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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맞고 튀었는데 공작님이 집착한다-100화 (100/135)

100.

린다는 아침부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택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어제부터였다.

응접실에서 유난을 떨어대는 낸시를 별채로 데려다 놓고 다시 본 저택으로 돌아갔을 때, 하급 하녀 하나가 귀한 장식품을 깨뜨렸다. 하녀장으로서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혼내는 일이야 일상다반사라지만, 이번 일 만큼은 이상하게 더욱 신경이 쓰였다.

리엔나는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그뿐이었다면 큰 실수로 놀라서 그랬거니 했으련만. 유리 조각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음에도 치울 생각은 않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게 아니던가. 오늘따라 하녀들이 왜 이렇게 수선스러운 것인지. 린다는 분노를 꾹꾹 눌러가며 리엔나를 불렀다. 최대한 나긋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그러나 리엔나는 귀신이라도 본 듯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잘잘못을 따지지도 않았는데 무릎을 꿇으며.

[“제, 제 잘못이에요. 다 제가 그랬어요……!”]

겁에 질린 사슴처럼 벌벌 떨며 용서를 구했다. 초점을 잃은 눈은 방황하며 허공을 떠돌았고, 살이 없어 움푹 팼던 뺨은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무언가 일이 있었음을 인지한 린다가 자초지종을 물었다. 하나, 상대는 고개만 도리도리 휘저으며 침묵할 뿐이었다. 답답했던 린다가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었다.

[“알았으니 서둘러 정리하고 쉬도록 해.”]

사태를 정리한 뒤 별채로 돌아온 린다가 목격한 것은 창고에 몰래 숨어든 낸시였다. 린다는 점점 평정심을 잃어가는 듯했다. 불같이 화를 내려던 찰나, 낸시의 입에서 나온 단어 하나에 린다의 기분이 묘해졌다.

아나스타샤? 그 이름이 지금 왜 나온담? 그러나 그 의미를 이해하기도 전에, 낸시의 손에 들린 목걸이가 하녀장을 경악하게 했다. 린다는 저 목걸이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아침 해가 밝자 린다는 자신의 방 옆에 있는 창고로 향했다. 그곳에서 물건 하나를 챙겨 들고 곧장 아델트 공작을 찾아갔다. 무거운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 그녀의 표정에 침울함이 감돌았다.

*

카시안은 피곤한 두 눈두덩이를 양 손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누적된 피로가 온몸으로 쏟아져 내리자 책상 위로 쓰러지듯 얼굴을 기댔다.

아침 일곱 시. 귀가한 지 딱 한 시간이 지난 시간이었다.

어제 아침 식사를 하며 ‘금방 돌아올게.’라고 약속했던 것이 무색하게,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시장과 상업지구를 돌아다니며 영지인들의 분위기를 살피고, 아델트 내의 학교와 보육원의 운영상태를 점검했다. 그즈음, 붉은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쯤하고 돌아가자고 했건만, 알버트는 이렇게 나온 김에 전부 둘러보아야 속이 시원하지 않겠냐며 물러서지 않았다. 덕분에 결계가 쳐진 구역을 전부 돌아다니며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오니 아침 여섯 시였다.

시아라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그녀와 아침식사라도 같이 하기 위해서, 카시안은 시아라의 침대 옆자리에 등을 기대어 앉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며, 단잠에 빠진 그녀가 깨어나길 기다렸다. 분명 그랬는데……. 눈 떠보니 시아라는 온데간데없고 카시안 혼자 그녀의 침대에 누워 있었다. 깜빡 잠이 든 사이에 외출해버린 것이다.

‘딱 한 시간 졸았건만…….’

한집에 같이 사는데 대화 한번 제대로 못 나누다니.

여전히 집무실 책상에 뺨을 기대고 있던 카시안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불쑥 찾아왔던 그 이상한 여자랑은 별일 없었는지 물어봐야 하는데.

똑똑. 때마침 노크 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공작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하녀장이 문틈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조금 피곤한데. 알버트랑 말하지 않고?”

“아가씨와 함께 외출을 나간 데다가 무척 중요한 이야기라…….”

“하, 그 자식은 체력도 좋네. 들어와. 무슨 일인데 그래?”

가까이 다가온 린다가 책상 위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큼지막한 보라색 사파이어 보석이 박힌 귀걸이 한쪽이었다.

“이게 무엇인지 기억하시나요?”

“모르겠는데.”

“엘리나 트리탄 후작 영애의 귀걸이입니다. 그 영애가 죽고 나서 제가 지하 감옥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것이지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여자가 언급되자 아델트 공작이 인상을 찡그렸다.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거지?”

“어제 저택을 방문했던 손님이 이 보석과 똑같은 모양의 목걸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게 왜? 같은 모양의 보석이 유행인가 보지.”

카시안이 관심도 없다는 듯 대꾸했다. 그러나 하녀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공작님. 트리탄 영애는 사치가 심하기로 소문났던 여자입니다. 그 영애가 입고 다니는 옷은 늘 한정판이라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았지요.”

“…….”

“옷뿐만이 아닙니다. 구두도, 간단한 머리 장식도, 하물며 이런 보석까지. 이 보석은 세상에 딱 하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 여자가 사치가 심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아델트 공작은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냐는 표정으로 린다를 응시했다.

“본론을 말해. 하고 싶은 말이 뭐지?”

“혹시 트리탄 영애와 함께 감옥에 갇혔던 하녀를 기억하십니까?”

“알지.”

