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 (235)화 (235/250)

#235

“여기 행사장 엄청 화려하지 않아요? 저 이런 데 오는 거 처음이에요. 건물도 엄청 좋네요.”

이연은 볼일을 마쳤음에도 화장실을 떠나지 않고 민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유정처럼 선천적인 사교성이 좋은 사람인 듯했다.

해맑은 얼굴로 순진하게 눈을 반짝이는 것을 보니 최근 초능력 심사를 받고 헌터가 된 신입인 모양이었다. 올해 4단 받은 사람 중에 저런 이름이 있었던가? 앳된 낯을 보니 확실히 스무 살인 것 같기도 했다. 남자가 이리저리 추측하며 최선을 다한 대답을 건넸다.

“그렇구나.”

다행히 필사의 노력이 먹힌 듯했다. 청년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민은 금세 이 활달한 청년에게 내적 친밀감이 조금 쌓였다. 워낙 살갑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고, 인상도 무섭지 않아서 경계심이 금방 풀렸기 때문이었다.

“그, 그러면 정이연 님은…….”

“에이, 무슨 님까지 붙여요. 이연 씨라고 부르세요.”

“……이연 씨는 어디 소속이에요?”

무려 이렇게 사적인 질문을 용기 내어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조마조마하며 물은 질문에 이연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해 주었다.

“아, 저는 작은 사무소 해요.”

적공저지일 행사에 초청받아 올 만한 고위급 헌터들은 보통 기업체의 사장이나 대표 헌터였다. 그나마 무소속으로 활동하는 개인 헌터는 있었지만, 소규모 사무소를 차리는 일은 정말로 드물었다.

소규모 사무소는 인원이 적으니 규모가 크거나 위험도가 높은 임무를 받기에도 마땅치 않고, 헌터의 이름값 역시 어느 정도 되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 편이 훨씬, 훨씬 대우도 조건도 좋았다. 취미로 일을 하는 수준이 아니라면…….

재정에 여유가 있으신가 보네. 그런데 최근에 심사를 받고 따로 개인 사무소를 차린 헌터가 있었나? 민은 떠오르는 의문에 고개를 갸웃했으나, 그가 모르는 소식이 있었겠거니 하고 넘겼다. 애초부터 민은 소식에 그다지 밝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런데 허민 씨는 낯을 엄청 가리시는 것 같은데, 웬일로 이런 행사에 어떻게 참여하실 생각을 했어요?”

화장실이 워낙 세련된 인테리어다 보니 세면대 앞이라고 해도 웬만한 휴게실보다 나았다. 다들 행사장에 꿀이라도 발라 놨는지 오가는 사람들도 적어서, 둘은 큰 방해를 받지 않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저도 생각 없었는데…….”

민이 쑥스러운 듯 말끝을 흐렸다. 이연의 말대로 그는 성격 때문에 행사 초대장을 받아도 참여할 때보다 불참할 때가 훨씬 많았고, 올해 적공저지일 행사 역시 별일이 없었다면 불참했을 테지만…….

“……이태민이 온다고 해서요.”

그는 실로 오랜만에 나오는 강력한 무궁화 5단 후보였다. 민은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유정의 집요한 재촉과 본인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참석한다는 연락을 넣었다.

“아, 그분.”

이연은 의외로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이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이렇게까지 이태민에게 관심 없어 보이는 사람은 처음이라, 민은 조금 신기하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관심 없으세요? 오랜만에 무궁화 5단이 나오는 건데…….”

“그래요?”

“4년 전 제산오가 나온 이후로 처음이잖아요. 게다가 신인도 아니고 지, 지설기 개발자고. 실체화 능력이 대단하다는 건 다들 알고 있으니까…….”

지형 설정 기능 개발자는 몇 년간 행적을 감춘 상태였지만, 그렇다고 잊히지는 않았다. 초호시의 가장 대표적인 시스템, 전투 구역. 그리고 전투 구역의 핵심 시스템인 지형 설정 기능. 초호시가 변이종을 상대하는 헌터들의 도시인 이상 그 존재감이 흐려질 일은 없었다.

지형 설정 기능의 개발자가 초능력 심사를 받을 거라는 이야기가 퍼지자마자 새로운 무궁화 5단이 탄생한다는 것을 모두가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것도 그런 이유였다. 도시의 헌터라면 적어도 한 번 이상, 지형 설정 기능을 실제로 체험했다. 그 마법 같은 능력에 거짓은 없었다.

“아직 심사도 안 받았잖아요. 그럼 그냥 일반인 아닌가?”

“아, 안 그래도 아까 들었는데. 오늘 심사를 받는대요.”

“네?”

이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상대가 흥미를 보이자 민이 괜히 더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이태민을 특별 손님으로 모신 이유가 그거래요. 오늘 심사를 보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결과까지 나올 예정인가 봐요.”

비록 그가 행사장에 있던 시간은 1분 남짓이었으나, 그사이에도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열렬한 화제였다. 민은 워낙 존재감도 없었고, 이런 자리에 잘 참석하지 않아 얼굴을 아는 사람도 몇 없었기 때문에 벽의 꽃처럼 행사장 안에서 멀뚱히 서 있어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와…….”

이연이 헛웃음인지 신음인지 모를 탄성을 내뱉었다. 어느 모로 보나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 기색에 민이 의아하게 물었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니에요.”

이연은 금세 다시 평소대로 돌아왔다. 가벼운 어조에 불쾌한 기색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잘됐네요.”

지이잉. 그때, 민의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 소리가 났다. 조용한 화장실에서 울리는 소리는 유독 컸다. 지레 놀란 민이 허둥지둥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김유정행사 시작했다 빨리 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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