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66화 (66/250)

#66

“뭐?”

D.S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녀의 눈동자가 희수와 절친한 듯 이야기를 나누는 세은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통이 넓은 긴 소매에 가려져 있긴 했지만, 넝쿨 같은 게 손목을 감싸고 있는 것이 얼핏 보였다.

“……저거, 진희수 파트너 아니야?”

따로따로 볼 때는 몰랐는데, 의상도 비슷한 톤으로 맞췄는지 둘이 함께 서 있자 일행이라는 느낌이 확 들었다.

“이세은이라고, 저한테는 오빠랑 왔다고 하긴 했는데…….”

“우리 친가엔 저런 애 없어. 난 얼굴도 본 적 없고.”

빠른 속도로 대답한 D.S가 널찍한 기둥 뒤로 숨었다. 경보로 그녀를 쫓은 이연이 휴대폰을 꺼냈다. 메시지 수신자는 혜강이었다.

혹시 20살 이세은이라는 애 찾아봐 줄 수

“야.”

“헉, 깜짝이야!”

날래게 움직이던 손가락은 문장을 전부 치지도 못하고 경련하듯 멈췄다. 별안간 뒤에서 튀어나온 산오가 마치 저승사자처럼 이연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심기가 대단히 불편한 건 여전했다.

“이연 씨. 아무리 배가 고파도 여기서 한 끼를 전부 드시는 건 곤란해요.”

거대한 덩치 옆에서 수아가 쏙 고개를 내밀었다. 살포시 웃으며 건네는 농담에 그런 거 아니거든요, 하고 이연이 투덜거렸다. 비록 공포 영화처럼 등장하긴 했지만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마침 잘 왔어요. 뭐 성과 얻은 거 있어요?”

“은근히 흘리긴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크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수아가 한숨을 쉬며 뺨을 감쌌다.

“자꾸 산오 씨에 대해서만 묻고.”

친구라고 말해도 갑자기 너도 결혼할 때 됐다는 말만 반복하셔서 진땀 났어요. 다들 사람 말을 뭘로 듣는 건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수아의 모습은 정말로 질색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이연은 일부러 떠보듯 물었다.

“사장님 얼빠잖아요.”

“물론 산오 씨도 잘생겼긴 하지만, 제 취향이랑은 조금 달라요.”

“저 정도면 취향 위에 있는 얼굴 아니에요?”

“아이참. 전 가문의영광굴비 같은 얼굴이 좋다구요.”

이목구비가 선명하고 단단하게 생긴 산오와는 달리 가문의영광굴비는 다소 중성적인 화려함이 넘쳤다. 둘의 분류가 정반대긴 하지. 이연이 떨떠름하게 수긍했다.

“가문의영광굴비가 뭔데? 굴비가 취향이라고?”

상황을 모르는 D.S의 의문에 수아가 아련하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잘생긴 사람 있어요. 그 후로 만날 수는 없었지만…….”

얼굴 취향이라는 이유로 튜토리얼도 못 하게 하는데 무서워서 퍽도 들어가겠다.

“아무튼 큰 소득은 없었어요. 명절 어른들 상대하는 기분은 바가지로 났는데…….”

“제산오, 너는? 뭐 본 거 없어?”

그 말에 산오가 어둡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굴려 이연을 내려다보았다.

“너.”

“……어?”

“너 봤는데.”

놀았다는 말을 이렇게 창의적으로 돌려 말할 줄도 알게 되고, 제산오도 제법 처세술이 늘었다.

보아하니 이쪽도 큰 소득은 없었던 모양이다. 수아의 옆에 내내 붙어 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뭐, 그래도 커플처럼 붙어 있었던 것치고는 둘 사이에 기류 같은 건…… 이런 걸 내가 신경 왜 쓰고 있는 거지? 문득 정신을 차린 이연이 흠칫했다. 산오와 수아가 썸을 타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다고. 아니, 애초에 수아 씨한테 제산오 얼굴에 대해서는 왜 물어본 거지? 뭘 떠본 거야? 왜 떠본 거야?

“이연 씨? 왜 그래요?”

수아가 의아한 듯 이연 쪽으로 한 발자국 다가섰다. 이연이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크게 물러섰다. 그늘에 가려져 있던 얼굴이 샹들리에 빛을 받아 하얗게 빛났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른 거 생각 좀 하다가.”

“얼굴이 엄청 이상한데요?”

“그래요? 얼굴이 가려워서 그런가 보다.”

이연이 제 얼굴을 아무렇게나 문질렀다. 벅벅 긁는 거친 손속에 하얀 뺨이 달아오르다 못해 새빨갛게 변할 지경이 되자, 산오가 손목을 붙들었다.

“왜 지랄이지?”

별안간 닿아 온 온기에 이연이 본능적으로 팔을 떼어 냈다. 쾌속으로 내쳐진 손을 바라보는 산오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한바탕 헛손질을 한 후에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여기서 그나마 단서를 얻은 것은 자신밖에 없는 거 같았다.

“이세은이라는 이름은 들어 본 적 없어요.”

이연의 설명을 듣고 난 수아의 첫 마디였다. 그녀는 흠, 하는 감탄사와 함께 팔짱을 꼈다.

