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침묵이 흘렀다. 고개 숙인 재경을 제외한 두 사람의 시선이 서로 마주쳤다. 모종의 모의는 3초 안에 이루어졌다.
“에이, 귀신이 어디 있어요?”
말을 먼저 꺼낸 것은 이연이었다. 혜강이 재빨리 말을 받았다.
“맞아요. 진짜 변이종이면 개이득이잖아요. 재경이 형이 원하는 거 아니에요?”
“맞아. 그냥 이야기만 들어 보는 정도는 괜찮지 않아요?”
“그거야, 그래도…….”
이 모든 대화는 마치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물 흐르듯 이루어졌다. 이상한 징조를 느낀 재경이 자리에서 빠지려는 순간, 혜강이 퇴로를 막았다.
“그럼 일단 시작해 보죠. 저 많이 알고 있어요.”
“그래!”
이연이 잽싸게 대꾸했다. 희희낙락하며 사이좋게 모여 앉는데, 이 화제의 근본인 재경이 여기서 빠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재경은 울며 겨자 먹기로 두 사람 사이에 찌그러져 앉았다.
여기서 이연이 간과한 게 하나 있다.
“서구청 뒤에 산이 있는데, 그 산 어딘가에 폐가가 있대요.”
분위기를 낸답시고 불을 죄다 끈 사무실은 어두컴컴했다. 빛이라고는 휴대폰 불빛 몇 개만 반짝이는 소파에서 혜강의 음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어떤 유튜버가 폐가 체험 한답시고 거길 들어간 거예요. 거기서 손전등 하나만 켜고 룸 투어 하듯 안을 돌아다녔는데, 어느 순간 한기가 든다는 소릴 계속하더래요. 늦봄이라 밤이어도 한창 날씨가 따뜻할 때였는데도 말이에요. 그러다가 구석에 달린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걸 본 거지.”
조곤조곤한 음성이 확 낮아졌다.
“그런데 거기가 유독 어두워서 안쪽에 뭐가 있는지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대요. 폐가 체험 한다고 일부러 밝은 손전등을 챙겨 간 건데 비춰도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냥 검은 안개로 가득 찬 공간 같았다는 거예요.”
꿀꺽. 누가 삼켰는지 모를 침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그래서 그 방 쪽으로 조심히 다가갔는데…….”
말끝을 질질 늘인 목소리는 이내 커다랗게 크기를 부풀렸다.
“확!”
“으헉!”
그와 동시에 화들짝 놀란 사람들의 비명이 터졌다. 소파가 들썩이는 소리와 함께 휴대폰 불빛들이 어지럽게 흔들렸다. 요란한 반응들이 한바탕 지나가고 난 후에야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사람 말로는, 누군지 모를 손이 자기 손목을 덥석 잡고 잡아당겼다는 거예요.”
목소리의 강약을 능숙하게 조절한 혜강이 긴장된 눈으로 저를 주시하는 두 사람을 향해 일일이 눈을 맞추고 다시 입을 열었다.
“편의상 손이라고는 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손인지 뭐였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뭔가 커다랗고 두껍다기보다는 오히려 길쭉하고 섬세한 여자 손가락 같았는데, 남자인 그 사람이 하마터면 끌려갈 정도로 엄청난 힘이었대요. 그 정체 모를 손이 방 안쪽으로 어떻게든 끌고 가려고 애를 쓰는데, 그 사람도 느낀 거지. 아, 여기서 내가 저 방에 끌려 들어가면 끝이다.”
한껏 분위기를 잡던 목소리가 다시 가볍게 풀어졌다.
“그래도 다행히 인간의 본능이라는 게 대단해요. 거기서 필사적으로 뿌리쳐서 폐가에서 뛰쳐나오는 데에 성공했대요. 거기서 나오니까 야외 공기는 바로 더워져서 더 소름 끼쳤다더라.”
“누가 이미 들어가 있었던 거 아냐? 노숙자나…….”
조심스레 이연의 이의 제기가 끼어들었다. 혜강이 태평하게 대꾸했다.
“그건 모르지. 그런데 확실한 건.”
슬그머니 낮아지는 목소리에 다시 긴장한 시선이 한데 모였다. 한참 뜸을 들인 목소리가 느릿하게 흘러나왔다.
“손이 엄청나게 차가웠다고 하더라…….”
콱. 그와 동시에 커다란 손이 이연의 어깨를 틀어쥐었다.
“악!”
천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손바닥이 닿았다. 별안간 어깨가 잡힌 이연이 깜짝 놀라 파득 튀어 올랐다. 커다란 비명이 쩌렁쩌렁하게 사무실 안을 울렸다.
벌렁벌렁 뛰는 심장을 뒤로하고 벌떡 일어서 고개를 돌리자, 뒤에 뭐가 시커먼 게 보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낸 것은 익숙한 목소리였다.
“별걸 다 하고 있군.”
“아.”
산오였다. 순식간에 긴장이 풀린 이연이 소파에 주르륵 미끄러졌다.
