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마차를 타고 가는 내내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잠깐 얼굴만 마주하고 곧바로 눈을 감아버린다던가, 애써 깨어났던 유모가 다시 잠들어버린다던가. 아니면 영영 보지 못한다거나. 머릿속에 온갖 최악의 상황이 펼쳐졌다.
그것은 펠릭스와 카시안도 마찬가지였는지, 병원으로 가는 내내 마차에는 침묵만 가득했다.
마차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병실로 달려갔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유모는 푸릇한 미소로 나를 반겼다. 나는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침대 헤드에 기대앉은 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야위었고 손가락은 뼈마디밖에 없었다. 유모는 그 가냘픈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었다.
“아가씨……. 우리 아가씨…….”
“유모…… 괜찮아요……?”
“언제 이렇게 크셨어요.”
아직 건강이 완전치 못한 유모의 목소리는 사막의 흙바닥처럼 갈라졌다. 하지만 이내, 마른 흙바닥은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그 물기 어린 목소리에서 어린 시절 내가 느꼈던 유모의 애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나 역시 유모를 끌어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세상에. 이제 잘 우시네요. 기특하셔라.”
유모는 내 등을 토닥거렸다. 그러다 망설이며 물었다.
“아가씨. 에벨 마님은요?”
“… 어, 엄마는…….”
나는 짤막하게 나와 엄마가 겪었던 일을 전했다. 그러자 유모의 두 눈에 무수한 물방울이 가득 들어찼다.
“죄… 죄송해요. 제가 아가씨랑 마님을 마지막까지 지켜야 했는데. 제가 이렇게 아파 버린 탓에……. 저를 용서하세요.”
“아니에요! 절대 그런 소리 마세요.”
나는 유모를 더욱 깊게 그러안고 고개를 내저었다.
“이렇게 일어나줘서 감사해요. 정말…… 정말로 다행이에요. 한참이나 기다렸어요.”
“아가씨…….”
우리는 한참이나 그렇게 있었다. 해묵은 눈물만 쏟아내면서. 겨우 진정이 된 것은 아델트로 이사와 우연히 펠릭스를 마주쳤던 이야기를 할 즈음이었다. ‘이런 우연이 또 있을까요.’ 그녀가 손뼉을 치며 좋아하던 찰나, 병실 문 앞에서 몇 차례 헛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유모는 펠릭스와 함께 서 있는 카시안을 발견했다.
“어머나, 저 신사분은…….”
“아……. 카시안 폰 아델트. 아델트의 공작님이세요.”
내가 힘차게 말하자 유모는 고개를 갸웃갸웃했다.
“아델트 공작님이요……? 그런데 왜 제가 낯이 익은지…….”
우리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던 카시안이 긴 다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그리 흔한 얼굴은 아닌데.”
“네? 네, 물론 그 말씀이 맞습니다.”
“꽤 잘생긴 편이라.”
카시안은 일부러 너스레를 떨며 내 손을 잡았다. 그러자 유모의 얼굴에 함박 같은 웃음이 떠올랐다.
“네. 우리 아가씨의 짝으로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압니다. 지금은 제가 이 사람 짝이자, 보호자거든요. 그러니 아무 걱정하지 마시고 하루빨리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공작님.”
그러나 모두 웃고 있는 와중에도, 펠릭스의 얼굴은 죽상이었다.
“엄마는 누나한테 꼭 해야 할 말이 있다고 하루 종일 노래 부르더니 겨우 그게 다야?”
“얘는 또 왜 이리 날이 서 있담?”
“큰일 난 줄 알고 헐레벌떡 달려갔다가 왔건만……. 참나. 나는 나가볼게. 마저 얘기들 해.”
툴툴거리던 펠릭스가 밖으로 나가자 유모의 표정이 사뭇 어둡게 가라앉았다.
