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24화
9장 정찰(2)
고위 마법사라는 신분을 밝히는 가이우스의 모습에 남자는 뭐가 웃긴 것인지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도 눈앞의 어린애가 고위 마법사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웃음거리가 된 가이우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는 화가 난 얼굴로 말없이 로브에 달린 브로치를 손으로 가리켰다.
고위 마법사는 가이우스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없이 브로치를 살핀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윌리암 로렌시아 남작님. 이거 진품입니다.”
그의 말에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던 윌리암 로렌시아 남작이 뒤늦게 웃음을 멈추고 입을 다물었다.
고위 마법사의 브로치는 조금 특별해서 주인으로 인정된 고위 마법사가 미량의 마력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 파괴된다.
따라서 고위 마법사를 죽이더라도 그의 브로치를 손에 넣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겨, 결례가 많았군. 용서해 주게.”
“용서해 주겠습니다.”
가이우스의 말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가이우스의 말에 잔뜩 돋아난 가시가 느껴지는지 로렌시아 남작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나는 윌리암 로렌시아 남작이라고 하네. 이쪽은 샤니크 윌크로스필. 고위 마법사지.”
“반갑습니다. 저는 가이우스, 이쪽은 테일러라고 합니다.”
테일러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상대가 귀족인 만큼 예의는 중요했다.
귀족들은 예의를 중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가이우스, 자네는 통과네. 테일러, 자네는 용병패를 보여주겠나?”
예상대로 가이우스는 한 번에 통과되었다.
이것은 원정대에 합류하려고 하는 고위 마법사가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테일러는 품속에서 용병패를 꺼내 남작에게 건넸다.
용병패를 받아 든 로렌시아 남작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브론즈? 미안하지만 브론즈 용병은 충분하네. 실버가 아니면 받아줄 수 없어. 거기다 자네는 용병이 된 지도 얼마 되지 않았군.”
예상대로였다.
보상이 제법 짭짤한 만큼 브론즈 용병들이 많이 몰려든 것 같았다.
더군다나 목적지가 그랑키아 숲에 있는 억제기다 보니 높은 수준의 용병들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저는 파티입니다. 함께 행동합니다.”
가이우스가 나섰다.
잠시 고민하던 로렌시아 남작은 해결책을 찾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테스트를 하겠네. 테스트에 통과한다면 자네를 써주지. 즉시 마당으로 나오게.”
대형 여관답게 마당도 상당히 넓었다.
넓은 마당에 도착한 테일러.
얼마 지나지 않아서 로렌시아 남작이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어깨까지 흑발을 기른 푸른 눈의 중년 남성과 함께 도착했다.
테일러는 본능적으로 중년 남성이 기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보통이 아니었다.
“이쪽은 윅토르 필 경이네. 자네와 대련을 할 상대지.”
윅토르 경은 테일러를 향해 하찮다는 시선과 함께 목검을 던졌다.
그리고 테일러가 목검을 받아들기 무섭게 귀찮은 얼굴로 테일러를 향해 쇄도했다.
속도는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테일러는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마력을 운용하여 기척 감지 스킬을 극대화시켰다.
[기척 감지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적의 공격 경로가 표시됩니다.]
차가운 알림음과 동시에 붉은 선이 테일러의 목을 노렸다.
테일러는 즉시 몸을 숙여 피했지만 윅토르 경의 무릎이 테일러를 환영해 주었다.
“윽!”
무릎에 코를 얻어맞은 테일러는 재빨리 몸을 뒤로 뺐다.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코에서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여유를 부릴 틈은 없었다.
윅토르 경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검을 휘둘러 왔기 때문이었다.
테일러는 검을 휘둘러 윅토르 경의 검을 받아냈다.
자신의 검을 받아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인지 윅토르 경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십 번의 공격이 오갔다.
윅토르 경의 검술은 고위 기사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정교하고 빠르고 섬세했으며 치명적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급소를 노리는 공격이었고 막아내거나 흘려보낸다고 해도 다시금 교묘하게 급소를 노려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윅토르 경의 공격을 막아내는 테일러의 움직임이 엉키기 시작했다.
윅토르 경의 검술은 테일러가 효율적으로 방어 검술을 펼치는 것을 방해하는 무서운 검술이었다.
결국 테일러의 검이 멀리 날아가고 윅토르 경의 검이 테일러의 목에 살짝 닿았다.
“제가 졌습니다.”
테일러는 패배를 인정했다.
깨끗하게 졌다.
이렇게 진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제 저는 원정대에 들어가지 못하겠군요.”
테일러는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로렌시아 남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통과네.”
“어, 어째서……. 저는 졌습니다.”
“나는 이기라고 한 적이 없네. 멋진 승부를 보여줬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네.”
그의 말대로였다.
그는 이기라고 하지 않았다.
다만 테스트를 해본다고 했을 뿐.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이는 테일러를 향해 로렌시아 남작은 한마디 덧붙이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윅토르 경은 고위 기사라네.”
* * *
합격한 테일러와 가이우스를 위해 로렌시아 남작은 여관에 방을 하나 마련해 주었다.
