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 (205)화 (205/250)

#205

“…….”

이연은 입을 다물고 침묵했다.

헌터 사무소를 만든 것은 헌터가 되면 좋겠다는 부모님의 말씀이 떠오른 것뿐이었다. 굳이 헌터 최소 등급인 2단으로 판정받으려고 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과거의 잔재를 긁어모아 간신히 안주한 현재는 작고 허름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허울이란 게 중요한 것이었으므로.

혼자 하는 임무와 의뢰는 그냥 그랬다. 회사를 유지할 수 있는 최소 실적만 간신히 채우는 게 고작이었다. 별 의욕도 없었다. 어차피 사람이 하나밖에 없는 사무소에 오는 의뢰는 고만고만했다.

그러다가 혜강을 만났고.

‘저도 거기 취직하게 해 주면 안 돼요?’

‘그럼 오퍼레이터 해 주면 되겠다.’

차금은 두 명이 되었다.

그건 좀 재미있었다. 혼자 하는 것과 둘이서 하는 것은 아예 다른 개념이었다. 혼자 쓰기에 꽤 넓다고 생각했던 책상은 점점 늘어나는 전자기기로 금세 포화 상태가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책상은 온전한 혜강의 차지가 되었고, 이연은 출근하면 소파에 앉기 시작했다. 실제로 그가 책상에서 하는 일은 별로 없었으므로 큰 불만도 없었다.

그 외에도 조그마한 청소기와 선풍기를 들이고, 싱크대에 엎어 놓은 컵과 칫솔 개수가 늘고, 창문에 블라인드도 달렸다. 안 그래도 작던 사무실이 잡동사니가 늘면서 훨씬 좁아졌다.

이전보다 훨씬 더 마음에 드는 풍경이었다.

앞으로도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도, 재미있어.”

반쯤 굳어 버린 것 같은 입술이 간신히 움직였다. 이연은 찡그리듯 웃었다.

“너랑 같이 일하는 거 재미있어.”

혜강은 그런 이연을 빤히 바라보다가 부드럽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다치지만 마.”

“노력해 볼게.”

“노력이 통한 적은 있고?”

“……통하게 노력해 볼게?”

맹한 대답에 혜강이 웃으며 손을 저었다.

“믿어 볼게.”

그는 언제나 그렇듯이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이연이 스스로 말해 줄 때까지.

“응.”

그래서 이연은 그 배려를 방패 삼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숨기로 했다.

“아, 그리고 D.S 씨 공방에 갔다 와야겠어.”

“공방엔 왜?”

“이거 고치러.”

이연이 금이 간 고글을 슬쩍 흔들었다. 두무기와 싸울 때 고장 났으니 수리를 맡겨야 했다. 언제까지 혜강과 통화 기능만 쓸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혜강 역시 이해했다는 듯 금세 고개를 주억였다.

“갔다 올게.”

이연이 빙긋 웃음을 지었다. 가벼운 얼굴이었다. 사무실을 나서는 발걸음과 함께 딸랑, 하는 종소리가 울렸다.

*

D.S는 선명하게 금이 간 고글 렌즈를 들여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넌 물건을 정하게 쓴다는 개념이 없는 거야? 왜 툭하면 이 꼴이 되는 건데?”

“현장직이 다 그렇죠. 그거 쓰고 물에 들어갔는데 크게 문제 있을까요?”

“심지어 수중 전투를 했어? 전자기기 들고 용감하기도 하다. 깨진 틈으로 물이 안 들어갔길 기도해.”

이연이 재빨리 기억을 되짚었다. 고글이 부서진 건 두무기의 내부였고, 두무기를 처치하고 난 후에는 빠르게 물속을 벗어났으니 물이 들어갈 틈은 별로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가?

“표정 보니까 수리비 많이 나오겠네. 다발신 포상금 넉넉하게 받았다 이거야?”

“어, 다발신 잡은 건 어떻게 알았어요?”

“나도 인터넷 쓸 줄 알아.”

새침하게 대꾸한 D.S가 고글 여기저기를 만지니 렌즈를 고정하고 있던 틀과 밴드가 가뿐히 해체되었다. 기계 같은 손놀림이 움직이자 고글이 완전히 분해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연이 물었다.

“D.S 씨, 질문이 있는데요.”

“뭔데.”

“엔지니어들은 이미 만들어진 장비를 해체해서 보면 구조를 파악할 수 있어요?”

“뭐……. 기계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대부분은?”

“그럼 재료만 있으면, 똑같이 만들 수도 있어요?”

D.S는 그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들었다. 예리한 빛이 든 시선이 이연을 훑었다.

“그게 네 얼굴 죽상인 거랑 관련 있어?”

이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가요?”

“야, 누굴 속여? 넌 티 엄청 나.”

“…….”

나름대로 평소처럼 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귀신들만 모였나, 인상을 쓰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왜 다 알아채는 건지 모르겠다. 이연은 머쓱하게 제 뺨을 매만졌다.

“그냥 뭐……. 생각할 게 있어서요.”

“그놈이랑 관련된 거야? 그냥 사귀라니까.”

