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123화 (122/250)

#123

“산오 형은?”

이렇게 별 탈 없이 끝나다니, 천운이 따로 없었다. 제 잘못을 고백하는 것은 정말로 식은땀 나는 일이었다……. 다시는 이러지 말아야지. 이연이 남몰래 다짐하는 동안 혜강이 물어 왔다. 이연은 아, 하고 가벼운 탄성을 터트린 후 대답했다.

“보고 때문에 초관청 갔어.”

희수의 부탁을 받고 불법 연구를 추적하는 중이라던 산오는 김 박사는 물론이고 창고에 있던 대부분의 인원을 줄줄이 묶어서 데려갔다. 눈물 닦아 줄 땐 언제고 훌쩍 가 버리는 뒷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보던 이연은 무너지고 부서져 엉망이 된 창고에 혼자 덜렁 남겨지고 나서야 터덜터덜 사무실로 귀환한 참이었다.

창고 부지에서 산오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자, 혜강은 흔치 않은 우연이라며 감탄했다. 김 박사를 추적하다 발견한 곳이 하필 희수가 단서를 잡고 조사를 요청한 곳이라니, 이상할 정도로 아귀가 잘 맞아떨어지긴 했다.

혜강 역시 산오가 당연히 이연과 함께할 줄 알았다는 태도였다. 아무래도 산오가 손절했다고 생각한 건 이연뿐인 모양이었다. 그 사실에 이연은 헛된 마음고생을 한 가슴을 부여잡고 한층 쓸쓸해졌다…….

아무튼, 희수가 이연에게 맡긴 의뢰 말고도 따로 조사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한층 믿음이 갔다. 적어도 세미 일을 어영부영 처리하지 않을 것 같다는 그런 확신이 들었다고나 할까.

지이잉.

그때, 이연의 휴대폰이 울렸다. 주섬주섬 꺼내 화면을 확인해 보니 D.S였다.

“여보세요.”

맡겨 둔 고글 수리가 끝났나? 의아하게 인사하는데, 다급한 음성이 넘어왔다. 거의 다그치는 듯한 목소리였다.

[야, 뉴스 하나 보내 줄 테니까 봐.]

“네?”

전화는 그대로 끊어졌다. 이연이 어리둥절하게 바탕화면으로 돌아간 휴대폰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김 박사는 잡았고, 영과 소녀 역시 반성하고 돌아갔으니 D.S에게 더 이상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텐데…….

“왜 그래?”

“D.S 씨가 뉴스를 보라고…… 아.”

타이밍 좋게 D.S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어떤 사이트 링크였다. 눌러 보니 작성된 지 한 시간도 되지 않은 기사였다. 이연이 헤드라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정체불명의 초능력자, 호송 차량 습격……. 3명 부상?”

제목 밑에는 동영상이 있었다. 재생하자, 감시 카메라에 찍힌 듯한 흐릿한 화질의 당시 상황이 떴다. 도로를 달리던 차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벽에 놀라 멈추고, 이내 차량 안에서 무장한 경찰 셋이 뛰어나왔다. 얼굴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복장을 보니 모두 초능력자 경찰 공무원이었다.

그런 그들 앞에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이 걸어 나왔다. 마찬가지로 얼굴이 정확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어디서 본 실루엣이었다. 이런 곳에서 보여서는 안 되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연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세은?”

영상 속의 여자가 두 팔을 벌리자, 도로가 울렁이는가 싶더니 거대한 암석들이 튀어나왔다. 경찰들은 능력을 사용해 나름대로 격파하며 이리저리 뛰었으나 암석이 튀어나오는 속도가 너무 빨랐고, 다른 사람들이 거기 정신이 팔린 사이 여자는 호송 차량 쪽으로 뛰어가 안에 들어갔다.

그리고 경찰들을 괴롭히던 능력은 곧 사라졌다. 상황이 진정되자 경찰들은 절뚝이면서 차로 접근했다가 다급한 기색으로 다시 나와 뭐라뭐라 소리쳤다. 영상은 거기서 끝났다.

그 밑에는 헤드라인의 내용이 간단하게 풀어 쓰여 있었다. 급습으로 경찰 세 명이 부상. 그들을 습격한 초능력자는 호송 중이던 특수사기 용의자 한 명을 데리고 도주. 현재 행방을 추적 중. 이연의 시선이 신중하게 활자를 훑었다. 습격. 도주.

초능력 범죄나 사고는 초호시에서 제법 흔한 일이었기 때문에, 기사의 조회수나 리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주목을 크게 끌지 않았다는 점이 다행일지 불행일지 모르겠다.

“이세은이면 그, 팔찌?”

혜강 역시 그 이름은 기억하고 있었는지, 바로 반응했다. 인상을 찌푸린 이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량을 습격한 게 세은이 맞다면, 그녀가 구하려고 했던 것은 세미일 것이다. 세미가 순간 이동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니 차 안에 들어간 후 그 능력을 사용해 세은과 함께 이동했을 거고.

이연은 바로 D.S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곧장 받았다.

[어.]

“기사 봤어요. 이세은 씨랑 이세미 씨 맞죠?”

[내가 보기에도 그래.]

“사장님이랑 수빈 누나한테도 알려 줬어요?”

[너한테 보내고 바로. 몸조심하라고 해 뒀어.]

다행이다. 둘 다 그래도 제 몸 귀한 줄은 아니, 작정하고 방비한다면 큰 걱정은 없을 것이다. D.S가 혀를 찼다.

[진희수, 그 자식은 일 처리를 어떻게 했길래…….]

기사까지 뜬 판이니 그녀를 직접 잡아넣은 희수에게 화살이 돌아가긴 했을 것이다. 나도 상황 알고 싶은데…… 잠잠해질 때까지 만나는 건 힘들겠네. 이연이 한숨을 내쉬었다.

