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 (184)화 (184/250)

#184

‘헌터들인가? 다짜고짜 공격할 수도 있으니까 조심해.’

정헌이 낮게 경고하며 태평하게 걸어오는 사람들을 확인했다. 얼핏 확인하기로 손에 든 무기는 없었지만, 초능력자라면 방심할 수 없었다.

터벅터벅 걸어온 두 사람은 검은 머리, 검은 정장, 검은 선글라스 차림을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김종희입니다. 이쪽은 김종찬이고요.’

뜬금없는 소개를 듣고 더욱더 경계 태세를 갖추는 두 사람에게 종희가 명함을 내밀었다.

‘제산오 님의 수행 비서입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종찬과 종희는 이런 일이 더없이 익숙한 사람처럼 모든 일을 처리했다. 곧 초능력 전담 수사대가 공장으로 모여들었다. 경험자인 정헌조차 감탄할 정도의 속도였다.

‘신고를 하고 싶으셨다고요. 선수를 빼앗기셨네요.’

영의 고해 성사에 건조하게 대꾸한 종희가 현장을 정리하던 수사대원 하나를 불렀다. 영의 이야기를 전하자, 대원은 영을 데려가 몇 가지 질문을 하고는 조사를 위해 동행하자고 했다.

바라던 바였다. 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소녀와 함께 차에 올라타려고 할 때였다.

‘저기.’

내내 조용하던 정헌의 목소리가 들렸다. 영이 뒤를 돌아보자, 그는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표정으로 입술만 달싹이고 있었다.

왜 저러지? 의아하게 바라보는데, 타이밍 좋게 머뭇거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네가 만약 나중에 정상적으로 2단 승단에 성공하면.’

어딘지 머쓱한 얼굴의 남자가 제의했다.

‘우리 회사 면접 보러 와. 안 그래도 2단 헌터는 나밖에 없어서 하나 더 있었으면 했거든. 네 무술 능력이라면 내 거랑 연계하기도 좋을 것 같고……. 순간 이동 능력자는 등급 상관없이 언제나 가산점이니까 원한다면 둘 다 오는 것도 괜찮아.’

쓸데없이 길게 주절거리던 정헌은 돌연 정색했다.

‘그냥 그런 선택지도 있다는 거야. 다른 계획 있으면 됐어.’

여기까지 들은 이연이 참지 못하고 정말 신기하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착한 분이 왜 전투 스타일은 그 모양인지 모르겠네…….”

“너 뭐라 했어?”

“들렸어요? 작게 말했는데…….”

“……됐다. 이야기나 끊지 마.”

“알았어요, 미안해요. 계속해요.”

난데없는 정헌의 스카우트 제의에 영은 조금 놀란 듯한 얼굴을 했다.

‘……고마워.’

정헌의 회사, 오른이 전통도 깊고 명망도 높아 업계에서는 유명한데도 불구하고 규모가 크지 않은 이유는 사람을 매우 까다롭게 채용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소속 헌터의 추천이 없으면 면접조차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내규가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꽤 폐쇄적인 회사임은 분명했다.

정헌이 제시한 것이 괜찮은 선택지라는 것은 틀림없었다. 그래서 더 놀라운 거였고.

그러나 영은 순서를 알았다. 그녀가 어두워진 안색으로 선언하듯 말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도 네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영은 제 손으로 이 초능력 공장을 고발할 예정이었다. 조사 과정에서 그녀가 실험자를 꼬드긴 정황도 낱낱이 드러날 테고, 그 결과로 어떤 처분을 받을지는 몰랐다. 아마 정헌이 자신의 제의를 취소하고 싶어질 만한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재판 끝나고 연락해.’

정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명함을 건네주었다. 명함을 주머니에 넣은 영은 이번에야말로 차에 올라탔다. 경찰차처럼 철창으로 막힌 유리창 너머로 안전벨트를 매는 영은 후련한 얼굴이었다.

영에 대한 재판은 약식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자백 및 반성의 기미가 충분히 보인다는 점과 그녀 역시 실험체라는 점, 그리고 공장에 대한 정보를 소상히 제공했다는 점이 아주 긍정적으로 작용하여, 그녀는 집행 유예와 사회봉사 80시간이라는 처벌을 받았다. 추가적으로 보석의 힘을 사용하는 것 역시 금지되었다. 소녀 역시 실험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영과 상황이 비슷했기 때문에 처벌 강도는 비슷했다.

‘집유 뜰 줄 알았어.’

재판이 끝나고 만난 정헌은 심드렁한 반응이었다.

‘……알았다고?’

‘당연하지. 네가 보석을 만들 줄 아는 것도 아닌데. 그나마 불법 연구소에 연루돼서 봉사 시간이 80시간이나 뜬 거야. 다른 일이었으면 끽해야 30시간이었어.’

‘하지만 정이연이 신고를 직접 해 줬으면 좋겠다고…….’

‘걔도 결과는 예상했을걸. 그냥 네 양심에 따라 행동하길 바란 거겠지.’

‘그렇군…….’

