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1권) (1/9)

고백.

열여섯.

인생에서 유일했던 절망의 시간에 그의 사진을 만났고, 구원받았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는 너른 바다 위의 외딴 섬, 그 사진은 어딘가 외로워 보였고 무덤처럼 보이기도 했다.

흔한 사진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죽고 싶다고 말하는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절망적이라 말하는데, 희망적이라 말했다. 너무 슬프다는데,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삭막하고 외로워 보이는 사진에 담긴 시선이 너무나 따스했다.

재하는 사진을 보며 울었다.

기억에 남아 있는 첫 번째 울음이었다.

호기심이 들었다. 사진을 찍은 사람은 대체 얼마나 슬펐던 걸까. 위로해주고 싶으면서도 위로받고 싶었다. 너의 세계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고 이 사람이 자신에게 말해준다면 전부 다 괜찮아질 것 같았다. 이런 인간적이고 따스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궁금했다.

그때부터 사진작가를 찾기 시작했다. 추적 끝에 SNS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었다. 오직 그의 사진만이 그의 정보를 대신했고 사진작가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SNS 계정 하나뿐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자신의 삶에 그 사람의 사진은 마음의 안식 그 자체였다. 처음 봤던 사진만큼 강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이 찍은 사진들은 하나같이 따사롭고 사랑스러웠다. 모든 피사체를 아름다운 마음과 눈으로 보고 기록하는 사진작가, David.

무너진 제 세상을 다시 건국한 그 사람을 사는 동안 한 번이라도 만나보길 소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사랑의 시작이었다.

열일곱.

그 사람을 만났다.

‘야. 내가 꼰대 짓은 안 하려고 했는데, 좀 해야겠다. 사람하고 대화할 땐 선글라스부터 벗어. 그다음에 정상, 비정상 운운해. 네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도 정상으로는 안 보여. 말끝에 ‘요’ 붙이면 다 예의 있냐?’

그는 상상했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세상을 그렇게 아름다운 눈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을 깊은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나이가 많거나 굉장히 섬세할 거라 생각했는데, 눈앞의 남자는 그것과 거리가 너무 멀었다.

저보다 고작 2살 많았고, 입이 거칠고, 섬세함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사람이었다. 감성 충만한 사진을 찍는 그는 조금도 낭만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낭만을 질색할 정도로 메마른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좋았다. 아니, 그래서 더 좋았다.

무심함 속에 들어 있는 다정한 그의 시선에 온몸이 오싹거렸다.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과 표정은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그의 피사체가 되고 싶었다. 피사체를 바라보듯 자신을 바라봐 주었으면 좋겠다. 피사체를 생각하는 마음이 자신에게도 향하길 바랐다.

그가 날 사랑해주길 원했다.

열여덟, 그에게 고백했다.

고백을 들은 그는 매우 침착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놀라거나 동요하는 모습이 없었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준비했다는 듯, 아주 덤덤하게 고백에 답했다.

‘그래. 네가 날 좋아하는 건 네 마음이니까 그 마음을 뭐라 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재하야. 나에게 그 이상을 바라지는 마.’

거절의 대답이 애매했다. 그의 완벽하지 않은 거절에 서둘러 변명을 늘어놓았다.

‘알아요. 형한테 저와 같은 마음을 바란 건 아니었어요. 그냥 제 마음을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마세요. 계속 연락해도 되는 거죠?’

‘그래.’

싫다고 말하지 않았기에 거절당했음에도 그를 원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넘칠 때마다 그에게 문자를 더 열심히 보냈다. 열심히 보낸 만큼 그의 답장이 조금 더 길어진 것 같아, 그것만으로도 고맙고 행복했다.

열아홉, 그에게 다시 마음을 전했다.

‘형, 좋아해요.’

그는 이번에도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래. 그렇구나. 여전히 내 대답은 똑같아.’

‘알아요. 그냥… 제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그래.’

덤덤하게 말하는 그의 귓가가 조금 붉어졌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사진을 처음 본 날부터 지금까지 2,899일.

그를 처음 만난 후부터 지금까지 2,609일.

그를 사랑한다고 자각한 날부터 지금까지 2,454일.

그에게 보낸 문자 4,854,487통.

그가 보낸 답장 62,424통.

그에게 고백한 횟수, 총 6번.

거절하지도 승낙하지도 않은 덤덤한 그의 대답 역시 6번.

유재하는 오늘 이 기나긴 짝사랑을 끝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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