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126화 (125/250)

#126

[안녕하세요! 삼춘이 취미를 보여 달라고 해서 켰습니다. 미래입니다!]

[어어…….]

[삼춘, 인사!]

[안녕하세요. 정이연입니다…….]

영상 속에서 떨떠름하게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자신의 것인데도 왠지 어색했다. 이연이 머쓱하게 웃었다.

“이걸 진짜 썼네. 미래한테 취미가 뭔지 물어봤었거든요.”

“그래, 내 딸하고 잘도 연락하고 있더라.”

“저희 친구잖아요.”

“친구가 채널 구독도 안 해?”

“구독은 했다니까요. 보는 것도 지금 봤으니까…….”

“좋아요도 눌러.”

“알았어요.”

쫑알거리는 사이에 익숙한 대화가 지나갔다. 이따 맛있는 거 먹을 거라는 말과 함께 전환된 화면은 한 레스토랑의 내부를 비추고 있었다. 오랜만에 삼촌과 외식을 하러 왔다며 이것저것 음식을 설명해 주던 미래는 잘 먹겠다는 말과 함께 영상을 마무리했다.

“이게 최신인 거면…… 영상이 안 올라온 지 좀 되긴 했네요.”

이연이 미래와 초능력 관리청에서 만났던 것은 거의 두 달이 다 되어 갔다. 재생 목록을 눌러 업로드 날짜를 확인하자, 첫 번째 영상이 올라온 후 2~3주 간격으로 하나씩 업로드한 것이 보였다. 그러나 마지막 영상의 업로드 날짜는 한 달 전이었다.

“흥미가 떨어진 거지, 뭐.”

미래의 영상은 어린아이가 만든 티가 났다. 화면 보정이나 효과음, 자막 같은 것도 없었고 짧은 영상들을 이어 붙인 게 고작이었다. 나중에 올린 영상에 가서야 화면 전환 효과가 조금씩 생긴 정도.

물론 이걸 미래가 혼자 한 거라면 천재인 건 확실했다. 하지만 아이를 아는 사람들은 즐겁게 볼지 몰라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흥미를 끌지는 못할 것이다. 조회수나 구독자수가 그 사실을 증명했다.

반응이 와야 재미있는 취미를 관심받지 못하는데도 꾸준히 이어 간다는 것은 어른에게도 힘든 일이다. D.S는 알 만하다는 어투로 중얼거렸지만, 영 아쉬운 눈치였다.

“나중에 미래 만나면 물어볼게요. 영상 업로드 또 안 하냐고.”

“됐어. 직업 할 것도 아닌데 안 할 수도 있지.”

“그래도요.”

이연이 웃으며 대꾸했다. D.S는 네 맘대로 해, 하고 퉁명스레 말하면서도 이연이 왜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눈치챈 것 같았다. 새침하게 돌리는 눈빛이 어딘가 머쓱한 기색을 띠었다.

‘그런데…….’

이연의 시선이 영상이 꺼진 화면을 슬쩍 흘끗였다. 미래의 영상은 그냥 보기엔 평범한 것 같았지만, 어째 조금 찝찝하게 느껴졌다. 이렇다 할 정도로 특이하지는 않지만, 뭔가 이상한데…… 좀 허한 것 같기도 하고. 이연은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내려는 듯 눈에 힘을 주고 검은 화면을 노려보았지만, 명확한 이유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혹시 D.S도 자신과 비슷한 느낌을 받아서 인형을 만든 건가? 이연이 어느새 테이블로 돌아가 작업을 재개한 D.S에게 고개를 돌렸다.

“D.S 씨. 혹시…….”

그때였다. 이연의 휴대폰이 울렸다.

지이잉, 지이잉. 요란하게 진동하는 휴대폰을 꺼내 든 이연이 발신인을 확인했다. 혜강이었다.

“어, 혜강아. 왜?”

[형, 지금 공방이지?]

“응.”

바쁜 시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사실상 혜강이 이연에게 먼저 전화할 일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무슨 일이지? 이연이 의아한 기색을 얼굴 가득 띄우고 통화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바로 사무실에 와야 할 것 같은데.]

그 시점에서, 이연은 혜강의 목소리가 다소 난감하게 처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엄습했다.

[초관청에서 사람이 왔는데, 형을 꼭 만나야겠대.]

초능력 관리청에서는 보통 사람을 오라 가라 하지, 자신들이 직접 찾아오는 일은 좀처럼 없다. 회사가 힘이 좀 있다면 없는 일은 아니겠지만 차금이 제산처럼 대기업인 것도 아니고, 오른처럼 내실이 튼튼한 회사도 아니고…….

그런데도 그쪽에서 직접 와서 대표인 이연을 지목했다면 틀림없이 보통 일은 아니었다. 이연은 그 이유에 대해 오는 내내 고민했지만,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임무도 꼬박꼬박 했고, 세금도 제때 냈는데. 제산오 때문에 그런가? 하지만 산오는 계약서도 쓰지 않았기 때문에 행정상으로 보면 차금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았다.

