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116화 (115/250)

#116

“그게 영 씨가 원하는 삶이에요?”

까득. 영이 어금니를 사리물었다. 누구에게나 과거가 있다. 그 누구도 제 사정을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었다. 그깟 능력 때문에 버림받는 경험조차 없었으면서, 감히 어떻게.

“네가 뭘 알아?”

그와 동시에, 영은 봉을 앞으로 뻗었다. 기다란 봉의 끝에서 마치 길이가 연장되는 것처럼 고드름이 뻗어 나갔다. 뾰족한 얼음이 정확히 이연을 향해 돌진했다.

“강한 사람만 대접하는 세상이잖아. 원하는 대로 강해져 보겠다는 게 뭐가 나빠?”

그녀가 빈정거렸다. 눈앞에 덮쳐 오는 얼음 덩어리를 빤히 바라본 이연이 피식 웃었다. 하얀 모래가 단번에 뭉쳐졌다. 만들어진 것은 커다란 기요틴이었다.

“모르죠.”

철컥! 기요틴이 작동되었다. 날카로운 도끼에 고드름은 손쉽게 깨졌다.

“그래도 그 방법은 아니에요.”

“속 편한 소리 집어치워!”

날카롭게 외친 영이 제 봉을 털어 냈다. 고드름 파편이 떨어지며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얼음을 미끄러지듯 달렸다. 그녀의 주위로 조그만 고드름이 여러 개 만들어졌다.

“영 씨, 강해진 초능력으로 뭘 했어요?”

대답 대신 반짝거리는 얼음 송곳이 이연에게 쏟아졌다. 이연의 몸만 한 방패가 바닥에서 솟아올랐다. 대부분의 고드름은 방패에 막혀 부서지고, 몇 개는 아예 박히기도 했으나, 뚫지는 못했다.

영은 방패와 바닥 사이에 완만한 얼음 경사를 만들었다. 가속도가 붙은 몸은 가볍게 방패 위로 날아올랐다. 시선의 한참 위에서 저를 향해 떨어지는 여자를 이연은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한껏 뒤로 당긴 몸은 금방이라도 이연의 머리를 후드려 팰 것처럼 잔뜩 힘을 주고 있었다.

“남의 임무 망치기? 지나가는 하급 변이종 보면 다짜고짜 잡아 죽이기?”

그 순간, 이연의 시야가 가려졌다. 양옆 바닥에서 튀어나온 방패가 아치형으로 구부러지며 이연의 머리를 감쌌다. 쾅!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방패만 때리고 튕겨 나간 영은 공중에서 반 바퀴 돌아 착지했다. 방패가 모래로 변해 사라지며 이연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이 걷혔다.

“원래 헌터 되면 하고 싶은 거 있지 않았어요?”

영은 이연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눈동자 안에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바닥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반짝이는 빙판은 너무 투명해서 그녀의 모습이 그대로 비쳤다.

이식을 받고 강해진 힘을 체감하자마자 영은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부작용으로 팔의 근육이 찢기는 것 같은 고통이 들었지만, 그것마저 흘려 버릴 정도로 들떴다. 빨리 자랑하고 싶었다. 제 능력이 이렇게 강해졌다고, 이제 아버지가 바라는 초능력자가 되었다고.

날 좀 봐 달라고.

그러나 아버지는 영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대경실색했다. 그녀의 수술 자국을 한참 바라보던 아버지가 떨리는 눈으로 중얼거렸다.

‘아냐, 난 이런 걸. 이런 걸 원한 게……. 네가 이런 식으로…… 난 그냥 네가 헌터가 되어서 활약하는 걸 보고 싶었을 뿐이야…….’

주름진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영은 아버지가 하염없이 울며 꿰맨 부분을 어루만지는 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이게 아니라고?

……이제 와서 이게 아니라고?

“그거, 지금 할 수 있어요?”

영이 얻은 초능력은 원래 가지고 있던 기력량을 한참 초과할 뿐만 아니라, 미묘하게 능력 범위가 달랐다. 초능력 관리청은 의혹을 제기할 테고, 면밀히 검사를 하려고 들 터였다. 승단 심사를 받기 위해서는 소명을 해야 했다.

불법으로 초능력을 이식받았다는 소리를 당당하게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녀는 영원히 승단할 수 없었다.

“개, 소리…….”

그날 이후 영은 집을 나왔다. 원망, 분노, 후회, 짜증. 아버지의 얼굴을 보면 그런 것들이 심장을 움켜쥐었다. 아버지가 죄책감 어린 눈으로 자신을 볼 때마다…… 그 감정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영은 도저히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도망쳤다.

그녀는 제가 수술한 공장으로 다시 향했다. 여기서 일하고 싶다고 하자, 그들은 흔쾌히 영을 고용했다. 수술에 동의할 만한 1단 초능력자들을 선별하고, 그들에게 이식을 권유하고, 수술소를 지키고…….

