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한참을 멍하니 있던 알버트를 대신해 카시안이 답했다.
“그래도 보고 결정하는 게 어때? 생각이 있다면 다들 뭔가 준비해왔겠지.”
“좋아요.”
“걱정 마. 나름 유능한 마법사들이니까.”
내가 끄덕거리자 카시안이 내 몸에 보호 마법을 걸었다.
“이건 왜요?”
“유능하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좁쌀만 한 불꽃이라도 너한테 튀면 어떻게 해.”
“에이, 설마.”
“난 그거 절대 못 참아.”
그의 배려에 나는 빙그레 웃었다.
안더스 트리탄 후작은 그런 친우의 모습을 낯설게 응시했다.
“카시안.”
“왜?”
“나는?”
카시안이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안더스에게 물었다.
“넌 뭐.”
“왜 나는 아무것도 안 해줘? 나도 이 학교 이사고. 마법 못 써서 위험한 건 똑같은데.”
후작의 부탁에도 카시안은 대꾸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친구. 이러기야?”
“사내자식이 뭐 저리 겁이 많아?”
트리탄 후작은 잔뜩 배신당한 얼굴로 카시안을 바라보다가, 끝까지 원하는 답을 얻어내지 못하자 이내 시선을 돌렸다.
그렇게 나 혼자 투명한 유리 방어막을 온몸에 두른 채로, 고대하던 면접이 시작되었다.
카시안의 말처럼 대단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게 꼭 마법사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서.
마법사는 그저 마법만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은 무지했던 나의 편견이었다. 바보같이 카시안과 알버트와 늘 함께 지냈으면서도, 나는 이제야 깨달았다. 이들이 대단한 것은 마법사여서가 아니라, 열심히 살고자 부단히 애써왔던 노력 때문이라는 것을.
마법 능력과는 별개로, 지원한 분야에 폭넓은 소양을 지닌 이들이 대다수였다. 심지어 몇몇은 자신의 마력을 수업에 적용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해오기도 했다.
예를 들면 제일 첫 번째 면접자.
자신을 대지의 마법사라고 소개한 그는 투명한 유리 상자 안에서 비가 어떻게 내리는지, 번개는 어떻게 치는지. 해가 뜨고 지는 과정 등을 마법으로 시연했다. 한 편의 연극처럼, 그가 설명할 때마다 유리 상자 내부는 빛으로 가득했다가, 어둠이 찾아왔다가. 비와 눈이 쏟아졌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했다. 그의 시연이 나를 포함한 모든 면접관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그밖에도 시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면접자도 있었다. 봄날의 시를 읽자 눈앞에 분홍 벚꽃 잎이 가득 흩날리는 장면이. 바다의 시를 읽자 철썩철썩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는 장면이. 음식에 관한 시를 읽을 때는 눈앞에 튀긴 닭이 아른거렸다. 이번에는 그 냄새까지 선명해서, 꼬르륵거리는 배를 한껏 움켜잡고 면접을 마무리해야만 했다.
지원자 중에는 마르쿠스도 있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라고 점수를 잘 줄 수는 없는 법!
나는 더욱 매의 눈을 뜨고 마르쿠스의 발표를 지켜보았다.
“저는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는 것과 더불어, 그간의 연구를 이 자리에서 조금 선보일까 합니다.”
마르쿠스는 커다란 화분을 들고 들어와 씨앗을 꾹꾹 눌러 심었다. 그 위를 지팡이로 몇 번 두드리자…… 옥수수나무가 곧 천장을 뚫을 듯 크게 자라났다. 줄기 끝에, 연둣빛 수염을 잔뜩 매달고 이파리로 수줍게 얼굴을 가린 옥수수가 주렁주렁했다.
우리 모두 그 장면을 감탄하며 감상했다.
그러나 마르쿠스는 아직 놀라기 이르다는 듯, 삽으로 그 화분 바닥을 파냈다. 그 뿌리 밑에, 감자들이 하나씩 고개를 내밀었다.
