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D.S의 목소리는 그간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종류였다. 그녀는 제 목을 조르고 싶다는 얼굴로 바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저 집이 안전할 거라고 생각했어.”
아래로 툭 떨어진 시선은 콘크리트 너머의 무언가를 보는 것처럼 초점이 흐렸다.
“미래는 싫다고 했는데, 내가 괜찮을 거라고 억지로 들여보냈어. 그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게 우리 모두를 위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어. 몇 년만 더 참으면 되니까. 더 좋은 환경이긴 하니까. 그 애가 그렇게 나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는데. 집안이 얼마나 미쳐 있는지 잘 알고 있었는데…….”
자괴감으로 얼룩진 음성이 두서없이 중얼거리다 곧 꺼질 듯 가늘어졌다.
“이세은이 진희수의 파티 파트너라는 걸 알았을 때부터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내가 너무 멍청하게 굴었어. 이세미에게 얼굴을 보이는 것도 모자라서 직접 그 애를 잡아넣었지. 그 애들이 내 사정을 모를 리가 없는데.”
D.S의 목소리는 점점 비명을 닮아 갔다. 삐딱하지만 언제나 굳게 서 있던 등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만약에 미래가 위험해졌다면.”
그녀는 숨이 부족한 사람처럼 헐떡였다. 한껏 힘을 준 두 주먹은 뼈마디가 하얗게 질리다 못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내가, 내 손으로 내 딸을 사지에 밀어 넣었어…….”
죄책과 가책이 자기혐오가 되어 그대로 D.S를 찔렀다. 내가, 내가 잘못 생각해서. 모두 내 탓이야. 그때 다른 선택을 했었더라면. 무차별로 쏟아져 내리는 후회가 손에 잡힐 것처럼 선명했다.
그 손목에 슬그머니 하얀 손이 닿았다.
“D.S 씨, 절 봐요.”
이연은 이럴 때 필요한 말을 알았다. 그도 겪었던 일이다. 수많은 손이 아래로 잡아당기는 자기혐오의 바다에서 먼저 빠져 본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괜찮아요. 몰랐잖아요. D.S 씨의 잘못이 아니에요.”
단호한 말이 D.S를 단단히 붙들었다. 이연은 그녀에게 새겨 넣기라도 할 것처럼 또박또박 힘주어 발음했다.
“미래는 구할 수 있어요. 늦지 않았어요.”
언젠가 듣기를 바라던 말이었다. 그는 끝내 듣지 못했지만, 누군가는 들어야 하는 말이었다.
“구하러 가요.”
D.S는 그 말을 듣고서도 한참을 움직이지 않았다. 천 근 같은 침묵이 그녀의 어깨를 강하게 누르고 있었다.
그러나 아주 서서히 손에 힘이 풀렸다.
길쭉한 몸은 이내 스륵, 하고 쓰러지듯 의자에 앉았다. 잠시 후 고개를 든 D.S가 이연을 바라보았다.
“넌 나한테 빚이 있잖아.”
나지막한 목소리였다. 뜬금없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이연이 그녀를 마주 바라보자, D.S가 어딘지 머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걸로 전부 변제해 줄 테니까, 갚아.”
D.S에게 진 심적 빚이야 많고 많지만—아직까지 거래가 끊기지 않은 게 기적이다.— 그녀가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반증이다.
그것은 서툴기 짝이 없는 도움 요청이었다.
“당연하죠.”
이연의 대답은 빨랐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D.S 씨는 좋은 거래처니까 특별 서비스도 해 드릴게요.”
일부러 듬직하게 웃어 보이는 이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D.S는 곧 고개를 돌렸지만, 잔뜩 날이 섰던 분위기는 한층 풀려 있었다.
혜강이 도착한 것은 그 후였다. 그는 상황 설명을 전해 듣자마자 음, 하고 눈썹을 찌푸렸다.
“빨리 움직여야겠네. 집 많이 큰가? 안에 감시 카메라는 없겠지?”
“없어.”
대답을 한 것은 D.S였다. 그녀는 아, 하고 덧붙였다.
“내가 집에 있을 때까지는 없었어. 한…… 19년 전쯤.”
“……그건…… 도움이 되긴 어렵겠네요.”
이연이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혜강이 분위기를 환기하듯 일부러 활달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괜찮아. 몰라도 잠입하는 것 자체에는 문제없어.”
희수에게 연락해서 미래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급한 용건으로 나간 그가 제때 연락을 받을지도 알 수 없었고, 생각만큼 빠르게 움직여 줄지도 미지수였다.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데 무작정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억지로라도 숨어 들어가 미래를 데려오는 것이다.
산오의 능력과 이연의 능력을 합하면 감시가 아무리 삼엄해도 들어가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 역시 D.S와 혜강이 외부에서 전체 상황 판단 및 행동 지시를 맡고, 이연과 산오가 진씨 가문에 잠입해 미래를 빼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래도 집 내부 구조를 좀 상세하게 알 수 있으면 좋을 텐데. D.S 누나, 그림 잘 그려요?”
