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9화
7장 가이우스의 의뢰(1)
[망국의 기억.]
“가이우스. 최근 왕국의 영웅들이 하나둘씩 의문의 사고를 당하거나, 암살에 의해 목숨을 잃고 있네. 부디, 그랑키아 숲으로 간다는 그 말을 철회해주게.”
가이우스의 스승이자 사우스펠 마탑의 고위 마법사 론도셀 아키자 남작의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805년생, 15살에 고위 마법사의 경지의 문을 두드린 16살의 역대 최연소 고위 마법사 가이우스는 스승의 말을 무시한 채 사우스펠 마탑을 조용히 나와 그랑키아 숲이 있는 북쪽으로 말을 달렸다.
최근 사우스 왕국에서 유망한 기대주나 영웅들이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고, 가이우스 역시 역대 최연소 고위 마법사로 최연소 대마법사가 될 법한 인물로 손에 꼽히고 있는 기대주였다.
역대 최연소 대마법사는 345년에 20살의 나이로 대마법사가 된 제임스 브라운이 있었다.
그는 18살에 고위 마법사가 되어 2년 만에 대마법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위험이 닥치면 그 어떤 것이라도 쳐부술 자신이 있었다.
최연소 고위 마법사 가이우스.
그는 어린 나이에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어 많은 것을 하찮게 보는 좋지 않은 버릇이 있었다.
그리고 이 버릇은 머지않아 가이우스의 목숨을 빼앗게 되지만 지금 가이우스는 그 사실을 알 길이 없었다.
각종 마법으로 말의 체력을 강화하고 발을 빠르게 하는 등 잔재주를 부린 덕분에 가이우스는 제법 빨리 실버레인 후작령의 실버레인 중심도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가 실버레인인가.”
거대한 성문과 성벽, 그리고 성벽에 늘어선 중무장한 병사들이 가득한 실버레인 중심도시의 앞에서 가이우스는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말했다.
드디어 도착했다.
그랑키아 숲의 몬스터 군단으로부터 사우스 왕국을 지키는 최전선, 실버레인 후작령의 중심도시에!
마법으로 체력이 고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달린 말은 실버레인 중심도시에 도착하기 무섭게 거짓말처럼 쓰러져 숨이 끊어졌다.
“흥.”
가이우스는 말의 사체에 시선도 주지 않고 성문으로 향했다.
검문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길었지만 가이우스는 귀족 전용의 특별한 검문소를 통과한 덕분에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사우스펠 마탑의 고위 마법사인 그는 작위는 없지만 귀족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성문을 넘은 가이우스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실버레인 중심도시의 용병 길드였다.
사우스 왕국과 그랑키아 숲 경계에 서식하는 붉은 트롤의 피를 구하기 위해서는 용병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가이우스는 알고 있었다.
자기만 알고, 자신의 무력을 과신하는 가이우스였지만 그랑키아 숲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돈은 충분히 있었다.
가이우스는 용병 길드의 중개로 아이언 등급의 용병 3명과 브론즈 등급의 용병 5명, 그리고 실버 등급의 용병 2명을 고용했다.
용병들을 고용한 가이우스는 즉시 용병들을 소집하여, 그랑키아 숲으로 향했다.
* * *
가이우스가 스태프를 가볍게 휘두르자 날카로운 칼날 바람의 폭풍이 붉은 가죽의 트롤을 덮쳤다.
날카로운 칼날을 머금은 폭풍에 집어 삼켜진 붉은 트롤의 가죽이 갈라지고 찢어져 진득하고 붉은 피가 사방에 튀었지만 상처는 급속도로 재생하고 있었다.
“고용주! 놈의 상처가 재생하고 있소!”
브론즈 등급의 용병 한 명이 소리쳤다.
가이우스는 이를 악물었다.
붉은 트롤을 찾기 위해서 일주일이라는 시간과 브론즈 용병 2명과 아이언 용병 3명을 제물로 바쳤다.
그리고 붉은 트롤을 발견해 지금까지 약 10분 동안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대로 놓칠 수는 없었다.
