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랭킹 1위를 임시 보호 중입니다-60화 (60/250)

#60

6. 지금 마주하고 있는 직원은 고객님의 소중한 가족일 수 있습니다

[금일 휴업]

“또오?”

이연이 인상을 찌푸리며 어깨를 늘어트렸다. 요즘 밤꼬치의 휴업이 잦았다. 오늘은 닭 꼬치의 날이었는데…… 안 간다는 제산오 꼬시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 세상을 잃은 것처럼 시무룩하게 ‘금일 휴업’만 바라보고 있는 이연의 어깨를 혜강이 툭툭 두드렸다.

“어쩔 수 없지. 오늘은 다른 데 가자.”

“어제도, 그제도 다른 데에 갔잖아…….”

죽상으로 중얼거린 이연은 금세 고개를 들고 혜강에게 잔소리했다.

“네가 자꾸 사장님한테 게임하자고 꼬셔서 그런 거 아냐? 게임하느라 가게 안 여시는 거 아니냐고.”

“참나……. 나 지금 여기 같이 있잖아. 그리고 요즘 수아 누나 게임에도 잘 안 들어와.”

“뭐? 사장님 너랑 비슷하게 게임하시는 분 아니야?”

“……맞긴 한데, 왜 욕같이 들리지?”

혜강과 이연이 가게 앞에서 투닥대는 동안,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어머? 세 분. 오늘 가게 쉬어요.”

“사장님!”

수아였다. 몸은 거리를 향해 있고 고개만 이쪽으로 돌린 폼이 지나가다 발견한 모양이었다. 이연이 환해진 얼굴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마치 강아지가 주인 찾아가는 것처럼 절박하고 반가운 몸짓이었다.

“사장님 음식이 너무 땡기는데 못 먹어서 죽겠어요. 왜 이렇게 가게를 자주 쉬어요?”

“그렇게 자주 쉬었나요?”

수아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대답했지만, 이연은 뒤늦게 그녀의 행색이 평소와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치장을 좋아해서 언제나 서양풍 로맨스 소설에 나올 법한 아가씨처럼 부드러운 레이스나 하늘하늘한 치마 같은 걸 입고 화장도 곱게 하는 편이었다. 인테리어가 예쁜 카페를 자주 갈 것 같은 스타일은 얼핏 보기엔 꼬치집과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1분만 함께 있어도 위화감은 금방 없어지곤 했다. 그녀는 어딜 가든 분위기를 제 것으로 만들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 만난 수아는 긴 머리를 대충 뒤로 질끈 묶고, 화장기도 없었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눈 아래에는 다크서클이 옅게 내려왔고, 맨 입술에는 까칠한 거스러미가 조금 일어나 있었다. 평소 자주 입던 화려하고 나풀거리던 의상 대신 스타일은 비슷했지만 훨씬 간소하고 편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어딜 보나 문제가 생긴 것 같은 모양새에, 이연이 조금 당황해서 물었다.

“사장님, 요즘 무슨 일 있어요? 잠을 못 주무신 것 같은데.”

“아.”

수아가 머쓱하게 제 뺨을 쓰다듬으며 웃었다.

“티가 많이 나나요?”

“몸이 안 좋으신 거예요?”

이연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큰 이상이 없는 것 같았지만, 세상에 병은 다양했다. 질병 같은 것도 치유계 초능력자로 되던가? 진심 어린 걱정에 수아가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동생을 좀 간호하느라…….”

“동생분? 사고라도 났어요?”

“아뇨. 아니, 난 건가?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말하는 수아는 조금 지쳐 보였다. 혼란과 걱정, 체념, 불안……. 많은 감정이 뒤섞인 눈이었다.

“얼마 전 그냥 픽 쓰러졌거든요.”

단골로 꽤 오래 지냈지만 그런 수아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이연은 저도 모르게 물었다.

“같이, 병문안 갈까요?”

수아가 눈을 크게 떴다. 이연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눈이 예쁘게 접혔다.

“그럼 감사하죠.”

“대놓고 꼬시는군.”

“꼬시기는 무슨…….”

산오의 말에 이연이 머쓱하게 중얼거렸다. 이웃 간의 정이 있는데, 이야기라도 들어 드리면 좋잖아. 도의에 입각한 발언에도 산오는 제 주장을 굳게 믿는 듯했다.

내가 수아 씨를 꼬시는 거면 파스타 게임 하다가 입술 들이민 지는 뭐, 약탈혼이라도 계획 중인가? 이미 지나간 사건으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이연은 속으로만 그렇게 삐죽댔다.

“이미 퇴근했고 회식도 글렀으니까, 너희는 집에 가도 돼.”

앞서가는 수아의 뒤를 쫓으며 그렇게 소곤대자, 혜강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나도 걱정되던 참이었어.”

봤냐? 이게 일반적인 시민의 사회성이라고. 이연이 의기양양하게 산오를 바라보았다.

“넌 어쩔래?”

“나도 가.”

“어?”

