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옷 같은 것도 그래. 공방에서 입는 작업복은 아무리 잘 관리해도 금방 꼬질해지거든. 어쩔 수가 없어. 기계 부품들을 계속 다뤄야 되니까. 그런데 며칠 전에 별생각 없이 옷 바구니를 봤는데, 과하게 깨끗하고 빳빳한 거야. 원래는 흐늘거리고 잘 안 지워지는 찌든 때가 있던 티셔츠들이거든. 이거 봐 봐.”
급기야 D.S는 점프 슈트를 열어젖히고 안에 있는 티셔츠를 끄집어냈다. 하얀 티셔츠는 입고 공방에서 일을 한 탓에 기름이나 먼지가 조금 묻긴 했어도, 꼬질하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목이 늘어난 디자인의 새 티셔츠를 사서 작업복으로 며칠 입은 것 같았다.
“이거 산 지 삼 년은 넘은 티셔츠야. 심지어 하얀색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하얗지? 분명히 까만 얼룩도 여기저기 묻어 있었는데 전부 사라졌어. 마법처럼. 대체 어떻게 한 거야? 넌 알겠어?”
“아뇨…….”
그걸 알았으면 이연은 헌터가 아니라 하우스 키퍼로 전직했을 것이다.
“집에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다 그런 식이야. 화장실 물때도 몽땅 사라진 거 알아? 난 리모델링이라도 한 줄 알았어. 집에 들어가면 번쩍번쩍 빛이 난다고…….”
D.S의 목소리는 급기야 조금 몽롱해졌다. 벅찬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빨래는 좀 그렇지 않아요?”
이연이 떨떠름하게 물었다. 청소야 그렇다 쳐도, 빨래는 남의 세탁물 바구니를 뒤졌다는 뜻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좀 찝찝할 것 같은데.
그러나 D.S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우리 집엔 입고 나서 옷을 넣는 바구니가 두 개 있어.”
“뭐랑 뭐요?”
“세탁할 옷이랑 버릴 옷.”
D.S의 작업복은 대체적으로 수명이 길지 않았다. 온갖 유해한 물질들과 열기를 뿜는 기계에게 노출되다 보니 부드러운 섬유는 금세 해지거나 냄새가 나거나 지저분해졌고, 그건 아무리 공을 들여 세탁을 해도 쉽게 복구되지 않았다.
그래서 수습이 안 되는 옷들은 여유가 나면 한꺼번에 버리기 위해 따로 모아 두었는데.
“그게 지금 입고 있는 그 옷이에요?”
“그래. 세탁기에 넣을 세탁물 바구니는 손도 대지 않아. 그냥 버리려고 했던 옷만 이렇게 된다고.”
D.S가 다시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암만 봐도 새 옷 같은데 신기하긴 했다.
“그렇게 좋아요?”
긍정적인 감정 표현에 인색한 D.S가 저렇게까지 말하니 이연도 슬그머니 호기심이 일었다. D.S는 대답 대신 일어서서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녀가 멈춰 선 곳은 공방 구석진 곳에 위치한 문 앞으로, 벽과 비슷한 색이라 얼핏 봐서는 거기 뭐가 있는 줄도 모를 정도였다.
이연은 D.S의 공방에 뻔질나게 드나든 덕에 문의 존재는 알았지만,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은 없었다. 들어갈 일이 없었다는 표현이 더 적합했다.
D.S의 집으로 통하는 문이었으므로.
“직접 봐.”
D.S는 망설임 없이 문손잡이를 돌렸다. 끼익, 하고 낡은 경첩이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이연은 조심스레 열린 공간 안으로 들어섰다.
가장 처음 이변을 느낀 건 후각이었다.
D.S의 공방은 겨울을 제외하면 가동하는 내내 출입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영업 중이라는 알림을 겸한 환기 용도였다. 그러나 엄연한 기계 작업장이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기름과 쇠 냄새, 그리고 납이 녹는 냄새 같은 것들이 공방 내에 희미하게 떠돌곤 했다. 거슬릴 정도로 악취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공방에서나 맡을 수 있는 특징적인 냄새인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런데 문지방을 넘어가자 난데없이 햇볕 냄새가 쏟아졌다.
