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또맞고 튀었는데 공작님이 집착한다-61화 (61/135)

61.

집무실 문밖에는 아직도 알버트가 서 있었다.

카시안이 나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같이 회의실로 가려는 것인가 싶어 인사하고 지나치려는데, 알버트는 나를 따라왔다.

“으응? 회의실 가시는 거 아니세요?”

“네, 가야 하는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쭈뼛거리며 내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아하니 아직도 내가 화났을까 마음 쓰고 있음이 분명했다. 정작 나는 잊고 있었는데.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오도 가도 못하는 알버트를 보자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다.

“그냥 지금 사과하실래요?”

“죄송합니다, 아가씨.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까 그 물건은 정말 명작이었어요. 태어나서 처음 보는 명작!”

“그럼 알버트 님도 하나 만들어 드릴게요.”

“예? 아, 예에……. 좋습니다. 정말 좋고말고요!”

알버트가 스스로 최면이라도 걸 듯 ‘좋잖아. 그치, 좋네. 좋아.’라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나는 보고야 말았다. 그새 고개를 내려뜨리고 망했다며 눈을 질끈 감는 그의 모습을.

그래도, 내 수공예 실력을 정말 객관적으로 평가해 준 사람은 알버트 뿐이었다. 이 솔직한 사람을 미워한다는 것이 어디 가당키나 하다는 말인가. 나는 그의 등을 토닥이며 정말 괘념치 말라고 안심시켰다.

‘참, 근데 왜 자꾸 킁킁거렸을까?’

일전에 다 같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할 때도, 오늘 내 드림캐처를 보았을 때도. 알버트는 냄새를 맡듯 코를 킁킁댔다. 개도 아니고. 왜 그러는 거지? 게다가 분명 마력이 어쩌고저쩌고 떠들었던 것 같은데.

나는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곧바로 물었다.

“알버트 님. 질문이 있는데요.”

“예. 뭔가요?”

“그게……. 냄새 맡는 게 취미세요?”

“예?”

“자꾸 킁킁거리시니까…….”

그 말에 알버트가 배꼽을 잡고 웃으며, 그런 게 아니라고 손을 휘휘 내저었다.

“취미라뇨. 그런 요상한 취미 없습니다.”

“그럼 대체 왜…….”

“아, 제가 말씀을 안 드렸군요. 저는 냄새로 마력을 감지합니다.”

“네? 그 말씀은…….”

“마법사란 말이죠.”

한껏 치솟은 알버트의 어깨가 곧 천장에 닿을 듯했다.

“마법사가……. 카시안, 아니, 공작님 말고도 또 있어요?”

“그럼요, 아가씨. 이 세상에 마법사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을 뿐. 셀 수 없이 많답니다.”

“우와…. 전혀 몰랐어요. 엄청 드물다고 생각했는데. 마법사라니, 정말 멋져요!”

“물론 저는 아델트 공작 각하에 비하면 마법사라고 부를 수도 없는 수준이지만요.”

“아뇨! 제가 보기에는 알버트 님도 공작님만큼 대단하신걸요! 냄새로 마력감지라니. 세상에! 저 같은 사람은 꿈도 못 꿀 일이잖아요!”

그제야 알버트가 킁킁거렸던 일들이 모두 이해되었다. 나는 그를 연신 추켜세웠다.

“진짜 멋지다……!”

여태 정면을 보고 걷던 내가 알버트를 올려다보았을 때, 그는 입을 틀어막고 울먹거리고 있었다.

“제 능력을 이렇게 칭찬해주시는 분은…….”

“…… 알버트 님?”

“처음이에요. 정말 아가씨가 처음입니다. 아카데미에서도 한 번도 못 들어본 칭찬을…….”

크흡, 눈물을 쥐어 짜내는 그의 어깨가 아래위로 흔들렸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알버트는 부산스럽게 자신의 겉옷 안주머니를 뒤졌다. 그곳에서 꺼내 든 것은, 손바닥보다 한참 작은 사이즈의 투명한 유리구슬이었다.

“네블라딘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비기로 만든 마법 구슬입니다.”

“마법 구슬이요?”

그는 비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정작 내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무리 봐도 그냥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평범한 장난감 같은데, 마법 구슬이라니.

