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13화
4장 기부를 하세요(3)
생각을 대충 정리한 테일러는 다음날 숙소에서 일찍 아침을 해결하고 용병 길드로 향했다.
평소처럼 자신이 맡을 만한 의뢰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는데, 테일러는 용병 길드에서 뜻밖의 인물과 마주치게 되었다.
“아, 미안하군.”
급하게 용병 길드를 나오다 테일러와 부딪친 그는 귀족으로 보였다.
뒤에 수행원까지 한 명 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귀족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누가 봐도 용병으로 보이는 테일러에게 사과를 했다.
성격이 조금 엇나간 귀족이었다면 오히려 화를 냈을 것이다.
귀족 사내의 눈동자가 테일러의 전신을 뒤늦게 훑었다.
“용병 같은데, 꽤 일찍 나왔군. 혹시 의뢰를 맡을 생각이 있나? 급한 일인데 길드에는 용병이 한 명도 없어서 말이지. 여간 곤란한 게 아냐. 자네 혹시 등급이 어떻게 되나?”
귀족 남자의 얼굴에는 다급한 기색이 가득했다.
던전이나 보물이 가득한 몬스터 마을을 발견한 게 틀림없을 것이라고 테일러는 생각했다.
“아이언입니다.”
“아이언이라……. 적어도 한 사람 몫은 하겠군그래!”
테일러의 등급을 들은 귀족 남자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였으나,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는 분수대 앞으로 테일러를 데리고 가 품속에서 계약서를 두 장 꺼내 건넸다.
“서명하게. 의뢰 내용은 계약을 마치는 대로 알려주겠네.”
의뢰 내용을 계약 후에 알려주겠다고 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였다.
새어나가면 안 되는 비밀을 요하는 의뢰이거나, 불법을 행하는 의뢰일 경우.
테일러는 조금 꺼려졌으나, 계약서에 적혀 있는 귀족 남자의 이름을 보고는 재빨리 서명을 하여 계약서를 건넸다.
계약서에 적혀 있는 귀족 남자의 이름은 루시드 필리스터.
자작위의 귀족이자 국왕 직속 기사단장 아시드 필리스터의 아들이자 821년에 목숨을 잃을 예정인 인물이었다.
루시드 필리스터가 던전 발굴 도중에 목숨을 잃고 얼마 뒤 아시드 필리스터는 시름시름 앓다가 아들의 뒤를 따라가게 된다.
이 이야기는 회귀 전 참모부 병사로 근무했을 때 친해진 귀족 장교로부터 들은 적이 있었다.
국왕 기사단의 기사단장이자 고위 기사였던 아시드 필리스터 자작만 있었어도 수도가 그렇게 방어선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참모부 장교들은 말하고는 했다.
루시드 필리스터.
그럴 일은 없겠지만 억제기 보호에 실패했을 경우도 생각해야만 했다.
억제기 보호에 실패하여 전쟁이 터질 경우를 대비하여 루시드 필리스터를 살려 아시드 필리스터 자작의 생존 확률을 올려둘 필요가 있었다.
“고맙네.”
루시드는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품속에 계약서 한 장을 집어넣었다.
나머지 한 장은 테일러가 보관하기 위해 가방에 집어넣었고 루시드는 계약금이 담긴 가죽 주머니를 건넸다.
주머니에는 빛나는 은화가 제법 들어 있었다.
“이제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고용주.”
루시드의 이름이 밝혀진 시점에서 의뢰 내용은 대충 기억하고 있었지만 테일러는 입을 열어 의뢰 내용에 대해 루시드에게 질문했다.
루시드는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살폈다.
평소 광장은 사람으로 가득했지만 이른 아침인 탓에 멀리서 드문드문 사람이 보일 뿐 근처에는 아무도 없었다.
근처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루시드는 입을 열었다.
“실은…… 던전을 발견했다네.”
테일러의 예상대로였다.
“노스리빌 근처의 이름 없는 숲에 버려진 요새가 하나 있지. 그곳을 탐색하던 중에 지하로 향하는 입구를 발견했네. 나와 시드릭이 내려가서 확인해 본 결과 던전이 확실했네.”
“그렇습니까?”
테일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이 틀리지 않고 장교들의 잡담이 틀리지 않다면 루시드 필리스터는 이 던전 탐사에서 목숨을 잃을 게 분명했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회귀하였습니다. 던전에 가면 당신은 죽습니다. ……라고 말해도 믿지 않을 테니, 그의 곁에 바짝 붙어서 그를 지켜야만 했다.
