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 (136)화 (136/250)

#136

여느 때와 같이 파티 중에 세미가 등장하고, 세은이 자리를 피하고, 잠깐 숨기 위해 나왔던 비상계단으로 이연이 문을 열고 들어온 후.

‘세은 씨.’

‘……이연 오빠?’

그리고 나서는 모두가 아는 대로.

“세미가 잡혔죠.”

무려 희수의 손에 직접.

세은은 이연과 먼저 마주친 덕에 계단에 갇혔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어떻게 능력을 풀어 건물을 빠져나오긴 했지만, 호텔 앞에 서 있는 경찰차와 사람들을 보니 무서워져서 세미는 물론이고 희수와도 연락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허겁지겁 집에 돌아와서야 세미가 잡혀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기사로 나오지도 못한 그 사건은 아버지를 통해서 들을 수 있었다.

‘희수가 세미를 데려갔다는구나.’

‘네?’

세미는 종종 얄밉고 제멋대로 굴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자매였다. 초능력 관리청에 잡혀가길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떻, 어떻게 해요? 희수 오빠가 세미를 풀어 줄까요?’

놀라고 당황한 세은과 달리 아버지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다. 마치 모든 결과를 미리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걱정 마. 세미에게는 아무 일 없을 거야.’

아버지가 세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가 허튼소리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세은은 그 위로에 안심했다. 아버지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괜찮아. 곧 볼 수 있겠지.

‘언니, 나 오늘 찍은 영상 보여 줄까?’

‘아니. 지금 말고 나중에.’

세은은 미래와 눈을 마주치지도 않고 건성으로 중얼거렸다. 세미가 잡혀간 후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일상을 보고 편집해 줄 만한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미래는 그 후로도 몇 번인가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지만, 세은이 계속 다음을 기약하자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나란히 앉아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말 몇 마디를 건네고, 다시 조용해지는 일만 반복 중이었다.

‘언니, 요즘은 무도회 안 가?’

파티가 있는 날이면 늘 먼저 일어서곤 했던 세은이 한동안 그런 기미가 없자 미래 딴에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미래의 물음에 세은이 열없이 웃었다.

‘응. 앞으로 안 가.’

아마 일이 그렇게 됐으니 영원히 가지 못할 터였다. 세은은 파티에 너무 많이 다녔고, 말을 직접적으로 주고받지 않더라도 낯익은 얼굴이 되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이제는 입장시켜 줄 희수도 없었고.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왜?’

‘아마 이제 언니를 보고 싶을 사람은 없을 거야.’

돌이켜 생각해 보니 파티에 그렇게 자주 다녔는데도 의미 있는 인간관계는 하나도 만들지 못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느꼈는지 모르겠다. 세은이 무릎을 세워 고개를 묻었다. 정확히 뭐가 그렇게 섭섭한지 그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럼 나중에 미래가 크면, 같이 가자.’

그때, 낭랑한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었다.

‘미래는 언니가 계속 보고 싶을 테니까, 미래가 거기 가면 보고 싶은 사람이 생기는 거잖아.’

‘……내가.’

세은은 말을 하다가 목이 메는 느낌이 들어 숨을 멈췄다. 조금 떨리는 목소리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내가 보고 싶었어?’

‘응.’

명랑한 목소리는 조금의 틈도 없이 대꾸했다.

‘보고 싶으니까 계속 오는 거잖아.’

‘……여기 구경하려고 오는 거라며.’

‘그것도 좋지만, 언니랑 있는 것도 좋아.’

어린아이는 제 맘을 숨기지도 않고 조잘조잘 모두 내보였다. 쏟아 내는 진심은 솜사탕처럼 푹신한 주제에 마음에 적셔지니 설탕 알갱이처럼 들러붙었다. 세은은 대체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손을 뻗어 미래를 쓰다듬었다. 작은 머리가 가만가만 쓰다듬는 손길에 기대어 오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세미는 돌아오지 않았다. 세은은 하루하루 초조해졌다. 아무 일 없다면 세미가 왜 풀려나지 않지? 왜 아직까지 잡혀 있는 거지? 걱정과 불안이 점점 세은의 마음을 덮었다. 아버지에게 다시 물어봐도 큰 소득은 없었다.

‘진희수가 잔꾀를 다 쓰는군.’

이런 투덜거림이나 돌아올 뿐이었다.

세미에게는 순간 이동 능력이 있으니 혼자서 탈출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능력을 왜 쓰지 않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잡혀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좋을 것은 없었다.

