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
태진과 세은, 세미의 신병 인도는 산오가 맡았다. 그간 숱하게도 반복해 왔던 불법 연구소 소탕 경력의 덕이 컸다. 세 사람을 데리고 다시 엘리베이터에 탄 산오는 몇 시간 후에나 다시 돌아왔다.
그때쯤엔 이미 늦은 새벽이어서, 공방 구석 소파에서 혜강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꾸벅꾸벅 졸고 있던 이연을 산오가 들쳐 업고 집까지 배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그날 밤은 모두 해산했다.
“그 셋은 어떻게 됐어?”
이연이 홀로 떨어져 벽에 기대 휴대폰을 확인하던 산오에게 물었다. 산오는 액정에서 시선도 떼지 않은 채로 대답했다.
“이태진은 실형을 받을 거다.”
그건 충분히 예상하던 사실이었다. 산오의 일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쳐도, 일단 김 박사의 공범이었다. 게다가 그가 가지고 있던 보석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초능력자를 착취한 사실이 더 드러날 것이다. 미래 실험의 책임자기도 했고.
“이세은 씨와 이세미 씨는?”
“그 두 사람은 아마 사회 봉사 명령을 받을 겁니다.”
이번에 대답한 것은 산오가 아니었다. 입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세 사람의 시선이 모두 돌아갔다.
“……진희수?”
D.S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희수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의 뒤로 선팅이 짙게 된 검은 세단이 보였다.
“두 사람은 실질적으로 범죄에 가담하긴 했으나 역할이 미미하거나 미수로 그쳤습니다. 초능력 팔찌 역시 핵이 되는 재료인 보석 정제를 직접 한 것이 아니라 이태진에게 받았다는 사실을 주장하면 참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초능력 재원은 언제나 귀하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이연이 떨떠름하게 말끝을 흐렸다. 여러모로 심란한 판결이었다.
희수는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으나, 단정한 눈매 아래 다크서클이 지난번보다 더 짙어져 있었다. 조금 늘어진 목소리로 설명한 희수는 공방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채로 문가에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산오와 미래에게 대략적인 설명은 들었습니다. ……저희 가문이 부끄러운 짓을 했다지요.”
치부를 담담히 인정하는 얼굴이 음울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모친의 사주였다. 충격을 받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전말을 밝힐 생각은 없는 건가요?”
뉴스에서 단순 사고로 얼버무려진 것을 보니 이미 결론이 난 것 같지만, 그래도 조심스레 물었다. 희수가 씁쓸하게 웃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 있는 것 같은데, 제가 힘이 좀 없습니다.”
아주 많은 이야기를 생략한 얼굴엔 깊은 고단과 자조가 어려 있었다. 숨기고 싶어서 숨기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 마음을 짐작하기가 어려워, 이연은 조용히 입을 다무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나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건 이런 것뿐입니다.”
말을 끝낸 희수가 등을 돌렸다. 철컥. 세단의 뒷좌석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멀뚱히 바라보던 이연의 눈이 점점 커졌다.
작은 발이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본채 지하에서 진행된 실험 자료를 제보한 익명의 제보자가 있습니다.”
희수가 문을 활짝 열자, 미래가 펄쩍 뛰어나왔다.
“엄마!”
“그 서류 중에는 가주인 진정원이 식솔인 강미래의 기력을 없애는 실험을 연구자에게 주문했다는 내용도 있더군요.”
제 품에 망설임 없이 안기는 아이를 얼결에 마주 안아 준 D.S가 눈을 깜빡였다. 그녀로서는 아주 드물게 멍한 얼굴이었다.
“입 다무는 조건으로 강미래를 진덕선에게 보낸다.”
선고처럼 떨어진 말에 D.S의 눈이 크게 뜨였다. 희수가 희미하게 웃었다.
“어차피 묻힐 거라면 이 정도 거래는 하는 게 이득 아니겠습니까.”
“엄마, 우리 이제 같이 살아도 된대!”
엄마의 품 안에서 고개를 발딱 든 미래가 신나게 조잘댔다. 행복이 방울방울 흘러넘치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D.S가 미래의 이마와 제 이마를 맞댔다. 놓치기라도 할 것처럼 아이를 끌어안은 손이 간헐적으로 경련했다.
“……그래도 이런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건.”
그토록 바라던 말을 들으면서도 D.S는 쉬이 믿지 못하고 우물쭈물 말을 꺼냈다. 집안 어른들이 귀에 인이 박이도록 했던 말은 가슴 깊숙이 남아 있었다.
거기에 돌아온 것은 뜬금없는 물음이었다.
“미래가 왜 매일매일 지하를 내려가서 연구실을 구경했는지 아십니까?”
희수는 새벽에 제 집무실에 잘린 침대 조각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 당질을 보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 귀마개를 낀 채로 눈을 크게 뜨고 있던 미래는 희수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제가 있는 곳을 확인하고는 별안간 울음을 터트렸다.
따뜻한 코코아를 타 주고, 눈물을 닦아 주고, 담요를 덮어 주고 나서, 희수는 미래와 긴긴 이야기를 했다. 그 결과, 그는 미래가 했던 대부분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의 공방과 비슷한 풍경이라고 하더군요.”