“자네 장비가 상당히 빈약하군. 방어구 상점에서 사슬 갑옷이라도 하나 장만하는 게 좋을 거야. 던전은 상당히 위험하니까.”
“알겠습니다.”
루시드 필리스터의 말에 테일러 또한 긍정했다.
그는 지금 집에서 가져나온 낡은 장검 한 자루에, 갑옷 대신 입고 있는 조금 두껍고 질긴 가죽옷이 전부였다.
그런 테일러의 모습은 루시드의 눈에 상당히 빈약해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루시드는 지금 입고 있지는 않았지만 귀족 가문의 구성원답게 충분히 훌륭한 갑옷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 그의 허리에 걸려 있는 레이피어 역시 상당히 고가의 것이 분명했다.
마법이 부여된 마병기일 수도 있었다.
마병기란 마법이 부여된 무기나 병기 따위를 이르는 말로, 주로 마탑에서 생산하는데 그 가치가 상당해서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귀족이나 우수한 고위 마법사, 고위 기사 등이 아닌 경우 좀처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루시드는 필리스터 자작 가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니, 마병기를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장비를 갖추면 이 여관으로 오게. 우리도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네.”
루시드는 새하얀 종이에 여관의 위치를 자세히 그려준 뒤 먼저 사라졌고, 테일러는 방어구 상점에 들러 사슬 갑옷을 하나 구입했다.
사슬 갑옷의 가격은 싼 편은 아니었지만, 계약금으로 어떻게든 구입이 가능했다.
방어구 상점에서 구입한 사슬 갑옷을 입자 차갑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무런 감정이 전달되지 않는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조건 충족! E급 스킬 하급 아머 마스터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배우시겠습니까?]
“배우겠다.”
테일러는 눈동자를 굴려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핀 뒤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곧바로 답변이 들려온다.
[E급 스킬 하급 아머 마스터리가 추가되었습니다.]
“상태창.”
테일러
상급 전사
Lv:29
스킬[7/7]: Lv1도주[E] Lv15상급 검술[C] Lv5벌목[E] Lv5하급 마나연공법[D] Lv7방어 검술[D]
Lv1기척 감지[D] Lv1 불의 검[B] Lv1하급 아머 마스터리[E]
“좋아.”
상태창을 자세히 읽은 테일러는 만족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스킬이 7개 정도 쌓이니 과거 게임 속에서 날아다녔던 자신의 모습이 어느 정도 보이는 것 같았다.
남아 있는 잔여 포인트는 없었지만 꽉 차 있는 듯한 느낌의 상태창이었다.
실제로도 스킬창은 여유 없이 가득 차 있었다.
마지막 스킬 공간을 E급 스킬로 채운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차근차근 승급하면 되니까 크게 신경이 쓰이지는 않았다.
“무기는 다음에 바꿔야겠군.”
쭉 함께였던 낡은 장검도 바꾸고 싶었지만 유감스럽게도 무기를 바꿀 여유는 없었다.
사슬 갑옷을 구입하느라 계약금도 상당히 쓴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시간도 어느 정도 흘렀고, 테일러는 종이에 적힌 약도를 따라 루시드가 머물고 있다는 여관을 찾았다.
“역시 귀족이라는 건가. 호화롭군.”
여관 앞에 도착한 테일러가 내뱉은 말이었다.
필리스터 자작 가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루시드 필리스터가 머무는 여관은 테일러라면 꿈도 꾸지 못할 정도로 고급스러운 여관이었다.
그렇다 보니 안으로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시선이 쏠리게 되었다.
주위의 시선을 받으며 고급 여관 안으로 들어온 테일러는 5층으로 올라가 종이에 적혀 있는 호실의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들어오게.”
루시드의 목소리가 들리자 테일러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상당히 넓은 실내에는 고급스러운 장식품이 가득했고, 중앙의 탁자 근처에 놓여 있는 의자들에는 거친 얼굴의 용병 셋과 루시드, 그리고 그의 호위를 맡은 시드릭이 앉아 있었다.
테일러가 용병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을 지켜본 루시드는 곧바로 던전이 있는 곳으로 테일러와 용병들을 이끌었다.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버려진 요새의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 낡은 목재 문을 여니 어둠이 내려앉은 거대한 공동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을 밝히겠습니다.”
