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61화 (61/250)

#61

일이 그렇게 되니 가족들도 죄다 비상이었다. 귀여운 막내의 입원에 온 가족이 모여 병상 앞에서 안절부절못했다. 정신적 문제인가 싶어 친구들을 불러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고 하고, 직업 없이 노는 사람이었던지라 일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아니었다.

수빈의 의식을 깨우기 위해 온갖 방법이 동원되었다. 치유계 초능력자는 당연했고, 막대한 금액의 검사에, 세계 각지의 의사들을 직접 모셔 오기도 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굿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내려진 진단은 단순 피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두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이전에 이연과 만났을 때의 수빈은 갑자기 쓰러질 정도로 허약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건강했으면 건강했지……. 모르긴 몰라도 최소 이연보다는 더 튼튼했을 터다.

그런 사람이 2주가 지나도록 정신을 차리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곧 깨어날 거예요.”

혜강의 위로에도 수아는 침울한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오래된 희망은 체념의 빛을 띠고 있었다.

그때, 병원 창 너머로 노을빛이 들어오며 서랍장 위에 무언가가 반짝였다. 이연은 슬그머니 다가가 살펴보았다. 환자와 보호자의 잡화를 넣어 놓는 용도의 서랍장 위에 놓인 예쁜 트레이에는 반짝이는 액세서리들이 담겨 있었다.

“이건 뭐예요?”

“아, 그건 동생이 차고 있던 장신구들이에요. 병원복 입히면서 따로 보관해 둔 거예요.”

화려한 스타일이라는 건 클럽에서도 느꼈지만, 종류가 굉장히 많았다. 귀걸이는 중지 손가락만큼 길었고, 반지는 너댓 개에, 목걸이와 팔찌까지 야무지게 차고 있던 모양이었다.

같이 착용한 장신구가 어울리도록 비슷하게 톤을 맞춘 액세서리들의 절반 이상에 반짝이는 보석이 붙어 있었다. 재력을 생각하면 큐빅 따위는 아닐 것이다.

그런데 온통 은색에 투명한 빛을 띠고 있는 장신구들 사이, 하나만 유독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로즈골드 빛으로 둔하게 반짝이는 팔찌.

“응?”

이연이 팔찌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팔찌는 중앙에 손톱만 한 푸른 보석이 박혀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넝쿨이 자라나는 듯한 모양이 음각되어 있었다. 섬세하고 예쁘게 만들어진 고전풍 물품이었다.

이연의 시선이 팔찌에 장식된 푸른 보석에 고정되었다.

‘이거, 어디선가…….’

곰곰이 생각하던 이연이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멈췄다. 짧은 깨달음 후 가방 지퍼를 여는 손길이 분주했다.

“형, 왜 그래?”

이연의 행동이 영 수상했는지 혜강과 수아가 다가왔다. 이연이 그들을 돌아보며 가방을 탈탈 뒤져 슬쩍했던 보석을 꺼내 들었다.

“이거, 저 팔찌에 있는 거랑 똑같지 않아?”

하얀 손바닥에 놓인 붉은색과 보라색 보석은 팔찌에 박힌 푸른 보석과 색만 다를 뿐 커팅 모양이나 크기가 완전히 같았다. 보석의 출처는 막상 내민 이연조차도 믿을 수 없었다.

클럽 연구소의 보석들이다.

“웬 보석이에요?”

경위를 모르는 수아가 의아하게 물었다. 불길한 직감에 이연은 설명 대신 손을 뻗었다.

“그게, 이건 의뢰 하다가 얻은 건데. 잠깐만요.”

팔찌를 착용하자, 차가운 금속 느낌과 함께 낯설고 기묘한 감각이 손목 안쪽에서부터 타고 올라왔다. 팔뚝에 소름이 돋았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연이 서랍장에 놓인 트레이를 쥐었다.

와직.

장신구들이 한쪽으로 쏠린 트레이 구석이 손아귀 안에서 불량품처럼 구겨졌다.

변화는 그 후부터였다. 몸 안의 기력이 비정상적으로 격렬하게 빠져나갔다. 이연 자신의 초능력을 쓰는 것과는 달랐다. 숨이 턱 막히는 감각이 손끝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졌다.

썰물처럼 빨려 나가는 기력에 작게 휘청이는 몸을 커다란 팔이 단단히 잡아 올렸다. 어느새 온 건지 강한 힘으로 팔찌를 거의 잡아 뜯듯이 빼낸 산오가 인상을 찌푸렸다.

“멍청하게 그걸 왜 써.”

그 말에 대답할 정신도 없었다. 이연이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거, 초능력인데?”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초능력 팔찌에 차금은 물론이고, 수아 역시 넋이 나간 듯했다. 그녀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수빈이는 초능력자가 아니에요.”

더 큰일이다.

다행히 그 후로 수아는 빨리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수빈의 SNS를 뒤져 팔찌의 출처를 찾는 거였다.

“제 동생은 변덕도 심하고, 꾸미는 것도 좋아해요. 하루에도 옷을 몇 번이나 갈아입고, 집에 만든 드레스룸도 어마어마하게 커요.”

