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두런두런 먹고 마시며 분위기가 풀어지자, 화제는 자연스럽게 재경의 새 직장이 되었다.
“그런데 정확히 뭘 하는 곳이에요? 그냥 아무 변이종 생태 연구?”
“뭐……. 매년 바뀌긴 하는데, 아직 정확히는 몰라. 듣기로는 상급 변이종도 한다더라고.”
그렇게 말하는 재경의 뺨은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앞으로가 즐겁고 기대돼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어차피 일인데 저렇게까지 기뻐할 수가 있나? 그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좀 부럽기도 해서, 이연은 신기하게 재경을 바라보았다. 그새 잔을 비운 혜강이 대화에 참여했다.
“상급 변이종 연구를 많이 하신 분인가 봐요?”
“어어. 그분 논문은 전부 읽었는데, 진짜 짱이야……. 이건 면접하면서 들은 건데, 소장님이 최상급 변이종 연구를 많이 하셨다고 그러더라고. 특히 보주 가지고 있는 완전 위 등급 애들 있지? 내년쯤에는 다시 그쪽을 연구해 볼까 싶으시대서, 나 내년까지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붙어 있으려고.”
상급, 특히 최상급 변이종은 초능력관리청의 협력이 없으면 쉽게 연구하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야생의 변이종을 찾는 것보다 초능력관리청이 관리하고 있는 변이종을 관찰하는 게 훨씬 쉽고 편하니까.
상급 변이종 연구 자격이 주어질 정도라면 연구소장의 학계 권위가 꽤 높다는 의미였다. 그런 사람이 소속 인원이 세 명밖에 안 되는 소박한 연구소만 차려서 일하고 있다니……. 연구자들이 대부분 그렇다지만, 확실히 괴짜에 가까운 행적이었다.
“그래요. 그래도 불법 행위 하는 것 같으면 도와주지 말고 사표 쓰고 신고하세요.”
“아, 이제 안 그럴 거라니까…….”
재경이 머쓱하게 투덜거리며 맥주를 마셨다. 클럽 연구소 때도 변이종이 위험하다고 판단하기 전에는 얌전히 시키는 일만 했던 인간이다. 솔직히 한다는 아르바이트들도 의심스럽고……. 방심할 수가 없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자 찔리는 것이 있는 재경은 시선을 피하기 바빴다.
그래도 합법적인 연구소라니까 크게 문제는 없겠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여긴 이연이 시선을 거두고 족발을 한 점 집어 먹었다. 어디서 사 왔는지 쫄깃하고 매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재경의 말에 이연이 고기를 우물거리다 말고 시선을 들었다.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는 폼이 퍽 심각해 보였다. 먹느라 입을 열 수 없는 이연 대신 혜강이 물었다.
“무슨 문제요?”
“그게…….”
구구절절하게 늘어놓은 사정을 요약하자면, 재경의 능력을 간단히 테스트해 볼 겸 연구소장이 과제를 하나 냈단다. 도시 내를 돌아다니는 변이종을 찾아보고, 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할 것.
“쉬운 거 아니에요?”
이연이 고개를 갸웃했다. 최하급 변이종의 경우 인간을 공격하지 않는 온순한 종이 많을뿐더러, 외형이 귀여운 것들도 많았다. 그래서 발견해도 신고하지 않는 시민들이 많았고, 실제로 이러한 신고 건을 전부 받기엔 헌터도 국립 연구소도 인력이 부족하기도 했다.
그런 암묵적 합의로, 주민의 생활이나 안전에 불편을 끼치는 변이종이 아니라면 최하급 변이종은 도시 내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심지어 재경은 무려 변이종을 키우고 있지 않은가. 그것도 네 마리나…….
문제라고 칭할 정도로 어려운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런 의문에 재경이 하소연하듯 대답했다.
“난 쉽게 볼 수 있는 변이종 말고 좀 특이한 걸 하고 싶어.”
“……굳이?”
“아니, 생각해 봐. 이게 내 직장에서의 첫 과제잖아. 이 과제로 내 인상이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하잖아. 너무 평범하게 보이긴 싫단 말이야. 유망주처럼 보이고 싶다고.”
“재경 씨네 소장님도 그걸 원할까요?”
“나 진짜 잘하고 싶어. 여긴 내 꿈의 직장이라고.”
떨떠름하게 현실을 들려줘도 재경은 희망을 접지 않았다. 평범한 신입의 야망에 이연과 혜강의 눈이 마주쳤다. 말려도 안 듣겠지? 그냥 도전하게 내버려 두고 나중에 현실을 깨닫게 하는 게……. 무언의 대화가 순식간에 오갔다.
“그런데 이게 내 힘만으로는 힘들 것 같아서 말이야.”
아, 설마.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재경을 향했다.
“이거, 너희한테 의뢰해도 될까?”
그간 재경이 맡겼던 소소한 의뢰들을 생각하면 이번 의뢰 내용은 꽤 본격적이다. 잠깐 생각하던 이연이 물었다.
“그러니까…… 흔치 않은 변이종을 찾아 달라는 거죠?”
“응.”
“저는 하급 헌터라서 하급 변이종 임무밖에 못 하는데요. 걔네들은 전부 재경 씨가 알 법한 변이종일걸요.”