의문만 가득 안고 도착한 사무실에서 이연은 낯선 남자 둘을 만났다. 그들은 이연을 보자마자 명함을 내밀었는데, 혜강의 말대로 초능력 관리청 소속이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그들은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초능력 관리청으로 같이 가 주셔야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공무원인 게 확실하니 안 따라갈 수도 없어서, 이연은 얼결에 두 사람에게 둘러싸여 초능력 관리청에 도착했다. 가는 내내 이연은 이유를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도착한 곳은 초능력 관리청 건물 어딘가, 테이블과 의자만 덜렁 놓여 있는 작은 방이었다. 달칵. 마지막까지 말없이 문을 닫고 나가 버리는 사람을 노려보던 이연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4인용 책상에 네 개의 의자. 인테리어용 화분이나 액자조차 없는 방은 삭막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였다. 회의실인가? 아니, 그것보다는……. 가만히 눈썹을 찌푸리는데, 문이 다시 열렸다. 고개를 돌리니 희수가 들어서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정이연 씨.”

“국장님. 이게 대체 무슨…….”

“초호시 외곽에서 최근에 발견된 불법 연구소, 일명 초능력자 공장.”

이연의 말을 단호하게 끊은 희수는 저벅저벅 걸어 맞은편에 앉았다. 서늘한 시선이 이연을 훑었다. 이연이 재차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희수는 손에 쥔 것을 앞으로 내밀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조그마한 구슬 같은 것이 테이블에 놓였다.

‘간단한 수술을 할 거야.’

이미 한 번 봤던 물건이었다. 영이 네게 넣을 것이라며 보여 주던 조그마한 보석이 눈앞에 있었다.

“공장에서 발견된 초능력 정제 보석을 전수 조사 한 결과, 정이연 씨의 기력 파장과 동일한 보석이 발견되었습니다.”

그림 실체화에게 넣을 보석이면 당연히 비슷한 계열의 능력일 것이다. 김 박사가 가지고 있었을 실체화 계열 능력이면 하나밖에 없었다. 만일 다른 게 있었다면 이연을 잡아 올 것도 없이 그 사람에게 실험했을 테니까.

모르포가 가지고 있던 이연의 실체화 능력.

“정이연 씨도 잘 아시겠지만, 그 보석은 초능력자의 기력을 뽑아 만든 겁니다. 기력 주인들은 대부분 강제로 갈취당한 피해자들이고, 행방이 묘연한 사람 외에는 구출해 병원에서 회복 중입니다.”

의심과 적의로 짙어진 눈이 이연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정이연 씨는 초능력자 등록 후 단 한 번도 실종되거나 초능력 문제로 병원에 입원한 기록이 없더군요.”

실수했다. 이연의 뒷 목에 땀이 배어났다.

이연은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게 아니라 아예 성인 이전의 기록을 조작했다. 산오가 그를 찾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변이종과 초능력이 등장한 이후, 세계는 간신히 일상생활을 파괴하지 않는 선에서 상황을 안정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러나 완전히 이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변이종 사고나 초능력 사고는 꽤 흔했고, 그로 인한 혼란을 틈타 사람이 사라지거나 혹은 다시 나타나는 일도 빈번했다.

이연은 물론이고 산오 역시 그런 허점을 통해 새로 ‘생겨난’ 사람이었다. 물론 희수가 직접 등록해 준 산오와 달리 이연은 약간의 불법적인 루트를 거치긴 했다. 새로운 성장 배경까지 말끔하게 만들어 준 능숙한 작업자 덕에 그가 이정연이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미성년 때 기력 기진 상태를 경험했다는 기록 역시 마찬가지였다.

‘정이연’은 서류상으로는 완벽하게 평범한 삶을 살아온 청년이었다.

그런데 그의 기력 파장과 같은 보석이 불법 연구소에서 발견되었다. 심지어 이연은 김 박사를 제가 잡겠다고 선언까지 하며 그의 뒤처리를 전담했다. 산오가 오기 직전에도 그와 단둘이 함께 있었고.

상황이 이렇게 되면 한 가지 가정이 유력해진다. 제 손으로 몰래 기력을 뽑아 건네주었다는 것.

스파이로 의심받기 딱 좋은 정황이었다. 이연이었어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떻게 정이연 씨의 기력을 정제한 보석이 그들에게 있었던 겁니까?”

희수의 생각 역시 다르지 않은 듯했다. 매서운 추궁이 이연을 향해 쏟아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연이 당황을 애써 숨기며 테이블에 놓인 보석만 하염없이 노려보았다.

해명을 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산오와 모르포의 이야기를 해야 했다.

희수가 산오의 과거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산오 본인이 털어놓은 적이 없다면 이연이 나서서 먼저 말할 주제가 아니었다. 그런 과거를 밝히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게다가 모르포까지 끼어 있다는 사실을 국장인 희수가 알면 일이 너무 복잡해진다. 지형 기능 설정 개발자가 사실은 흉악한 초능력 범죄자라니. 파장은 안 봐도 빤했다.

‘왜 그동안 말을 안 하고 살았는데…….’

이런 곳에서 걸릴 거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침묵을 계속 고수했다가는 김 박사의 공범자로 잡혀가게 생겼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이연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대기만 하고 있을 때였다.

달칵, 문이 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