“크흠, 이게 얼마나 대단하냐면. 이 구슬을 이용해서 아가씨도 저처럼 마력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알버트 님처럼 냄새를 맡아서요?”

“예. 물론 이건 시간이 제한적이긴 하지만.”

“그런 대단한 물건을 왜 저한테 주시나요?”

“그야 절 인정해 주셨으니까요.”

알버트가 내게 구슬을 내밀었다.

“구슬에 주인의 이름을 새겨넣으면 그때부터 발동이 될 겁니다. 이제부터 주인은 아가씨이니 소중히 사용하세요.”

“감사합니다.”

나는 구슬을 받아들면서도 그동안 알버트가 사고치고 다녔던 일들을 떠올렸다. 카시안과 소피아에게 해줬던 말도 안 되는 연애 조언 같은 것들을. 그러자 도무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마법사라니까, 이것만큼은 진짜이려나?’

99.9 퍼센트의 불신 속에서 피어난 0.1 퍼센트의 신뢰가 기적처럼 꽃을 피웠다.

그래. 이걸로 잠시나마 마법사가 될 수 있다면…! 뭐야, 이거 생각보다 엄청 설레잖아?

“이제 집으로 가시나요?”

“아뇨. 잠시 시장에 들르려고요.”

“마차를 내어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오늘은 좀 걷고 싶은 날이라서요.”

나는 저택을 나와 곧장 시장으로 향했다.

‘마법사’라는 단어가 사뭇 새롭게 느껴졌다. 남들은 생각지도 못한 재능을 가진 이들은 과연 어떤 삶을 살까?

그러고 보니 벌써 두 개나 생겼네. 마법사 체험 도구들이.

나는 팔찌와 유리구슬을 한 번 쓱 내려다보고, 활기찬 발걸음을 서둘렀다.

*

사람이 바글바글했던 수도의 시장을 다녀와서 일까.

평소 아델트 시장에서 느껴지던 활기참이 오늘은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손님은 하나도 없고, 골목골목 파리만 날린다는 말이 정확했다.

그 탓에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썩 기분 좋은 수다는 아니었다. 오히려 분노와 한탄에 가까웠다. 그것도……. 카시안을 향한.

상인들의 입에서 카시안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부터, 내 모든 신경은 그들의 대화에 쏠려있었다.

“이게 다! 아델트 공작 탓이야. 우리 마을을 지키던 아델트의 수호가 끝난 거라고. 마을은 이제 끝장이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여태껏 멀쩡하던 수호 결계가, 도대체 왜 부서지고 있느냔 말이야.”

“그게 다 카시안 폰 아델트 공작이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 아니겠어?”

“마법사도 아닌 놈이 후계를 이을 때부터 진즉 알아봤어야 했는데. 이런 빌어먹을!”

두 상인이 분개하자 누가 들을까 눈치만 보던 상인 하나가 두 사람을 말렸다.

“쉬잇! 자네들 귀족 모독죄로 치안대에 잡혀가고 싶은가!”

“아, 몰라! 망했어. 우린 망했다고! 지금 감옥에 끌려가는 게 대수야? 농작물 가격 오른 거 봤지. 며칠 새 벌써 두 배 가까이 뛰었는데. 이제 곧 세 배, 네 배로 치솟을 거라고! 우리 다 쫄쫄 굶게 생겼어 이 사람아!”

“우린 곧 이곳을 떠나야 할 게야. 아델트의 수호는 이제 끝났어.”

나는 이게 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미간을 찌푸렸다.

비록 카시안 본인이 마법사임을 밝히기 싫어한다지만……. 그래서 그가 마법사라는 것을 모를 수는 있지. 그런데 결계가 깨지고 있다고? 심지어 그게 카시안 탓이고?

여전한 의문을 가지고 한나의 프란츠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한나.”

“시아라!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요.”

“아……. 그냥 좀 일이 많았거든요. 잘 지냈어요? 레오랑 레아도 다들?”

“네. 우리야 뭐 늘 잘지…….”

한나가 말을 끝맺기도 전에, 카운터 위로 포장된 빵 하나가 툭 떨어졌다.

“여기. 계산.”

웬 남자 손님이 던진 것이었다.

“네, 손님. 18 드랑입니다.”

“뭐? 얼마?”

“18…….”

그러자 남자가 노발대발 소리쳤다.