처음에 D.S가 햇볕 어쩌고 했을 때에는 뭔 헛소린가 싶었는데, 그야말로 햇볕이라는 표현이 딱 맞았다. 약간 바삭하면서도 따뜻하고 기분 좋은 향기였다. 바짝 말린 세탁물에서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창가에 있는 나무가 흔들리면서 나는 냄새 같기도 했다. 어디선가 산들바람이라도 불어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작 거실에 크게 난 창은 굳게 닫힌 채로 커튼까지 쳐져 있어 바깥과 완전히 차단되어 있는데도.
“와…….”
이연이 저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켜며 감탄을 내뱉었다. 집 전역에서 흘러나오는 안정되고 쾌적한 분위기에 설레기까지 했다. 홀린 듯 신발을 벗고 거실로 올라서자, D.S가 그럴 줄 알았다는 얼굴로 따라왔다.
“거봐.”
이연은 거실에도, 부엌에도, 화장실에도, 심지어 방문이 열려 있는 미래의 방에도 들어가 보았으나 풍기는 냄새는 동일했다. 게다가 묘하게 뽀송해 보이는 이부자리와 각종 옷가지에서도 기분 좋은 비누 향 같은 게 났다. D.S가 말한 대로 온갖 가구에 먼지 한 톨 없는 것은 당연했다.
D.S와 미래가 실제로 사는 집이니 생활감은 당연히 있었으나, 메이크업 룸 서비스를 받은 호텔 방처럼 정결한 느낌이 같이 났다. 신기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FT-4처럼 가정 로봇을 따로 쓰는 건 아니고요?”
말하면서도 이연은 그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실제로 FT-4를 쓰고 있는 이연의 집에서도 이 정도의 효과는 나오지 않았으므로.
“난 집안일에 대해서 잘 몰라. 미래가 오고 나서 집안일을 담당하는 FT-8을 새로 만들긴 했지만, 기존 가전제품들을 참고해서 기본적인 기능만 하게 만드는 게 다야. 그런데 이건…….”
D.S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 모로 보나 분명히 전문가의 손길이었다. 이런 광경이 FT-8로 설명되지 않으리라는 건 누구보다 D.S 본인이 제일 잘 알았다.
“우렁 각시라고 할 만하네요.”
이연이 중얼거렸다. 이미 익숙해진 코를 일부러 킁킁대 맡을 정도로 행복한 향기가 중독된 것처럼 아른거렸다.
“잡죠.”
“뭐?”
단호한 목소리에 D.S가 미간을 찌푸렸다.
“봤잖아.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니까.”
“그래 봤자 스토커잖아요”
“아니…….”
반박하려던 D.S는 이연을 보고 멈칫했다. 늘 맹하니 태평하던 얼굴이 진지하게 굳어 있었다. 마치 미래를 구하러 갈 때 같은…….
“잡아서 면상을 좀 봅시다.”
“……얼굴 봐서 뭐 하는데?”
“대체 어쩌다 D.S 씨의 우렁 각시가 된 건지 사연을 들어야겠어요.”
“그건 왜.”
“혹시 모르잖아요.”
“뭘 모르는데.”
“뭔가 특별한 조건이 있는 걸까요? 설마 집주인 성별을 가리는 건 아니겠죠?”
“…….”
사리사욕에 젖은 눈동자를 대면한 D.S가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 조건을 알아내면 당장이라도 실행해 우렁 각시를 잡아다가 집에 감금할 기세였다.
“야, 너 부럽냐?”
“무슨 소리예요? 저한테는 D.S 씨가 준 FT-4가 있잖아요. 전 그냥 미래의 안전을 위해서 안면이나 익혀 두려는 것뿐이에요. 우렁 각시여도 휴대폰은 있겠죠?”
