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턴 플레이어 3화
1장 리턴(2)
탕!
“으악!”
요란한 총성과 함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사격장의 지휘를 맡은 정현민 중위는 심상치 않은 얼굴 표정으로 비명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사격장에서 총성은 흔하게 들리는 것이었지만 비명 소리는 흔하지 않았다.
총성에 놀라 가끔 비명을 지르는 사병도 있었지만 방금 전의 비명 소리에는 고통스러운 기색이 가득했기 때문에 정현민의 발걸음은 상당히 다급했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맙소사.”
현장에 도착한 정현민 중위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불길한 예감은 정확하게 맞았다.
사병 한 명이 붉은 피를 줄줄 흘리며 누워 있었고, 사격 지도를 맡은 부사관 한 명이 쓰러진 사병의 상처 부위를 두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부사관 또한 상당히 당황한 듯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리며 시선을 여기저기 분산시키고 있었다.
정현민은 머리를 빠르게 굴려 상황을 파악했다.
오발 사고가 터진 게 분명했다.
상황 파악을 끝낸 정현민의 입 밖으로 욕설이 흘러나왔다.
지금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망했다’였다.
사격 지도를 맡은 부사관은 물론이고 사격장 지휘를 맡은 정현민 중위 또한 진급 누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하 중사, 상황을 보고해.”
“기, 김 이병이 이 일병을 쐈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초, 총알이 장전된 줄 몰랐습니다.”
부사관은 물론이고 오발 사고의 원인인 김 이병 또한 목소리가 상당히 떨리고 있었다.
부사관이 연락을 한 것인지 마침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의무병들이 이곳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며 정현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대로 통솔하지 않고 놀다가 오발 사고가 터졌으니, 순탄했던 그의 군 생활도 끝난 것이다.
결국 이 일병은 사망하고 말았고 사격장에서 사병들을 통솔했던 부사관과 정현민 중위는 물론이고, 중대장까지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
대위 진급을 앞두고 있던 현민은 결국 대위 계급장을 어깨에 달지 못했다.
잔뜩 화가 난 정현민은 군 생활을 그만두고 게임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후우. 사우스 왕국이 그립군.”
잠시 몸을 풀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온 정현민은 과거를 회상했다.
그는 놀랍게도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전생에서 그의 이름은 테일러.
사우스 왕국 수도 방어전에서 목숨을 잃은 불운한 병사였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기 전에 사우스 왕국에서의 삶은 행복했었고 지금도 가끔 판타지 게임을 즐길 때면 전생의 삶이 생각나고는 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정현민은 한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생에서 병사로 죽은 것이 억울해 열심히 노력하여 장교가 되었지만 그것마저도 그만두게 된 지금 그는 게임에 빠져 있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군.”
전쟁이 터지기 전 사우스 왕국에서의 삶은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다.
그도 열심히 살았고 말이다.
전쟁.
모든 것의 문제는 전쟁에 있었다.
“후우. 그만두자. 생각해 보았자 바꿀 순 없어.”
정현민은 고개를 좌우로 흔든 뒤 방으로 내려가 다시 컴퓨터를 켜고 가상현실 접속기를 연결했다.
아무런 걱정도 없는 가상현실의 세계로 그의 정신이 빨려 들어간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듯 가상현실 세계로 몸을 던진 정현민은 잠시 후 눈앞이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덥수룩한 머리와 면도하지 않아서 까칠한 턱의 정현민은 사라지고 화려한 갑옷을 입은 게임 아바타 테일러가 서 있었다.
사우스 왕국 시절을 잊지 못한 것인지 게임 아바타 이름은 테일러였다.
“늦었네요, 테일러.”
활기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현민은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푸른 로브를 입은 백금발의 젊은 마법사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정현민의 고정 파티원 로이츠였다.
정현민과 로이츠는 게임 세계에서 제법 유명한 파티였다.
둘은 공략이 힘들다고 알려진 던전 수십 개를 공략한 뛰어난 실력자들이었다.
오늘도 던전 공략을 위해 만난 것이었다.
“바로 갈까요? 로이츠. 저는 준비가 끝났습니다.”
정현민은 허리에 걸려 있는 주머니에서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작은 돌을 꺼내 들었다.
던전으로 이동하는 이동석이었다.
로이츠도 입가에 미소를 그린 채 푸르스름한 빛을 발하는 이동석을 꺼냈다.
“저도 준비 완료입니다. 가죠.”
“네.”
손가락에 힘을 주자 이동석은 허무하게 부서졌다.
둘의 이동석이 부서지기 무섭게 푸른 빛이 둘을 감쌌다.
푸른 빛이 사라지고 난 뒤 그 자리엔 아무도 남지 않았다.
* * *
“로이츠! 뒤로 물러나세요!”
“알겠습니다!”
검은 갑옷으로 무장한 죽음의 기사의 일격을 받아내며 근접전에 약한 로이츠를 뒤로 보내는 정현민.