또 이 얘기다. 그녀가 누구를 말하는지는 뻔했다. 이연이 무심코 반박했다.

“저희 이미 사귀거든요?”

D.S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사귄다고? 진짜로?”

“……반응이 왜 그래요?”

“잠깐만.”

D.S는 인상을 쓰며 눈을 감았다 뜨더니,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시선을 이리저리 옮겼다. 그다음 나온 것은 떨떠름한 질문이었다.

“야, 이 질문 늦은 건 아는데, 너네 되게 당연하게 성별은 전혀 신경 안 쓰네. 둘 다 남자여도 괜찮아? 내가 보수적인 거냐?”

“언제는 사귀라면서요. 이제 와서?”

“아니, 그때 말할 땐 반쯤 농담이었지. 보통 내내 붙어 다니면 그런 말 하잖아.”

D.S의 말에 이연이 오히려 황당하다는 듯 팔짱을 꼈다.

“지금 괴물이 쏟아져 나오는 도시에서 온몸이 철로 변하는 인간이랑 사귀니 마니 하고 있는데 성별 같은 게 중요해요?”

“……요즘 애들 마인드는 그렇냐?”

D.S의 표정은 조금 묘하긴 했으나, 이내 받아들인 듯 다시 태연한 얼굴이 되었다.

“그럼 연애까지 하는데 왜 그렇게 심란한 얼굴인데? 벌써 헤어지고 싶어서 그래?”

이연이 펄쩍 뛰었다.

“아니, 무슨 그런 소리를 해요! 제가 갑자기 왜 헤어져요.”

“뭐, 아무래도 그 녀석은 성질이 고약하니까. 대화하다 한 대 치고 싶을 수도 있잖아.”

“……그.”

틀린 말은 아닌데 불쑥 변호를 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게 사랑이겠지? 순간적으로 든 헛생각을 삼키며 이연이 재빨리 할 말을 찾는 동안, D.S가 심드렁하게 재촉했다.

“그것도 아니면 뭔데.”

그녀를 못 믿는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되는 것인지 고민이 됐다. 이연은 슬그머니 물었다.

“D.S 씨는 엄청 커다란 결정을 할 때 말이에요……. 어땠어요?”

“엄청 커다란 결정? 어느 정도?”

“……하면 인생이 바뀔 만한 정도?”

“흠.”

D.S는 작업하던 손을 멈추고 팔짱을 꼈다. 골똘히 생각하는 얼굴이 제법 진지해, 이연은 덩달아 자세를 고쳤다.

“무서웠지.”

“……D.S 씨도 무서운 게 있어요?”

“난 무서운 것도 없을까 봐? 무서워하다 못해 울었어.”

“울었다고요?”

이연이 놀란 얼굴로 앵무새처럼 되묻기만 했다. 여태껏 D.S가 우는 모습은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미래와 함께 살게 되었을 때.

그 외에는 눈물은커녕 눈가가 달아오르는 모습조차 본 적 없었다. 대체 어떤 중대한 결정을 했길래 무섭다고 울기까지 한 건지 짐작도…… 어.

“맞아. 미래 그 집으로 보낼 때.”

얼굴에 마음이 속속들이 드러난 모양이다. D.S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느 날 집에 찾아온 D.S의 부모님이 미래를 데려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D.S는 당연히 반발했다. 받아들일 리가 없었다. 미래는 그녀의 딸이었고, 떨어진다는 생각은 전혀 해 본 적 없었으니까.

그러나 현실은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더 냉혹했다. 제 부모의 얼굴이 괴물처럼 보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D.S는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결국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각서에 사인했다.

그날 밤, 제 품에서 잠든 미래를 하염없이 끌어안으며 D.S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떨리는 몸에 딸이 깰까 봐 필사적으로 울음을 삼켰다. 지금이 지나면 아주 나중에나 안게 될 마지막 온기. 가느다란 호흡 소리와 작은 심장 소리. 그런 것을 최대한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얼마 전까지도 바로 어제 일어난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었다.

“고마워.”

“…….”

“이 얘기를 안 한 것 같아서.”

D.S가 고개를 들어 이연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늘 작업에 열중해 있었기 때문에,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하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갈색 눈동자가 가만히 이연의 얼굴을 담았다.

“미래를 구해 줘서 고마워.”

“……미래를 구한 건 D.S 씨예요.”

이연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전 그냥 D.S 씨가 불러서 온 것뿐이었어요.”

미래에게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던 것도 그녀였고, 칠칠을 미리 안겨 주었던 것도 그녀였고, 미래를 구하기 위해 이연을 불렀던 것도 그녀였다. 미래를 위해 온 힘을 다했던 건 D.S였다.

그러나 D.S는 이연의 말에 대뜸 눈살을 찌푸렸다.

“야, 네가 구했다고 인정하면 누가 잡아먹어? 왜 이렇게 빼?”

예상보다 전투적인 대꾸에 이연은 기가 죽었다.

“아니, 빼는 게 아니고.”

“내가 아무것도 안 했다는 게 아니야. 나도 당연히 미래를 구했지.”

“…….”

“내 말은 너도 구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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