2인실이었다.
로렌시아 남작은 가장 중요한 고위 마법사라는 인력이 보충되었으니 쓸 만한 용병을 모으는 대로 출발할 것이라고 하며 그에 따른 준비를 충분히 해두라는 말을 남기고는 사라졌다.
가장 중요하고 구하기 힘든 고위 마법사를 보충했으니 쓸 만한 용병을 모으는 것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테일러와 가이우스는 필요한 물품을 구비하기 위해 중심도시의 상점가를 돌아다녔다.
테일러와 가이우스가 마음에 든 것인지 로렌시아 남작은 준비를 철저히 하라며 계약금을 넉넉히 주었고 덕분에 테일러와 가이우스는 준비를 철저히 할 수 있었다.
가이우스는 그 비싸다는 포션을 하나 구매했다.
마탑에서 가져왔던 것처럼 효능이 뛰어나진 않겠지만 여분의 목숨이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었다.
테일러는 무기 상점에서 단검 몇 개를 구매하고는 가이우스와 마찬가지로 포션을 한 병 구매했다.
“가이우스, 슬슬 돌아갑시다.”
“아, 먼저 돌아가게나. 나는 간신…… 아니, 마도구를 조금 둘러보고 가겠네!”
마도구를 둘러보고 가겠다고 말하는 가이우스였지만 시선은 과자 상점을 향하고 있었다.
역시나, 고위 마법사이고 늙은이 같은 말투를 하긴 해도 아직 어린애였다.
테일러는 먼저 방으로 돌아왔고, 차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늦은 밤이 되어서 가이우스가 돌아왔다.
그는 만족한 것인지 입가에 웃음꽃이 피어나 있었다.
“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가?”
빈 찻잔을 내려놓으며 테일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나저나 시간도 늦었으니 슬슬 쉬시지요.”
“아, 그래야겠군.”
가이우스는 로브를 벗은 뒤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창밖의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말 없이 바라보던 테일러도 가벼운 옷차림이 되어 가이우스의 반대편에 위치한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리고 깊은 잠의 늪에 빨려 들어갔다.
3일의 시간이 흘렀다.
마당에서 방어 검술과 고위 기사 검술을 수련하고 방으로 돌아온 테일러와 책을 읽고 있던 가이우스는 방문을 리듬 있게 두드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들어오게나.”
문이 열리고 사우스 왕국군의 푸른 군복을 입은 젊은이가 걸어들어왔다.
가슴에는 북부 군단의 휘장과 하사관 휘장이 달려 있었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테일러와 가이우스를 번갈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내일 오전에 그랑키아 숲으로 출발합니다.”
그 말을 남기고 젊은 하사관은 경례를 한 뒤 방을 나섰다.
“드디어 내일이군요.”
“아, 조금 긴장되는군.”
조금 들떠 있는 테일러와 다르게 얼마 전에 그랑키아 숲에서 목숨을 잃을 뻔했던 가이우스는 긴장한 표정이었다.
시간은 그 누구도 기다리지 않고 순식간에 흘러가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사우스 왕국 북부 군단 병력 100여 명과 용병 100여 명, 그리고 고위 마법사 5명으로 구성된 억제기 보수 원정대는 에이옌 중심도시의 광장에 집결했다.
전원에게 말이 지급되었고, 대열의 선두에는 로렌시아 남작과 윅토르 필 경이 찬란하게 빛나는 갑옷을 입은 채 말에 올라타 있었고 바로 뒤에는 고위 마법사 5명이 자리 잡았다.
테일러는 장교를 뜻하는 휘장을 가슴에 달고 브론즈 용병 60여 명의 앞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장교를 나타내는 휘장이 테일러의 가슴에 달려 있는 이유는 오늘 아침에 찾아온 로렌시아 남작에게 있었다.
그는 브론즈 용병 중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인 테일러에게 브론즈 용병들의 군기 등을 맡기기로 한 것이었다.
아침에 테일러를 찾은 그는 장교 휘장을 건네주며 브론즈 용병들의 통솔을 부탁했다.
물론 사관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테일러가 맡은 임무는 군기가 빠지거나 돌발행동을 하는 브론즈 용병의 제압이 주 임무였고, 전투 시 브론즈 등급 용병들의 지휘는 로렌시아 남작이 붙여준 중앙 사관학교 출신 하급 장교 라스가 맡을 것이다.
테일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로렌시아 남작의 말에 의하면 실버 용병들의 지휘는 골드 용병이 맡았다고 한다.
좀처럼 보기 힘든 골드 용병을 보기 위해 테일러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고, 곧 실버 용병들의 앞에 자리 잡은 긴 적발에 녹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력이 느껴지는 것으로 보아 마법을 다루는 게 분명했다.
“테일러 씨, 그 모습은 별로 보기 좋지 않습니다.”
“아, 주의하겠습니다. 라스.”
라스가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로렌시아 남작이 검을 뽑아 들고 북쪽을 향해 겨누고 원정대의 출발을 알렸다.
“전원!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