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어이는 없었는데……. 이해가 안 되지는 않았어.”
혜강에게 형은 성격이 특이하기는 해도 늘 근사하고 멋있는 사람이었다. 도시를 지키는 영웅. 강하고 유명한 헌터. 혜성은 늘 제 능력으로 사람들을 돕고 싶고, 도울 수 있어서 좋다고 했고, 어린 혜강조차도 그 다짐은 말처럼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혜강 자신도 형처럼 되고 싶었다.
혜강의 장래 희망은 혜성이었다. 형처럼 능력 있는 헌터가 되어서, 형처럼 강한 사람이 되어야지.
형처럼.
“그래서 초능력 등급 심사를 봤어.”
하지만 혜강의 결과는 1단이었다. 전파 간섭은 초전력도 참여할 수 없을 만큼 물리적 전투가 불가능한 능력이었기 때문에, 어떤 기회를 노려볼 수도 없었다.
“분명히 내내 괜찮았거든.”
혜강의 눈동자는 여전히 차분했다. 깨끗한 눈동자는 물기조차 없었다.
“그땐 왜 그게 그렇게 세상이 끝난 것 같았을까?”
초전력 심사 결과지를 받아 들었을 때, 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나는, 형처럼 될 수 없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제 자리가 없었다. 처음으로 망망대해에 내버려진 기분이 들었다.
참고 있는 줄도 모르던 무언가가 터졌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동네와 거리를 한창 헤매다 보니 날이 어둑해졌다. 쌀쌀한 기온에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 아무 데나 웅크려 앉았다.
혜강도 이게 별일이 아닌 걸 알았다. 세상에 헌터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혜성이 특별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혜강은 초능력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특출난 능력이 있었다. 그는 프로그래밍도 좋아했고, 다른 취미도 많았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을 정도로 부유한 집이었다. 형은 혜강이 좀 컸다는 이유로 지원을 끊어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그렇게까지 커다란 부분이…….
‘저기……. 안 추워요?’
그때 이연을 만났다.
“기억나. 너 완전 오들오들 떨고 있었잖아.”
이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과장된 표현에 혜강이 피식 웃었다.
“에이, 그 정도는 아니지.”
이연은 빈 상가 계단에 대충 쭈그려 앉은 혜강을 불량 청소년이라고 확신하고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집에 안 가요? 부모님이 걱정해요.’
‘부모님 없어요.’
‘……그래도 집에…….’
‘아무도 없어요.’
혜강은 힘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집에 아무도 없어요.’
그 모습을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연은 다시 손을 내밀었다.
‘나도 부모님 없어.’
‘……네?’
뜬금없는 고백에 혜강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하얗고 순하게 생긴 남자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같이 밥 먹을까?’
맹하게 웃는 얼굴이 가볍게 웃었다. 혜강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는 시야로도 홀린 듯 응시했다.
“나 진짜 그때 형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잖아.”
“그렇게 이상했어?”
“나한테 그렇게 접근하는 변태 많았거든.”
“…….”
단순한 변덕일 수도 있었지만,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혜강은 이연의 손을 잡았다.
자정이 다 되어 가는 시각이었던 터라 갈 수 있는 곳은 24시간 영업하는 패스트푸드점 정도였다. 매장은 요란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환하고, 원색을 잔뜩 쓴 테이블과 인테리어로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며 혜강은 이연이 2단 헌터라는 것과 사무소를 혼자서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혼자서 하기에는 은근히 일이 많다며 토달토달 불평하는 이연은 벌써 세 번째 쟁반을 비우고 있었다.
혜강이 입을 연 것은 다분히 충동적이었다.
‘저도 거기 취직하면 안 돼요?’
‘응?’
‘1단이라서 전투에 도움은 안 되지만, 저 프로그래밍 공부했어요. 해킹 대회에서 상도 받았어요. 사무직도 가능해요. 컴퓨터도 잘 다루고, 문서 작업도 배우면 금방…….’
그는 제법 열렬히 자기를 어필했다. 숟가락까지 내려놓고 제 경력을 늘어놓는 소년을 보던 이연은 우물대던 밥을 삼키고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그럼 오퍼레이터 해 주면 되겠다.’
‘오퍼레이터?’
‘응. 내가 발로 뛸 테니까, 네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 주는 거야. 싸울 때 변이종 정보도 찾아 주고, 길도 찾아 주고. 지휘관 같은 거지.’
오퍼레이터. 혜강은 가만히 그 단어를 곱씹었다. 이연이 살살 꾀듯이 감언이설을 흘려 넣었다.
‘해킹한다 그랬으니까 네 초능력도 어디다 쓸 수 있지 않을까? 컴퓨터랑 전파랑 비슷한 거 아냐?’
‘……비슷한 건 아닌데.’
‘그래? 아무튼. 좋은 능력 같은데?’
이연은 컴퓨터에 대해 무지한 사람처럼 말했고 실제로도 무지한 것 같았지만, 의외로 통찰력이 있었다. 혜강은 그제야 1단이라는 등급이 아니라 전파 간섭이라는 초능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거 한다 그러면 직원 말고, 동업자 시켜 줄게.’