카시안이 두 눈을 의심하며 물었다.
“감자?”
“여러분께 공개하는 제 역작! 옥감이입니다!”
“…… 뭔 감이?”
“아, 옥감이요. 옥수수랑 감자 말입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랐지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안더스 트리탄이었다. 저런 괴생명체 같은 식물은 난생처음이었으니.
트리탄 후작의 경악하는 모습을 흘끗 바라보던 카시안이 마르쿠스에게 물었다.
“잘했어. 진짜 대단하다고.”
“감사합니다, 공작님!”
“근데…… 네 연구, 비밀 아니야?”
“그거야 그렇죠!”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카시안은 낮게 신음했다.
“그럼…… 그걸 지금 왜 여기서 보여줘?”
당황한 마르쿠스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 그게……. 다들 쟁쟁한 분들이 지원하셔서 뭔가 특별한 걸 보여야 했으니까요.”
“이게 급하다고 영업비밀을 막 뿌리고 다니네. 여기 경쟁자가 앉아있는지도 모르고.”
“하하.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니니까요.”
멋쩍게 웃던 마르쿠스가 특히 트리탄 후작을 향해 날렵한 표정을 내보였다.
“이게 제 능력의 끝이 아닙니다! 저는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것을 개발하고 있다고요!”
“하아……. 알았어, 이만 나가봐.”
한숨을 가득 내뱉은 카시안이 손을 휘휘 저었다.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지원자가 들어왔다.
모르슈아라는 이름의 마법사는, 범상치 않았다. 얼굴의 절반만 한 뿔테 안경을 쓰고 사뿐한 걸음걸이로 들어왔다. 등에는 온갖 악기를 메고 있었기에 연주자인가 싶었다.
“아, 연주하실 건가요?”
“아뇨. 전 연주 못 합니다.”
“네? 그럼 왜 악기를…….”
“이걸 들고 다녀야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아…….”
나는 그제야 다시 이력서를 훑었다. 특기를 묻는 부분에 당당한 글씨로 ‘성악’이라고 적혀있었고, 특기에 맞게 음악 선생님으로서 지원했다.
“죄송해요. 노래하시는 분이셨군요.”
그가 콧잔등에 내려앉은 뿔테 안경을 쓱 올리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럼 들어볼게요.”
모르슈아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푸, 푸우우우 푸푸…….”
그때였다.
모두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 것은.
모르슈아의 노랫소리가 들리자마자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의 고개가 아래위로 흔들렸다.
“……?”
나는 어리둥절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심지어 알버트는 드르릉 코도 고는 것이 아닌가……!
면접을 봐야 하는데…… 아무도 듣지 않고 잠을 자다니! 이게 웬 무례인가 싶어 다급하게 모르슈아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열심히 노래하는 저 성악가를 멈추게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가 아닌가에 대해 한참을 갈등했다.
먼저 노래를 중단한 것은 뜻밖에도 모르슈아였다.
“…… 처음입니다……!”
“네?”
“제 노래를 듣고도 주무시지 않는 분은…… 원장님이 처음이에요!”
“…… 네?”
“제 마법은 노래로 사람들을 재우는 것입니다.”
“그런 말은 이력서에도 없었는데요.”
“죄송합니다. 이 능력을 밝히면 면접을 아예 못 볼 터이니 어쩔 수 없이……. 사실 노래를 부르고 난 뒤에도 이렇게 면접관과 대화를 나눈 것은 처음이라…….”
“…….”
“다들 잠드는 바람에 누구와도 말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근데 왜 저는 멀쩡한…… 아……!”
나는 나란히 앉아있던 사람들을 살펴보다가, 내 몸에 둘려 있는 방어막을 발견하고 탄식했다. 그러니까 이게……. 저 수면제 같은 노랫소리를 막아줘서……. 살짝 기가 막혀 작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저, 모르슈아 씨. 그럼 수업시간에 아이들은 다 자는 건가요?”