*
펠릭스는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시아라의 손을 꼭 잡고 자기가 그녀의 짝이니 보호자니 떠들어대는 아델트 공작을 보자 울화가 치밀었다. 그런 제 속도 모르고, 엄마는 두 사람이 잘 어울린다며 응원이나 하고 있으니.
‘인생 진짜 서럽다 서러워.’
제 편이라고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한숨을 푹푹 내쉬며 병실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문밖에 서 있던 여자 하나가 황급히 뒤도는 것이 아닌가. 누군지 확인 안 해도 뻔히 알 수 있었다. 제 앞에서 저런 행동을 하는 여자라고는 소피아 엘링턴, 딱 한 명뿐이니까.
“왜 또 여기서 이러고 계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그, 그야 마, 마리아 환자분이 괜찮은지 살피러 온 거죠.”
“아, 숨으시기에 제가 또 뭘 잘못한 줄 알고. 엄마는 뭐…… 보시다시피.”
문에 난 작은 유리창 너머로 엄마의 행복한 모습이 보였다. 그 곁에서 웃고 있는 시아라와 공작 역시. 씁쓸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본인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었다. 어차피 저 옆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라고. 제발 욕심내지 말라고.
펠릭스는 창문에서 시선을 뗐다.
“바빠 보이시는데, 그럼 수고하세요.”
미련 없이 돌아서려는데, 다급한 소피아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펠릭스!”
이번에는 ‘저기요.’가 아닌 것이 퍽 마음에 들었다. 겨우 이름 한 번 제대로 불렸을 뿐인데.
“네. 소피아 엘링턴 선생님. 하실 말씀이라도?”
“다친 곳은 괜찮으세요?”
“치료해 주신 덕분에 이제 괜찮습니다.”
“다행이에요. … 저랑 약속한 거 잊지 않으셨죠?”
“잊을 리가 있나. 제 목숨이 달렸는데.”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소피아의 얼굴빛이 금세 화사해졌다.
“그럼 보답으로…… 이, 이거 가져가세요!”
얇은 종이봉투 한 장을 건네는 소피아에게 펠릭스가 의아하게 물었다.
“덕분에 안 아픈 건 전데, 왜 엘링턴 선생님이 보답하세요?”
“주말에 열리는 전시회 티켓이 남아서요! 같이 가자는 거 아니에요. 그냥 혼자라도 가시라고요. 그림 좋아하시잖아요. 전 정말로 바빠서 이만 가볼게요.”
제 할 말만 남기고, 소피아는 재빠르게 사라졌다. 펠릭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진짜 제멋대로야. 같이 가지고 묻는 게 보통 있는 일 아니야?”
그러나 걸음이 어찌나 빠르던지. 소피아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
나는 유모의 심각한 표정을 보자마자, 무언가 범상치 않은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 짐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유모는 무겁게 입을 뗐다.
“펠릭스가 아가씨를 만났다는 소식을 전했을 때부터,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요.”
기침 탓에 자주 콜록거리면서도,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줘 또박또박 말했다.
“아가씨가 에벨 가문에 오시게 된 날. 그날의 진실에 대해서 꼭 아셔야 해요. 꽤 힘든 이야기일지도 몰라요. 그런데…… 공작님께서 함께 들으셔도 괜찮을까요?”
유모는 카시안을 힐끔 응시하며 내게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카시안의 손을 더욱 굳세게 잡았다.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지…….”
담담하고 무거운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아가씨는 너무 어렸고, 많이 아팠어요. 그래서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하실 테지만.”
“네.”
“그날, 에벨 백작님은 아가씨를 품에 안은 채로 급하게 저택에 들어오셨어요. 온몸에 성한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새파란 멍 자국만 가득했지요. 저는 그 참혹한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답니다.”
“에벨 백작님……. 그러니까 제 아버지께서 보육원에서 쓰러진 저를 데려오신 건가요?”
그녀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제페토 아르게모나……. 그 쓰레기 같은 보육원 원장은 아가씨를 입양 보낼 생각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을 거예요.”