커다란 책상, 널려 있는 서류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공구들. 기계들. 고작 그런 공통점만으로도 미래는 엄마와의 연결고리를 찾아냈다.
“거기 있으면 엄마랑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D.S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래와 맞대고 있던 이마가 스륵 흘렀다. 미래가 목이 간지럽다며 웃으며 몸을 움츠렸다. 조그마한 어깨는 어른의 얼굴을 묻기에는 조금 작았지만, D.S는 꿋꿋하게 제 얼굴을 감췄다.
“엄마랑 같이 살자.”
뭔가에 꽉 막힌 듯 잠긴 목소리는 덜덜 떨리고 있었다. 너무 조그마해서 잘 들리지도 않았다.
“엄마가 잘할게…….”
그러나 대답을 해 주는 사람은 똑똑히 들었다.
“응!”
힘찬 대답과 함께 작은 손이 D.S의 등을 마주 끌어안았다. 너른 등은 아이가 둘러 안기에는 너무 컸지만, 꼭 쥔 작업복이 잔뜩 구깃해질 정도로 센 힘이었다.
감동적인 장면에서 세 사람은 조금 소외되었다. 낄 필요도 없긴 했다. 희수의 곁으로 다가온 산오가 느릿하게 중얼거렸다.
“익명?”
익명의 제보자의 항의에 희수가 피식 웃었다.
“네가 거기서 모든 걸 챙겨 가지고 나온 건 비밀이니까.”
본가에서도 침입자의 정체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산오가 증거를 포함한 모든 것을 들고 가 버린 덕도 있을 테지만, 칠칠이 폭파되면서 안 그래도 얼마 없던 흔적을 흩트려 놓기까지 한 공이 컸다.
게다가 지하 연구실의 존재는 극비 중의 극비. 가주의 아들인 희수에게도 알리지 못했던 비밀인데다 연구소의 실질적 주인인 태진은 물론 쌍둥이까지 모조리 잡혔으니 더더욱 움직이기 곤란해졌을 터였다.
“눈 밖에 났겠군.”
산오가 무감하게 중얼거렸다. 희수가 걱정 말라는 듯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원래 안에 들지도 않았어.”
싱겁게 웃는 얼굴은 묘하게 상쾌해 보여서, 이연의 기억에 남았다. D.S가 희수를 믿는 이유를 좀 알 것 같기도 했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D.S는 어느새 감정을 추스르고 미래를 의자에 앉히고는 다시 작업을 시작했다. 자연스러운 복귀에 이연이 황당하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아니, D.S 씨. 지금 일할 상황이에요? 감동의 재회를 했으면 미래랑 놀아 줘야죠. 그렇게 펑펑 울기까지 했는데…….”
“닥쳐.”
일갈한 D.S가 바삐 손을 놀렸다. 아까 하던 작업의 연장선인 것 같았다. 아까부터 대체 뭘 저렇게 만드는 거야? 의뢰가 그렇게 밀렸나? 의아한 얼굴의 이연이 미래가 앉아 있는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로 의자를 밀어 D.S의 책상 근처로 다가갔다. 드르륵, 바퀴 굴러가는 소리와 함께 두 명의 고개가 빼꼼 내밀어졌다.
책상 위에는 사람 머리통만 한 기계가 놓여 있었다. 매끄러운 금속 부품으로 이루어진 몸체는 눈사람처럼 짧뚱했다. 중앙에 놓인 단추 같은 검은색 물체 두 개가 눈이라고 간신히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대충 생긴 생김새였다.
“엄마, 그게 뭐야?”
미래의 물음에 D.S가 대답 없이 기계의 어딘가를 눌렀다. 그러자 지잉, 하고 부품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안녕하세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어, 이 목소리. 이연의 눈이 크게 뜨였다. 놀란 얼굴을 눈치채지 못한 미래가 해맑게 대답했다.
“강미래! 네 이름은 뭐야?”
[제 이름은 Future-7. FT-7이라고 불러 주셔도 좋습니다.]
FT 시리즈는 D.S가 그녀의 딸을 생각하며 만든 인공 지능 로봇 시리즈였다. 미래가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부적에 가까웠다. 같은 넘버라고 해도 새로 만들었으니 이전에 축적했던 데이터는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FT-7은 로봇이니 그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에프티? 이상한 이름이다.”
[혹시 부르고 싶은 별명이 있습니까?]
그 말에 D.S가 눈썹을 슬쩍 들어 올렸다.
“……뭐야? 이런 초기 질문은 넣은 적 없는데.”
나직한 중얼거림에 정신이 확 들었다. 이연이 더듬대며 입을 열었다.
“칠, 칠칠.”
[칠칠칠으로 하시겠습니까?]
다음 대답은 조금 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뇨, 칠칠!”
“야, 너 또……!”
D.S가 뒤늦게 불만을 표시했지만, 조그만 기계는 명령 처리가 어마어마하게 빨랐다. 명랑한 기계음이 안내했다.
[새로운 호칭을 입력하였습니다.]
로봇이 그럴 리가 없는데, 어쩐지 웃는 것 같은 목소리가 경쾌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