“아니 무슨! 지난주만 해도 11 드랑이었던 빵이. 이렇게 하루아침에 가격이 올라? 이게 말이 돼?”

“그게, 아시다시피 요새 작물 가격이…….”

“11 드랑에 줘!”

“손님, 죄송하지만 그건…….”

“됐어! 이까짓 거 더러워서 안 먹고 말지!”

남자는 가게 문을 발로 뻥 찬 뒤 가게 바로 앞에다 칵, 퉤! 침을 뱉고 사라졌다.

우리는 할 말을 잃고 눈만 껌뻑거렸다. 한나는 당황스러워서, 나는 황당해서.

“… 한…….”

잠깐의 정적 뒤에 어떻게든 한나를 위로하려 하였으나,

“내가 너 신고할 거야 이 xxx야! 결계에 깔려 뒈져라. 저 망할 xxx. 아주 마른하늘에서 벼락이나 맞아라. 저런 xxxx xxx.”

그보다도 빠르게 문 앞으로 달려 나간 한나가 걸쭉한 욕을 뽑아내는 것이었다. 그리고서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주먹 쥔 손을 파르르 떨며 씩씩거렸다.

“아니 진짜, 아무리 빵 값이 오른 게 갑작스럽다고는 해도…. 어떻게 저럴 수 있죠? 오늘만 해도 벌써 몇 번째인지! 진짜 짜증나서 죽겠어요!”

나는 남자가 발로 차 처참하게 휘어버린 문짝을 응시했다. 나도 이렇게 울화가 치밀고 속상한데, 한나는 얼마나 열이 뻗칠까.

“정말… 최악이네요.”

“하아……. 물론 요새 손님들 상황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뭐 내 잘못도 아니고. 우리라고 값을 올리고 마음이 편한 줄 아나…….”

“작물 가격이 뛴 것 때문에 그래요?”

“네. 작년부터 날씨가 유난스러웠던 탓에 계속 흉작이 이어졌거든요.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따로 있지만요…….”

한나가 내 눈치를 보며 말하기를 머뭇거렸다. 내가 카시안과 연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겠지.

“괜찮으니 말해요.”

“… 아무래도 결계 때문이죠.”

‘역시. 밖에서 상인들이 했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나 보네.’

“결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그 말이죠?”

“네. 무너진 것도 문제지만, 그 주변 지역이 전부 메말랐대요. 가뭄이 난 것처럼. 진짜 이상한 일이지. 어쩌지… 거기 산딸기 숲이 있는데……. 아!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제가 직접 가봐야겠어요.”

“한나? 지금 가긴 어딜 간다고 그래요.”

그녀가 허리춤에 에둘러 묶은 앞치마 끈을 풀었다. 벗어든 앞치마를 카운터에 무겁게 내려놓는 한나의 목소리가 비장했다.

“산딸기 따러요.”

“네? 지금?”

“이번 시즌에 산딸기 타르트를 팔 예정이라 그게 꼭 필요하거든요. 그런데 공급업체에서 산딸기 값을 두 배 이상 올려버린 거예요! 자기들도 올여름은 어쩔 수 없다면서. 그렇다고 다른 과일들이 싸지도 않아. 그럼 어쩌겠어요? 내가 직접 가는 수밖에! 가서 확인해봐야죠. 진짜 다 말라 비틀어졌는지.”

한나가 두 팔을 걷어붙였다.

“한나 혼자서? 파울은요.”

“그이도 벌써 농장마다 돌아다니면서 알아보고 있어요. 나는 오늘 가게 문 열겠다고 나왔는데, 하나도 못 팔고 아까처럼 욕이나 먹고. 그리고 내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고 나면, 좀 더 명확하게 대책을 세울 수 있겠죠.”

“그래도… 혼자 가기에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요?”

걱정스러운 내 물음에 그녀가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시아라……. 나는… 위험한 숲보다, 당장 내일이라도 망할까 봐. 그게 더 무서워요.”

“…….”

“곰이라도 한 마리 나와 보라 해. 하나도 겁 안 나!”

나는 어떤 말로도 한나의 굳센 의지를 꺾을 수 없음을 알았다.

“한나.”

그러니 어쩔 수 없지.

“같이 가요. 내가 같이 갈게요.”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공용 마차에 올라탔다.

목적지는, 아델트의 끝. 결계가 맞닿아 있는 힌더베레 숲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