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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맞고 튀었는데 공작님이 집착한다-128화 (128/135)

128.

제 몸이 갑자기 공중으로 붕- 떠오르자 시아라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그래도. 오늘까지 해야 하는 일인데.”

“그거 미룬다고 안 죽어.”

시아라가 내려달라 바르작거렸지만, 카시안은 절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이대로 마차에 앉아 그녀를 재우고, 그대로 침대 위에 눕혀줄 생각이었으니. 그의 의중을 알아차린 시아라가 이내 벗어나기를 포기하고 그의 목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시아라가 물었다. 잠에 취해 느릿하고 나른한 목소리였다.

“요새…… 많이 바빠요?”

“너만 할까.”

“아니-.”

그녀가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아침에도 얼굴을 못 본 것 같아서.”

“응. 일이 조금 많네.”

카시안의 차분한 대답에 품에 묻었던 고개를 쓱 들어 올려 그를 응시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시아라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랬구나…….”

“서운했어?”

“그런 건 아니고요.”

말과 다르게 삐죽거리는 입술에 카시안이 그대로 웃어버렸다.

“미안. 진짜 바빴어.”

“그냥…… 아침에 보고 싶어서 그랬어요. 밤에는 매일 정신이 없으니까. 이렇게 졸려서는.”

잠꼬대를 중얼거리듯 나지막하게 속삭이던 시아라가 카시안의 품에 안겨 그대로 잠이 들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지금 이대로도 그는 좋았다. 색색거리는 숨을 고르게 내쉬는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황홀했으니.

카시안은 이번에야말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 역시 어서 저택으로 돌아가 채 마무리하지 못한 일을 끝마쳐야 했으므로.

그도 시아라만큼이나 바빴다. 눈코 뜰 새 없이.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찾아올 무렵. 시아라의 생일이 성큼 다가왔으니.

*

“한나!”

“시아라, 왔어요?”

나는 오랜만에 한나의 레스토랑을 찾아 케이크를 주문했다. 피곤함에 기력이 떨어질 때는 한나의 초코케이크가 최고였으니까.

테이블에 앉아 케이크가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옆자리에 앉은 손님들의 수다에 나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 대화의 주인공이 다름 아닌 나였으므로.

남자가 말했다.

“아델트 공작이 곧 결혼할 거라던데!”

“어머, 그게 정말이에요?”

“그렇대도. 그 여자가 바로 발르테르 보육원의 원장이라지?”

맞은편에 앉아있던 여자가 처음 듣는다는 듯 놀란 표정으로 입을 가렸다.

“어라? 발르테르의 원장이라면……. 그 보육원 출신의 여자를 말하는 거예요? 그 대단한 공작님이 대체 왜…….”

“맞아, 그 여자야.”

“잘못된 소문이겠죠.”

여자는 우스운 소문쯤으로 치부하며 웃어넘겼다. 그런 여자의 테이블에 한나가 음식을 쾅, 내려놓았다.

“꽤 늦게 아셨군요? 공공연한 사실이었는데.”

“…… 네?”

“그 대단한 공작님을 사로잡을 분이라면, 여자 분도 만만치 않게 대단하지 않겠어요?”

다른 손에 들려있던 맥주잔도 쾅, 테이블에 부딪혔다. 가득 담겨있던 맥주가 유리잔 표면에서 출렁거리다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런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한나가 옆 테이블에 앉은 나를 바라보았다.

주인장의 거친 손놀림에 당황한 여자는 불만스런 눈빛으로 한나를 노려보다가, 한나의 시선을 따라 내게 고개를 돌렸다.

“저기 계신 분이 바로 그분이거든요.”

테이블에 앉아있던 여자가 경악했다.

나를 보며 방긋 웃는 한나의 웃음에 화답하듯, 나 역시 가볍게 미소 지었다.