가물가물한 그 하녀의 이름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아나…….”

“맞아요. 아나스타샤.”

그 이름을 듣자마자,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카시안의 동공이 확대되었다. 어디에선가 들어보았던 말투와 목소리, 묘하게 익숙했던 행동들. 저택을 찾아왔던 불청객을 보며 들었던 기묘한 느낌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카시안의 시선이 다시 린다가 가져온 귀걸이로 향했다.

“그 아이가.”

“설마…….”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

자리에서 튕겨져 떨어지듯 벌떡 일어났다.

“지금 시아라는 어딨지?”

“알버트와 함께 보육원 부지에 가…….”

린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카시안이 사라졌다.

*

공사는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광활하고 황폐했던 대지 위로 커다란 건물 두 채가 우뚝 솟아있는 모습에, 새삼 웅장한 기분이 들었다. 진짜 내가…… 학교 원장님이 된다고……?

사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내 이름 앞에 ‘원장’이라 적힌 명함이 생기고, 책임을 다해 지켜야 할 학생들이 생기고.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의 안락한 쉼터를 만들어주는 일. 이 모든 것들이 내 인생에 가당키나 했던가. 적어도 몇 개월 전까지는 단 한 번도 그려본 적 없는 미래였다.

뿌듯함과 설렘만큼 걱정도 한가득하였다. 이만큼 커다란 책임의 무게를 느껴본 적이 없으니.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보란 듯 잘 해야 할 텐데.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이제 너무 많이 생겨버렸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지?

그런 압박감에 이따금 악몽에 시달린 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처음이라 더욱더 의욕에 가득 차 있었으나, 처음이기에 또한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몇 번이고 다짐하지 않았던가. 이제 더는 물러서지 않을 거라고. 하고 싶은 것은, 다 하고 말 거라고.

나는 힘차게 심호흡하며 잡동사니가 들어있는 상자 하나를 힘차게 들어 올렸다. 그때, 뒤에서 알버트가 물었다.

“아가씨, 이건 어디다 둘까요?”

“아! 그것도 원장실에 둘게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알버트- 엄마야!”

뒤돌아 있던 몸을 바로 했을 때, 갑자기 나타난 누군가와 부딪쳤다. 덕분에 손에서 미끄러진 상자가 공중을 부양했다. 그러나 탄식의 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상자는 무사히 상대방의 품에 안착했다.

“공작님?”

나는 갑자기 나타난 카시안을 보며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왜 벌써 일어나서 여기에 있어요. 잠도 얼마 못 잤으면서.”

카시안은 내 눈만 지긋이 응시할 뿐, 아무 말도 없었다. 텔레포트를 이용해 여기까지 온 걸 보면 급한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한데. 누가 ‘얼음!’이라고 외쳐 꽁꽁 얼려놓은 것처럼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 네가…….”

“응? 안 들려요.”

“…… 네가 잘못되는 줄 알고.”

그의 눈이 겁에 질려있었다.

“나쁜 꿈 꿨구나? 그래서 곧바로 나 보러 온 거예요?”

“…….”

“오빠, 나 이렇게 씩씩하게 있었는데.”

카시안의 양 뺨을 감싸 쥐었다. 그제야 ‘땡!’ 하며 얼음 마법이 풀린 듯, 카시안은 나를 끌어안았다. 그 탓에 그의 손에 있던 상자 속 내용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저 멀리 알버트가 이마를 탁, 치며 장탄식하는 것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품에 안겨 그의 등을 토닥거렸다. 문득 이 남자가 왜 이런 낯빛으로 나를 찾아왔는지 알 법했다.

“혹시…… 예카틸리나 때문에 그래요?”

“아무 일도 없었지.”

“당연하죠.”

“이렇게 멀쩡한걸요. 그렇게 위험한 애는 아니라고 했잖아요.”

사실 예카틸리나가 흥분했을 때, 온몸에 털이 쭈뼛 설 정도로 기겁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괜한 걱정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하고. 게다가……. 과연 예카틸리나가 나를 또 찾아올까? 그녀가 저택을 나서기 전에 내게 보였던 태도를 생각하면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안 볼 사람처럼 매몰차게 돌아섰으니.

차라리 나도 그게 속 편했다. 만나봐야 불편하기만 한 사람을 굳이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고, 지금까지 그 애의 행동이 전부 가식이었다는 걸 알았지 않은가.

나는 카시안을 안심시키기 위해 이제 다 끝났다는 듯 웃어 보였다. 그러나 카시안은 심각하고 무거운 얼굴이었다.

“아니. 그 여자는 위험해.”

단호한 카시안의 말에 살짝 어리둥절했다.

“이제 만날 일도 없어요.”

그는 천천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 여자가 너를 다시 찾아오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야 해.”

내 얼굴에 머물고 있는 미소도 카시안을 따라 점차 사라져갔다.

“…… 뭔가 있구나.”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 그렇지만…… 내 직감이 말해. 위험한 여자라고.”

“…….”

“알버트랑 저택에 먼저 가 있을래? 네 방앞으로 기사들을 배치해서 경비를 늘리라고 할게. 여자의 행방을 찾을 때까지 저택에만 있으면…….”

카시안은 안절부절못하며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불안해 보였다.

“카시안…….”

“찾아왔던 날 곧장 감옥에 가둬놨어야 했는데 바보같이…….”

“카시안!”

힘줘 부르자 그제야 시선이 나를 향했다.

“같이 가요. 예카틸리나 찾으러. 그 애가 어디 사는지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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