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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맞고 튀었는데 공작님이 집착한다-63화 (63/135)

63.

무너진 결계를 복구하는 일이 숨 쉬듯 간단한 일이었다면 좋았으련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단시간 안에 결계를 다시 세우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령 운이 좋아 빠르게 해결한다 해도, 황폐해진 토양이 자정 작용을 일으킬 때까지 목 놓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여기서 상황이 더 길어졌다간, 불안한 제국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리란 사실은 자명했으므로.

마법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뉘었다. 발현하는 마법에 따라 크게 공격, 방어. 그리고 치유.

세 가지 주술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마법사 역시 드물게 존재했으나, 아주 먼 과거의 이야기였다.

아델트 가문의 방어능력과는 별개로, 카시안은 공격마법에 능했다. 한창 패기 넘치던 시절, 시도 때도 없이 칼을 휘두르던 그의 본능이 마법으로 발현된 셈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아델트의 피를 이어받았기에, 마력이 완전해진다면 방어 역시 가능할 터였다. 시아라를 위해 방어막을 휘둘렀던 어린 시절처럼.

그러나 치유는 달랐다. 죽은 생명을 다시 살리는 마법은, 적어도 그에게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영역이었다.

그러니 그가 꼭 필요했다.

메마른 땅에도 생명을 불어넣는 정화의 마법사. 마르쿠스 린데베르크, 그가.

물론 마르쿠스가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이 조금 특이하기는 했지만, 이 상황을 헤쳐나갈 비장의 무기가 되리란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일 년 전부터 홀연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아직 소식이 없나?”

“아시잖아요. 그 놈이 보통 괴짜가 아닌 거. 숨을 만한 곳은 다 뒤지면서 찾고 있습니다만. 어찌나 꼭꼭 숨었는지 나오질 않네요.”

카시안은 목이 타들어 갔다. 자신의 목에도 가뭄이 든 걸까. 쩍쩍 갈라지는 기분이었다.

“찾아야 해. 무조건.”

“예. 받들겠습니다.”

*

나와 한나를 태운 마차는 한참을 달렸다.

도심에서 멀어질수록 마차 바퀴가 심하게 덜컹거렸다. 몸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와중에도, 한나는 고단한 잠을 이어갔다. 그녀의 감은 두 눈 아래로 시커먼 그늘이 내려앉았고, 투명했던 피부는 푸석푸석 상해있었다. 레스토랑 걱정에 며칠 내리 마음고생이 심했던 탓이리라.

나는 한나의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모포를 끌어 올려 따뜻하게 덮어주었다. 내 손이 닿자 잠시 뒤척거리던 한나는, 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차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광경은 참담했다. 이제 곧 찬란한 여름이 다가오지만, 아직도 쓸쓸한 한겨울 같았다. 구름 낀 하늘에서는 빛 한 줄기 내리쬐지 않았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아직 멀쩡한 도심과 다르게 이곳은 말 그대로, 잿빛이었다.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카시안을 떠올렸다. 평소와 달리 얼굴에 근심 빛이 가득하던 이유가 이 때문이었겠지. 그 남자는……. 그럼에도 나를 보며 웃었던 거구나.

내 앞에 앉아 잠이 든 한나와 나를 안아주던 카시안.

두 사람이 처한 상황을 생각하자 마음이 착잡하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런 일은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애초에 마법사만 세울 수 있는 결계가 무너져 벌어진 일이라니까. 그렇다면 그것을 해결하는 것 또한 마법사만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내가 카시안을 도울 방법은 없는 걸까?’

한참을 고민했다.

하지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애먼 유리창에 이마를 콩콩 찍는 것뿐이었다.

*

마차는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한나가 말했던 힌더베레 숲은, 오는 길에 보았던 풍경들과 다른 바가 없었다. 이미 생을 달리한 사람처럼, 숲에서는 어떠한 생명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숲 내부는 더욱 심각했다.

메마른 흙바닥 위로 새까맣게 썩어 비틀어진 산딸기들이 어지러이 흩뿌려져 있었다. 과일 속의 과즙은 증발한 지 이미 오래였고, 간신히 그 형태만 알아볼 수 있었다. 어쩌다 그것들을 밟자 파스스 소리를 내며 잿더미처럼 부서졌다.

한나는 망연자실하여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 정말이잖아…….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시아라…. 이제 어쩌죠. 이러다 우리 다 망해버리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나. 진정하고 잠깐 마차에 가서 쉬어요. 내가 조금 더 둘러볼게요. 혹시 모르잖아. 아직 괜찮은 곳이 있을지.”

그러나 한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니야……. 지금 여기 멀쩡한 게 어디 있겠어요.”

“금방 돌아갈 테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요.”

나는 한나를 부축해 마차로 데려다주고, 다시 숲의 입구에 섰다.

솔직히 혼자 그 안에 들어가기가 무서웠지만, 한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곰이 나온대도 때려잡으면 그만이라던 그 말이.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안으로 들어갔다.

힌더베레 숲 내부는 복잡한 미로나 다름없었다.

오른쪽, 왼쪽. 계속해서 양 갈래 길이 나왔다. 그러자 슬슬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다행히 마차에서 먹기 위해 한나의 레스토랑에서 챙겨왔던 코코넛 쿠키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이것마저 없었다면 꼼짝없이 길을 잃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어느 전래동화에서 읽었던 것처럼, 내가 지나는 숲의 길목마다 커다란 쿠키를 쪼개 바닥에 뿌렸다. 메마른 땅 위로 흩뿌려진 하얀색 코코넛 쿠키 조각이 유난히 눈에 도드라졌다.

