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73화 (72/250)

#73

“뭉치는 왜 데려온 건데? 걔는 집에 있어도 상관없잖아.”

밥을 챙겨 줘야 하는 것도 아니고. 재경의 물음에 이연이 기운이 쪽 빠진 얼굴로 대답했다.

“집에 있으라고 설득하다가 현관문 박살 날 뻔했어요.”

재경은 이연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뿌리 깊은 고단함에 감히 자세히 묻지 못했다.

“그래도 휴가에 회사 동료들이 다 따라오고, 엄청 사이좋나 보네. 특히 그 무서운 친구는 좀 이런 데 따라오는 거 싫어할 것 같은 이미지 아냐?”

“저도 그게 의문이긴 하죠…….”

너무 태연하게 동행해서 처음에는 제가 같이 가자고 해 놓고 기억을 못 하는 줄 알았으나, 방을 따로 잡은 것을 보니 온전한 산오의 의지였다. 심지어 스위트룸이다. 누가 잡아 준 건지는 안 봐도 훤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대체 어떻게 영입하게 된 거야? 이름은 뭐고?”

이연은 잠시 산오의 정체를 공개했을 때 재경이 얼마나 놀라 나자빠질지 고민했다. 인상 쓰고 피해 다니려나? 아니면 약점이라도 잡겠다면서 산오를 쫓아다니려나? 뭐든 간에 중간에 낀 이연만 번거로워질 것 같았다.

“직접 물어보세요.”

“뭐? 싫어! 무섭단 말이야.”

당분간 재경 씨가 제산오의 정체를 알고 놀라는 일은 없겠군. 시한부여도 평화는 평화다. 이연은 질겁하는 재경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저희 알바생한테 되게 관심 많네요.”

“솔직히 능력도 그렇고…… 이연 씨랑 너무 차이가 나잖아.”

재경이 예고 없이 말로 후드려 팼다. 내가 목숨 연장해 준 줄도 모르고……. 지적하기도 귀찮아서, 이연은 순순히 대답했다.

“제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그냥 뭐, 하겠다는데…….”

“헐, 완전 땡잡은 거 아냐?”

“도움이 많이 되긴 하죠. 들어 보니 뭐 찾는 게 있나 봐요. 그거 찾을 때까지 있겠다고 해서 알겠다고 했어요.”

“뭘 찾는데?”

이연은 잠시 망설였다. 과연 재경이 똥 찾으러 무급 알바 하는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제산오 스토커인 종찬과 종희조차 부동심을 유지하지 못했는데, 따지자면 안티에 가까운 재경이 과연…….

“왜, 뭔데.”

그러나 재경은 무언가 사정이 있는 듯한 산오에게 제법 호기심이 생긴 것 같았다. 계속되는 채근에 이연이 떨떠름하게 입을 열었다. 제산오 무서운 것도 겪어 본 사람이니 허튼소리를 할 것 같지도 않았고.

“인분을 찾는다네요.”

‘인분’ 부분을 최대한 작게 흘려서 발음했지만 재경은 용케 잘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그는 카운터를 정리하던 손까지 멈추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할 말이 대강 예상되었기 때문에 이연이 변명을 웅얼거렸다.

“아니, 뭐.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니고 그냥 뭔가 사정이……”

“그 친구 혹시 예전에 폭력 조직 같은 데 있었어?”

“예?”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이연이 의아하게 되묻자 재경은 오히려 더 어리둥절한 반응이었다.

“그게 아무리 유명해도 평범하게 양지에서 일하는 사람이 알 만한 건 아닌데. 불법적인 일 하던 거 아냐?”

“……왜요? 인분이 뭔데요?”

분뇨를 뜻하는 게 아니었다고? 근래 들은 정보 중 제일 충격이다.

형세는 어느새 이연이 재경을 닦달하는 모양새로 바뀌었다. 재경이 음, 하고 운을 떼고는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그는 클럽에서 일했을 때 불법적인 일에 연루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고, 지금도 그 관계를 활발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이 바닥에서 엄청 유명한 말 중 하나야. ‘청호(靑蝴)를 잡으면 억만장자가 될 수 있다.’”

이연이 눈을 크게 떴다.

“청호요? 뭉치?”

“아니. 독음은 같은데, 한자가 달라. 범 호(虎)가 아니라 나비 호(蝴).”

다행이다. 청호가 있는데도 억만장자가 아니라서 억울할 뻔했다.

청호를 잡으면 억만장자가……. 이연은 재경이 한 말을 속으로 가만히 곱씹었다. 마치 전설 속에나 나올 법한 말이었다. 생전 들어 본 적 없는 걸 보니 음지에서만 통하는 표현인 듯했다.

“우리 뭉치 외에 청호라는 변이종이 또 있는 거예요?”

행정상 변이종 이름을 동음이의어로 만들면 상당히 귀찮을 텐데 의외로운 결정이었다. 전설의 변이종 같은 건가? 몸값이 엄청 비싼 모양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나비 사냥에나 나서 볼까 고민하는데, 재경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변이종이 아니라 사람이야. 이연 씨는 모르겠지만…….”

청호…… 푸른 나비를 뜻하는 사람. 태평하던 이연의 눈매가 약간 날카롭게 변했다.