‘세은아, 그냥 우리가 세미를 데려올까?’

그래서 아버지가 이런 지시를 내려 준 것이 반가웠다. 세은은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미를 데려오는 것은 쉬웠다. 세은은 그냥 아버지의 말대로만 하면 됐다. 차 안에 기운 없이 처박혀 있던 세미는 세은을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고,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귀환했다.

집으로 돌아온 세미는 곧장 아버지와 함께 연구실로 내려가 버렸다. 세은이 주변에서 기웃대든 말든 두 사람은 이런저런 토론을 하면서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중에 알아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는 계획을 예상보다 빨리 실행해야겠다는 말뿐이었다.

둘이 작업에 열중할 때 제 존재가 잊히는 상황은 익숙했다. 무슨 계획인지는 몰랐으나, 식사까지 연구실에서 하며 열중하는 것을 보니 보통 규모가 아닐 것이다. 세은은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발소리까지 살금살금 죽여 걸으며 연구실을 드나들었다. 특히 메인 연구실 쪽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

계획의 정체고 진행 상황이고 아무것도 모르는데도 계속 연구실에 내려간 이유는 간단했다. 이곳이세미를 잡아간 희수의 집이었으니까. 그는 언제든 본채에 드나들 수 있었으니 숨을 만한 곳이라곤 연구실뿐이었다.

그리고…….

‘미래야, 여기 있어?’

그녀의 어린 친구 역시 그곳에서 볼 수 있지 않은가.

‘오늘도 안 왔네.’

세은은 빈방을 돌며 조심스레 소곤거리다 지쳐 구석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상하게 요즘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그녀가 세미를 구하러 가기 전날까지만 해도 웃으며 헤어졌었는데.

그녀는 몇 번이나 연구실 전체를 돌며 미래가 숨을 만한 곳을 찾았지만, 모두 헛수고였다. 세은과 길이 엇갈린 정도가 아니라 흔적이 없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바쁠 시기인가? 뭘 하더라……. 곰곰이 생각해 봐도 초등학교를 나오지 않은 세은은 미래 또래의 아이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내는지도 몰랐다.

어쩌면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가 생겼을지도 몰랐다. 연구실이 아무리 넓어도 리모델링이라도 되지 않는 이상 구경에는 한계가 있었고, 세은과 대화라고 해 봤자 말만 조금 나누었을 뿐 아이와 놀아 주지도 않았고. 흥미 따위는 쉽게 사그라들었을 것이다.

잘됐지. 원래부터 외부인이 드나들면 안 되는 곳이니까. 세은은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이대로 마주치지 않는 것이 더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매일 보던 사람을 며칠째 보지 못하니 일상이 허전했다. 세은은 그제야 제가 미래와의 시간을 생각보다 더 좋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래가 없으니 세은이 부지런히 다닐 이유도 없었다. 메인 연구실에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목이 말라 일어서다 세미와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는 며칠 전 할 일이 있다며 사라졌다. 그동안 세미는 메인 연구실의 주인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했다.

‘요즘은 여기 자주 있네?’

‘그냥, 구경할 것도 다 떨어졌고.’

‘하긴, 넌 잘 모르니까.’

가볍게 긍정하는 목소리엔 비난이 담겨 있지 않았지만 세은은 괜히 기가 죽었다. 어느샌가부터 세은은 세미와 이야기할 때 아버지를 대하는 것처럼 긴장이 되었다.

‘그래도 도움이 됐잖아.’

‘응?’

‘꽤 기특한 짓을 해 놨던데.’

처음에는 도망을 도와준 것에 대한 감사 인사인가 싶었으나, 묘하게 핀트가 달랐다. 영문을 알 수 없어 눈만 동그랗게 뜨고 세미를 바라보자, 세미가 씩 웃었다.

‘그 꼬맹이가 경계를 하지 않아서 일이 쉽게 풀렸어.’

덜컹. 심장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거세게 뛰었다.

‘나보고 비밀이 언니라고 부르던데. 너 맞지?’

세은은 얼어붙은 그대로 눈만 깜빡였다. 수많은 말이 언어가 되지 못한 채로 목구멍 안쪽에 들러붙었다.

‘……미래?’

고작 그 한마디를 내뱉는 데에도 안간힘을 쥐어짜야 했다.

‘왜 그렇게 놀라?’

그러나 그런 반응에 세미는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원래 우리 계획이 이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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