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 (245)화 (245/250)

#245

“네?”

혜강이 놀라 되물었다.

“정확히 재 보지는 않았지만, 높이 제한에 걸리는 것 같습니다. 용적률도 좀 아슬하고요. 다행히 아직 신고당한 적은 없는 것 같지만요.”

모두가 종희의 말에 집중하느라 장국을 한 모금 마시던 이연의 어깨가 미세하게 흠칫 튀어 오른 장면을 본 것은 산오뿐이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에 눈썹을 찌푸린 혜강이 내부를 둘러보았다.

“정말요? 주인아저씨가 그냥 하신 건가? 그럼 사기 계약인데……. 형, 알고 있었어?”

“어, 엉?”

“……뭐 한 거야?”

혜강의 눈빛이 순식간에 냉철해졌다. 이연이 슬그머니 시선을 피했다.

“그…… 그때는 돈이 없었단 말이야.”

차금을 처음 세울 당시, 갓 성인이 된 이연에게 모아 둔 돈이 있을 리가 없었다. 부모님의 유산을 마음껏 쓰는 것도, 능력으로 돈을 만드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적은 예산으로 초호시의 부동산을 돌고 돌다 현재 건물의 주인을 만났다. 이연은 화장실과 창고 두어 평 정도, 그리고 넓은 테라스밖에 없는 옥상을 흔쾌히 빌리겠다고 나섰고, 주인은 놀리고 있는 공간을 조금이나마 내돌리기 위하여 저렴한 월세로 계약을 체결했다.

그리고 계약서를 쥔 주인이 돌아가자마자 새하얀 모래가 옥탑으로 모여들었다.

“그게 돈을 만들어서 계약하는 거랑 뭐가 다른데?”

“……다르거든?”

이연의 꿋꿋한 주장을 무시한 혜강이 진짜인지 확인이라도 하는 것처럼 소파 등받이를 툭툭 두드렸다. 몇 년이나 이 사무실을 썼지만 설마 이연이 만들어 낸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조막만 한 얼굴에 황당하다는 기색이 넘쳐흘렀다.

“어쩐지 화장실이랑 창고만 이상하게 낡아 보이더라니…….”

“그래도 안에는 새것 같잖아.”

“그것도 능력 쓴 거야?”

“……으응.”

산오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이연을 바라보았다.

“아주 실체화 능력자라고 광고를 하고 다녔군.”

“아, 아무도 없을 때 했거든.”

이연이 소심하게 항변했으나,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껏 안 걸린 게 다행입니다. 그럼 사무실도 바꾸는 게 좋겠군요. 아무래도 무궁화 5단이 둘이나 있는 사무실은 주변의 주목을 받게 되니까요. 주민 신고가 문제가 아니라, 주인이 알게 되면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종희의 제안에 혜강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예, 동의해요. 이번엔 정당한 돈을 써서 합법적인 곳으로 구합시다.”

“…….”

이연이 시무룩하게 우동을 우물거렸다. 난 이 옥상도 좋았는데. 불법이긴 했어도…….

이곳에는 적잖은 추억이 쌓여 있었다. 그런 장소를 홀랑 버린다는 것이 못내 섭섭했다. 물론 다섯 명이 쓰기엔 좁기도 하고, 언제 신고가 들어와도 이상하지 않은 것도 맞으니 사무실을 바꾸긴 해야겠지만……. 그런 그에게 흘끗 시선을 준 혜강이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새 사무실에 바깥에 있는 평상 정도는 가져가서 놓을 수 있는 테라스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기서 적공 보면서 맥주 마시면 꽤 운치가 있거든요. 간단히 회식하기도 좋고요.”

“그렇다면 그 부분도 고려하겠습니다.”

“혜강아…….”

고개를 휙 돌려 혜강을 바라보는 이연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덥석. 난데없이 산오가 이연의 머리통을 잡았다. 끼기긱 억지로 돌려 혜강에게서 시선을 떼어 내는 힘이 살벌할 정도로 강했다.

“눈깔을 그따위로 뜨는 법은 누구한테 배웠지.”

“내가 뭘 어쨌다고……. 야, 아파.”

“목에 힘을 안 주면 돼.”

“네 손만 떼도 되거든?”

이연과 산오의 투닥거림을 종찬과 종희는 구경이라도 난 것처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익숙하게 흘려넘긴 혜강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금방 적응될 거예요, 하고 두 사람에게 상냥한 조언을 건넸지만 아직까지는 받아들이기 힘든지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점심 식사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를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한 상 가득 차려졌던 그릇이 모두 비었다. 앞으로의 회식비가 걱정되는 먹성들이었다.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마친 이연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럼 우린 초관청에 다녀올게. 무슨 소집을 한다고 해서…….”

“그래, 다녀와.”

“태워 드리겠습니다.”

혜강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과 동시에 종찬과 종희가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이연을 따라 몸을 일으키던 산오가 고개를 저었다.

“필요 없어.”

그러고는 휙 몸을 돌렸다. 싸늘한 태도에 제가 다 머쓱해진 혜강이 위로하듯 중얼거렸다.

“산오 형은 누구에게나 다 태도가 똑같네요.”

