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이연의 속을 알아챈 것 같은 말이었다. 이연이 그녀를 돌아보자, D.S는 모니터를 눈짓했다. 미래는 답이 돌아오지 않는 엄마에게 말을 거는 것을 그만두고 인형과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다. 맛있게 먹어. 왼손 써도 돼, 하고 종알거리는 목소리가 배경 음악처럼 들려왔다.
“일반적으로 초능력이 발현되는 건 청소년기. 이르면 15살부터. 그러니까 그때부터는 ‘실패자’가 나오거든.”
D.S는 미래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무조건 데리고 나올 계획이었다. 초능력을 발현하든 발현하지 않든 상관없었다. 애초에 계약 역시 그렇게 합의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괜찮아.”
집안은 ‘예비 초능력자’에게는 매우 관대하다. 그 집에서 자란 D.S가 몸으로 체득한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미래의 성장에도 나쁘지는 않을 터였다. 오히려 하루 종일 일하면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D.S보다 더 좋은 환경을 보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래 떨어져 있게 되잖아요.”
미래의 나이는 현재 8살. 중학교를 졸업하려면 8년은 더 있어야 했다. 미래가 살아온 만큼을 더 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이다.
“11년 전인가, 나 같은 사례가 있었어.”
직계가 아니라 방계였지만, 한 세대 위였으니 집안의 영향력은 더 컸다. 거기에서 태어난 비초능력자, 그리고 그의 아이. 비초능력자는 가문과 절연하고 아이를 직접 키우길 원했고, 집안은 예비 초능력자를 가문의 범위 안에 두길 원했다.
팽팽하게 맞선 대립의 결말은 처참했다.
“부모는 강제로 친권을 박탈당했어. 6살짜리 아이는 가문이 데려갔지.”
“……예?”
이연은 제 귀를 의심했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막장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사건이었으나, D.S는 조금도 웃지 않았다.
“애는 불행히도 초능력이 발현됐어. 덕분에 성인이 될 때까지 제 부모와 완전히 격리되어서 자라는 중이고.”
“그럼…….”
“그래. 아무리 부모여도 그 정도 되면 애착이고 뭐고 없어. 애한테는 거의 남이지.”
D.S가 삐딱하게 웃었다.
“그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보는 게 낫잖아.”
“……미래가 열여섯이 되면 집안에서 순순히 놔주는 건 맞고요?”
“아닐 수도 있겠지.”
담담한 말에 이연이 의아하게 고개를 돌렸다. D.S는 인형의 입에 숟가락을 대 주는 제 딸의 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이가 만 13세가 되면 양육권 재판에 자녀의 진술이 포함돼.”
미래는 제 엄마와 같이 살고 싶어 한다. 아이가 발언권을 얻기만 하면, 집안에서 아무리 발악해도 친권 박탈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미래는 보통 인형에다가 무슨 말을 해요?”
가라앉은 분위기를 환기하기 위해 이연이 일부러 가볍게 물었다. 뜬금없는 화제 전환에도 D.S는 순순히 넘어가 주었다.
“별거 없어. 학교 얘기나 밥 먹은 거. 가끔 진희수나 친구들이랑 대화한 이야기. 네 이야기도 가끔 해.”
“저요?”
눈을 동그랗게 뜬 이연이 되묻자, D.S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애를 어떻게 꼬셨길래 나중에 같이 놀러 갈 거라는 이야기만 해? 실망하게 하면 가만 안 둬.”
“아, 미래가 가고 싶어 하는 곳이 많더라고요. 아무래도 국장님이 바쁘니까 그런 것 같아요.”
미래와는 연락처를 교환한 후 종종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연이 제 말을 증명하듯 메신저 앱을 켜 미래와의 채팅을 보여 주었다. 요즘 뭐 해? 학교는 잘 다녀? 잘 있어! 삼촌 여기 알아? 미래는 여기 가고 싶어. 재밌겠다, 나중에 같이 가자. 그런 이야기가 비눗방울처럼 와글와글 모여 있었다. 대화 중간중간 귀여운 이모티콘도 잔뜩 찍어 보낸 것이 새삼 귀여워 이연이 흐뭇하게 웃었다.
“여덟 살이면 아직 한글 못 뗀 애도 많아.”
휴대폰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D.S가 뻐기듯 중얼거렸다.
“진짜요? 그럼 미래는 천재네요.”
“천재는 무슨, 그냥 좀 똑똑한 거지.”
이연이 장단을 맞춰 칭찬하자 그녀는 으쓱이면서도 입꼬리를 슬쩍 끌어 올렸다. 매사 무뚝뚝하고 신경질 가득한 D.S도 딸 자랑에는 장사 없었다. 그 모습이 신기하고 좋아서, 이연은 일부러 미래에 대한 화제를 더 이어 갔다.
“미래 브이로그 찍던데, 그것도 봤어요?”
“너 구독 안 했냐?”
눈을 부라리는 D.S에게 압도당한 이연이 움찔하며 웅얼댔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하긴 했는데 시간이 없어서 보지는……. 비겁한 변명을 코웃음으로 무시한 D.S는 미래의 채널을 열었다. 구독자수는 4. 이연의 구독까지 포함한 숫자였다.
