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21화
8장 가이우스의 합류(1)
실버레인 후작령의 실버레인 중심도시는 그랑키아 숲과 상당히 가까웠다.
튼튼한 말을 타고 쉬는 시간을 최대한 줄인 채 3일 동안 달리니 그랑키아 숲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랑키아 숲은 포악한 몬스터들이 서식하고 있는 위험한 지역이었지만 마탑에서 세운 억제기 덕분에 사실상 몬스터들은 숲에 갇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그 악명 높은 그랑키아 숲 입구에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장한 병사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여기가 그랑키아 숲이군요.”
눈앞에 줄지어 서 있는 거대한 나무들의 모습에 테일러는 감탄했다.
지금은 물론이고, 전생에서도 그랑키아 숲에 온 적은 없었다.
그랑키아 숲은 몬스터 외에 거목으로도 유명했다.
그 명성을 증명하듯 입구부터 노스빌 숲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모습의 나무들이 늘어서 있었다.
“몬스터들이 바글바글할 겁니다. 킥킥.”
선두를 맡은 용병 한 명이 그랑키아 숲으로 들어서며 웃음소리를 흘렸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여 테일러는 가이우스의 곁에 바짝 붙어 그랑키아 숲으로 들어섰다.
그랑키아 숲 진입 1일째 되는 날.
몬스터로 가득하다는 그랑키아 숲이었지만 처음에는 몬스터와 마주치지 않았다.
생각 외로 평화로운 숲의 분위기에 테일러와 용병들이 긴장감을 조금 놓을 때가 되자 그 틈을 노리기라도 한 것처럼 트롤 4마리가 파티를 습격해 왔다.
트롤은 오크와 비슷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었지만 특유의 질긴 생명력과 재생력 때문에 상대하기 힘든 몬스터 중 하나였지만 트롤들에게는 유감스럽게도 테일러의 파티에는 고위 마법사 가이우스가 있었다.
고위 마법사 가이우스의 강력한 마법 앞에서 트롤들은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씩 쓰러졌다.
붉은 트롤이라면 가이우스의 마법을 견딜 수 있었겠지만 평범한 트롤에게는 무리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그랑키아 숲이 왜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잦은 몬스터의 습격이 있었다.
오크, 고블린, 웨어울프까지.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그 구성에 테일러의 레벨은 37이 될 수 있었다.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접근하기도 전에 가이우스의 마법에 장렬하게 산화했지만 오크처럼 수가 많은 경우엔 1~3마리 정도가 접근하기도 했다.
물론 그들은 용병들에 의해 순식간에 생명이 끊어졌다.
반도의 오크 부족에 비해 그랑키아 숲의 오크 부족들은 포악하고 전투적이었지만 기사와 비슷한 실력을 지닌 실버 등급의 용병들의 상대가 되지는 못했다.
테일러는 나설 틈도 없었다.
그는 그저 가이우스의 곁에서 조금씩 떨어지는 경험치를 먹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랑키아 숲 진입 4일째 되는 날.
거듭된 전투에 테일러는 39레벨이 되었고, 스킬 포인트를 투자하여 몇 가지 스킬의 레벨이 대폭 상승하였다.
파티의 강력한 화력을 담당하고 있는 고위 마법사 가이우스는 붉은 트롤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탐색을 계속했다.
가이우스의 활약 덕분에 목숨을 잃은 파티원은 나오지 않았지만 거듭된 전투로 인해 두 명의 파티원이 작은 부상을 입게 되었다.
가이우스는 의료 계열 마법에는 깊은 조예가 없었지만 의료품을 넉넉히 챙겨온 데다가 은빛 번개 용병단의 용병 중에서 과거 남부 레인저 여단에서 군 생활을 했던 자가 있어 부상자들은 훌륭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단신으로 산과 숲 등에서 한 달 이상을 싸울 수 있다는 남부 레인저 여단의 레인저들은 전투는 물론이고 응급처치에도 상당한 깊이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외에도 위장, 추적, 함정 제거 등 못 하는 것이 없었다.
그랑키아 숲 진입 7일째 되는 날.
가이우스와 마찬가지로 테일러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가이우스와는 다른 이유에서였다.
역사에 의하면 슬슬 암살자들이 공격해 올 때가 되었는데, 좀처럼 공격해 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도리어 초조해진 것이었다.
차라리 빨리 공격이 오면 막아내면 그만인데, 공격이 오지 않으니 긴장되고 초조해졌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침부터 습격해 온 20여 마리의 오크와 전투를 벌이고 붉은 트롤을 찾기 위해 말에 오르려는 순간이었다.
먼저 말에 타고 있던 찰스가 무엇인가를 발견한 것인지 두 눈을 크게 뜬 채 손가락 끝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부, 붉은 트롤이다!”
그 목소리에 깜짝 놀란 테일러와 가이우스의 눈동자가 찰스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향했다.
있었다!
찰스의 말대로 붉은 트롤이 있었다.
트롤 6마리의 호위를 받으며 붉은 트롤이 어딘가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놓치지 않을 것이네!”
가이우스는 번개와 같은 움직임으로 스태프를 들어 올렸다.