“아니, 저건 우릴 배려해 주신 겁니다.”

“예?”

종찬의 목소리가 너무 단호해서 혜강이 저도 모르게 삑사리를 냈다.

“산오 님은 물론이고 저희까지 새로 합류하게 된 것도 모자라 사무실 이사까지 해야 하니 할 일이 어마어마합니다. 그 시간을 내주신 거죠.”

“……너무 선의의 해석 아니에요?”

“확실합니다.”

혜강은 뭐라 더 반박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악의적으로 오독하는 것도 아니고 선해하는 건데, 굳이 초를 칠 필요가 있나 싶었던 것이다. 좋게 봐주면 좋은 거지, 뭐……. 쓸데없는 걸로 입씨름하기도 귀찮았다.

*

무궁화 5단이 되고 나서 새롭게 깨달은 점은, 생각보다 사람들이 헌터의 단수에 따라 태도가 많이 바뀐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본 능력을 알게 되고도 평소처럼 대해 주던 이연의 주변인이 특별하게 느껴질 정도로 체감이 됐다. 특히 헌터 업계와 밀접하게 연관된 초능력관리청에 올 때면 더 그랬다.

“정이연 헌터죠? 저기, 적공저지일 행사에서 봤습니다.”

“아, 안녕하세요.”

“고생이 많으셨던 것 같던데. 이제라도 제자리를 찾으셔서 다행이에요.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물론 이전의 이연이 다른 헌터들에게 큰 무시나 차별을 당하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러나 평소에 초능력관리청에 드나들 때에는 대화할 일도 없던 3단이나 4단 헌터들이 일부러 다가와 말을 건네고 가는 건 꽤 노골적이었다.

뭐, 어쩌면 당연하니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 간극이 꽤 어색하고 민망해서, 뒤돌아 가는 남자를 흘끗 확인한 이연이 산오에게만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다.

“네가 왜 얼굴을 숨겼는지 알 것 같아.”

“숨긴 적 없는데.”

“뭐? 하지만 그동안 언론 노출도 안 했고…….”

“필요 없으니까.”

산오가 건조하게 대꾸했다. 산오에게는 진실이긴 했다. 그가 스스로의 의지로 정체를 숨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굳이 드러내지 않을 뿐이었고, 그의 성실한 비서들이 그 의지를 충성스럽게 지켜 준 덕분에 희한한 신비주의가 된 거였다.

게다가 그것도 이미 다 옛말이지 않은가.

“여, 제산오!”

저 멀리서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외치며 다가왔다. 산오에게서 냉담한 목소리가 즉시 흘러나왔다.

“시끄럽다.”

“야, 형님한테 말본새가 그게 뭐냐?”

로비와 복도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남자에게로 확 쏠려 있는 이유는 비단 그의 덩치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았다. 선명하고 단단한 이목구비의 남자는 포털 사이트에 얼굴이 게재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인이었다.

드물게 산오의 기백에도 눌리지 않고 태연하게 대화하던 남자는 곧 그 옆에 서 있던 이연을 알아보았다.

“어, 정이연 씨. 이렇게 뵙는 건 처음이네요.”

“안녕하세요, 정이연입니다.”

“반가워요. 박성찬입니다. 초전력 소집 때문에 온 거죠?”

무궁화 5단 박성찬. 실제로 보니 훨씬 박력 있었다. 이연이 조금 긴장하며 대꾸했다.

“네.”

“역시! 뭘 좀 아는군요. 새내기라면 당연히 이래야지! 이태민이 사기꾼이라서 천만다행이야.”

“예?”

무슨 소리지? 이연이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지만 성찬은 그 말에 대해 설명해 줄 생각은 없는 듯 호쾌한 웃음을 지으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이연이 힘에 밀려 휘청거리자 산오가 팔을 붙들고 성찬을 꼬나보았다.

“무식하게 굴지 마라.”

“하여튼 저놈의 입. ……헐, 잠깐만.”

대수롭지 않게 투덜대던 성찬이 행동을 멈추었다. 동그랗게 벌어진 눈으로 믿을 수 없다는 듯 산오를 훑은 성찬의 입에서 긴가민가하는 음성이 새어 나왔다.

“설마 너도?”

오늘 초능력관리청에서 무궁화 5단을 소집한 이유는 초전력 관련이었다. 그러니 거기 참석하는 5단들은 당연히, 초전력 참가 희망자였다. 성찬이 놀라든 말든 산오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그럼 산책이라도 나온 것 같나?”

“너 이번 초전력 한다고?”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주변 사람들이 다 돌아봤다. 이대로 갔다간 온 동네 시선을 모조리 끌어모을 기세였다.

“시끄러.”

산오가 인상을 그으며 으르렁댔지만 성찬은 들리지도 않는 것 같았다.

“미친, 이게 웬 떡이야. 진짜지? 와, 국장님도 참여하고, 너도 하고, 정이연 씨도 하면 이번엔 진짜 재밌겠는데. 또 누구 참여하지? 유정 누나랑, 민수라랑…….”

흥분한 얼굴로 중얼대던 성찬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반짝이는 눈동자가 보일 리 없는 위층의 천장만 실없이 훑었다.

“자, 빨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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