민망함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오른 여자가 ‘에구머니나!’ 탄식을 내뱉었다. 한나의 채근에 망설이던 그녀가 쭈뼛쭈뼛 내 곁으로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바로 옆에 계신 줄도 모르고.”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내가 눈을 마주하자 그녀가 그 시선을 슬쩍 피했다.

“다만, 다음번에는 발르테르 보육원에 대해 좋은 소문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보육원 출신의 원장이 운영하는 보육원. 뭐, 그것도 썩 나쁘지는 않지만요.”

그녀가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럼요! 제가 괜한 말을 해서 원장님 마음을 상하게 했어요.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나 역시 웃음으로 그 사과를 받아들이고, 케이크를 찾아 프란츠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사실, 기분 나쁠 것도 없었다.

요즈음 이 소문이 시장에서 가장 흔했으니까. 어디 시장뿐이랴. 상업지구도, 아델트 병원에도. 어디를 가나 시끄러웠다.

아델트 공작과 보육원 원장이 곧 혼인 한다지!

방금 저 여자처럼 이 소문을 처음 듣는 여자는 아델트 사람이 아니거나, 풍문에 도통 관심이 없는 사람들뿐이었다. 처음에는 묘하게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물론, 귀족 사회에서는 다른 이야기였지만.

몰락 귀족의 여식과 제국에서 가장 큰 가문의 공작이 결혼한다니. 귀족들은 술렁거리며 우리를 흉보았다. 결혼 적령기의 딸을 둔 가문의 가주들은 제 딸 대신 선택한 게 고작 저런 여자냐며 카시안을 책망하기도 했다.

그런 날선 반응들을 카시안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동안 잊혔던 레트랑 가문의 몰락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다시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한 파티에서, 귀족들이 수군거렸다.

“그 레트랑 가문을 몰락시킨 게……. 실은 아델트 공작이라지?”

“왜?”

“그 집안 식구들이 공작이랑 결혼할 여자를 괴롭혔다나 봐!”

그 한마디에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일평생 자신은 마법을 쓰지 못하는 돌연변이라며 정체를 숨기더니, 이제는 태연하게 자신의 힘을 드러내고. 잘나가던 귀족 가문이 제 여자를 못살게 굴었다는 이유만으로 그 가주를 단두대에 올리다니. 그 인간 진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그러나 그 이후로 귀족들은 말을 아꼈다. 본인들의 목숨이,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다 잘못되는 것보다야 소중했으니.

카시안이 무시무시한 괴물이라던가, 잔혹한 악마라던가. 그런 뜬소문도 물론 많았지만 카시안은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그는 애초에 본인을 둘러싼 소문에 익숙했으니.

그러니 한동안 평온한 날들이 이어졌다. 아무런 걱정거리도 없는, 그런 하루들이.

다만, 저택으로 돌아가는 내 발걸음이 묘하게 의기소침했다.

‘그래, 그 소문들. 다 맞아. 맞다고.’

그런데…….

왜 프러포즈를 안 하는 건데?

나는 잔뜩 뾰로통한 얼굴로 볼을 부풀렸다.

아델트 저택에 객식구로서 함께 지낸 것도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 그의 여자친구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뭐……. 결혼식을 올리고 도장을 찍어야만 우리의 관계가 명확해진다거나 더 돈독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세간을 떠들썩하게 뒤집어 놓은 소문치고, 정작 나는 ‘결혼’의 ‘결’ 자 한마디 들어본 적 없으니. 슬쩍 억울해졌다.

오늘 아침에는 낸시가 물었다.

[“알버트한테 들었는데요, 트리탄 후작님은 요새 깨가 쏟아지신대요.”]

[“…… 그랬구나.”]

[“네, 거기도 오랜 연인이었는데. 결혼하니 또 느낌이 다른가 봐요.”]

나는 차분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어. 결혼하면 그렇구나.”]

내 눈치를 슬쩍 보던 낸시가 우물우물 입을 열었다.

