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 (190)화 (190/250)

#190

초능력관리청은 헌터의 신고를 받자마자 정확한 확인을 위해 직원을 파견했고, 제2급 변이종 두무기가 맞다는 판단을 내렸다. 긴급 임무 알림이 자격이 되는 상급 헌터들에게 발송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임무를 가장 먼저 수락한 것이 제산오였다.

“정이연 씨가 당장 들어가실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백업으로 오신 거니까요.”

이연의 옆에서 종희가 말을 덧붙였다. 이연은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마저 서류를 넘겼다. 그 뒤로는 두무기에 대한 대응 사례와 정보가 적혀 있었다. 대체로 외피가 단단하고 촉수의 가동 범위가 넓어 물리적인 피해를 입히기 어렵다는 내용으로,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장에는.

“……그건 형식적인 겁니다. 모든 긴급 임무 개요서에 붙어 있는 것이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임무 중 사망 시를 가정한 상황 처리 안내와 내용이 비어 있는 유언장 형식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 아래에는 모든 위험 사항을 고지받고 동의한다는 짧은 문구와 함께 산오의 것인 듯한 사인 역시 휘갈겨져 있었다.

이연은 헌터가 되고 나서 수많은 하급 임무를 받아 처리했지만, 이런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연이 기억하기로 산오가 해결했던 긴급 임무의 개수는 세 자릿수를 훨씬 넘었다. 그는 그때마다 여기에 사인했을 것이다. 심드렁한 얼굴로 제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항목에 망설임도 없이 동의하는 모습은 이상하게도 너무 쉽게 그려졌다. 이연의 시선이 미련이나 후회 따위는 전혀 없는 것 같은 텅 빈 유언장 부분을 맴돌았다.

그제야 산오가 지고 있는 무게가 실감되었다. 피상적으로 이해한 업적 아래에 어떤 그림자가 있는지 깨달았다. 그 등이 너무 굳건했기 때문에 알아차리는 게 늦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모순적이지 않은가.

이건 분명히 어떤 종류의 희생이었다.

어떤 금전적 이득도 그 희생을 보상해 주지 못했다. 산오 본인은 마음만 먹으면 세계 제일의 부자도 될 수 있는 대지의 주인이었다. 물질적인 보상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제산오는 정말로, 완전한 영웅이었던 것이다.

팔에 소름이 돋았다. 중압감에 대신 짓눌리는 기분이 들어, 이연은 저도 모르게 등을 흠칫 움츠렸다. 유독 멀게 느껴지는 거리감을 좁히고 싶은 것처럼 시선을 내려 산오의 사인만을 끊임없이 노려보았다. 그가 물속으로 뛰어들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했을 행동의 흔적을.

그러다가 이연이 신음처럼 중얼거린 것은 어느 순간이었다.

“제산오는 왜…….”

여전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이건 원래 산오가 주로 받던 종류의 임무가 아니었다. 아무리 긴급 임무라고 해도, 산오가 모든 종류의 긴급 임무를 혼자서 독식하지는 않았다. 그럴 수도 없었고. 그렇게 봤을 때 두무기 처치는 산오에게 불리한 것까지는 아니겠지만, 혼자 하기 번거로운 임무인 건 확실했다.

개요서를 읽고 나서도 산오가 왜 이 임무를 받아들였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경위 부분에 그 답이 있을까 싶어 눈이 빠져라 살펴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생각해 보면 산오의 마음이 어디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거의 알지 못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산오가 어느 부분에 짜증을 내고 싫어하는지는 얼추 알고 있었지만,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몰랐다. 그가 슬쩍슬쩍 웃는 것은 본 적 있어도, 왜 웃는지는 몰랐다.

불쑥 그걸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차올랐다.

그때였다.

“누나!”

두 사람을 발견한 종찬이 저 멀리서 뛰어왔다. 손전등 빛이 움직임에 따라 달랑달랑 흔들리고, 안절부절못하던 안색이 환해지는 게 자동차 라이트에 슬쩍 비쳤다.

“어떤 분을 모시…… 야!”

하루 종일 연락을 씹은 당사자를 알아보는 것쯤이야 금방이었다. 펄펄 뛰며 멱살이라도 잡을 것처럼 달려드는 종찬을 간단하게 저지한 종희가 이연에게 고개를 까딱였다.

“개요서 다 읽으셨으면 물가로 가서 대기하시죠.”

“뭐야, 설마 지원이 이 사람이야? 2단이잖아!”

“그게 다가 아닌 거 너도 알잖아.”

“아니, 그래도!”

투닥대며 움직이는 남매의 뒤에서 이연은 꼼짝하지 않았다. 이연의 눈동자는 어느새 종이에서 얕게 출렁이는 수면으로 옮겨 가 고정되어 있었다.

“제산오가 세 시간 동안 깜깜한 물속에 잠겨 있는 중이라고 했죠.”

“정이연 씨. 산오 님은 물에 숨이 부족해 죽을 정도로 허술한 분이 아닙니다.”

“그건 저도 알아요.”

이연이 갑자기 등에 멘 가방을 벗었다. 이어서 품이 커서 헐렁한 맨투맨 역시 훌렁 벗어젖혔다. 맨가슴이 드러나자 난데없는 스트립쇼에 종찬은 놀라고 종희는 눈썹을 들어 올렸다.

“뭐 하시는 겁니까?”

“바지도 벗을 거니까 고개를 좀 돌려 주시겠어요?”