영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자신의 죄는 꽤 무겁게 느껴졌기 때문에, 어디 갇히지도 않고 이렇게 풀려나는 건 상상에 없었다.

‘사회봉사는 다음 초전력 전까지 마쳐 둬. 거기서 성과 내서 승단 심사 제의 받아야지.’

정헌의 어조는 그녀가 초전력을 참여하면 당연히 2단이 될 거라 확신하는 듯했다. 그 믿음이 얼떨떨하기도 하고 조금 부끄럽기도 해서, 영은 일부러 화제를 돌렸다.

‘사실 사회봉사 외에도 아직 할 일이 남았어.’

‘뭔데?’

‘사과.’

영과 소녀는 김 박사의 밑에서 일하던 시절, D.S의 공방을 습격한 전적이 있었다. 이연은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사과 정도는 하라고 했고.

그래서 재판이 끝나면 D.S를 찾아가려고 했다. 아마 받아 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서.

‘사과하면 좋지. 그럼 빨리 갔다 와.’

이야기를 들은 정헌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주일 후, 영을 다시 만난 정헌이 물었다.

‘아 참, 그 사과한다던 건 했어?’

‘……할 거다.’

‘……어어.’

그리고 다시 일주일 후.

‘사과는? 뭐래?’

‘……마음의 준비가…….’

‘…….’

정헌의 눈이 가늘어졌다.

‘사과를 하고 싶은 거야, 하기 싫은 거야?’

‘할 거다. 미안하니까. 다만…….’

영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갈 때마다 너무 긴장이 되어서…….’

‘……당신 낯가리는 성격이었어? 몰랐네.’

정헌이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동시에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상황이 계속 이런 식으로 흐른다면 영은 평생 사과할 수 없을 것이다. 한숨을 푹 내쉰 정헌이 일어섰다.

‘사과로 평생 숙원 사업 만들 거야? 거기가 어딘데?’

그렇게 세 사람은 D.S의 공방에 도착했다.

공방 건물이 보이자마자 귀신처럼 발걸음이 느려지는 영과 소녀를 제치고 앞장서서 걸어간 정헌이 공방 안으로 쑥 들어섰다.

‘계세요?’

정헌의 인사에 테이블에서 등 돌려 작업하고 있던 D.S가 일어섰다.

‘어서 오세요. 소개받고 오셨어요?’

‘아, 저는…….’

그렇게 말하며 무심코 뒤돌아본 정헌이 멈칫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의 등 뒤에 있던 영과 소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탓이다.

‘네?’

‘아, 아뇨. 어……. 의뢰를 하려고요.’

의아하게 되묻는 D.S에게 사실을 대뜸 말할 수도 없어서, 정헌은 그렇게 얼버무렸다. 다행히 그의 말에 D.S는 의심 없이 소파 테이블로 안내했다. 얼결에 의뢰서를 작성하면서도 정헌은 내내 공방 입구를 흘깃거렸지만, 사라진 두 여자가 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뭐야? 너네 뭔데요?’

정헌이 공방을 나와서 보니 영과 소녀는 지나가는 행인인 척 옆 건물의 벽에 나란히 기대어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얼이 빠질 지경이었다. 매섭게 두 사람을 노려보자, 영이 머쓱하게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여자아이가 보호자도 없이 혼자 길을 걷길래 위험할 것 같아서…….’

‘위험하긴 개뿔이 위험해? 뒤에 봉 지고 있는 댁이 다가가는 게 훨씬 위험해 보였을걸? 아니, 잠깐만.’

정헌이 두다다 말을 쏟아 내다 말고 멈칫했다. 이 근방을 지난 아이라면 짚이는 바가 있었다.

‘설마 공방으로 들어온 걔? 짧은 머리에 청치마 입은? 공방주 딸?’

‘……딸이었군.’

정헌이 D.S와 의뢰에 대해 상담할 동안, 어린 여자아이 하나가 들어와 D.S에게 야무지게 인사를 하고는 커다란 작업 테이블에 앉아 발을 동동 흔들며 숙제를 시작했다.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에 정헌이 흘끗대자, D.S는 딸이라는 말로 호기심을 일축하고는 용건에 집중했다.

‘아무튼, 덕분에 난 예정에도 없던 장비를 만들게 됐다고. 저 엔지니어 작업비도 개비싸. 한 달 월급은 통으로 날아가겠어.’

정헌이 투덜거리자, 영이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게 됐다.’

‘됐고, 내일은 도망가지 마.’

‘노력해 보겠다.’

그러나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걸 보면 익히 짐작할 수 있듯이,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얼결에 정헌은 하루에 한 번꼴로 들러 제 장비의 개발 정도를 확인하는 유난 고객이 되어 있었다. 그 짓을 한 사흘 정도 했을 때, 드디어 정헌이 폭발했다.

‘대체 왜 이러는 건데? 이유나 알자!’

버럭 소리치자 영은 한참을 우물쭈물하더니 조심스레 털어놓았다.

‘……내 예상과 다른 반응을 하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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