스태프에 박혀 있는 마정석이 반짝이자 땅에서 나무뿌리가 솟아 나와 트롤들의 앞을 막는 벽이 되었다.
“석궁!”
찰스가 지시를 내렸다.
은빛 번개 용병단의 용병들은 모두 비싼 석궁을 소지하고 있었다.
가이우스가 다음 마법을 준비하는 동안 그들은 석궁을 꺼내 트롤을 향해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석궁에서 발사된 화살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트롤의 가죽을 뚫고 깊숙한 곳에 박혀 들었다.
트롤은 재생력이 강한 것이지 가죽이 두꺼운 것은 아니었기에 화살이 쉽게 파고들 수 있었다.
“키에에엑!”
트롤들이 비명을 내질렀지만 쓰러진 트롤은 없었다.
트롤들이 반격에 나섰다.
치명적인 독이 묻어 있는 투창을 던지기 시작했지만 거리가 멀어서 쉽게 맞히지 못했다.
그사이 가이우스는 마법을 완성했고 뜨거운 불의 비가 트롤들을 덮쳤다.
고위 마법이었다.
강력한 고위 마법 앞에 트롤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노출된 얼음과 같이 녹아내렸다.
붉은 트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통상 마법이었다면 어떻게든 견디겠지만 고위 마법이다.
위력적이고 범위가 넓은 고위 마법을 견디기엔 붉은 트롤은 너무나도 약했다.
재생할 틈도 없이 숨이 끊어졌고, 가이우스는 어린아이처럼 밝은 얼굴로 붉은 트롤을 향해 달려가 피를 채취했다.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천천히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가이우스를 향하던 테일러의 발걸음이 갑자기 빨라지고 입가에 미소가 사라졌다.
가이우스를 향해 쏟아지는 검은 창의 비를 본 것이었다.
“가이우스!”
전속력을 다해 달린 덕분에 테일러는 가이우스를 밀쳐낼 수 있었다.
하늘에서 쏟아진 검은 창들은 테일러의 옆구리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창인 것인지 검은 창이 스쳐 지나간 부분의 철제 흉갑이 종이마냥 찢어졌다…….
“적습이다!”
찰스가 우렁찬 목소리로 적습을 알렸고, 용병들은 고용주인 가이우스에게 달려와 그를 보호했다.
테일러는 날카로운 눈동자로 주변을 살피며 기척 감지 스킬을 활성화시켜 감각을 최대한 예민하게 깨웠다.
“공격이다!”
용병 한 명이 외침과 함께 나무 방패를 들어 올렸지만 그를 덮친 검은 화살은 방패를 뚫고 용병의 심장을 꿰뚫었다.
“커억……!”
붉은 피가 튀고 심장이 뚫린 용병은 희미해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짧은 신음성과 함께 쓰러졌다.
“검은 마력……?”
용병의 몸을 꿰뚫고 지나간 검은 화살은 잠시 불타오르는 것처럼 흔들리다가 사라졌고 그것을 본 테일러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보통 방패를 만드는 데 쓰는 나무는 상당히 튼튼한 성질을 띠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마병기나 마력검, 또는 마법이 아니라면 방패와 갑옷을 뚫고 심장을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주변을 경계해!”
찰스가 날카롭게 외치며 두 눈을 뜨고 주변을 살폈다.
다시금 하늘에서 검은 화살의 소나기가 쏟아졌지만 이번에는 가이우스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가이우스는 스태프를 휘두르는 것으로 강력한 방어 마법을 전개했다.
가이우스의 방어 마법은 정체불명의 개인 또는 집단의 시전한 것으로 보이는 마법을 막아냈다.
검은 화살이 막히자 백병전을 벌일 생각인 것인지 사방에서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암살자…….”
“스승님께서 말씀한 자들이군.”
테일러와 가이우스는 최근 왕국의 주요 인물들을 암살한 자들과 지금 자신들을 습격한 자들이 동일한 세력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테일러는 눈동자를 빠르게 움직여 적의 수를 헤아렸다.
적의 수는 10여 명이었는데, 모두 하나같이 검은 기운을 흘리고 있었다.
아직 해가 하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는데 검은 옷을 입은 암살자들이 나타나자 주변은 어둠이 지배하기 시작했다.
하늘은 푸르고 맑았지만 숲은 어둠에 침식되었다.
검은 기운을 흘리고 있는 암살자들 가운데, 지휘관으로 보이는, 검은 투구를 쓰고 있는 자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무의미한 저항은 그만두는 게 좋다. 지금 항복하면 고통 없이 죽여주겠다.”
투구의 틈으로 보이는 냉혹한 두 눈동자는 살의가 가득했고 낮은 저음의 목소리에선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
용병들은 창백한 얼굴로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들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적들을 죽이지 못하면 어떤 방법으로든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용병들의 반응을 살핀 테일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항복? 그런 건 개나 줘라!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
싸움밖에 없었다.
가이우스가 공간이동 마법을 구사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공간이동 마법은 대마법사 이상만이 구사할 수 있는 상당히 대단한 마법이었다.
암살자 지휘관은 불길한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춤추는 창을 들어 올렸다.