그게 현재 서영의 삶이었다.

“헌터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요.”

영은 어느새 멈춰 있었다.

“영 씨는 약하지 않아요.”

“…….”

“이거 없어도 할 수 있어요. 아마 잘할 수 있을 거예요.”

이연이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까 이거 그만두고 하러 가요.”

고요해진 창고 내부에 나직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정헌과 소녀 역시 언제부턴가 전투를 멈추고 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의 눈동자엔 너무 많은 빛이 섞여 오히려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네가 무슨 상관이야?”

영은 내내 홀로 떨어져 헤맨 별의 파편이었다. 언젠가 밤하늘에서 반짝일 거라고 믿었지만, 그녀는 늘 올려다보기만 해야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늘은 멀어지기만 했다. 포기해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고개를 숙이지 못했다.

그녀도 반짝이고 싶었다.

파편 같은 게 아니라 온전한 별이 되고 싶었다.

“어차피 딱 한 번 만난 사람인데 그냥 지나가면 되잖아.”

이제까지 영에게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그녀를 떠민 사람도 없지만, 말린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아버지조차도, 그녀가 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망설이는 영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딘지도 모를 곳을 향해 줄곧 걷는 그녀에게 거기로 가면 안 된다고 말해 주는 사람 역시 아무도 없었다. 무수한 고민과 불안 속에서도 결정은 해야 했다. 이정표를 찾을 여유는 없었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선택하고는, 다른 길이 있는지 돌아보지 않았다. 없는 셈 취급했다.

결국은 내내 그런 순간을 곱씹게 될 거라는 사실을 몰랐다.

“물론 큰 상관은 없죠.”

이연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살아온 나날부터 방식까지, 영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녀의 사정을 깊게 듣지도 못했다. 간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공감할 수도 없었다.

“그래도 죽지 말라고 설득할 수는 있잖아요.”

영과 초전력을 함께 하면서 재미있었다. 좋은 헌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와 동네를 함께 지키는 모습도 구경하러 가고 싶었다.

그런 작고 소박하고 두루뭉술한 마음이 모여서, 그녀가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눈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팽팽한 분위기가 흘렀다. 하. 숨이 탁 풀리는 듯한 소리가 영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겨우 그딴…….”

영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녀는 일이 제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 능력이 아닌 것만 같은 힘. 쓸 때마다 고장 날 것처럼 아파 오던 팔. 그런 것을 숨기고 꾀어 내듯 데려온 사람들.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 멈칫한 순간은 무수히 많았다. 이게 아닌가? 하지만 이 방법밖에……. 끊임없이 올라오는 의심을 부정하면서도, 사실은 그게 맞다는 걸 알고 있었다.

단지 스스로 멈출 용기가 없었을 뿐이다.

제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었다. 실수를 인정하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 같았다. 실패한 인생으로 여겨졌다. 길을 걷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는 것조차 무서워졌다. 그런 조바심이 제 선택에 대한 합리화를 끊임없이 만들어 냈다. 강해지고 싶었고, 강해졌잖아. 그럼 이룬 거지.

성공한 거야.

이딴 게 성공일 리가 없는데.

영이 시선을 들었다. 그녀를 물고 늘어져 기어코 멈춰 세운, 맹하고 태평한 낯짝이 마주 바라보고 있었다.

“넌 정말 내가 본 것 중에 제일 멍청한 헌터야.”

이연이 빙긋 웃었다.

“칭찬 고마워요.”

얼어붙었던 바닥이 서서히 녹고 있었다.

“네 능력은 어떻게 된 거지?”

봉을 다시 등에 멘 영이 팔짱을 꼈다. 이연이 공격하는 내내 종이 같은 것은 보지도 못했다. 게다가 반응 속도나 대응법……. 모두 사전에 그려 놓을 수 있을 만한 종류는 아니었다.

“……설마 너도 이미 이식을 받았어?”

“그 반대죠.”

영은 이해를 하지 못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이연은 친절하게 대답해 주는 대신 정헌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정헌과 싸우던 소녀를.

“저분은 제압해야 할까요?”

영이 소녀를 바라보았다. 확연히 바뀐 상황에도 소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영이 공격하면 같이 공격하고, 영이 공격을 멈추면 따라 멈추고. 소녀는 마치 영이 조종하는 인형 같았다.

“……아니.”

그러나 나직하게 튀어나온 대답에 소녀의 얼굴은 아주 조금, 밝아졌다.

“쟤는 나랑 함께 갈 거야.”

이연이 놀리듯 농담을 던졌다.

“거봐요. 동료 있는 게 혼자보다 낫죠?”

그 말에 영이 조금 놀란 얼굴로 소녀와 이연을 번갈아 보다가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그렇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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