내 질문에 모르슈아의 눈꼬리가 축, 아래로 떨어졌다. 검은색 뿔테 안경 너머로 그의 슬픈 눈동자가 보였다.
“역시, 좀 그렇죠?”
나는 괜히 안쓰러워져서 이 상황을 어쩌면 좋을까 고심했다.
“아무래도 음악 선생님은 안 되겠고. 마침 딱 맞는 자리가 하나 있어요.”
“그게 정말입니까?”
“네. 모르슈아 씨라면 잘 해주실 수 있겠어요.”
그날 밤, 모르슈아는 온갖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보육원으로 왔다.
거실 벽난로 앞에는 밤이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이들이 앉아있었다. 여기저기서 상처받고 방황했던 아이들은, 지붕이 있는 따뜻한 곳에 있으면서도 여전히 불면에 시달렸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모르슈아가 책을 펼쳤다. 그가 노래 부르듯 책을 읽자, 너나 할 것 없이 쌔근쌔근 잠이 들었다.
모르슈아는 흐뭇한 미소로 곁에서 잠든 아이들의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올려 주었다. 베개가 필요한 아이들의 머리맡에 푹신한 베개를 놓아주고, 금방 잠이 깨버린 아이에게는 작은 곰 인형을 품에 안겨주었다.
그런 그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내가 만족스럽게 자리를 떠나려 했을 때, 모르슈아가 조용히 나를 불렀다.
“원장님.”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가 꾸벅 고개 숙여 인사했다.
“덕분에 이렇게 보람찬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감사해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모르슈아가 방긋 웃었다. 그의 얼굴에서, 행복이라는 감정이 물밀 듯 밀려왔다.
*
그렇게 성공적으로 선생님을 모집하고, 학교 역시 문을 열었다.
나는 아이들이 처음 등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출근했다. 마르쿠스와 모르슈아를 비롯한 선생님들 역시 벌써 정문 앞에 서서 학생들을 기다렸다. 사탕을 담은 선물 바구니를 양손 가득 들고서. 원장실 창가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끼고 있을 때, 난데없이 노크 소리가 들렸다.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이는 트리탄 후작이었다.
“후작님, 오셨어요? 미리 말씀 주셨으면 제가 찾아갔을 텐데요.”
“아닙니다. 저도 함께 보려고 온 거니까요. 첫날이잖아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작……, 아니. 트리탄 이사님.”
“제 일이기도 한 걸요.”
우리 두 사람은 나란히 창가에 섰다.
곧이어 아이들의 복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등교하던 아이도 있었고, 혼자서 씩씩하게 들어오는 아이도 있었다. 미카엘과 엘리안처럼 보육원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나오는 아이들 역시.
“좋네요.”
트리탄 후작은 비서가 건네준 커피를 한 모금을 마시며 내게 말했다.
“아이들이 웃고 있는 걸 보니 에벨 원장님과 이 일을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저야말로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저를 믿어주신 거잖아요.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셨으면서도.”
“맞아요.”
후작이 커피 한 모금을 더 마셨다.
“사실, 처음에는 카시안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거절했을 겁니다. 사업이란 게 본디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철저히 이익을 따져야 하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원장님에게 흥미가 생기더군요.”
“흥미요?”
“무슨 배짱으로 이 보육원의 권리를 전부 넘기라는 건지.”
나는 제페토가 후작을 찾아갈 것을 알고 무리한 부탁을 다급하게 했던 때를 떠올렸다. 스르륵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는…… 제가 너무 무례했죠.”
“아닙니다. 이상하게 믿어보고 싶었으니까요.”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지난번 재판에서 하셨던 말씀……. 분명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그 또한 감사드립니다.”
나는 트리탄 후작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레트랑 백작의 최종재판이 열렸던 날을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