가이우스는 조금 더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고위 마법사가 되고 마탑의 마법 수련장에서만 위력을 약화시켜 사용해 본 적 있는 고위 마법을……!
가이우스는 칼날 바람 마법을 중지하고 고위 마법을 캐스팅했다.
어린 나이에 고위 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천재 마법사답게 그는 금방 마법을 완성할 수 있었다.
“집어삼켜라……!”
외침과 함께 붉은 트롤이 밟고 서 있는 땅이 갈라지며 붉은 불기둥을 토해냈다.
강력한 불길에 노출된 붉은 트롤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져 쓰러졌다.
“아차! 피!”
완전히 익어지면 붉은 트롤의 피를 구할 수 없었다.
가이우스는 깜짝 놀라 마법을 중단하고 붉은 트롤의 시체로 달려가 단검을 심장에 꽂았다.
다행히 속까지 완전히 익은 것은 아닌 것인지 소량의 피가 흘러나왔고, 가이우스는 그것을 유리병에 담았다.
“흐흐흐흐. 붉은 트롤의 피…….”
그토록 가지고 싶어 했던 붉은 트롤의 피를 획득한 가이우스는 미친 사람처럼 웃었다.
붉은 트롤은 반도에서는 찾아볼 수도 없고, 그랑키아 숲에서도 제법 희귀한 몬스터였다.
가이우스가 현재 진행 중인 연구에서 꼭 필요한 재료였지만 마탑의 창고에도 없어 이렇게 직접 구하러 온 것이었다.
한참 즐거워하고 있는 가이우스를 향해 실버 용병 한 명이 다가와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고용주, 어서 숲을 벗어납시다.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싶다. 방해하지 마라.”
“알겠습니다.”
용병은 한숨을 쉬며 뒤로 물러났다.
고용주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혹시 모르니까 주위를 경계합시다.”
“그럽시다.”
다른 용병들도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불안감을 느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랑키아 숲은 위험한 곳이기 때문에 경계를 철저히 하는 게 옳았다.
용병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이우스는 10분 정도의 시간을 더 보낸 뒤에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동하자.”
가이우스의 말에 용병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 끔찍한 숲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여간 기쁜 것이 아니었다.
그랑키아 숲에 난 길을 따라서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는 도중이었다.
하나의 검은 그림자 같은 한 명의 사람이 길 중앙을 막고 서 있었다.
검은 옷을 입고 검게 칠한 철제 흉갑을 입은 그는 가이우스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아무런 경고의 말도 없이 가이우스를 향해 검은 기운이 모인 참격을 날렸다.
“기, 긴급 방어……!”
가이우스는 신속하게 캐스팅할 수 있지만 마력 소모가 상당한 긴급 방어 주문을 캐스팅하여 참격을 막아냈다.
“공격!”
옆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리고 20명의 검은 그림자가 숲에서 튀어나왔다.
용병들이 맞서 싸웠지만, 검은 그림자들에게 순식간에 살해당했다.
용병들을 제압한 검은 그림자들은 가이우스를 포위했다.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검을 든 채 가이우스에게 흉흉한 살기를 드러냈다.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떤 마법을 캐스팅해야 할 것인지, 어떻게 반격해야 할 것인지 머리가 새하얗게 비어버려 생각이 나지 않았다.
“죽여라.”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의 차가운 음성과 함께 그림자 하나가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며 춤을 추는 검을 가이우스의 심장에 박아 넣었다.
“쿨럭……!”
입가에 비릿한 맛이 느껴지고, 시야가 검게 물들었다.
그림자가 검을 뽑아내자 가이우스는 붉은 피를 폭포처럼 쏟아내며 휘청이다 힘없이 쓰러졌다.
* * *
“지독한 악몽이군.”
악몽에서 간신히 벗어난 테일러는 거칠어진 호흡을 고른 뒤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직 어둠이 실버레인의 하늘을 지배하고 있었지만 다시 잠자리에 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로크아쉬의 공격이 있었던 뒤 테일러는 노스빌 마을에 머무르며 마을의 복구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821년 10월이 되자 821년 11월에 그랑키아 숲에서 목숨을 잃게 될 최연소 고위 마법사 가이우스를 구하기 위해 실버레인 후작령의 실버레인 중심도시에 오게 되었다.