“소리 좀 내고 다닐 수 없냐…….”
“문소리 났는데.”
산오가 워낙 기척 없이 다니는 것도 있겠지만, 세 사람이 이야기에 하도 집중해 있느라 못 들은 것 같기도 했다. 산오의 귀환에 혜강이 뒤늦게 인사했다.
“어서 와요, 형. 늦게 왔네요.”
“뭐.”
심드렁하게 대꾸하며 산오가 불을 켰다. 탁. 단번에 밝아진 내부가 하얗게 질린 재경의 안색과 울기 직전인 이연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산오가 눈썹 한쪽을 치켜들었다.
“뭐지?”
“아, 제가 괴담 말해 주고 있었거든요. 형도 들을래요?”
유일하게 멀쩡한 혜강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산오의 시선이 핼쑥해진 이연의 안색과 많이 지친 것 같은 재경을 차례대로 훑었다. 그 눈빛이 어쩐지 민망해, 이연은 괜히 시선을 피했다.
이연 자신도 본인이 괴담을 무서워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는 괴담에 흥미가 전혀 없는 것은 물론이고, 공포물에 대한 관심 자체가 아예 없었다. 당연히 어떤 내용이 있는지도 잘 몰랐다. 초호시에 괴담이 많다더라, 기껏해야 귀신 이야기겠거니. 이연이 괴담에 대해 생각한 거라곤 딱 그 정도 수준이었다.
그렇다고 재경처럼 귀신의 존재를 믿는 것도 아니었다. 이연은 귀신을 보기는커녕 가위조차 눌려 본 역사가 없었다. 꾸는 악몽은 전부 현실적인 내용이었고……. 만약 귀신이 존재하고 그들이 살아 있는 사람에게 정말로 복수를 한다면 세상에 연쇄 살인범이나 조직 폭력배, 독재자, 범죄자 같은 사람들은 진작에 사라졌어야 했다. 적어도 이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것과 이야기에 몰입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인 것이다.
이연은 안타깝게도 분위기에 쉽게 동화되는 성격이었다. 으스스한 분위기, 음울한 말투, 조여드는 템포 같은 것에 순간적으로 빠져들었다. 가히 점프 스케어에 최적화된 타입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사실을 당사자가 몰랐던 것이 비극이었다. 언제 여럿이 모여서 괴담을 말해 봤어야 알지……. 이연이 아직도 놀람이 가시지 않은 심장을 다독이며 입을 삐죽였다. 물론 타깃이었던 재경 역시 꼬박꼬박 놀라긴 했지만 번번이 이연의 존재감에 묻혔다. 혜강의 목표는 손쉽게 바뀌었다.
고작 이야기 두세 개 들었을 뿐인데 벌써 진이 다 빠졌다. 이연이 힘없이 몸을 등받이에 기댔다.
그 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산오가 불쑥 손을 뻗었다. 뜨겁다 싶을 정도로 온도가 높은 손이 느릿하게 소름이 돋은 이연의 팔뚝을 문질렀다. 흠칫한 이연이 팔을 빼려고 힘을 주었지만 산오는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식어 있던 피부가 단번에 따뜻해졌다.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별안간 목덜미가 뜨거웠다.
“백숙 같군.”
저따위 소리를 하는데도 설레면 내가 너무 이상한 거 아닐까? 이연은 그렇게 자조하며 필사적으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지만, 잘되지는 않았다.
“이제 얘도 왔으니까 정리하고 집에 가자.”
감정을 숨기려다 보니 저도 모르게 불퉁한 목소리가 나왔다.
“에이, 이제 시작인데?”
“시작은 무슨.”
혜강의 야유를 가볍게 물리치며 일어서려는데, 산오가 뒤에서 슬그머니 눌렀다. 그 딴에는 가벼운 힘이었겠지만, 당하는 이연은 종이 인형처럼 맥없이 소파에 다시 앉아야 했다. 뭐야? 어리둥절한 눈으로 산오를 돌아본 이연은 그대로 굳었다.
“왜.”
초록색 눈이 악랄하게 빛나고 있었다.
“재밌어 보이는데.”
그렇게 산오가 이 자리에 마지막으로 끼게 된 것이었다.
그럴 줄 알았지만, 산오는 혜강이 어떤 이야기를 하든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안색이 바뀌기는커녕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 모습에 혜강은 그럴 줄 알았다며 가볍게 투덜거리면서도, 그 옆에서 다채로운 표정 변화를 뽐내고 있는 이연을 보며 인자하게 웃었다.
산오는 반응이 없긴 했으나 분위기를 방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장승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좀 무섭기까지 했다. 덕분에 혜강의 심야 괴담 쇼는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종종 이런 자리 마련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재밌네.”
“아니면 모여서 공포 영화 보는 것도 재미있겠다. 혼자서는 무서워서 잘 못 보겠더라고.”
숨어 다니는 변이종의 실마리를 찾겠다는 본질에서 벗어난 지는 오래였다. 이미 변이종을 찾고 나발이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평범한 괴담 수다로 변질된 자리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