[“…… 우리 아가씨도 곧…… 좋은 소식이 있겠죠?”]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그 물음에 답하고, 곧장 집무실로 향했다. 카시안은 언제나처럼 태평하게 가죽 의자에 앉아있었다. 나만 조바심이 난 것처럼 느껴졌으나, 답답한 마음을 더는 참지 못하고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로 했다.

[“저, 카시안.”]

[“응.”]

[“나 물어볼 게 있어요.”]

[“뭔데?”]

그가 맑게 웃었다.

[“우리 결…….”]

순식간에, 방긋 미소를 띠었던 남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텔레포트를 이용해서.

나는 그가 앉아있던 가죽 의자만 황망하게 쳐다보았다. 내가 출근할 때까지 카시안은 돌아오지 않았고, 지금 이 저녁이 되도록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자 다시금 화가 부글부글 끓어서, 축 처졌던 발걸음에도 힘이 실렸다. 눈앞에 보이기만 해봐라. 아주 혼쭐을 내줄 테니!

빠른 걸음으로 단번에 3층을 향해 올라갔다.

호기롭게 집무실 문을 확- 열어 재꼈는데, 집무실에 앉아있던 이는 카시안이 아닌 알버트였다.

“카시……, 알버트 님?”

“아, 아가씨 오셨어요? 각하는 아직 외출 중이시랍니다.”

슬쩍 벽시계를 확인하니 이미 밤이 깊은 시각이었다.

“…… 아직도요?”

“네. 내일부터 아델트 전역에서 축제가 열리니까요. 그것 때문에 바쁘셔서.”

“아…….”

물밀 듯 밀려오는 아쉬움을 어쩌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먼저 가볼게요. 공작님이 오시면 제 방으로……. 아니다, 그냥 내일 보자고 전해주세요.”

“늦으실 테니 오래 기다리지 마시고 일찍 주무세요. 그래야 아가씨도 내일 즐겁게 축제에 가시죠.”

“네에-.”

조금 시무룩하게 답하며 내 방으로 내려왔다.

밤사이에 누군가 내 방에 들어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던 것도 같았으나, 눈 떴을 때 카시안은 없었다. 나는 그것이 못내 서운했다.

- 오빠가 조금 더 서두를게. 미안, 용서해줘. –

일기장에 적힌 정갈한 그의 글씨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

오늘처럼 이 저택이 분주했던 적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모든 이들이 바빴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아델트 사람들은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축제를 열었다. 아델트 가문의 선조들이 결계를 세우기 이전부터 내려오던 오래된 풍습이었다. 아무래도 제국에서 겨울이 가장 추운 곳이었으니.

특히 이날은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지 않는 공작 저택이 누구에게나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하나 카시안이 후계를 물려받은 이후로, 지난 몇 년간 저택의 문이 열리는 일은 없었다. 이전의 아델트 공작들과는 달리 저를 꼭꼭 숨기는데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 그 많은 소문 역시 이것이 한몫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랬던 카시안이, 올해만큼은 저택의 문을 활짝 열기로 했다. 가신들은 환호했고 카시안 역시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때문에 저택의 가신들은 동이 트기 전부터 바쁘게 움직였다.

카시안과 나 역시 서로 아침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하루를 시작했다.

치장을 돕는 낸시의 손에 허리 가까이 내려오는 곱슬머리를 맡기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요리사들이 며칠간 준비한 음식들이 길게 늘어선 천막 아래 설치된 테이블 위로 먹음직스럽게 쌓이고 있었다.

“아, 그건 여기다 설치하는 게 좋겠어. 기사단은 넘어지는 사람들이 없도록 질서에 유의하고.”

“예, 각하.”

카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벌떡 일어섰다.

빗에 걸린 머리카락이 당겨진 탓에 입 밖으로 연약한 탄식이 터져 나오기는 했으나, 그가 저 바깥에 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활짝 열어둔 창문가로 달려가 멀리 서 있는 카시안을 응시했다.

그도,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 맑은 미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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