그렇게 얼마나 계속 걸었을까.

내 손에는 더 이상 바닥에 내려놓을 쿠키가 남아 있지 않았다.

‘이대로 더 가면 위험할 텐데. 이쯤하고 다시 돌아갈까?’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여전했다. 내 주변에서 활기를 띠는 것이라고는 오직 나뿐이었으니까.

살짝 스친 바람에도 다 죽은 나뭇가지들이 힘없이 흔들렸다. 음울한 숲의 소리에 절망한 나는 뒤돌았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위해서.

그런데 그 순간, 눈앞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얇고, 투명한 유리막이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단번에, 카시안이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던 방어막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이게 바로 그 문제의,

“… 결계?”

분명 과거에 카시안이 만든 것은 단단했다. 아무리 두드려도 실금 하나 생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것은 달랐다. 금이 간 정도가 아니라, 이미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 구멍들 주변으로 거미줄처럼 갈라진 표면이,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위태로운 상태를 보여줬다.

나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게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결계 바로 앞까지 다다르자 한기가 흘렀다. 오스스 소름이 돋는 것이, 그저 차가운 기운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했다. 정말로, 살을 에는 것처럼 따가웠다. 이 결계 바깥의 세상이 이토록 춥다는 이야기겠지.

나는 망가진 유리벽을 향해 홀린 듯 손을 뻗었다.

그것이 내 손가락 끝에 닿으려던 그때,

“위험합니다!”

멀리서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 곧장 뒤돌았더니 뜻밖의 인물이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 알버트 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아가씨, 그건 제가 묻고 싶습니다. 아까 분명 시장에 가신다 하지 않으셨나요?”

“아 그게…… 산딸기가 필요했거든요. 그래서 여기 와봤더니 전부 이렇게…….”

말끝을 흐리며 사방으로 눈길을 던졌다. 내 시선을 따라 한 바퀴 빙 둘러보던 알버트가 민망한지 헛기침을 했다.

“… 벌써 소식을 들으신 것 같군요. 보시는 것처럼 숲이 이 모양이라 면목이 없습니다.”

“아니에요. 저한테 사과하실 필요는 없는걸요.”

“큼… 아무튼, 지금 결계에 손을 대면 큰일 납니다.”

“왜요?”

“마력이 불안정한 상태라 일반인들이 만졌다간 다치거나 죽기 십상이거든요.”

다치거나 죽어?

나는 손가락을 살폈다. 아직 결계에 닿기도 직전이었는데 손톱 끝이 시큰한 기분이었다.

“보통은 경비대가 지키고 있지만. 요새 너무 일이 많아 여기까지 병력을 배치하기엔 모자랐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경고문을 세워두기는 했지만…….”

알버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 해골이 그려진 나무 팻말이 보였다. 그러나 툭 치면 바스러질 듯한 그 팻말이 제 역할을 다할지는 의문이었다.

“그런데 알버트 님은 여기까지 웬일이세요?”

“누굴 좀 찾고 있거든요.”

“여기서요?”

“예. 이런 곳에 있을 게 뻔한 놈인지라.”

“아…, 그럼 이제 일 보세요. 저는 돌아가 볼게요.”

그러자 알버트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뇨. 마차를 타고 오신 건가요? 앞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이 숲은 복잡해서 길을 잃기 쉽거든요.”

“괜찮아요. 제가 왔던 길을 표시…….”

분명 표시해뒀는데……. 쿠키가 다 사라졌잖아!

제일 끝자락에 놓였던 쿠키 조각마저 훔쳐서 잽싸게 달아나는 들쥐 한 마리를 보며, 나는 머리가 노래지는 듯했다.

“하하, 쟤들도 다 배가 고팠나 보네요. 가시죠.”

알버트와 걷는 동안, 묻을까 말까 계속 고민하던 질문을 던졌다.

“공작님께서 이 일로 많이 힘드시겠죠?”

“뭐, 제가 감히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안 힘들다고 말하면 물론 거짓말이겠죠.”

나는 씁쓸한 미소를 내보였다. 그러나 나와 달리 알버트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겨내실 겁니다. 전 각하를 믿거든요.”

제법 듬직한 말로 카시안을 위로하면서.

*

시아라를 마차에 태워 보낸 뒤, 알버트는 묵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로 결계 주변의 숲을 뒤지는 일이 며칠 째인지. 온 제국을 이 잡듯 샅샅이 찾아다녔으나 아직 마르쿠스의 머리카락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시아라에게 다 잘 될 거라 호기롭게 말하기는 했지만, 이쯤 되자 괜스레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인간 진짜 아예 제국 밖으로 떠난 거 아니야?’

그러면 상황은 더 심각해지는데.

어깨를 축 늘어뜨린 알버트가 들숨을 들이 삼켰다.

순간, 어디선가 상쾌한 허브향이 느껴졌다. 이토록 척박하고 메마른 땅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그런 산뜻한 향기가.

알버트가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향기의 출처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 결계 주변에서 반짝 떠올랐다 사라진 녹색 불꽃의 잔상을 발견했다. 그 불꽃은 너무 미약해서, 이 냄새가 아니었다면 전혀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였다.

그는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찾았다.

당장 잡으러 갈 테니 기다려라. 이 정화의 마법…, 아니 망할 씨앗 상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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