사우스 왕국 정예 부대인 남부 레인저 여단 출신의 레인저이자 브론즈 등급의 용병인 팀이 횃불에 불을 붙이자 어둠에 휩싸인 공동이 조금이나마 밝아졌다.
“내가 앞장서지!”
팀이 테일러에게 횃불을 건네주고 활을 들어 올리자 거대한 방패를 든 바트가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루피가 따랐다.
테일러는 진형에서 가장 안전하다고 볼 수 있는 루시드의 옆에서 일행이 앞으로 전진할 수 있도록 어둠을 물리치는 역할을 맡았다.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다.
“전방에 고블린 27마리. 빠른 속도로 접근 중.”
“전원 전투 준비!”
어둠 속을 날카롭게 꿰뚫어 접근하고 있는 고블린 무리를 파악한 팀이 그 숫자를 보고하자 시드릭이 기다란 장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남부 레인저 여단 출신의 용병 팀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인다.
테일러는 진형의 중앙에서 횃불을 든 채 팀의 입이 열리길 기다렸다.
잠시 후 팀의 입이 열렸다.
“포위당했습니다.”
“원형진!”
시드릭은 빠르게 판단했다.
포위당한 이상 이전의 진형의 무의미했다.
둥근 원형진이 포위에 대처하기에 알맞았다.
원형진의 중심에는 테일러와 루시드가 들어가게 되었다.
루시드는 보호해야 할 대상이었고, 테일러는 시야를 확보하는 데 중요한 빛의 수호를 맡았기 때문이었다.
팀이 먼저 화살을 쏘았다.
멀리서 고블린의 비명 소리가 들렸지만 곧 고블린들의 요란한 소음이 점점 가까워졌다.
전투가 시작되었다.
활을 쏘아 고블린들의 수를 줄여나가던 팀은 날카로운 단검 두 자루를 들고 고블린과 맞서기 시작했다.
원형진은 튼튼했지만 사람의 수가 적어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에 방어선을 넘어 고블린 한두 마리가 침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테일러에 의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오호! 검술 실력이 제법이구만. 깔끔하고 치명적이네.”
테일러의 예상치 못한 활약에 루시드는 감탄했다.
검을 수련하는 가문에서 자란 루시드가 보기에도 테일러의 검술은 깔끔하고 치명적이었다.
레벨 15 상급 검술의 위력이었다.
“끝났습니다.”
시드릭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그와 동시에 테일러 또한 알림음을 듣게 되었다.
[전투에서 승리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 스킬 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테일러는 우선 2포인트를 불의 검 스킬에 투자했다.
‘파티 사냥으로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군. 내가 전에 했던 게임과 상당히 닮았어.’
한 건 없는데 경험치는 제법 많이 들어왔다.
전부터 생각했던 것이지만, 스킬을 얻는 시스템과 지금 깨달은 것처럼 파티 사냥으로 경험치를 얻는 시스템, 그리고 스킬 승급 시스템까지.
과거에 자신이 하던 게임과 닮은 점이 상당히 많았다.
‘어쩌면 스킬 퀘스트도 존재하고 있을지도 몰라.’
“테일러, 슬슬 움직이지.”
잠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던 테일러를 향해 시드릭이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테일러를 재촉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한 잠깐 사이에 파티는 이동할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죄송합니다.”
테일러는 솔직하게 사과를 하며 횃불을 들고 재빨리 따라붙었다.
그 후로 루시드와 시드릭이 지휘하는 파티는 몇 번의 몬스터 무리와 조우하여 교전을 벌였지만 사상자 없이 던전의 끝으로 보이는 방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문을 열겠습니다.”
바트가 방패를 앞으로 내밀고, 루피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보이는 칠흑의 기운이 루피의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루피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목이 잘렸다.
잘려나간 목이 피를 흩뿌리며 날아가 바닥을 굴렀고 머리를 잃은 몸은 좌우로 흔들리다가 쓰러져 바닥에 피를 콸콸 쏟아냈다.
“앞으로!”
시드릭의 외침에 바트가 창백해진 얼굴로 방패로 몸을 가린 채 앞으로 튀어 나갔다.
“횃불!”
“알겠습니다!”
시드릭의 외침에 테일러는 답하며 횃불을 들고 바트의 뒤를 따랐다.
밝은 불빛이 어둠에 잠겨 있는 공동을 비추자 칠흑의 기운을 날려 루피의 목을 자른 주인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불타는 것처럼 일렁이는 검은 기운에 휘감겨 있는 판금 갑옷의 머리 없는 기사.