아이의 채널에는 짧은 영상들이 열 개 정도 올라와 있었다. 영상의 조회수는 모두 두 자리 정도였다. 기색을 보아하니 그중 절반은 D.S가 기여한 것 같았다.
“하나만 틀어 줘요. 저도 볼래요.”
이연의 말에 D.S는 웬일로 트집 잡지 않고 얌전히 영상 하나를 켰다. 가장 첫 번째 영상이었다.
[안녕, 미래예요!]
조금 어색하게 웃는 익숙한 얼굴이 화면 가득 떴다. 젖살이 통통하게 오른 뺨이 웃는 표정을 따라 볼록 올라왔다.
[제 이름은 강미래고, 여덟 살이에요. 지금은 아침인데요, 저랑 같이 학교 갈 준비해요!]
영상은 자주 흔들리고 초점도 왔다 갔다 했다. 도와주는 사람 없이 혼자 찍는 건지 세면대에 어설프게 고정한 카메라는 각도가 너무 낮아 화면이 이마 위로 잘리고 있었다. 어푸푸, 하고 눈을 꼭 감고 세수하는 손길은 제법 거칠어서 물방울이 튀는 것이 고스란히 보였다.
“원래 얘 이렇게 세수 안 해. 진희수가 이상하게 가르친 게 틀림없어.”
D.S가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댔다. 세수를 끝내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미래는 뺨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몇 가닥까지 야무지게 떼어 내고는 다시 카메라를 집어 들었다.
[이제 로션 바르러 갈 거예요!]
명랑하게 떠든 아이는 장소를 옮겼다. 이동하는 장면을 찍는다는 생각은 미처 못했는지 앵글이 바닥을 향해 있었다. 오래된 것 같은 나무 바닥이 흐릿하게 보였다.
“본가가 고택인가 봐요.”
“무시무시하게 낡아빠졌는데도 절대로 이사할 생각은 안 해.”
못마땅한 얼굴로 혀를 차면서도 D.S의 시선은 화면을 향해 있었다. 곧 카메라가 크게 흔들리더니 미래의 얼굴이 다시 보였다. 어디서 본 건 있는지 손등에 하얀 로션을 조금 짠 것을 카메라 앞에 들이밀고는 양 뺨과 코, 이마에 조금씩 찍어 바르는 모습이 분주했다. 조막만 한 얼굴은 금세 반들하게 변했다.
[이제는 옷을 입을 건데요, 오늘은 무슨 옷을 입을 거냐면…….]
그때였다. 똑똑, 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카메라 화면에서는 누가 들어왔는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로 알 수 있었다.
[미래, 준비 다 했니?]
희수였다. 다정한 목소리에 미래가 조금 당황한 얼굴로 벌떡 일어섰다. 덕분에 화면에서 미래의 얼굴이 위로 쑥 사라지며 배 부분만 잡혔다.
[아이 참, 삼춘. 나 옷 갈아입으려고 했단 말이야!]
[그랬어? 무슨 옷 입을 건데?]
웃음기 어린 목소리에 미래는 금세 영상을 찍고 있던 것을 잊고 희수와의 대화에 열중했다. 조그마한 몸이 화면에서 나가고 아무도 없는 배경만 찍혔다. 티셔츠랑 치마를 입으려고 했다는 수다와 옷장을 뒤지는 듯한 소음이 희미하게 섞였다.
[그런데 휴대폰은 왜 세워 뒀어, 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는지 화면이 거칠게 흔들리며 방의 전경을 훑었다. 아이 키에 맞는 옷장과 커다란 침대가 스치듯이 지나갔다.
[그거 건드리면 안 돼! 미래 브이로그 찍는 중이라고.]
[브이로그? 그런 건 또 어디서 알았어?]
[요즘은 다 찍어. 삼춘은 아저씨라 모르지?]
[그렇구나. 아저씨라 몰랐네.]
카메라는 낮은 웃음과 함께 미래를 비추었다. 대화하며 옷을 전부 갈아입었는지 미래는 예쁘게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연한 분홍색 티셔츠와 주름이 잡혀 있는 청치마가 깜찍하게 잘 어울렸다. 미래는 사진 찍듯이 포즈를 잡으며 웃었다.
[짠. 이렇게 준비 끝! 다음에 또 봐요.]
영상은 거기서 끝이었다. 어두워진 화면은 금세 다음 영상으로 다시 환해졌다. 자동 재생 기능이 켜져 있었다.
모든 영상은 크게 특별할 것 없는 일상 브이로그였다. 제일 처음 업로드된 학교 갈 준비 하는 영상 외에도 혼자 먹는 저녁에 어떤 음식이 차려져 있는지 소개하는 영상, 옷장에서 좋아하는 옷을 골라서 설명하는 영상, 잘 준비 하는 영상……. 그리고 가장 최근에 올라온 것은 이연이 초능력 관리청에서 미래와 만났을 때 찍었던 컷도 일부 들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