실버레인 후작령의 실버레인 중심도시는 후작령에서 가장 큰 규모의 용병 길드가 소재해 있었다.
전생에 참모부에서 병사로 근무했었던 시절에 들은 바에 의하면 그랑키아 숲에서 발견된 가이우스의 시체 곁에는 사우스펠 마탑의 구성원의 시체가 아닌 용병들의 시체로 가득했다고 했다.
이 점으로 미루어 짐작해 볼 때 가이우스는 후작령에서 용병들을 고용하기 위해 움직일 것이 분명했고, 가장 큰 규모의 용병 길드가 소재해 있는 실버레인 중심도시에 올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어리고 고집이 센 그의 성격상 설득은 통하지 않을 것이니 위험에 직면해서 그를 구해야만 했다.
“상태창.”
테일러
기사
Lv:36
스킬[11/12]: Lv1도주[E] Lv2기사 검술[B] Lv5벌목[E] Lv5하급 마나연공법[D] Lv10방어 검술[D]
Lv4기척 감지[D] Lv3 불의 검[B] Lv3하급 아머 마스터리[E] Lv2 통솔[C] Lv1 암석거인의 가호[B] Lv1 하급 파마의 검[B]
잔여 포인트:4
수면을 이어가는 것을 포기한 테일러는 외출을 하기 전에 자신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마을의 재건을 돕고 치안 유지에 힘쓰면서 신전에 기부도 한 덕분에 스킬창은 제법 늘어나 있었다.
기부금은 전투로 얻은 자신의 몫의 전리품을 팔아서 충당할 수 있었다.
스킬 창을 늘린 테일러는 스킬 포인트 10을 투자하여 암석거인의 가호 스킬과 하급 파마의 검 스킬을 생성했다.
암석거인의 가호는 방어력과 마법 저항을 상승시키는 스킬이었고 하급 파마의 검은 마법을 벨 수 있게 해주는 스킬이었다.
둘 다 가이우스를 만났을 때를 대비하여 생성한 스킬들이었다.
지금 테일러의 등급은 브론즈.
용병 등급으로 강함을 어필하기엔 브론즈라는 등급은 다소 부족했기 때문에 직접 본신의 무력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흘러가면 높은 확률로 가이우스와 대련을 하게 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마법 저항 관련 스킬이 없는 상태였다면 필패였다.
“길드에 가봐야겠군.”
테일러는 사슬 갑옷 위에 두꺼운 가죽 옷을 걸치고 허리에 날카로운 장검을 착용했다.
그러고는 숙소를 나와 용병 길드가 위치해 있는 광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용병 길드는 24시간 열려 있었다.
가이우스가 언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11월이 된 지금 테일러는 매일같이 아침 이른 시간에 용병 길드에 발 도장을 찍고 있었다.
물론 오늘처럼 일찍이 용병 길드로 향한 적은 없었다.
오늘 꾼 꿈이 신의 계시라도 된 것일까?
테일러는 용병 길드에서 가이우스로 추측되는 새파랗게 어린 고위 마법사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흑발에 총명한 검은 눈을 가지고 있는 그는 짜증이 섞인 얼굴로 피곤한 얼굴의 길드원을 쏘아붙이고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게 답답한 것인지 손을 이리저리 흔들 때마다 고위 마법사의 경지에 오른 것을 증명하는 사우스펠 마탑의 고위 마법사 브로치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아니,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용병이 없다니! 나는 급하단 말이다!”
“죄송합니다만, 지금 시간이 이른 시간이라……. 대기하고 있는 용병 중에선 그랑키아 숲으로 가겠다는 용병이 없습니다, 가이우스 님.”
“칫. 알겠다. 나중에 다시 오도록 하지!”
어린애처럼 투정을 부리던 가이우스는 몸을 돌려 용병 길드를 떠났고 테일러도 그 뒤를 따라 용병 길드를 나왔다.
