌시아 남작 옆에 앉아 있던 장교가 자리에서 일어나 보고서를 꺼내 들었다.
그는 상급 장교 휘장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
“현재 전투 가능한 병력을 보고하겠습니다. 수비대와 원정대를 합쳐 고위 기사 3명, 기사 72명, 병사 80명. 실버 등급 용병 40명. 브론즈 등급 용병 30명. 고위 기사 4명 마법사 12명, 이상입니다.”
225명의 병력과 마법사 16명.
테일러가 생각했던 것처럼 피해가 극심하지는 않았다.
고위 마법사 샤니크가 실종된 것을 제외하면 마법사 피해도 없었다.
물론 사우스 왕국의 기사 중에서도 최정예로 손꼽히는 기사들의 피가 많이 흘렀지만, 적의 규모에 비하면 많은 수가 죽은 것은 아니었다.
물론 주둔지의 몬스터 약화 결계가 아니었다면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당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