“저도 나름대로 발이 넓은 편인데, 수상하긴 하네요.”

팔찌를 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했다. 아무리 집안이 좋지 않다고 해도, 20살밖에 안 되는 어린 아가씨가 그 정도 재력이 있다면 당연히 소문이 돌 터였다.

“그런데 그게 진희수랑 같이 등장했단 말이지.”

“그건…… 조금 의외긴 해요. 언니는 그쪽 소식 모르죠?”

수아의 물음에 D.S가 한숨을 쉬었다.

“집이랑 연락하는 건 미래와 만날 때뿐이야. 그것도 유모랑 하는 거고.”

세은이라는 여자가 비밀번호까지는 아니더라도, 비밀번호 힌트는 될 것이다. 일단 그녀와 접촉을 해 보는 게 우선이었다.

“유모에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니, 그게…….”

별생각 없이 대답하던 이연이 멈칫했다. 이 목소리는…….

“……덕선 누나?”

이연의 옆에 선 희수가 오히려 더 놀란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야. 국장님이 여긴 웬일이에요?”

“웬일이기는…… 보이길래요.”

희수가 이연을 턱짓했다. 아차. 그제야 이연은 자신의 몸이 기둥 그늘 밖으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은은 그새 어디로 간 건지 희수는 혼자였다.

“그런데 이연 씨는 어쩐 일로…… 제산오? 아니, 덕선 누나는…….”

“난 이만.”

D.S가 잽싸게 등을 돌렸다. 잠깐, 하고 D.S를 잡으려는 희수를 붙든 건 수아였다. D.S를 이 판에 끌어들인 주도자로서의 일말의 책임감이었다. 희수가 수아에게 붙잡혀 멈춘 사이 D.S는 무사히 홀을 빠져나갔다.

“이연 씨에게는 제가 와 달라고 했어요.”

“수아?”

희수는 조금 당황한 낯으로 중얼거렸다. 예상치 않은 인물들을 우르르 만나서 얼이 살짝 빠진 것 같았다.

“그럼 수아가 데리고 왔다던 잘생긴 남자 친구가…….”

말줄임표에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나? 지금 나 욕하는 건가? 이연이 긴가민가하며 눈을 깜빡였다.

“…….”

온화하게 웃고 있던 수아의 얼굴에 금이 갔다. 당장에라도 부정하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으나, 용케 인내했다. 되도 않는 상대를 들이밀지만 대의를 위해 참아 준다는 감정이 너무 적나라해서 오히려 옆에 있던 이연이 조금 상처받을 정도였다.

“아무튼 오랜만이에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시무룩해진 이연과 멀뚱히 선 산오를 버려두고 수아는 능숙하게 희수와 대화를 이어 갔다. 자연스럽게 그들을 등진 사이 이연과 산오가 슬그머니 걸음을 옮겼다. 사장님 나이스. 이연이 속으로 쫑알대며 홀을 살폈다. 세은이 아직 남아 있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서였다.

“단발 파마 머리에 커다란 꽃이 그려진 미니 드레스를 입고 있는 애야.”

세은의 인상착의를 산오에게 설명해 주며 두리번거렸지만 좀처럼 보이질 않았다. 이미 여길 빠져나갔나? 아예 복도로 나가서…….

“어, 너희!”

그때, 누가 어깨를 툭 쳤다. 바쁜데 누구야?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돌아본 이연의 눈이 크게 뜨였다. 낯이 익은 얼굴이다. 잘 매만진 머리와 차림새, 다소 건들거리는 자세, 느끼한 웃음까지.

클럽에서 만난 수빈의 일행, 클럽남이었다.

의외의 인물에 이연은 놀랐지만 곧 납득했다. 수빈의 일행 사이에서 분위기를 주도한 남자. 부잣집 자제들이 모인 무리의 리더 격인 데다 초면인 상대에게 고가의 술을 턱턱 사 줄 정도의 재력까지 있는 클럽남이 이곳에 초대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연과 산오를 본 클럽남은 반색했다. 원래 인싸들이 그런 건지, 고작 15여 분 정도나 봤을까 싶은 사람에게도 10년 지기한테 하는 것마냥 살가운 태도였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네.”

거기까지 말한 이연이 잠깐 머뭇거렸다. 생각해 보니 통성명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다. 눈치 빠르게 알아챈 클럽남이 손을 내밀었다.

“박형석이야.”

“정이연이에요.”

산오는 당연하다는 듯 형석을 무시했기 때문에, 이연은 어색한 분위기로 흐르지 않도록 텀을 두지 않고 웃으며 악수했다.

“그날은 잘 들어가셨어요? 술 사 주셨는데 인사도 없이 갔네요.”

“아냐. 그땐 다들 뭐, 정신없었지. 매번 하던 이벤트가 없을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는데……. 다음 날 클럽이 순식간에 폐쇄될 줄은 몰랐어.”

어깨를 으쓱이는 형석은 아무렇지 않은 태도였다.

“수빈 누나는 어떻게 지내는지 아세요?”

“아, 맞아. 입원했다더라. 이상은 없다곤 하는데 이상하게 안 깨어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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