광장을 벗어나 대로를 걷던 가이우스는 점점 인적이 드문 곳으로 향하더니 이내 골목 깊은 곳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테일러가 뒤따라 골목으로 들어선 순간 몸을 돌려 스태프를 흔들었다.
붉은 불꽃이 어둠이 내린 골목길을 밝히며 테일러를 향해 날아들었다.
테일러는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을 뽑는 순간 하급 파마의 검 스킬이 활성화되었고, 희미한 빛이 일렁이는 검을 휘둘러 뜨거운 불길의 화염구를 반으로 갈랐다.
높은 수준의 마법은 아닌 것인지 하급 파마의 검 앞에서 화염구는 허무하게 무너졌다.
반으로 쪼개진 화염구는 허공에서 잠깐 불타오르다가 서서히 줄어들어 끝내는 완전히 소멸했다.
“막아서라.”
용병 길드에서 짜증 낼 때와는 달리 차분히 가라앉은 음성으로 말하는 가이우스.
스태프 끝에 박힌 마정석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땅이 진동과 함께 솟아올라 테일러의 퇴로를 차단했다.
“나를 미행한 이유가 무엇이지? 대답에 따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 잘 생각하고 말하는 게 좋을 것이다.”
테일러를 주목하는 가이우스의 눈매가 날카로워졌고 스태프의 마정석이 빛을 내며 마법이 준비되었다는 사실을 알렸다.
테일러는 말없이 장검을 검집에 집어넣고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단지 평범한 용병일 뿐입니다. 그랑키아 숲으로 향한다는 당신의 의뢰를 받아들이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평범한 용병이라, 나의 마법을 그렇게 간단히 소멸시키는 용병은 처음 봤다.”
마법은 검으로 벤다고 해서 소멸하거나 베어지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마력검이 아닌 이상 마법을 벤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마력검은 고위 기사의 기술로 유명하다.
테일러가 고위 기사일 리는 없으니, 뛰어난 마병기를 가지고 있다고 가이우스는 생각했다.
“용병! 자네의 용병패를 던져라!”
“원하신다면.”
테일러는 품속에서 동으로 만든 용병패를 꺼내 가이우스에게 던졌다.
용병패를 받아 든 가이우스는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용병패를 살폈다.
용병패를 살펴보던 가이우스의 표정이 순간 변했다.
테일러는 뭔가 잘못되었나 싶어 걱정했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잠깐, 테일러라고? 혹시 노스빌 마을 출신인가?”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노스빌 마을 전투를 승리로 이끈 그 테일러인가?”
“그건 어떻게…….”
예상 밖의 전개였다.
가이우스는 스태프를 살짝 휘젓는 것으로 테일러의 퇴로를 차단한 돌의 벽을 땅으로 되돌리고 캐스팅이 끝난 마법을 해제했다.
모든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고 테일러를 바라보는 가이우스의 눈빛에선 경계심이 상당히 사라져 있었다.
“노스빌 마을에 들렸었다. 마을 사람들이 자네 얘기를 많이 하더군. 듣기 싫어도 듣게 되었다.”
가이우스는 실버레인으로 오기 전에 말이 죽는 바람에 말을 새로 구입하기 위해 노스빌 마을에 잠시 들렀었다.
어느 정도 재건된 노스빌 마을에서는 마을을 지킨 브론즈 용병 테일러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었고, 가이우스는 마을에 하루 정도 머물면서 그 이야기를 질리도록 들었던 것이다.
“자네라면 믿을 수 있겠군.”
가이우스가 용병패를 던졌다.
그것을 받아 든 테일러는 용병패를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본 가이우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랑키아 숲은 위험하니까, 신뢰만으로는 부족하지. 실력을 봐야겠다. 괜찮겠나?”
예상했던 전개였다.
테일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긍정의 의사를 표했고, 그것을 확인한 가이우스는 스태프를 한차례 흔들며 허공에 떠도는 마력을 모아 마법을 캐스팅했다.
스태프에 박혀 있는 마정석에 마력이 모여들자 푸른 빛이 뿜어져 나왔다.
“파이어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