“그럼 어떻게…….”
“그자가 아가씨를……. 노예 상인에게 팔려고 했거든요.”
“…… 네?”
“아가씨뿐 아니라 보육원에서 함께 지냈던 아이들 몇몇을 골라 노예거래를 하려고 했어요.”
“그, 그게 지금 무슨……!”
“아가씨가 저택에 오게 된 날이 바로 그날이었지요.”
충격에 휩싸인 내가 의자에서 일어나 펄쩍 뛰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내리막길을 지나던 마차가 고장 나 그대로 굴러 떨어졌고, 추락한 마차에 불이 붙었죠. 에벨 백작님은 우연히 그 곁을 지나시다 그 장면을 목격하셨어요. 힘써보셨으나 거기서 구한 것은 아가씨뿐이었지요. 불길이 거세진 마차는…….”
더 이상 말을 잇기 힘들어하는 유모에게 카시안이 물었다.
“제국에서 노예거래는 불법입니다. 지금 이 말이 전부…… 사실입니까?”
“네. 제 양심을 걸고 맹세할 수 있어요. 에벨 백작님께서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셨던 것이 바로 그 때문이었거든요. 더는 그렇게 희생되는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아동 구호재단을 만드시려 하셨어요.”
“구호재단이라……. 실패했을 것이 뻔하겠군요. 이를테면 누군가의 방해 같은 것들로 인해.”
카시안의 추론에 유모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아요. 처음에는 제페토 그자가 단독으로 벌인 짓인 줄 아셨던 거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어요. 방금 아델트 공작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제국에서는 노예거래가 불법인데. 그자가 어찌 그리 당당했겠어요?”
“… 귀족이…… 그를 도왔군요.”
유모는 차분히 눈을 감았다.
“제페토의 뒤에 있던 귀족들이 누구인지 혹시 아십니까?”
“아니요. 그것까지는……. 그렇지만 한 둘이 아닐 거라 확신해요. 가문이… 정신 차릴 새도 없이 폭삭 무너졌거든요.”
생각에 잠긴 카시안이 무거운 눈꺼풀을 꾹꾹 눌렀다.
“다만 제가 기억하는 것은, 에벨 백작님은 여기저기서 음해를 당하시다가 유명을 달리하셨어요. 혹여 아가씨가 위험에 처할까, 마차에서 아가씨를 구해온 사실을 외부에 밝히지 않았지요.”
“…….”
“그러니 더욱 오해를 샀죠. 그들은 이미 증거를 지운 뒤였고, 에벨 백작님은 마땅한 이유도 없이 보육원을 수렁에 빠뜨린다면서.”
“아이들을 구하겠다던 사람이 도리어 보육원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였겠군요.”
“네, 맞아요.”
“이, 이런 사실을…… 왜, 왜 이제야…….”
내 물음에 유모가 슬프게 웃었다.
“어린 아가씨께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숨긴다는 것이 되려……. 죄송해요.”
“저,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못난 어른들을 마음껏 미워하세요. 탐욕스럽고 악독한 어른들을 욕하셔도 괜찮아요. 다만…. 적어도 에벨 가문의 모든 이들이 아가씨를 사랑했답니다. 정말로. 아가씨가 너무 예뻐서, 저희는 정말로 행복했어요.”
그녀는 굵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트리며 내게 연신 사과했다.
“유모가 잘못한 일이 아니잖아요. 제발 미안하다 하지 마요. 제발요…….”
그 뒤로도 유모는 한참이나 울다가, 약을 먹고 겨우 잠이 들었다. 병원 정문을 나서는 나와 카시안 사이에는 어떤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 나만큼이나 카시안은 분노했기에. 나는 덜덜 떠는 카시안의 양손을 붙잡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눈동자가 허공에서 맞닿은 순간 알았다. 내가 지금 누구를 만나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서둘러 아델트 저택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