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얼마 전에 여기 기웃거리는 놈 있다고 했던 거 기억나?”
그들은 몇 번이나 공방 침입을 시도했지만 경비 시스템을 뚫지 못하고 모조리 실패했다. CCTV에 찍힌 모습은 완벽하게 얼굴을 가린 상태였기 때문에 신고도 소용이 없었다. 요즘은 조용하길래 D.S는 드디어 포기했나 싶어 조금 방심하고 있던 참이었다.
“내 시스템은 2단 정도로는 못 뚫어.”
언제나 초능력자가 모든 사람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초능력자보다 초능력을 더 잘 아는 일부 엔지니어의 경우, 기술력을 역으로 이용한 초능력 방비 시스템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초현실적인 미지의 힘에 대응해야 하는 것이다 보니 한계는 있었다.
“그럼…….”
“3단 이상이야.”
3단 이상이 엔지니어를 습격하다니, 이례적인 일이다. 3단부터는 해당되는 사람도 별로 없기 때문에 특정될 가능성이 하위 초능력자보다 훨씬 높았다. 엔지니어의 도구를 절대로 쓰지 않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공방의 상태를 살펴보면 어떤 초능력자 짓인지 짐작이 대강 가능했다. 경비 시스템과 한바탕 난동을 부린 듯 바닥이 듬성듬성 패어 있었고, 새까맣게 탄 자국이 벽에 가득했다. 침입자를 공격하던 무기들은 투명한 얼음으로 뒤덮이거나 조금 녹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빙결 능력자였다. 안에서 능력을 써서 셔터가 덩달아 약하게 얼었던 것이다.
“3단 이상에 얼음 능력이면…….”
빙결 계열의 능력은 다른 초능력에 비해 자주 발현되는 초능력 중 하나다. 3단 이상이라고 해도 대상은 수십 명에 가까웠다.
“어디로 들어온 거죠?”
셔터는 겉으로 보기에 아무 이상 없었으므로, 그쪽을 통해 들어온 건 아니었다. 창문? 환풍구? D.S는 모두 고개를 저었다.
“물리적인 힘을 써서 들어온 흔적이 없어.”
그렇다면 한 가지 결론만 나온다. 이연이 끙, 하고 이마를 짚었다.
“순간 이동…….”
그래도 빙결 능력자와 순간 이동 능력자가 함께 있는 건 상당히 독특한 공통분모다. 빙결 능력 보유자는 수십 명이지만 순간 이동 능력은 그보다 더 적고, 둘이 함께 움직이는 경우는 훨씬 적었다.
“미등록자는 아니겠죠?”
정부에 등록된 초능력자는 전체 규모의 98% 정도로 추정된다. 초능력자 등록을 하지 않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지만,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마다 각자의 사정이 있다고는 해도 보통 이런 경우 99% 확률로 범죄에 연루되어 있었다.
“일단 찾아봐야지.”
D.S가 이를 바드득 갈았다. 어지간히 화가 난 듯했다.
“도울 일 있으면 말해 주세요.”
이연의 말에 D.S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 하고 한숨을 내뱉는 것으로 마음을 조금 가라앉힌 그녀가 서랍장 쪽으로 향했다. 이미 마구잡이로 열려 있던 서랍장을 잠시 뒤적거리던 D.S의 움직임이 멈췄다. 왜 저러지? 이연이 의아하게 바라보자, D.S의 고개가 천천히 돌아왔다.
“너, 보석 찾으러 왔다고 했지?”
그녀는 기묘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화가 난 듯도, 당황한 듯도 한 얼굴이었다.
“보석이 사라졌어.”
“네?”
“잠깐만.”
그 말만을 남기고 D.S는 한참 공방 안을 오가며 여기저기를 뒤졌다. 답지 않게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양이 조금 불길해 이연이 눈만 깜빡이며 그녀의 움직임을 좇았다.
시간이 흐른 후, D.S는 드디어 멈춰 섰다. 내내 묘한 얼굴이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네 보석만 사라졌어.”
D.S의 공방에는 개발 중인 기계나 이미 완료한 기계도 많았다. 초호시에서 만들어 내는 대부분의 도구가 그렇듯이 현대의 과학 기술보다 한층 더 발전된 물건들이었다. 비싼 부품이 많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왕 엔지니어의 공방에 침입했다면, 굳이 보석만 훔쳐 갈 이유가 없었다.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 아닌 이상에야.
“그 보석이 여기 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내가 조사했을 때 추적기 같은 건 없었는데.”