“그건 알아. 임무 할 때 데려가 달라는 뜻은 아니야.”
재경은 조금 망설이는 듯하더니 우물쭈물 대며 덧붙였다.
“그냥, 위험을 무릅쓰고까지 의뢰를 수행할 필요는 없어. 지나가다 운 좋게 보이면 연락해 주는 걸로도 괜찮으니까……. 보이면, 보이면 알려 줘.”
“…….”
이연이 그런 재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개를 숙인 탓에 기다란 머리카락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자세한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머쓱한 듯 컵을 만지작대는 손가락과 조금 붉어진 광대 정도만 보일 뿐이었다.
눈만 깜빡이던 이연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테이블에 가득 차려진 음식과 술. 나서서 줄줄 늘어놓던 제 안부와 근황.
혜강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마침 혜강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방법은 생각해 둔 게 있고요?”
혜강의 물음에 재경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서 말이야, 뭉치를…….”
“그건 안 되죠.”
이연이 딱 잘랐다. 그냥 관찰만 하는 거라면 모를까, 보고서를 써서 서면으로 남기는 행위는 곤란했다. 2급 변이종을 발견한 경위를 적는 부분부터 난항이었다.
재경은 진작에 이연이 거절할 걸 알았는지 두 번 물어보지도 않았다. 제 변이종들을 보고서에 쓰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대신 자신 없는 대안이 흘러나왔다.
“……변이종 암시장?”
“보고서에 변이종 암시장에서 봤다고 적어도 되겠어요?”
“그건…… 안 되겠지?”
재경이 시무룩하게 웅얼거렸다. 한세월 걸리겠군. 직장인 5년 차는 벌써 미래를 예측했다.
“언챗에서 찾아보는 건요? 희귀 변이종 목격담 찾아보면 몇 건 나올 것 같은데.”
“이연 씨는 인터넷 커뮤니티만 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허세에 가득 찼는지 모르는구나. 걔네들은 날조에 도가 튼 애들이라서 믿을 게 못 돼.”
이미 해 봤구나. 이연은 안타까운 얼굴로 재경을 토닥였다.
그 후로도 이런저런 방법을 이야기해 봤지만 마땅한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헌터가 아닌 재경이 접근할 수 있는 변이종은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일반인을 위험종 처치하는 곳에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거기서 생태를 연구할 정도로 여유를 주기도 힘들었고. 산오가 아닌 차금으로는 그런 중상급 변이종 임무를 맡지도 못하지만…….
각자 고민하느라 이야기가 조금 정체되었을 즈음, 혜강이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무릎을 탁 쳤다.
“아, 이건 어때요?”
혜강이 내놓은 방책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이었다.
“다들 초호시에 괴담 많은 거 알죠?”
“괴담?”
이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초호시는 변이종 등장으로 시내 부분만 급하게 집중적으로 개발된 지역이다. 덕분에 도시의 중심부는 서울시 못지않게 번화했지만, 외곽으로 가면 갈수록 시골 느낌이 물씬 풍겼다. 한창 개발 중인 구역들이 많긴 해도 시내가 넓어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이 아수라 백작 같은 급격한 도시 발달은 자연스럽게 부조화적인 풍경을 여기저기 양산해 냈다. 지어지다 말고 건설사 문제로 공사가 멈춰 있는 건물, 오래되어 잡초가 무성한 폐가, 전체 점포의 절반 이상이 비어 있는 상가 거리……. 외곽 지역에 가면 종종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자본의 사정으로 인한 결과물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보기엔 을씨년스럽다고 느낄 만했다. 그래서 그런지 초호시에는 유독 이런저런 괴담이 많았다. 특히 몇몇 괴담들은 초호시 대표 괴담이라고 할 정도로 유명했다.
“그게 변이종이랑 무슨 상관이야?”
옆에서 가만히 듣던 재경 역시 의아하게 물었다. 혜강이 의기양양하게 대꾸했다.
“여긴 초호잖아요. 거기 귀신이 있을 확률보다는 신고당하지 않은 변이종이 있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요?”
모두의 머리 위에 느낌표가 떠올랐다. 괴담의 시점은 보통 어두운 새벽. 좁아진 시야로는 갑자기 튀어나온 변이종을 귀신이라고 착각할 가능성도 높았다. 그런 이유라면 변이종이 특히 많은 초호시에 괴담이 무수히 도는 것도 그럴듯했다.
“예전에 한창 괴담에 꽂혀서 찾아다니던 적 있거든요. 그래서 관련 커뮤니티 눈팅하다가 본 적 있어요. 초호시 괴담 중에 변이종 보고 착각한 것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그럴듯한데?”
이연이 턱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혜강의 설명을 듣고 보니 제법 신빙성이 있는 것 같았다. 괴담 말하는 것 정도야 사무실에서 당장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기억나는 괴담 있어?”
“어, 나 그때 엄청 많이 봤어.”
“……다른 방법은 없나?”
쾌속한 전개 사이로 우물대는 목소리가 슬그머니 흘러나온 것은 그때였다.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에게로 쏠렸다. 재경이 눈을 내리깐 채 바닥만 집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조그마한 웅얼거림이 뒤늦게 샜다.
“진짜 귀신일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