계략이라도 꾸미는 것처럼 이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어때?’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진지하게 이연을 바라보던 혜강은 어느 순간 따라 웃었다.
“이제는 형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
혜강은 그때와 꼭 같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나는 내 방식대로 할 거야.”
단단한 웃음은 확신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때 내 판단력이 기가 막혔지.”
쪼록, 하고 아메리카노를 들이마시며 이연이 잔뜩 뻐겼다. 다시 생각해도 혜강을 영입한 것은 요 10년간 잘한 일 베스트에 들었다. 혜강이 조금이라도 사회생활을 겪어서 그의 능력이 어떤 수준인지 체득했다면 이연의 쪼끄만 사무소 같은 건 쳐다도 안 봤을 텐데, 타이밍이 예술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계단에 앉아서 코 찔찔 짜던 혜강이가 벌써 스물둘이나 되고, 형도 다시 만나고……. 세월이 참 빨라.”
“영감처럼 말하지 마. 코도 안 흘렸거든?”
혜강이 가볍게 타박하자 이연이 빨대를 물고 보란 듯 딴청을 피웠다. 그 너스레에 혜강 역시 피식 웃었다.
이연이 남의 깊은 사정에 대해 듣는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의뢰를 하다 보면 의뢰인 개인의 사정에 깊게 연관되는 경우도 종종 있고, 내밀한 가정사를 얼결에 듣게 된 적도 많았다.
이건 거래가 아니다. 듣는다고 해서 반드시 제 사연도 털어놓을 필요는 없었다. 이연은 한 번도 거기에 대한 책임감이나 죄책감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제 이야기도 하고 싶은 건 처음이었다.
제 이야기를 해 준 혜강에게 이연의 이야기도 해 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들었다. 사실은 나도, 하고 그간의 사정을 털어놓고 싶었다. 이해받고 싶었다. 공감받고 싶었다.
그러나 이연은 혜강과 달랐다.
단순히 말을 하지 않은 수준인 혜강과는 달리, 이연은 명백하게 거짓말을 했다. 자신의 능력. 2단 헌터. 애초에 거짓말로 시작된 관계였다.
거짓말에는 관성이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능력 하나를 속인 거지만 그 거짓말 하나를 수습하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 결국 오랜 기간 혜강을 속인 것은 셀 수도 없이 많아졌다. 의아해하는 혜강에게 그러게, 이상하네, 같은 어설픈 맞장구를 친 것도 몇 번이나 됐다.
처음부터 제 능력이 그림 실체화가 아니라는 말을 했다면, 이연은 가끔 그런 가정을 해 보곤 했다.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하면 괜찮다고 이해해 줄지도 몰랐다. 혜강은 침착하고 무덤덤한 성격이라 시크하게 보였지만, 다정하고 섬세한 사람이었다. 착한 동생이었다.
하지만 그의 성격을 파악한 다음에야 슬쩍 내보이는 진실이라니. 그거야말로 기만이 아닌가. 이연은 혜강이 상처받는 걸 바라지 않았다.
아니, 아니. 이건 그냥 핑계였다. 이연은 그냥 무서울 뿐이었다.
사실을 밝혔을 때의 혜강의 반응이 무서웠다. 그간의 거짓말을 알았을 때 그에게 실망할 것이 무서웠다. 괜찮다고 말해도 그를 이제 믿지 않게 될까 봐, 이제 가족 이야기 같은 건 해 주지 않게 될까 봐. 혜강과의 관계가 달라질까 봐.
그런 것이 무서웠다. 혜강은 이연이 ‘정이연’으로서 만든 가장 소중한 인연이었다. 제 잘못으로 달라지는 게 싫었다.
‘10년 전이랑 바뀐 게 없네.’
희미하게 자조해도 없던 용기가 생기지는 않았다.
이미 해 버린 거짓말을 뒤집을 수도 없고 지속하기도 싫은 상황이다. 갈팡질팡한 마음은 시시때때로 무게추가 바뀌었다.
“……제산오는 안 오네.”
그러나 결국 겁쟁이가 이겼다.
“그러게. 오늘은 아예 안 오려나?”
혜강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산오 몫으로 사 온 아메리카노가 벌써 얼음이 다 녹다 못해 컵 표면에 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산오가 이런 식으로 자리를 비운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오랜만이라 그런지 영 어색했다. 이연은 괜히 휴대폰을 만지작대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그간 제대로 연락해 본 적도 없으면서 이제 와서 전화하려니 유난으로 보일까 괜히 신경 쓰였다.
대신 이연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잠깐 산책 좀 다녀올게.”
“웬 산책?”
혜강이 놀라며 되물었다. 혜강 정도로 실내에만 박혀 있지는 않지만 이연 역시 별다른 목적이 없으면 누워 있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그냥……. 진 국장님한테 다시 가 봐야겠다.”
이연은 그나마 제일 그럴듯한 핑계를 가져다 댔다. 지금으로서는 그동안 희수를 만나지 못한 게 다행이었다. 혜강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이며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