“D.S 씨도 조심하세요.”

그녀는 세미를 잡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었다. 탈출한 세미가 복수를 원한다면 사실 수아나 수빈보다는 D.S가 1순위일 것이다. 본인도 그 사실을 충분히 알았는지 경비 시스템 강화를 하겠다고 했다.

“바람 잘 날이 없다, 진짜.”

D.S와의 전화를 끊은 후 이연이 가볍게 투덜댔다. 원래도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 도시긴 하지만, 요 근래는 정말로 쉼 없이 무언가가 터지는 것 같았다. 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형도 몸조심해.”

“어? 나?”

조금 전에 능력을 고백했는데도 그런 걱정을 하다니. 이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자, 혜강이 정말 걱정된다는 얼굴로 고개를 살레살레 저었다.

“그 능력을 가지고도 고작 전기 충격기에 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 그건 전략상.”

“공격받고 생각한 거 아냐? 피하려면 피할 수 있었어?”

“…….”

입을 다문 이연의 앞에서 혜강이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된다, 걱정돼.”

“뭐가.”

타이밍 좋게 산오가 문을 열고 들어오며 물었다. 어, 산오 형. 가볍게 손을 흔들어 인사한 혜강이 고자질이라도 하는 것처럼 이연을 가리켰다.

“이연이 형이 능력에 비해 너무 잘 당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 하고 있었어요.”

산오는 대수로울 것도 없다는 얼굴이었다.

“멍청해서 그렇다.”

“야!”

저 신랄한 비난을 들으니 아까 날 버리지 말라느니 어쩌니 했던 게 다 꿈같았다. 이연의 외침을 들은 척도 않은 산오가 자연스럽게 이연의 옆자리에 앉았다. 이연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너 뉴스 봤어? 이세은 씨가 이세미 씨 데리고 도주했다고…….”

산오 역시 그 소식을 이미 들었는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진희수가 말했어.”

그러고 보니 김 박사 건으로 희수를 만났다고 했지. 이연이 반색했다.

“국장님 만났어? 뭐래?”

“추적 중이라고 했다. 믿는 구석이 있더군.”

듣던 중 다행인 소식이다. 얼른 잡히면 좋겠다. 이연은 한결 안심하면서도 토달토달 걱정을 늘어놓았다.

“D.S 씨가 걱정이야. 공방이 또 습격당하면…….”

세미는 영과는 전혀 달랐다. 실제로 마주쳤어도 영은 D.S를 크게 다치게 하지 않았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세미라면…… 이미 그녀는 D.S에게 상해를 입힌 전적이 있지 않은가.

“그냥 이세미 씨 다시 잡힐 때까지 공방 경비를 서 주겠다고 할까?”

시간이야 좀 걸려도, 얼마나 위험한지 아니까……. 심각하게 우물거리는 얼굴은 당장이라도 공방으로 달려갈 것처럼 진지했다. 그런 이연을 빤히 바라보던 산오가 슬쩍 자세를 기울였다. 심드렁한 목소리가 툭 내뱉어졌다.

“그 엔지니어를 공격하러 가진 않을 거다.”

“뭐? 왜?”

“그런 놈들 생각이야 거기서 거기지.”

……그런 놈들 생각이 뭔 생각인데? 나도 알자. 이연이 떨떠름하게 산오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속 시원하게 말해 주지 않았다.

그래도 산오가 그렇다니 정말 그럴 것 같기도 했다. 허튼소리는 안 하는 놈이라는 점이 묘하게 안심이 됐다.

“네가 걱정해야 될 건 그게 아니야.”

“어?”

마치 중요한 것을 놓친 주제에 별걸 다 생각한다는 듯 한심하게 바라보는 얼굴이었다. 아니, 지는 무단 결근 해 놓고……. 어쩐지 울컥한 이연이 따지듯 을렀다.

“야, 내가 한 번은 넘어가는데…… 너 또 이런 식으로 말도 없이 사라지고 그러면.”

“그건 네 잘못이다.”

“……뭐?”

느닷없이 들어오는 책임 전가에 당황한 이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게 갑자기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말해 두는데, 너한테 선택지는 없어.”

“뭔 선택지?”

고압적인 태도로 알 수 없는 말만 내뱉은 산오는 손을 뻗어 이연의 멱살을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얼굴이 순식간에 코가 닿을 것처럼 붙었다.

지나치게 가까웠다. 숨결이 입술에 닿았다. 이연은 감히 호흡을 들이켜지도 못하고 그대로 굳었다. 깜짝 놀라 얼어붙은 옅은 색 눈을 느릿하게 바라보던 산오가 입꼬리를 느리게 끌어 올렸다.

“내가 안 떨어질 거라서.”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자, 순식간에 긴장이 척추를 타고 흘렀다. 잔뜩 굳은 이연이 방금 들은 말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해 혼란에 빠졌다. 정보가 듬성듬성 빠져 있는 문장은 쉽사리 이해하기 어려웠다.

멍청하게 올려다보는 하얀 얼굴을 바라보는 산오는 은혜를 갚겠다고 말하던 처음과 거의 똑같은 모습이었다. 두근, 두근. 이상하게 심장 박동이 조금씩 빨라졌다.

그런 분위기를 깬 건 혜강의 심드렁한 야유였다.

“저기, 그런 찐한 애정 표현을 꼭 나 있는 데에서 해야 하나요?”

“애정 표현이라니?”

“예, 예. 둘이 연애하는 거 잘 알겠다고요.”

“아니, 연애 아냐!”

뒷 목이 조금 달아오른 이연이 뒤늦게 버럭 외쳤지만,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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