듀라한이었다.
테일러는 전생에 루시드의 파티가 전멸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듀라한은 죽음의 기사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상급 언데드로 분류되는 존재.
신성 마법이나, 마법이 아니라면 마력검조차 상처를 입히기 힘들었다.
그리고 루시드의 파티에는 마법사나 사제, 또는 성기사가 없었다.
루시드 필리스터의 근위기사 시드릭이 마력검을 구사할 줄은 알았지만 마력검은 상급 언데드에게 치명상을 입히기 힘들었다.
상급 언데드인 듀라한을 상대하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파티였다.
“물러납시다, 고용주. 듀라한을 이길 수는 없어요.”
팀도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루시드 또한 같은 생각인 것인지 고개를 돌려 탈출구를 바라보았지만 이미 문은 닫혀 있었다.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이 고개를 들었지만 테일러는 애써 희망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말했다.
그의 말대로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희미하지만 희망의 빛은 파티를 비추고 있었다.
마력검을 사용할 수 있는 시드릭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기대를 걸어볼 만했다.
마력검으로 치명상을 입히는 게 힘들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력검이 상급 언데드에게 피해를 주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었다.
큰 나무도 여러 번 찍으면 넘어가는 법.
피해가 누적되면 쓰러질 것이다.
아군이 진형을 재정비하는 사이, 바트의 몸이 2등분 되었다.
팀이 화살을 쏘았지만 소용없었다.
상급 언데드에게 화살 따위는 간지럽지도 않은 것이었다.
“젠장!”
결국 시드릭이 나섰다.
어둠 속에서 푸르스름하게 빛이 나는 검, 일명 마력검을 든 시드릭이 듀라한과 붙어 치열하게 검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푸른 빛과 칠흑의 빛이 부딪치며 마찰에 의한 불똥이 사방에 튀었다.
루시드와 테일러는 물론이고 모두가 시드릭에게 기대를 걸었다.
시드릭은 기대에 부응하여 날카로운 검을 휘둘러 듀라한의 전신에 상처를 남기는 것에 성공했다.
하지만 그것뿐.
곧 듀라한이 휘두른 머리에 얻어맞고 쓰러져 의식을 잃고 말았다.
듀라한은 그런 시드릭에게 다가가 검으로 목을 찔러 숨통을 끊었다.
시드릭이 당하자 파티는 크게 흔들렸다.
팀은 하얗게 질려 여기저기 도망 다니다가 듀라한에게 찔려 죽었다.
이제 루시드와 테일러만이 남았고 듀라한은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다가오고 있었다.
절망의 늪에 빠져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한 순간, 테일러는 자신의 스킬창을 떠올릴 수 있었다.
스킬 불의 검.
불의 힘이라면 상급 언데드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테일러는 즉시 체내에 쌓아둔 마력을 운용하여 검으로 흘려보냈다.
그러자 장검이 진동하며 뜨겁게 달아올라 희미한 불꽃을 뿜어냈다.
희미하고 보잘것없었지만 불꽃임은 확실했다.
전과는 달리 레벨 3이 되자 희미하게나마 불꽃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 마병기?”
루시드가 경악했다.
테일러가 든 검의 모습은 마병기로 착각할 법했다.
희미한 불길을 뿜어내고 있는 불의 검을 든 테일러는, 음산한 기운을 풍기며 다가오고 있는 듀라한에게서 루시드를 지키기 위해 몸을 날렸다.
왕국을 위해!
자신을 위해!
무시무시한 기세의 듀라한을 향해 몸을 던진 것이다.
불의 검이 휘둘러지고 듀라한의 검을 강하게 쳐냈다.
다행히 듀라한의 검술 실력은 뛰어나지 않은 데다가 시드릭과의 전투로 상처를 많이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움직임에 조금 제한이 있었다.
언데드는 지치지 않고 팔이 잘려도 움직이지만, 팔이 잘리거나 큰 상처를 입으면 움직임은 조금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듀라한 또한 시드릭에게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기 때문에 움직임이 날렵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테일러는 듀라한을 간신히 처리할 수 있었다.
죽을 운명이었던 루시드 필리스터.
그를 지금 이 자리에서 테일러, 그가 살린 것이다.
지쳐 숨을 헐떡이고 있는 테일러를 향해 루시드가 다가왔다.
“자네가 내 목숨을 살렸군. 이 은혜는 잊지 않겠다. 필리스터의 이름이 그대의 도움을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