애초에 보석은 이연이 가지고 있었고, 수빈의 일이 아니었다면 D.S에게 맡기지도 않았을 터였다. 침입자가 공방에서 보석을 찾은 것은 완전히 우연이었다. 보석과 D.S의 연결 고리라고 해 봤자…….
“아.”
이연이 얼빠진 얼굴로 D.S를 돌아보았다. D.S의 눈썹이 대번 치켜 올라갔다. 그가 이런 표정을 할 때에는 분명 뭔가 사고를 쳤을 때였다.
“하핫.”
머쓱하게 웃은 이연이 고글을 벗어 D.S에게 건네주었다. 고글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와 달랑거리는 것에 단번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정체를 알아보는 것은 개발자인 D.S에게 전혀 어렵지 않았다.
엔지니어 인장이 박힌 부분이 통째로 도려내진 선이었다.
“보석 가져온 데에서 잃어버렸어요…….”
“너였냐!”
D.S가 버럭 소리 질렀다. 퍽! 등짝을 후려치는 소리가 거셌다. 아야! 이연이 울상을 지었지만 지은 죄가 있으므로 얌전히 감내했다. 그는 결국 얼얼한 등짝과 함께 저녁값까지 내고 나서야 고글을 맡길 수 있었다.
침입자가 훔쳐 간 보석은 정상적인 경로로 얻은 게 아니었다. 공권력에 적당한 해명을 할 수 없으니 도난 신고를 할 수도 없고, 당연히 경찰을 부르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래도 이만큼 뒤졌으니 보석 외에 관련이 없다는 것도 알았겠죠. 그놈이 다시 오지는 않을 거예요.”
“그걸 말이라고 해?”
퍽. 등짝에서 다시 한번 호쾌한 소리가 났다. 집에 가면 빨갛게 손자국이 나 있을 것이다.
“너네 사무소에 다 청구할 거야.”
“네에…….”
지은 죄를 톡톡히 알고 있는 이연이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타이밍 좋게 D.S가 외출했어서 망정이지, 공방 내에 있다가 침입자와 직접 마주쳤으면 정말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을 터였다. 비밀을 오래 간직하면 언젠가는 큰일 난다. 오늘의 교훈이었다.
이연은 D.S와 저녁을 먹고 공방 정리까지 도와준 후에야 공방을 나왔다. D.S는 침입자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단단히 별렀지만, 당장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날이 밝는 대로 엔지니어들에게 연락을 돌리려는 듯했다.
벌써 밤이 늦었다. 이연은 어둠이 내려앉은 거리를 멍하니 걸었다.
‘빙결이라…….’
워낙 흔한 능력이고 등급과도 안 맞긴 하지만, 아무래도 빙결 하면 그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잘 지내고 있으려나. 승단은 했을까. ……아버지랑은 화해하면 좋을 텐데. 다시 볼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잘 살았으면 했다.
“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을 열었는데 거실이 어두웠다. 뭉치가 노란 눈을 빛내며 달려와서 다리에 얼굴을 비볐다.
“응, 뭉치 잘 있었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불을 켜자, 휑한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뭐지. 제산오 집에 아직 안 들어왔나? 이연은 어리둥절하게 방까지 전부 돌아다녔지만, 출근한 이후의 흔적이 없었다.
‘늦네.’
산오는 그간 훌쩍훌쩍 나다니긴 했었지만,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은 적은 없었다. 기이할 정도로 그는 동거에 진심이었다.
언제 오지? 이연은 그렇게 생각하며 뭉치를 내려 두고 화장실로 들어섰다. 씻고, 양치하고,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도 산오는 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산오와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무언가 오해가 있다면 풀고 싶었다. 무시해도 계속 말 걸면 언젠가는 대답해 주겠지. 그럼 그때 물어보자. 소파에 털썩 앉은 이연에게로 뭉치가 다가왔다.
“……만약 환멸 난다고 하면 어떡하지?”
당연하다는 듯 무릎에 앉아 제멋대로 퍼지는 몸을 쓰다듬으며 이연이 속삭였다. 무슨 소리인지 알아들을 리가 없는데, 보드랍고 따뜻한 털가죽이 손바닥에 닿는 것만으로도 왠지 위로가 되었다.
이래서 반려 동물이 있어야 하는 건가 보다. 이연은 소소한 깨달음을 얻으며 계속 현관문을 힐끔거렸다. 금방이라도 산오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 같았다.
제산오가 오면 인사부터 해야지. 그리고 어디 다녀왔냐고도 물어보고, 화난 거 있으면 풀라고도 하고, 혹시, 혹시 못 푸는 거면……. 이연은 예행 연습이라도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상황을 시뮬레이션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연의 걱정은 무용이었다.
산오는 날이 밝아 올 때까지 귀가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