이연의 말에 두 사람은 얼결에 몸을 돌렸다. 맨살에 습한 바람이 닿는 것도 잠시, 이연이 불러낸 하얀 모래가 온몸에 달라붙었다. 촘촘히 전신을 감싼 모래는 곧 래시 가드와 발목까지 감싸는 수영복으로 변했다.

“됐어요, 이제 보셔도 돼요.”

순식간에 차림새가 바뀐 이연을 본 남매의 눈에 놀랍다는 빛이 번졌다. 조금 전 이연의 상의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제산오가 인어 공주는 아니잖아요. 혹시 모르니까 들어가서 살펴볼게요.”

고글을 당겨 올린 이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연도 산오가 설마 숨을 못 쉬어서 죽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물속은 원래 인간이 사는 환경이 아니다. 어떤 상태인지 확인해야 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산오가 그냥 보고 싶었다.

“위험합니다. 안 그래도 어두운 밤인데, 물속은 훨씬 더 어둡습니다. 차라리 해가 뜨면 들어가시는 게…….”

“마, 맞아. 산오 님이 두무기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호수 안에 벽을 쳐 두셨다고. 그러니까 날 밝을 때까지만 기다리는 정도는…….”

단호한 선언에 종희는 물론이고 종찬까지 만류했다. 그러고 보니 호수 너머에 있을 수평선이 보이지 않았다. 단순히 어두워서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이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한참 노려보고 나서야 저 멀리 호수 바닥에서부터 솟아올라 공간을 가르고 있는 거대한 그림자를 얼핏 발견할 수 있었다. 확실히 빛 하나 없는 밤에는 시야 확보가 어렵다.

그러나.

“그런 문제면 괜찮아요.”

이연은 팔을 뻗었다. 길쭉한 손가락 끝을 따라 새하얀 모래가 모여들었다.

희미하게 빛이 나는 모래는 주변을 가득 채웠다. 비현실적으로 장엄하게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세 사람이 있는 곳부터 산오가 세운 벽까지 퍼진 엄청난 양의 모래는 곧 단단하게 굳은 지붕과 벽이 되었다. 반짝이는 경계가 그들이 밟고 서 있는 땅과 산오가 있을 호수를 둥글게 감쌌다. 마치 거대한 돔 같은 모양이었다. 천장이 다 만들어진 것을 확인한 이연이 손을 내렸다.

그와 동시에, 지붕 전체에서 환한 빛이 내리쬐었다.

강한 빛이 단번에 시야를 밝혔다. 그들이 서 있는 물가와 그 주위에 자라난 수풀, 잔잔한 물결이 일렁이는 호수, 그리고 저 멀리 수면 위에 불쑥 솟아올라 있는 거대한 검은 장벽까지 전부 모습을 드러냈다. 실외인데도 인공적인 벽과 천장으로 주변이 전부 막힌 풍경은 마치 영화 세트장 같기도 했다.

“……!”

단번에 뒤집힌 조도에 종찬과 종희는 물론이고, 이연 역시 눈을 찌푸렸다. 예상보다 더 밝았다. 두어 번 눈꺼풀을 깜빡인 이연이 고글을 내려 제대로 끼자, 곧 앞이 제대로 보였다. 강한 빛을 받은 호수의 윤슬이 반짝였다.

대낮처럼 환해진 공간 아래에서, 이연이 가볍게 스트레칭을 했다.

“이제 가도 되죠?”

두 비서는 그런 이연의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할 따름이었다.

*

풍덩!

늘씬한 몸이 작은 입수 소리만 내며 물속에 진입했다. 수영복 너머 닿는 수온이 차가웠다. 으. 몸서리친 이연이 적당한 온기를 만들어 내자 곧 몸 주변의 물이 따뜻해졌다.

그리고 산소. 새하얀 모래가 모여드는 것과 동시에 이연의 머리에 거대한 공기 방울이 덧씌워졌다. 작은 크기라 금세 산소가 고갈되겠지만, 바닥나면 다시 만들면 되니 상관없었다. 계속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좀 귀찮기는 해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빠르게 움직이려면 몸 전체에 씌우는 것보다는 이편이 나았다.

조금 더 깊은 수심으로 잠수한 이연은 종찬이 일러 준 방향으로 이동했다. 헤엄치는 팔다리가 유연하게 흔들렸다.

‘문제는 어떻게 찾느냐인데.’

들어오기 전 산오가 쳐 놓은 벽과 뭍의 거리로 가늠해 봤을 때, 두무기가 있을 만한 범위는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게다가 호수 바닥에 자리를 잡는다는 거대 변이종의 모습이 이연이 있는 곳에서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면 호수의 깊이 역시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이 드넓은 곳에서 제산오를 찾는 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다. 물속이니 소리를 지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너무 어둡다는 점이었다.

밖에서 내리쬐는 빛이 물을 투과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심층으로 들어오자 빛이 언제 있었냐는 듯 다시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고글이 기본적으로 근방의 사람이나 장애물을 탐지해 주긴 하지만, 거리적 한계는 있었다. 눈앞에 지평선이 보인다고 실제 지평선 즈음에 뭐가 있는지 고글로 볼 수 없는 것과 비슷했다.

게다가 D.S가 하급 헌터 장비를 수중 전투까지 상정하고 만들었을지도 알 수 없었고……. 지금까지는 잘 작동하고 있는 게 개중 다행이었지만, 언제 이상이 생길지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한 이연은 가볍게 손을 휘저었다. 부드러운 물살이 움직임을 따라 물결쳤다.

그러자 발밑에서부터 등이 켜지는 것처럼 물이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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