“어리석은 녀석이로다. 그림자가 네놈들을 집어삼키리라……!”
암살자 지휘관이 말을 끝내며 창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검은 마력 덩어리가 테일러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마력을 베는 파마의 검으로 벨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목숨을 가지고 실험하는 것은 사양이었기 때문에 테일러는 전력을 다해 옆으로 피해냈다.
“공격!”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던 암살자들이 일제히 몸을 움직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암살자들.
숲에 내려앉은 어둠과 함께 용병들을 덮쳤다.
수는 비슷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승산이 있을 것이라 테일러는 생각했고, 찰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상대는 지독한 훈련을 받은 뛰어난 최정예들이었다.
기사와 비슷한 실력을 가졌다고 평가되는 실버 등급 용병 2명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검게 물든 검 앞에서는 튼튼한 철제 갑옷도 종이 쪼가리와 다를 바 없었다.
마치 수인처럼 민첩한 움직임을 보이는 그들은 가이우스의 마법도 쉽게 맞지 않고 이리저리 피해냈다.
통상 마법은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놈들도 사람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찰스와 테일러의 손에 각각 한 명씩 총 두 명의 암살자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놈들도 사람입니다! 검으로 찌르면 죽습니다!”
[통솔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아군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증가합니다.]
바쁘게 이어지는 전투의 연속에도 쓰러진 암살자들의 시체를 발견한 용병들은 기운을 얻어 검을 휘둘렀다.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아군의 수가 가이우스와 테일러를 포함하여 6명 정도 남았을 때 남아 있는 적의 수는 8명이었다.
“가이우스! 고위 마법을 부탁합니다! 통상 마법은 소용없습니다!”
“나도 안다네!”
가이우스를 향해 날아온 날카로운 단검을 검으로 쳐내고 가까이 다가온 암살자의 검을 쳐내며 테일러는 소리쳤고 가이우스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며 고위 마법을 캐스팅했다.
잠시 뒤 그의 마법이 완성되고 강력한 연쇄 전격이 암살자들을 덮쳤으나, 강력한 고위 마법에도 불구하고 암살자 지휘관을 비롯해 4명의 암살자가 살아남았다.
특유의 검은 기운으로 전격이 닿기 직전에 몸을 보호한 것 같았다.
“과연 고위 마법사는 대단하군. 하지만 그것도 끝이다. 우리가 이겼다.”
“찰스! 남은 놈들은 3명입니다. 어서 공격…….”
찰스를 찾던 테일러는 말을 잇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곁에서 싸우고 있었던 찰스와 용병들이 모두 차가운 땅에 쓰러져 붉은 피를 흘리며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남은 인원은 자신과 가이우스가 전부였다.
“제기랄.”
욕설이 자연스럽게 튀어 나왔다.
무기력이 전신에 감돌았다.
지금이라도 검을 놓고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다시, 힘들게 돌아온 이곳.
왕국이 다시 망국의 역사를 향하는 일은 없다.
테일러는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어둠에 빛으로 맞서듯 불의 검을 활성화시켰다.
그리고 마력을 전신으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새로운 효과가 나타났다.
[기척 감지 스킬의 효과가 극대화됩니다. 적의 공격 경로가 표시됩니다.]
암살자 지휘관이 손가락을 살짝 흔들고 암살자 두 명이 테일러를 향해 움직임을 보이려는 순간 붉은 선이 생겨났다.
붉은 선은 테일러의 심장과 목을 노리고 있었다.
테일러는 그것이 기척 감지 스킬의 효과 극대화로 인한 적의 공격 경로 예측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붉은 선을 피해 몸을 움직였다.
암살자 두 명의 공격이 아슬아슬하게 빗나갔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테일러는 검을 휘둘러 한 명의 목을 베어냈다.
가이우스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그가 만들어낸 바람의 칼날이 암살자의 전신을 스치고 지나쳤다.
검은 기운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계속되는 바람의 칼날에 검은 기운의 갑옷은 찢어지고 붉은 피가 뿜어져 나왔다.
“컥!”
고통으로 휘청이는 암살자의 뒤를 잡은 테일러는 검으로 그의 목을 찔렀다.
목을 찔러 옆으로 베어내니 목이 잘려나갔다.
테일러가 암살자를 상대하는 사이, 가이우스의 스태프에 박혀 있는 마정석이 다시 한번 빛을 발했다.
강력한 마법이 암살자를 덮쳤다.
암살자 지휘관은 여유롭게 옆으로 피했지만 마침 다리에 부상을 입은 암살자는 가이우스의 마법을 피하지 못했고 고통스러운 비명과 함께 온몸이 뒤틀려 죽었다.
“멍청한 것들……!”
결국 암살자 지휘관이 나섰다.
검은 투구 속의 두 눈동자가 위험하게 빛을 발하고 검은 기운이 깃든 날카로운 창을 테일러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찔렀다.
[바람의 기운이 함께합니다. 민첩이 증가합니다.]
[불의 기운이 함께합니다. 힘이 증가합니다.]
[대지의 기운이 함께합니다. 방어력이 증가합니다.]
[물의 기운이 함께합니다. 자연회복력이 증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