“모르포?”

“어, 이연 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

“김철재 씨한테 들었어요.”

아아. 재경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포랑 인분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나비는 날 때 인분을 흘리잖아.”

“나비가 똥을 뿌리고 다닌다고요?”

“똥에서 그만 벗어나 줄래? 왜 그렇게 똥을 좋아해?”

질색한 재경이 휴대폰으로 ‘인분’을 검색해 보여 주었다. 이연의 시선이 하얀 화면을 훑었다.

인분(鱗粉). [명사]나비, 나방 따위의 날개에 있는 비늘 모양의 분비물.

“뭐, 물론 너같이 이런 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 똥이라고 받아들이기 쉽지. 그래서 다들 그의 정보를 얻을 때 암호처럼 대체해서 쓰는 단어기도 해. 모르포의 인분이라고 하면 엄청 비싼 값에 거래되거든.”

“그렇구나…….”

몇 달 만에 제산오 똥쟁이 오해가 풀렸다.

“아마 이연 씨 친구도 그 말을 어디서 주워듣고 모르포를 찾고 있는 거겠지. 모르포 그 자체도 인재지만, 모르포가 그동안 만든 것들을 하나라도 얻어서 갖다 팔면 부자가 되는 건 식은 죽 먹기잖아.”

“그렇군요…….”

이연의 말은 대답이라기보다는 반사적으로 내뱉은 신음성에 가까웠다. 당황한 연한 색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제산오가 찾고 있는 게 모르포였다니.

물론 산오의 목적이 돈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땅에 묻힌 보물들을 죄다 캐낼 수 있는 초능력자보다 부자인 인간은 세계에서도 몇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원하는 게 따로 있다는 말인데.

……어째서?

두 사람이 하는 아르바이트 내용은 재경이 호언장담한 대로 그리 어렵지 않았다. 호텔 손님들을 상대로 천연 비누나 부채, 선 캐처 같은 기념품을 판매하는 일이었고, 대부분의 기념품 가게가 그렇듯이 가격이 비싼 편이었기 때문에 손님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혜강과 산오는 애초에 알바를 하러 온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야말로 여유롭게 쉬었다.—뭉치는 혜강이 돌보기로 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 밥 먹고 씻은 다음 수영장으로 기어 나와 일광욕도 좀 하고, 수영도 좀 하면서 놀고 있으면 이연이 일을 끝내고 합류했다. 그럼 다 같이 밥도 먹고, 술도 한 잔씩 하고, 혜강과 산오 헌팅 당하는 것도 구경하고, 다시 자고 일어난 이연은 알바를 하러 가고…….

이게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이틀도 안 걸렸다.

“어, 형. 쉬는 시간이야?”

“아니. 도망 왔어.”

“또?”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수영장 옆에는 선 베드가 여러 개 열을 지어 놓여 있었다. 재경이 손님을 상대하는 틈을 타 탈주한 이연은 혜강이 누워 있던 선 베드 가장자리에 우울하게 걸터앉았다.

‘휴가는 다 같이 썼는데 왜 나만 또 일하고 있는 거지?’

매끈한 재질의 통이 넓은 수영복 한 장만 입고 있는 혜강은 얼마나 잘 먹고 잘 쉬었는지 얼굴에서 반질반질 윤이 났다. 압도적인 미소년의 아우라에 주변 사람들이 흘끔흘끔 혜강을 훔쳐보고 있었다.

“형, 잘 왔어. 우리 사진 좀 찍자.”

“웬 사진?”

이연이 어리둥절하게 혜강의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워낙 얼굴이 예쁘다 보니 아무렇게나 있어도 호텔의 정경과 어우러져 그림 같았다.

“무슨 호텔 이벤트가 있는데, 사진 찍어서 공식 SNS에 올리게 해 주면 객실 업그레이드 해 준대.”

“……그런 게 있어?”

“어. 아까 직원이 와서 말하던데.”

아무리 봐도 급조한 냄새가 났다. 이연은 수상하다는 얼굴로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빨리 해 달라는 혜강의 성화에 떨떠름하게 휴대폰 화면에 집중했다.

“고마워. 선크림도 발라 줘.”

혜강은 두 사람이 나란히 찍힌 사진을 흘끗 확인만 한 후 바로 이연에게 선크림을 쥐어 주었다. 몸을 뒤집어 엎드리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운 작태였다.

이 자식이, 형을 아주 야무지게 잘 써먹는다. 새하얀 등판을 뚱하게 바라보던 이연이 이내 쭉 짜서 문지르기 시작했다. 스파라도 옴팡지게 받고 왔는지 등짝이 아기 살결마냥 보들보들했다.

“대충 바르지 말고 꼼꼼히 발라 줘.”

“까다롭게 굴면 하트 모양으로 바르는 수가 있어.”

그때, 무언가가 그들에게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잡으려던 이연의 손은 크림이 잔뜩 발린 탓에 미끄러져 결국 바닥에 떨어트리고 말았다.

고개를 숙여 물체를 확인하니 선크림이었다. 이건 또 뭐야? 이연이 대뜸 자기 선크림을 던진 망나니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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