혜강이 영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자, D.S가 대꾸했다.
“그림 없어도 알 수 있어.”
“어떻게요? 감시 카메라 없다면서요.”
D.S는 키보드를 얼마간 두드리더니 창을 하나 띄웠다. 화면에는 어떤 좌표와 함께 로딩 바가 출력되어 있었다. ‘0.2%’라고 표시된 수치를 확인한 D.S가 설명했다.
“현재 인형 위치야. 아마 미래 방이겠지.”
……그걸 어떻게 아는 건데요? 하는 얼굴로 이연이 D.S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확실히 조금 전보다 여유가 생겨 있었다.
“그럼 내가 만든 건데, 그게 카메라만 달려 있겠어?”
인형의 이름은 FT-7. 영상 송출 기능 및 위치 추적, 주변 탐색 기능까지 모두 갖춘 최첨단 감시 로봇이었다.
“감시 맞네…….”
“베이비캠이라니까.”
꿋꿋하게 우긴 D.S는 서랍을 뒤적이더니 이연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받고 보니 맡겨 둔 고글이었다.
“어, 수리했어요?”
“그냥 연결잭만 다시 다는 거라 간단해.”
이연이 냉큼 고글을 썼다. 꼭 맞는 착용감이 반가웠다.
“집이 좀 넓어서 렌더링하는 데에는 좀 걸릴 거야. 되는 대로 보내 줄게.”
“네.”
이연이 산오를 돌아보았다. 그 뒤의 두 사람이 덩달아 산오를 바라보는 것이 보였다. 하여튼 어딜 가나 사람들을 우르르 모으고 다닌다. 산오는 마뜩잖은 눈길로 다른 사람들을 흘기고는 이연을 곁으로 끌어당겼다.
“다녀올게요.”
그 인사와 동시에, 두 사람은 땅속으로 사라졌다.
진씨 가문의 본가는 미래의 초등학교 근처였다. 당연한 거겠지만……. 덕분에 집값이 저렴한 지역에 있는 D.S의 공방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지하 엘리베이터의 이동 속도는 충분히 빨랐지만, 한달음에 도착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가면서 D.S에게 진씨 가문에 대한 강의를 속성으로 들었다.
- 우리 집은 원래도 좀 유복한 편이긴 했지만, 유서가 깊지는 않았어. 그런데 우리 할머니가 시집오시면서 권력이 어마어마하게 강해진 거지.
진씨 집안의 권력 구도는 금세 최희원을 중심으로 뭉쳤다. 그녀는 가문 정치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으나, 타고난 카리스마가 있어 그럭저럭 잡음 없이 이끌어 갔다고 했다.
- 할머니는 총 세 명의 자식이 있었어. 2남 1녀. 놀랍게도 셋 다 초능력자였지.
그 기적적인 우연은 얄궂게도 희원의 영향력을 강하게 하는 동시에 집안을 얽매는 족쇄가 되었다.
- 그중에 첫째인 진정욱이 내 아빠. 그리고 둘째인 진정원이 내 고모이자 진희수의 어머니.
“국장님이 어머니 성을 따른 거네요?”
요즘에야 어머니 성도 곧잘 따른다지만, 그 당시만 해도 보편적인 일은 아니었을 터였다.
- 고모는 가문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그래서 집안에 대한 욕심도 컸지. 고모부도 거의 데릴사위라고 들었어.
그런 판에 하나뿐인 아들, 희수마저 무궁화 5단으로 판정받았다. 진정원의 가문 내 위상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막내분은요?”
- 삼촌도 야망은 있으시지만, 수완이 좋지는 못하셔. 자식을 많이 가지셨거든. 당연히 비초능력자가 있을 수밖에 없잖아. 그게 발목을 잡힌 것 같아.
진짜 웃기는 동네야, 하고 D.S는 투덜거렸다.
- 우리 아빠한테도 비초능력자인 내가 있으니 고모하고 싸움이 안 되고. 그래서 고모가 실질적인 가주에 가까워. 독재까진 아니고, 그 외에 다른 어른들이 몇 분 계시긴 하지만. 그래도 이세은과 이세미가 집안에 있다면 분명히…….
“D.S 씨의 고모님이 뒤에 계시겠군요.”
D.S는 본가의 경비가 삼엄한 편이라고 했다. 비록 19년 전의 정보여도, 해가 지날수록 경비가 강화되었으면 강화되지 퇴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세미가 무단 침입으로 남의 집 복도를 활보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만일 집안에서 불러들인 거라면, 분명히 무슨 목적이 있을 터였다. 초호시 최고 명문가의 그늘에 숨은 세은과 세미, 그리고 모르포. 썩 좋은 일을 할 것 같은 조합은 아니었다.
“……설마 국장님이 알고 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