둘은 이동석으로 던전으로 이동하기 무섭게 던전 공략을 위해 던전에 진입했고, 몇 시간을 치열한 전투로 보낸 끝에 보스방에 도착하는 것에 성공했다.
보스는 상급 언데드로 유명한 죽음의 기사였지만 정현민과 로이츠는 기죽지 않고 보스 공략을 시작했다.
“방어 태세!”
[스킬 방어 태세를 발동합니다. 공격력이 감소합니다. 방어력이 증가합니다.]
무미건조한 알림음이 귓가를 파고들고 방어력이 증가했다.
정현민의 포지션은 탱딜 하이브리드.
딜링과 탱킹을 동시에 하는 무서운 플레이어였다.
죽음의 기사의 검이 정현민의 갑옷을 때렸다.
방패는 없지만 방어력이 대폭 상승한 정현민의 갑옷은 죽음의 기사의 평범한 일격으로는 뚫리지 않았다.
“으아아아!”
공격이 소용없자 당황하는 죽음의 기사를 향해 정현민의 공격이 이어진다.
[스킬 보정. 치명적인 일격. 공격이 치명타로 판정됩니다.]
[스킬 보정. 쇠약의 독. 적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소량 감소합니다.]
연이어 들리는 알림음.
적지 않은 데미지를 입고 비틀거리는 죽음의 기사를 향해 로이츠가 만들어낸 거대한 불덩이가 날아들었다.
죽음의 기사는 그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로이츠의 고위 마법에 당한 죽음의 기사는 비틀거리다 쓰러져 아이템을 남기고 사라졌다.
아이템을 정리하고 있는 정현민에게 로이츠가 다가왔다.
그는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눈빛으로 정현민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전생을 믿나요? 테일러.”
“물론.”
“기억하나요. 전생을.”
정현민은 고개를 저었다.
전생을 기억한다고 대답하면 미친놈 취급을 받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로이츠의 말은 의외였다.
“저는 기억합니다. 후회로 얼룩진 전생이었죠. 테일러, 만약 전생의 삶을 다시 살 수 있다면 살겠습니까?”
“……다시 산다고 해도 역사를 바꿀 힘이 없다면, 다시 후회로 얼룩지겠죠.”
정현민의 대답에 로이츠의 두 눈이 빛났다.
“만약 힘이 있다면, 이 게임의 능력을 지닌 채 돌아갈 수 있다면?”
정현민은 로이츠를 직시했다.
그는 지금 장난을 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상당히 진지했다.
정현민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돌아가겠습니다, 로이츠. 그럴 수만 있다면.”
로이츠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충분한 대답이 되었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죠, 테일러.”
로이츠의 몸이 사라졌다.
로그아웃한 모양이다.
정현민 또한 아이템을 마저 정리하고 로그아웃했다.
다시 게임 폐인 정현민으로 돌아온 그는 던전 공략을 올리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메일 한 통이 도착해 있었다.
[멸망을 향해 걸었던 사우스 왕국의 역사를 바꾸시겠습니까?]
[예 / 아니오]
많은 생각이 스쳐 갔다.
몬스터에게 살해당했던 어머니 레이나와 아버지 죠셉.
그리고 수도에서 목숨을 잃었던 자신.
행복했지만 아쉬웠던 삶이었다.
정현민은 망설임 없이 ‘예’를 눌렀다.
지금의 삶은 밑바닥 그 자체였다.
꿈도 희망도 없었다.
그럴 바엔 전생으로 돌아가는 게 나았다.
예 버튼을 누르자 잠시 후 모니터가 검게 변하고 그 속으로 정현민은 빨려들어 갔다.
* * *
“일어나렴, 테일러.”
익숙한 목소리.
몬스터 군단과의 전쟁이 터지고 그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던, 너무나도 그리운 어머니의 목소리가 테일러의 귓가를 간지럽혔다.
그리운 목소리에 테일러는 눈물을 글썽이며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악몽이라도 꾼 것이니? 벌써 시간이 늦었단다. 일어나렴.”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뜬 테일러의 시야로 가장 먼저 들어온 이는 어머니 레이나였다.
테일러는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그려지는 것을 느꼈다.
레이나도 미소로 화답하고는 아침 먹으러 오라며 방을 나섰다.
레이나가 방에서 나가고 테일러는 주변을 살핀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확인해 볼 게 있었다.
“상태창.”
테일러
평민
Lv:1
스킬[2/5]: Lv1도주[E] Lv1골목 검술[E]
그러자 마치 게임 속에서 외친 것처럼 자신의 상태를 나타내는 작은 창이 시야에 나타났다.
상태창을 확인한 테일러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지구에서 자신이 즐겨 했던 게임의 상태창과 같았다.
“가능해.”
가능했다.
이 능력이라면 멸망을 향해 걸었던 사우스 왕국의 역사를 바꿀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