그런데 최근에 올린 모든 포스팅의 사진은 같은 팔찌를 끼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팔찌를 끼고 다니기 시작한 시점과 기운이 없다고 말하던 기간이 거의 일치했다.

이 정도면 확신범이었다.

“세 분.”

다급한 말씨가 공기를 갈랐다. 수아는 절박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이연의 시선이 수아와 누워 있는 수빈을 향했다.

크게 고민할 것도 없었다.

병원을 나온 차금은 일단 찢어졌다. 혜강이 사무실에서 팔찌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산오와 이연은 D.S의 공방에 팔찌 분석을 맡기기로 했다.

꽤 늦은 시간이었는데도 D.S는 어김없이 공방에 나와 있었다.

“초능력 팔찌? 그런 말도 안 되는 게 가능하다고?”

D.S는 팔찌를 쥐고 요리조리 살펴보았지만, 겉보기에 커다란 차이점은 없었다.

“네. 그렇게 강한 건 아니지만…….”

“이미 이런 걸 쓸 수 있게 만든 시점에서 말도 안 되게 강해질 수 있겠지. 여러 개 차면 어떻게 되겠어?”

듣고 보니 그랬다. 뒤늦은 활용성에 이연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예상보다 위험한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여기 담긴 능력은 뭔데?”

“아마도 근력 강화 초능력인 것 같아요. 부작용이 심한 것 같으니까 직접 사용하진 마세요.”

“근력 강화라. 흔하고 좋지.”

대수롭지 않은 말투였지만, D.S 역시 놀랍기는 했는지 투덜거리듯 욕을 내뱉었다.

“어떤 미친놈이 이런 걸 만들었담.”

이연 역시 한숨 쉬듯 웃었다.

“아, 그리고 이거.”

이연이 내민 것은 클럽 연구소에서 쌔빈 보석들이었다. 눈썰미가 좋은 D.S는 단번에 보석이 팔찌에 쓰인 것과 같은 종류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미친놈이 너야?”

D.S의 의심쩍은 시선이 위아래를 훑자, 이연이 펄쩍 뛰었다.

“아니에요! 다른 의뢰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거라고요.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조사하는 데 써 주세요.”

“알았어.”

이연이 건넨 보석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D.S가 팔찌 옆에 나란히 올려놓았다. 색색깔의 보석이 스탠드 빛에 부딪쳐 빛났다. 알록달록한 광물들이 장난감처럼 반짝이는 광경이 묘하게 섬찟했다.

며칠 후, D.S에게서 연락이 왔다. 팔찌 분석이 끝났다는 용건이었다.

공방에 도착한 두 사람에게 D.S가 다짜고짜 물었다.

“너희, 이거 어디서 났어?”

“네?”

“이딴 걸 어디서 주웠냐고.”

오기만을 기다렸는지 다다다 쏘아붙이는 기세가 거셌다. 놀란 이연이 눈만 깜빡거리자, D.S가 테이블에 놓여 있던 팔찌를 툭툭 두드렸다.

“이거 완전히 미친 물건이야. 어느 미친놈이 만든 건지는 몰라도, 이런 게 돌아다닐 수가 없는데…….”

“잠시만요. 왜 그래요? 팔찌가 뭐가 어쨌는데요?”

“절대 이렇게 만들면 안 돼. 악질적으로 느껴질 수준이라고.”

어찌나 세게 혀를 차는지 공간이 다 울렸다. 인상을 찌푸린 D.S가 미간을 꾹꾹 누르며 설명했다.

“포탈이 어떤 원리인지 알지?”

“네…….”

순간 이동 능력을 물체에 옮겨 순간 이동 능력자가 없어도 쓸 수 있게 만드는 포탈. 이것이 보급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순간 이동 능력자가 충전해 주지 않으면 포탈도 쓸 수 없기 때문이었다.

포탈은 순간 이동 능력자의 보조 장비에 가까웠다. 순간 이동 위치도 사전에 순간 이동 능력자가 지정을 해 둔 곳에서 마음대로 바꿀 수 없었고, 가능한 부피도 정해져 있었으며, 원하는 만큼 펑펑 이동할 수도 없었다. 그건 단지 기력을 잠시 모아 뒀다가 필요할 때만 쓸 수 있게 하는 장치였다. 아주 한정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자원.

초능력을 사용한 기계가 시중에 거의 없는 것도 이런 원리였다. 아직까지는 합법적으로 초능력자 없이 초능력을 쓸 수 있는 기술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 합법적으로는.

“뭐, 유일하게 전투 구역 지형 설정 기능이 있긴 한데, 그건 설계도가 공개되지 않았으니까. 개발자도 사라졌고.”

“그것도 대단한 기술이긴 하죠.”

“그래. 대체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D.S가 다시 팔찌 설명으로 돌아왔다.

“여기에도 포탈처럼 초능력자들의 기력이 담겨 있긴 해.”

찌푸린 눈이 서늘한 빛을 내는 팔찌를 흘깃 보았다.

“차이점이라면, 안에 담긴 기력으로는 모자라서 착용자의 기력까지 필요로 한다는 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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