이건 좀 의외였다. 그래도 생각보다 정이 있네? 이연의 눈동자에 담긴 빛이 놀라움에서 대견함으로 바뀌기도 전에, 산오가 이죽거렸다.

“누구 좋으라고.”

그러니까 좋은 게 아니라…… 됐다. 말을 말자.

수아의 동생이 입원했다는 병원은 초호시에서 가장 큰 규모의 대학 병원이었다. 과장 조금 보태 운동장만 한 로비를 익숙하게 가로지른 수아를 따라 올라가니 금방 병동이었다.

“여기예요.”

이연은 문 옆에 써 있는 병실 주인의 이름을 별생각 없이 흘끗 바라보았다. 한수빈. 어디서 들어 봤는데. 흔한 이름이라 그런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병실에 입장하려던 이연이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멈칫했다.

“무슨 병실이…… 저희 집이랑 크기가 비슷해요?”

“아하하, 그래요?”

이연도 1인실 정도는 가 봤지만, 평범한 1인실과는 차원이 달랐다. 소파와 탁자, 각종 가전과 작은 주방까지 마련되어 있는 병실은 생전 처음 봤다. 이연이 놀라느라 문밖에서 지체하고 있는 동안, 산오가 먼저 병실에 들어섰다.

“네 집이 작은 거야.”

“야, 내 나이에 그 정도 자가면 괜찮다고.”

“왜, 어느 정돈데.”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지던 혜강 역시 병실에 들어오다 말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게 병실이야? 엄청 넓다.”

“거봐. 이게 평범한 사람의 반응이라고.”

이연의 말에도 산오는 새침하게 고개만 휙 돌리고는 침대에서 다소 떨어져 놓인 소파에 앉았다. 환자 간호보다는 응접실 개념에 가까운 구역이었다. 무게만큼 부드럽게 파이는 갈색 가죽은 편한 만큼 비싸 보였다.

어차피 저 녀석이 환자에게 관심 있으리라곤 기대도 안 했다. 이연과 혜강은 침대 옆에 선 수아의 근처로 다가갔다.

침대 근처에는 뭔지 모를 의료 기기들이 수빈을 감시라도 하는 것처럼 잔뜩 서 있었다. 그 중앙에서 수아의 동생, 수빈은 자고 있는지 인기척에도 눈을 뜨지 않았다. 수아는 익숙한지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손등만 쓰다듬었다.

창백한 여자의 얼굴을 확인한 이연이 흠칫 놀랐다. 혜강 역시 눈을 몇 번 깜빡였다. 당황한 낯이 소곤댔다.

“형, 이 사람…….”

둘 다 아는 얼굴이다. 한 명은 일방적으로 아는 사이긴 했지만, 아무튼. 이연은 얼빠진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사이로 새어 나온 것은 친근한 호칭이었다.

“……수빈 누나…….”

회원제 클럽에서 만난 클럽남의 일행. 이연과 함께 대작한 여자. 한수빈이었다.

“수빈 누나가 말한 언니가 사장님이었군요.”

괴짜라던 언니가 누군가 했더니……. 이 정도 특실을 잡을 정도로 풍족한 부잣집 딸이 이연의 동네에서 코딱지만 한 꼬치집을 하고 있으면 괴짜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긴 했다. 그제야 지갑전사 곽철식의 지갑 출처와 기묘할 정도로 퍼 주는 가게 서비스가 이해됐다.

“제 동생을 아세요?”

수아는 퍽 놀랐는지 수빈과 그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하긴, 접점이 없는 건 이쪽이다.

“최근에 의뢰 하다가 만난 적 있어요.”

“의뢰 하다가요?”

“네. 수빈 누나가 의뢰한 건 아니고, 정말 어쩌다 만난 거예요. 술도 얻어먹었어요.”

불법 회원제 클럽에서 만났다고 고발하면 수빈이 깨어나자마자 다시 정신을 잃게 될 수도 있으니 이연은 적당히 진실을 가렸다. 수빈 누나가 나중에 알아서 이야기하겠지…….

“그렇군요…….”

다행히 수빈의 주종 편력은 가족 내에 잘 알려져 있는 모양이었다. 단번에 납득한 수아가 수빈의 뺨을 조심스레 쓸었다.

“깨어 있으면 반갑다고 좋아했을 텐데, 아쉽네요.”

워낙 사교성이 좋은 애잖아요. 희미한 웃음이 담긴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흘러나왔다. 이연은 조금 수척해진 얼굴을 조금 바라보다 물었다.

“어떻게 된 건데요? 알려 줄 수 있어요?”

“말해 줄 것도 없어요. 병명을 아무도 모르거든요.”

수빈은 평소 건강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정도로 팔팔했는데, 근래 들어 기운 없다는 말을 자주 하더니 결국 어느 날 거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고 한다.

“워낙 이리저리 쏘다니며 노는 것을 좋아하던 애라, 처음에는 잠깐 피곤해서 그렇게 되었나 했어요.”

주치의도 검사 결과 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별일 아니니 의식만 찾으면 집에 데려가도 괜찮다는 말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그럼 그렇지, 하고 생각했다.

동생은 며칠이 지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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