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 (221)화 (221/250)

#221

그건 정말로 기묘한 느낌이었다. 이 화제를 계속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본능적인 기분이 들었다. 이연은 굳어 버린 입술을 간신히 움직여 질문을 뱉어 냈다.

“그럼…… 그럼, 제산오랑은 그게 정말로 끝인 거예요? 그냥 화가 나서 가 버린 게 아니라, 진짜로 모르는 사이처럼…….”

조금 전의 감각이 거스러미처럼 버석거리며 존재감을 발산했다. 이연은 더듬더듬 내뱉고 나서야 제 말이 다소 인위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다. 태진이 알아채지 못했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래…….”

다행히도 이연의 문장을 가만히 곱씹은 태진은 이내 나직하게 대답했다.

“아마도 그렇겠구나.”

*

“여기요, FT-4.”

D.S의 공방에 간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이연이 이태진 속이랴 연애하랴 바쁜 탓도 있었지만, D.S 역시 어마어마하게 바빴기 때문이다. 영과 재이가 가사를 거의 전담하고 있는데도 퀭해진 얼굴을 보니 최근 일정이 얼마나 빡빡했는지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무슨 극기 훈련이라도 다니나……. 속으로 중얼거린 이연이 연락 받고 챙겨 온 FT-4를 내밀자, D.S가 받아 들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업그레이드 해 주시게요?”

단번에 FT-4의 뚜껑을 열고 해체하는 솜씨가 정연했다. D.S는 바쁘게 손을 놀리며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영이랑 재이랑 뭘 하나 만들었는데, 너한테도 해 주려고.”

“영 씨랑 재이 씨면, 설마…….”

이연의 눈이 커졌다. 머릿속에서 퍼뜩 스쳐 지나가는 대화가 있었다.

‘FT-4에 청소 노하우 업그레이드해 주면 안 돼요?’

‘……오. 괜찮은 생각인데?’

“진짜 청소 로봇 만들었어요?”

놀란 만큼 목소리의 크기가 커졌다. 공방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물음에도 D.S는 덤덤하게 대꾸했다.

“아직 시제품 정도만. 이제 상용화 논의 중이야.”

D.S는 허언을 하지 않았다. 이연과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어 진지하게 영과 재이에게 아이디어에 대해 논의했고, 그녀들의 도움을 받아 시제품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D.S의 인공지능 기술, 그리고 영과 재이의 가사 기술이 합쳐진 인공지능 가사 로봇 는 엔지니어 세미나에서 한 번 선보인 것만으로도 수많은 투자자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었다.

“너도 지분이 있으니까 미리 만들어 주는 거야. 집에서 써 보고 감상이나 남겨.”

“와, 고맙습니다…….”

이연이 얼떨떨한 기분으로 FT-4가 해체된 테이블 위를 바라보았다. 반쯤 농담으로 이야기한 건데 D.S가 진짜 만들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심지어 결과물이 좋기까지 하다니……. 되는 사람은 뭘 해도 되는구나. 오늘의 교훈이었다.

“진희수가 네 얘길 하던데.”

쉴 새 없이 손을 움직이던 D.S가 문득 말했다. 테이블에 걸터앉아 D.S의 작업을 지켜보던 이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국장님이요?”

D.S에게 희수의 연락이 온 건 얼마 전이었다. 그는 현재의 상황을 짤막하게 설명하고는 꾸밈없이 용건을 털어놓았다.

‘도와줘, 누나.’

솔직히 말하자면, D.S는 희수가 그렇게 나설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희수는 못된 인간까지는 아니었지만 순종적인 아들이긴 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무려 가주인 어머니를 막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D.S의 입장에서는 귀찮을 게 뻔한 일이었다. 희수가 적대하려고 하는 그의 어머니, 진정원은 욕심 사나운 성격만큼 만만치 않았다. 헛으로 D.S의 아버지를 비롯한 다른 형제들을 누르고 가주 위치에 올라앉은 게 아니다. 진정원에게는 오랜 세월에 걸쳐 축적한 수완이 있었고, 그것을 넘어트리기 위해서는 희수 역시 가지고 있는 모든 걸 걸어야 할 터였다.

사실 그러고도 좀 부족하긴 했다. 희수는 저 혼자 힘으로는 버겁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D.S에게 도움을 청한 거였고.

평소의 D.S라면 오지랖 부릴 생각은 없다며 바로 연락을 끊었을 것이다. 그런 게 아니어도 그녀는 충분히 바빴다. 챙겨야 할 사람은 넘쳐났다.

‘뭘 원하는데.’

그러나 진정원에게는 원한이 있었고, 진희수에게는 빚이 있었다.

D.S는 그런 것까지 잊을 정도로 기억력이 나쁘진 않았다.

“그랬군요……. 국장님이 D.S 씨한테 연락을 했구나.”

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D.S는 상황 판단력도 좋고 일 처리도 깔끔했다. 희수에게 든든한 아군이 될 것이다.

“조심하세요. 남의 어머님께 심한 말 하긴 그렇지만, 워낙 과격한 분 같아서…….”

슬그머니 꺼내 놓은 걱정에 D.S가 대번 눈썹을 찌푸렸다.

“그건 내가 할 말이야. 지금 네가 더 위험한 건 알고 있어? 영화를 너무 많이 본 거 아냐?”

D.S는 희수에게 상황 설명을 들으며 이연이 현재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대략적으로 알게 되었다. 그녀가 보기에 이연이 세운 건 거의 미친 계획이었다.

“뭐, 그 정도까지는……. 이쪽도 나름대로 순조롭다고요.”

“순조로워?”

“……좀 더디긴 해요.”

순순히 꼬리를 내린 이연이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벌써 태진과 접촉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초전력 전까지는 마무리되었으면 하는데, 태진이 영 반응이 없었다. 꿍꿍이가 있는 건 확실한데 보여 주질 않으니 잠자코 기다리기만 하는 것도 좀이 쑤셨다.

“이쯤 되면 반응이 와야 하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급기야 푸념을 내뱉기 시작하는 이연의 말을 끊은 것은 바지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이었다. 뭐지? 이연이 휴대폰을 집어 들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혜강형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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