“…….”
믿음직하지 못한 소리를 줄줄 내뱉는 이연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D.S가 깨끗한 집 안을 한번 둘러보았다. 우렁 각시는 이제까지 별다른 해를 끼치지 않았고, 앞으로도 크게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미래의 안전이라는 단어는 그녀가 절대로 무시할 수 없는 종류였다. 당장 D.S도 그것 때문에 집을 비우기가 꺼려지던 참이었고.
“미래 오기 전에 끝내.”
“저만 믿으세요.”
이연이 비장하게 읊조렸다.
“CCTV 같은 건 설치해 보셨어요?”
“뭐, 처음에는 했지.”
칠칠을 만들어 미래에게 미리 안겨 줬다는 점에서 익히 알 수 있듯이, D.S의 감은 특출나게 좋은 편이었다. 그녀는 집 안에 미래와 자신이 아닌 누군가의 손이 닿았다는 생각을 한 순간 곧바로 미래에게 물었다.
‘미래야, 집에서 모르는 사람 본 적 있어?’
D.S가 일하는 동안 미래 역시 공방에 같이 나와 있는 경우가 대다수긴 했지만, 아이 혼자 집에 있던 적도 없진 않았다. 어린 딸이 위험에 노출되었다는 가능성은 D.S를 섬찟하게 했다.
조마조마하게 물은 말에 다행히 미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웅? 없어!’
‘만약 보면 엄마한테 꼭 말해 줘야 해.’
‘당연하지.’
미래가 야무지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귀여워 D.S는 미래의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 주고는 씻고 오라며 등을 떠밀었다. 그리고 미래가 화장실에 간 사이 감시 카메라를 만들어 집 안 곳곳에 설치했다.
“공방에는 기본적으로 침입자 경계 시스템이 있어. 그런데 그쪽 알람이 안 온 걸 보면 공방을 통해서 온 건 아닌 것 같고, 남은 곳은 집에 있는 창문들 정도라 거기 중심으로 설치했어.”
D.S는 간단한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그녀가 실제로 설치한 감시 카메라는 무려 10개였다. 사람은 물론이고 개미 새끼 하나도 쉽사리 지나가기 힘든 촘촘함이었다.
“그런데 한 번도 걸린 적 없겠군요.”
결과는 예상이 갔다. 만약 D.S가 감시 카메라 화면으로 우렁 각시를 잡아냈다면, 집 안은 진작 원래대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좀 이상해.”
아무리 감시 카메라를 설치했다고는 해도, D.S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유능한 만큼 일이 많았으므로.
그래도 일하는 틈틈이 감시 모니터를 흘끗대긴 했으나, 누군가가 침입한 장면은 잡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집 안은 여전히 실시간으로 깨끗해지고 있었기에, 결국 공방 문을 닫은 새벽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감시 카메라를 쭈욱 돌려봤다. 그렇게 D.S는 우렁 각시의 수법을 알아냈다.
“내가 보지 않을 때만 귀신같이 카메라 앵글을 잠깐 돌렸다가, 내가 볼 때는 다시 원상 복구 해.”
“……그게 가능해요?”
D.S가 로봇도 아니고, 그녀가 언제 카메라 액정을 볼지는 아무도—심지어 D.S 본인도— 계산하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까 말이야. 일부러 불규칙하게 보려고 해도 소용없어.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
그즈음, D.S는 이 우렁 각시가 그녀의 집에 침입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나날이 쾌적해지는 집 안이 낯설면서도, 본능적으로 정신이 해이해졌다. 미래는 여전히 집 안에서 엄마 외의 다른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요정 같은 건가? 이성적이기 짝이 없는 D.S조차 한순간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이 정체 모를 우렁 각시는 치밀하고 무해했다.
“저도 그 감시 영상 보여 주실 수 있어요?”
“따라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D.S가 다시 공방 쪽으로 향했다. 이연이 그녀를 따라나서려는데, 문득 느낌이 이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